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양적완화' 가능성↑ VS 한은 법 근거 없다
산은 지원하려면 법 개정해야 가능해…여야 다른 생각?

조경렬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28일 오전 청와대에서 제17회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사진=청와대)

청와대 발 양적완화 발언이 정치권의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면서 기업 구조조정의 키워드로 작용하고 있다. 구조조정 자금 마련을 위한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도 청와대와 정부 요구는 강해지고 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지난 26일 "구조조정에 필요한 자금 마련을 위해 국책은행 자본 확충에 나서달라고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에 요청했다"고 밝힌데 이어 28일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서 한국형 양적완화를 추진해 달라고 요구했다.

정부가 통화정책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금기를 깨고 대통령이 직접 나서 추진을 요구한 만큼 한국판 양적완화는 기정사실화 되어 가고 있지만 한국은행의 입장은 다른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산업은행에 중앙은행이 직접 지원하는 법적 근거가 없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거론한 한국형 양적완화

박 대통령은 지난 28일 국무회의에서 한국형 양적완화에 대해 구체적인 입장을 밝히면서 급물살을 타고 있다. "기업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실을 신속하게 처리하면서 구조조정을 차질 없이, 성공적으로 추진하려면 구조조정을 집도하는 국책은행의 지원여력을 선제적으로 확충해 놓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형 양적완화는 "미국, 일본, EU 등 선진국이 펼친 (경기 진작을 위한) 무차별적 돈 풀기가 아니라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꼭 필요한 부분에 지원이 이뤄지는 선별적 양적완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박 대통령이 밝힌 한국형 양적완화는 지원 대상을 구조조정에 국한하고, 국책은행을 통로로 꼭 필요한 곳에만 돈을 공급하는 제한적 양적완화이다. 제로금리와 마이너스 금리, 채권매입 등을 통해 경기 진작용으로 돈을 푸는 미국, 일본, EU와 달리 구조조정을 위해 돈이 필요한 곳만 선정해 돈을 찍어 푸는 방식이다.

야당과 한국은행 입장은 다른 생각

야당이나 학계에서도 구조조정을 위한 자본 확충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한국은행의 발권력 동원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우선 굳이 발권력을 동원하지 않아도 재정으로도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야당은 공적자금이든 발권력이든 국민에게 부담을 지우는 만큼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고, 그런 점에서 국회 동의를 구해 재정으로 지원하는 것이 원칙에 부합된 주장이다.

국회와 같은 대의기관도 아닌 7명의 금융통화위원들이 국민 부담에 대한 결정을 하는 만큼 발권력 동원은 전쟁이나 IMF 등 비상시가 아닌 한 최대한 억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과거 한은이 발권력으로 은행에 자금을 지원한 경우는 있었지만 외환위기 때와 같이 극히 예외적인 경우였다.

세금을 거둬야 하는 재정과 달리 발권력은 7명의 금통위원이 동의만 하면 돈을 얼마든지 찍어낼 수 있어 발권력을 동원한 재정 확보가 매우 쉽기 때문에 유혹은 그만큼 크다. 그러나 그 부작용도 심각하다. 그래서 정부로부터 중앙은행을 독립시켜 그런 유혹을 견제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구체적인 요청이 오면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논의해 보도록 하겠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지만 썩 내키지 않는 찜찜한 뉘앙스가 있다.

이와 관련해 이주열 한은총재는 지난 19일 금통위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한은이 구조조정을 지원하더라도 법 테두리 안에서, 중앙은행의 기본 원칙 안에서 하겠다"고 밝혔다. '법 테두리'는 법이 허용하는 범위다. 이는 정부가 말하는 산업은행에 대한 자본 확충의 경우 법을 개정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은이 산은에 구조조정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은 신종자본증권을 매입하거나 자본금을 투자하는 자본 확충 방식과 산업금융채권을 매입하는 방식이 있으나 모두 법 개정 없이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그런 식의 지원이 필요하다면 우선 법률부터 개정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여소야대 국회에서 야당의 반대가 거세기 때문에 법률 개정에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연합뉴스 28일자 보도에 따르면 국회 기획재정위 야당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의원은 "국가채무가 늘어나는 것을 의식해 한은에 책임을 떠넘기는 것에 불과하다"며 "지금은 양적 완화를 할 때가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국민의당 장병완 정책위의장도 "결정은 정부가 하고 책임은 한은이 지라는 것이라서 말이 안 된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다만 국민의당은 다른 입장으로 정부의 의도에 길을 터주는 의견이 나와 주목된다.

28일 원내대표로 추대된 박지원 의원은 "박대통령이 그동안의 국정 실패에 대해 진솔하게 사과하고 국민, 야당, 국회, 그리고 노동계에게도 함께 고통을 감내하자고 협력을 요청하면 국민의당은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 대통령이 국정의 파탄을 사과하고 도움을 요청한다면 모든 것을 돕겠다는 입장을 밝혀 길은 열어 둔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