길 위의 인문학…도봉산 문사동 계곡 산행
길을 걸으며 배우고 힐링하는 산 여행

조경렬 기자

'고산앙지'라는 석각이 계류에 잠겨 있다(사진=헤럴드저널)

모란이 피는 사월도 이제 오월을 바라보고 있다. 토머스 엘리어트(T. S Eliot)는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했다. 세계1차 대전이 끝나고 황량한 서구 사회의 정신적 공허 상태를 표현한 상징적 시어가 '잔인한 달 4월'이었다. 그 시의 제목은 황무지이다.

그는 첫 구에서 "April is the cruelest month, breeding"이라고 표현했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우리나라에도 4월은 잔인한 달의 기억이 많다. 4.19 학생의거로 수많은 청년학생들이 죽었다. 이런 역사적 사연만큼 4월은 날씨도 변덕이 심하다. 4월 넷째 주말인 오늘(2016. 4. 23. 토)도 황사가 극심해 경계 단계의 주의가 내려진 희뿌연 날씨다.

이제 진달래가 지고 산철쭉이 피는 산으로 가 보자. 진달래가 먼저 피고 지면 산철쭉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무심코 산행을 하다보면 진달래와 산철쭉을 구분하기가 쉽지만은 않다. 가장 쉽게 구별하는 방법은 참꽃으로 불려왔던 진달래는 꽃이 먼저 피고 나서 꽃이 지면서 잎이 나온다. 하지만 산철쭉은 꽃과 동시에 잎이 피거나 잎이 먼저 피고 꽃이 핀다.

여기에서 옛날부터 진달래는 '참꽃'이라 하여 화전을 부쳐 먹는 화전놀이가 있었듯이 전통 식재료의 하나이다. 하지만 철쭉에는 안드로메도톡신이라는 독성이 있어서 먹으면 사지를 마비시킨다. 그래서 이런 산행은 상식은 알고 산을 찾아야 한다.

도봉산은 북한산국립공원에 포함되어 있다. 오늘은 길 위의 인문학 산행으로 도봉산 주 계곡의 문사동(問師洞) 계곡을 따라 올랐다. 우선 도봉산은 조선시대 성리학으로 학문적 세계를 이룰 당시 도봉서원은 한양 근교에서 가장 뛰어난 학자들이 모여들어 학문에 정진하며 후학들을 가르쳤던 곳이었다.

도봉동문이라는 이 글씨는 우암 송시열의 친필이다(사진=헤럴드저널)

우리가 그냥 지나쳤던 이 계곡의 숨은 인문학을 길 위로 끄집어 내어본다. 먼저 도봉산 입구 공원관리사무소 바로 아래 왼쪽으로 보면 바위 하나가 덩그렇게 누워있다. 그 바위에 '도봉동문(道峯洞門)'이라는 암각자가 새겨져 있다. 이 글씨는 우암 송시열(1607~1689)선생의 친필이다. 이것은 학문을 연구하는 학문의 전당 도봉서원의 입구라는 표지이다.

여기를 지나서 주 계곡을 따라 오르면 약수터를 지나 도봉서원 터가 나온다. 지금은 터만 남은 자리에 신축을 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바로 그 앞 계곡 쪽으로 데크가 설치되어 있는데 계류를 보면 물에 반쯤 발을 담그고 있는 바위에 '고산앙지(高山仰止)'라는 암각이 보인다.

고산앙지(高山仰止), 말 그대로 보면 높은 곳을 우러러 본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심오한 의미가 숨어 있다. 이 서체는 1700년(숙종26) 7월에 곡운 김수증(金壽增: 1624~1701)이 쓴 글씨로 알려져 있다.

고산앙지란 '시경(詩經)' 소아(小雅) 차할편(車舝篇)에 나오는 '고산앙지경행행지(高山仰止景行行止)[높은 산은 우러러 보고 큰 길은 많은 사람이 다닌다]'라는 글귀를 인용한 것인데, 여기에서는 "높은 산처럼 우러러 사모하다"라는 의미이다. 이는 김수증이 정암 조광조 선생과 송시열 선생의 학식과 덕망을 우러러 사모한다는 의미에서 새긴 것으로 알려진다.

바로 앞 도봉서원이 정암 조광조와 우암 송시열의 높은 학문을 추앙하며 위폐 모시고 제례를 올리던 곳이기 때문이다.

계곡의 상류에 위치하고 있는 문사동 석각

이 계류를 따라 약 40분쯤 더 오르다 보면 뛰어난 풍치를 자랑하는 계류에 문사동(問師洞)이라는 석각이 나타난다. 계곡을 압도하는 운치 있는 마애각자 문사동은 '스승을 찾는 계곡'으로 풀이된다. 계류의 너럭바위가 수직으로 급경사를 이루는 끄트머리에 문사동이 서각 되어 있어 더욱 아름답다.

군자(君子)의 도(道) 실현을 가장 중시했던 조선시대 학자들은 군자의 도를 가르치는 스승이 있다면, 그 스승이 아무리 깊은 계곡에 숨어 있어도 찾아가서 가르침을 받았다. 이 서각 역시 도봉서원이 가까워 서원과 관련된 조선시대의 선비가 새겨 놓았을 것으로 보인다. 그 선비는 굽이굽이 흐르는 도봉계곡을 따라 오르며 선비의 길을 생각했을 것이다. 이 각자를 보면서 이 시대의 선비정신이 무엇이며, 지식인의 양심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한다.

이렇게 한 계곡을 따라 오르며 3곳의 바위에 새겨진 우리 선조들의 학문의 정신을 새겨보는 산행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