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월당(霽月堂)…비 갠 하늘의 쾌청하게 뜬 달
소쇄원(瀟灑園) 이야기…한국 최고의 민간 전통 정원

[헤럴드매일] 조경렬 기자

소쇄원 48영도 중에서 제1영도(그림=소쇄원)

소쇄원은 48영도를 새로 꾸며 놓았다. 제1영으로 '작은 정자의 난간에 의지하다'라는 5언 절구와 화첩이다.
 
小亭憑欄

소쇄원의 빼어난 경치
한데 어울려 소쇄정 이루었네
눈을 쳐들면 시원한 바람 불어오고
귀 기울이면 구슬 굴리는 듯 물소리 들려라

瀟灑園中景
渾成瀟灑亭
擡眸輪颯爽
側耳廳瓏玲

 
소쇄원은 전남 담양군 남면 지곡리 123번지의 우리나라 대표적인 원림으로 1981년 사적 제304호 지정되어 민간 정원의 정수를 보여준다. 이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경외와 순응, 도가적 삶을 산 조선시대 선비들의 교류와 풍류의 장으로서 가사문학의 산실이다. 하지만 남도의 소쇄원은 식영정이 있는 광주의 무등산 자락에 있다.

가는 길도 동광주에서 담양읍으로 가기 전 광주-순천간 고속도로 '고서'에서 학선리 광주호 쪽으로 접어들면 호수의 끄트머리에 가사문학관이 나오고 그 언저리에 소쇄원이 자리잡고 있다. 무등산의 원효계곡과 충장사가 지근에 있다. 다시 말해 무등산의 아름다운 산세의 북동 자락에 있는 별서정원인 셈이다. 정철의 문학적 고향인 식영정과 환벽당은 가사문학관 가기 바로 전후로 광주호 끝에 있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환상적인 조화인가. 무등산의 정기가 원효계곡을 따라 흘러 이 역사적인 정자를 빚어내고 있다.

제월당 바로 아래 있는 광풍각 풍경

조선의 가사문학과 풍류의 공간 담양 소쇄원

남도에 가면 아름다운 정원 소쇄원이 있다. 우리 조상들의 인의예지仁義禮知가 숨쉬 곳 소쇄원. 한국의 전통 정원의 진수를 보여 주는 곳이 바로 소쇄원이다. 소쇄원은 양산보(梁山甫, 1503∼1557)가 은사인 정암 조광조(趙光祖, 1482∼1519)선생이 기묘사화로 화순 능주로 유배되어 세상을 떠나게 되자 출세에의 뜻을 버리고 자연 속에서 숨어 살기 위해 전라도 담양에 꾸민 별서정원(別墅庭園)이다.

조선 당시의 시절은 당쟁으로 사화가 끊이지 않고 사회를 요동치게 했던 때 기묘사화가 일어났다. 기묘사화는 1519년(중종 14) 11월 남곤(南袞)·심정(沈貞)·홍경주(洪景舟) 등의 재상들에 의해 조광조(趙光祖)·김정(金淨)·김식(金湜) 등 사림(士林)이 화를 입은 사건이다. 성종 때부터 본격적으로 진출한 사림은 연산군 때 두 차례의 사화를 겪으면서 위축되었다.

그러나 중종반정(中宗反正)으로 연산군이 폐위되고 주도권을 장악한 반정공신들은 연산군 때 악정을 개혁하는 과정에서 사림을 수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중종 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공신세력의 독주를 저지할 수 있는 새로운 세력으로서 사림을 주목했다. 그러한 배경에서 일시 물러났던 사람들이 대거 중앙정치에 등장했다.

이들은 조광조 등을 중심으로 세력을 형성하여 왕도정치 이념에 입각한 개혁을 추진했다. 이들은 경연을 강화함으로써 왕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여 중종을 모범적인 군주로 만들려 노력했다. 또한 기존의 언론기관을 기반으로 활동하던 자신들의 한계를 인식하고 좀더 적극적으로 권력에 관여하기 위해서 낭관(郎官)에게 결정에 참여하는 권한을 부여하여 실무의 결정과 집행과정에서 재상들을 견제할 수 있는 구조를 형성했다.

이러한 변화 위에서 천거제를 실시하여 지방의 사류와 성균관의 학생들을 정치에 참여시켰고, 공론정치를 강화하여 재지사족(在地士族)의 의견도 정치에 수렴하려고 노력했다. 또한 사림은 향촌의 운영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향약(鄕約)의 실시로 나타났다.

이러한 사림의 움직임에 대하여 반정공신들은 초기에는 호의적이었으나 낭관권의 형성, 천거제의 시행, 현량과의 실시, 향약의 실시 등으로 인해 자신들의 기득권이 위협당하자 사림들과 대립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림들이 언론을 이용하여 공신들의 잘못을 탄핵하자 갈등은 점차 심해졌다. 사화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은 1519년(중종 14)에 다시 가열된 중종반정 공신의 위훈삭제(僞勳削除) 문제였다. 사림은 일찍부터 이 문제를 주목하여 공이 없이 공신에 책봉된 사람들을 훈적(勳籍)에서 삭제할 것을 건의했다.

김전(金銓)·남곤·고형산(高荊山)·심정 등은 희빈홍씨(熙嬪洪氏)의 아버지인 홍경주를 중심으로 반격의 기회를 노리게 되었다. 이들은 희빈홍씨를 통해 "나라의 인심이 모두 조광조에게 돌아갔다"고 과장하면서 그대로 둘 경우 왕권까지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주초위왕'(走肖爲王：走肖는 趙의 破字)이라는 글자를 나뭇잎에 새겨 왕이 보게 함으로써 위기의식을 갖게 했다.

1519년 11월에 홍경주 등은 조광조 등이 붕당을 만들어 중요한 자리를 독차지 하고 임금을 속이고 국정을 어지럽혔으니 죄를 주어야 한다고 건의하자 중종은 이를 받아들였다. 이로 인해 사림들은 큰 피해를 입었는데, 조광조는 전라도 능주(綾州)로 귀양가서 사약을 받아야 했고, 김정·기준(奇遵)·한충(韓忠)·김식 등은 귀양가서 사형당하거나 자결했다.

제월당의 측면 모습

비가 그친 하늘의 쾌청한 달이란 뜻의 '제월당'

스승의 안정을 위해 아름다운 정원 소쇄원을 짓다

이런 역사속에서 양산보가 귀양 온 스승 정암선생의 안정을 위해 조성된 정원이 바로 이 소쇄원이다. 이 소쇄원의 소쇄瀟灑는 '맑고 깨끗하게 마음을 씻는다'는 뜻으로 양산보의 호이다. 소쇄원은 주거와의 관계에서 볼 때에는 하나의 후원(後園)이며, 공간구성과 기능면에서 볼 때에는 입구에 전개된 전원(前園)과 계류를 중심으로 하는 계원(溪園) 그리고 내당(內堂)인 제월당(霽月堂)을 중심으로 하는 내원(內園)으로 구분되어 있다.

전원(前園)은 대봉대(待鳳臺)와 위 아래의 연못, 물레방아 그리고 애양단(愛陽壇)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계원(溪園)은 오곡문(五曲門) 곁의 담 아래에 뚫린 유입구로부터 오곡암, 폭포 그리고 계류를 중심으로 여기에 광풍각(光風閣)을 세워 풍류를 더하고 있다. 광풍각의 대하(臺下)에는 석가산(石假山)이 있는데, 이 계류구역은 유락공간으로써의 기능을 지니고 있다.

내원(內園) 구역은 제월당(霽月堂)을 중심으로 하는 공간으로써 당(堂)과 오곡문(五曲門) 사이에는 두 계단으로 된 매대(梅臺)가 있으며, 여기에는 매화, 동백, 산수유 등의 나무와 기타 꽃나무가 심어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오곡문(五曲門) 옆의 오암(鼇岩)은 자라바위라는 이름이 붙여져 있다. 또 당 앞에는 빈 마당이 있고 광풍각 뒷편 언덕에는 복숭아나무가 심어진 도오(桃塢)가 있다.

당시 이곳에 심어진 식물은 국내 종으로 소나무, 대나무, 버들, 단풍, 등나무, 창포, 순채 등 7종이고 중국 종으로 매화, 은행, 복숭아, 오동, 벽오동, 장미, 동백, 치자, 대나무, 사계, 국화, 파초 등 13종 그리고 일본산의 철쭉, 인도산의 연꽃 등 모두 22종에 이르고 있다.

소쇄원의 자연과 인공의 조화

제월당 앞으로 흐르는 계류

이 계류는 무등산의 원효계곡에서 흘러 내린다

제월당霽月堂 "비 개인 하늘의 쾌청한 달" 의미

이렇게 소쇄원은 1530년(중종 25년)에 양산보가 중앙 정사에 나아가지 않고 전원생활을 하던 차에 스승인 정암의 귀향에 애석함을 달래기 위해 꾸민 조선시대 대표적 민간 정원이다. 제월당(霽月堂), 광풍각(光風閣), 애양단(愛陽壇), 대봉대(待鳳臺) 등 10여개의 건물로 이루어졌으나 지금은 몇 남아 있지 않다.

제월당(霽月堂)은 '비 개인 하늘의 쾌청한 달'이라는 뜻으로 정면 3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며, 바로 아래 위치한 광풍각(光風閣)은 '비갠 뒤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이라는 뜻의 손님을 위한 사랑방으로 1614년 중수한 정면 3칸, 측면 3칸의 역시 팔작지붕으로 지었다.

정원의 구조는 크게 애양단(愛陽壇)을 중심으로 입구에 전개된 전원(前園)과 광풍각(光風閣)과 계류를 중심으로 하는 계원(溪園) 그리고 내당인 제월당(霽月堂)을 중심으로 하는 내원(內園)이 있는데, 도가적(道家的)인 색채도 풍겨나와 오암(鰲岩), 도오(桃塢), 대봉대(待鳳臺) 등의 색다르다.

제월당에는 하서 김인후(河西 金麟厚)가 쓴 「소쇄원사십팔영시(瀟灑園四十八詠詩)」(1548)가 편액으로 걸려 있으며, 1755년(영조31년)에 목판에 새긴 「소쇄원도(瀟灑園圖)」가 남아 있어 원래의 모습을 알 수 있게 한다.

소쇄원은 1528년 처음 기록이 나온 것으로 보아 1530년 전후에 착공한 것으로 보여진다. 하서 김인후(河西 金麟厚)가 화순으로 공부하러 갈 때 소쇄원에서 꼭 쉬었다 갔다는 기록이 있고, 1528년 <소쇄정즉사(瀟灑亭卽事)>에는 간접적인 기록이 있다. 송강 정철(松江 鄭澈)의 <소쇄원제초정(瀟灑園題草亭)>에는 자기가 태어나던 해(1536)에 소쇄원이 조영된 것이라 하였다.

1542년에는 송순이 양산보의 소쇄원을 도왔다는 기록도 있다. 소쇄원은 양산보 개인이 꾸몄다기보다는 당나라 이덕유(李德裕)가 경영하던 평천장(平泉莊)과 이를 모방한 송순, 김인후 등의 영향을 크게 받았을 것이다. 1574년 고경명(高敬命)이 쓴 <유서석록(遊瑞石錄)>에는 소쇄원에 대한 간접적인 언급이 있어 당시 소쇄원에 대한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이처럼 소쇄원은 스승 정암을 위해 양산보가 중심이 되어 축조한 것으로 보이며, 주변의 여러 지방 유생들이 도움을 주고 받으며 학문의 진작을 위한 선비들의 풍류 공간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후에 송강 정철도 이곳에서 학문적 꿈을 키웠던 곳으로 식영적과 함께 남도의 대표적인 학문과 풍류의 공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