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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의 그 돌담길…미술관이 있는 古宮을 찾아동서양의 건축물이 공존하는 덕수궁
조경렬 기자  |  herald@heraldjourna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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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7.19  19:3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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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Culture]
 
덕수궁 그 돌담길을 걷다…미술관이 있는 古宮을 찾아
동서양의 건축물이 공존하는 덕수궁

조경렬 기자

   
덕수궁 중화문과 중화전

아마도 조선의 5대 궁궐 중에서 가장 일반에 친숙한 궁궐이 덕수궁이 아닌가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덕수궁을 소재로 한 대중가요는 물론 덕수궁의 돌담길은 연인들이 같이 걸으면 헤어진다는 속설이 있는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덕수궁(사적124호)은 원래 세조의 큰손자 월산대군의 저택이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서 선조가 의주까지 피난 갔다가 서울로 돌아와 보니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이 모두 불타버려서 왕이 거처할 왕궁이 없는 나머지 왕족의 집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완전했던 월산대군家를 행궁으로 삼아 왕이 거처하면서 궁궐의 모습을 갖췄다.

1608년 2월에 선조는 행궁의 침전에서 돌아가시고 광해군이 행궁의 서청에서 왕위에 올랐으며, 광해군 3년(1611)에 행궁을 경운궁이라 칭했다. 경운궁의 정문은 원래 정남쪽의 인화문이었으나, 다시 지으면서 동쪽에 있던 대안문을 수리하고 이름도 대한문(大漢門)으로 고쳐 정문이 되었다. 1906년에는 화재로 불탔던 중화전이 복구됐으며, 1907년 7월 20일에는 일본침략자들의 강압에 의해 고종이 순종에게 제위를 물려주자 고종황제의 장수를 빈다는 뜻의 덕수궁으로 고쳐 부르게 됐다.

비록 조선 후기에 궁궐로 갖추어진 곳이지만, 구한말의 역사적 현장이었으며, 전통 목조건축과 서양식의 건축이 함께 남아 있는 곳으로 조선왕조의 궁궐 가운데 근대적 색채를 띠고 있다. 현재는 일반인에게 개방되어 도심 속의 문화재와 어우러진 휴식 공간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석조전 본관에는 궁중유물전시관이, 서관에는 미술관이 개관되어 문화 공간으로서도 큰 몫을 하고 있어 조선의 5대 궁궐 중에서 가장 붐비는 곳이기도 하다.

   
정동전망대에서 본 덕수궁 풍경

대한문大漢門

덕수궁의 정문으로 원래 이 문은 大安門이었으나 1906년 대한문大漢門으로 바꿨다. 현재의 위치는 1960년 서울 시청 앞 도시계획의 일환으로 덕수궁 궁성이 뒤로 물러나면서 함께 14m쯤 후퇴해 현재의 위치가 됐다. 궁궐의 정문이 동향으로 있는 것은 창경궁의 경우와 같으나, 원래는 중화문 앞쪽에 정문이 있었다.

이 궁문의 건축양식은 단층의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식 우진각지붕이다. 궁의 정문으로 단층인 것은 이 문이 유일하다. 오늘날에는 기단과 계단이 묻혀 버렸으나 전에는 다른 궁의 정문과 같이 기단과 석계가 있었다. 대한문이란 현판은 궁내부특진관 남정철(일제로부터 남작의 작위 받음)의 글씨로 1906년 5월에 걸렸다.

   
덕수궁 중화전으로 이 곳이 바로 대한제국이 탄생한 장소이다(사진=헤럴드저널)

덕수궁중화전

남쪽의 중화문을 들어서면 모습을 드러내는 중화전은 정면 5칸, 측면 4칸의 팔작지붕 형식을 취하고 있다. 밖으로 뻗쳐 나온 공포 부재의 형태가 가늘고 약해 보이며 곡선이 큰데 이것은 조선 후기 기법의 특징을 보이는 것이다. 안쪽에는 임금님이 앉는 자리를 더욱 위엄 있게 꾸미기 위해 화려한 닫집을 달아 놓았다.

중화전(보물 819호)은 중화문과 함께 광무 6년(1902)에 지었으나 1904년 화재로 모든 전각과 함께 소실되었던 것을 1906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따라서 이 건축물은 조선조 최후의 궁궐 정전으로 110년 정도 되었다. 이 중화전은 덕수궁의 중심 건물로 임금님이 하례(賀禮)를 받거나 국가 행사를 거행하던 곳이고 중화문은 중화전의 정문이다.

이 중화전은 우리 역사의 큰 시작일 알린 곳이다. 1897년 10월 12일 고종은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원구단(園丘團)에 황천상제(皇天上帝)께 천제를 올린 후 경운궁(1907년 7월 덕수궁으로 변경) 태극전(1898년 2월 중화전으로 변경)에서 황제에 즉위한다.

이와 동시에 황제와 정부는 조선의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개정하여 국내외에 선포한다. 대한제국의 성립은 대한이 완전한 자주독립국가임을 내외에 거듭 재천명 하면서도 자주독립의 강화를 국내외에 알린 역사적 사건이다. 곧 대한민국의 근간이 된 일이었다.

   
덕수궁 준명당 측면

덕수궁함녕전

덕수궁 함녕전(보물820호)은 고종황제가 거처하던 황제의 생활공간으로 광무1년(1897)에 지었는데 광무 8년(1904) 수리공사 중에 화재가 나서 지금 있는 건물은 그해 12월에 다시 지은 건축물이다. 이 곳은 순종에게 왕위를 물려 준 뒤 1919년 1월 21일 고종황제가 승하하신 곳이기도 하다. 건물의 평면은 정면 9칸, 측면 4칸인데 서쪽 뒤편에 4칸과 더불어 ㄱ자형인데, 앞에서 보면 중앙 3칸은 개방형으로, 나머지 부분은 전부 거실로 이용하도록 되어 있다.

건물의 천장은 천장 속을 가리고 있는 우물 정(井)자 모양의 천장으로 꾸몄고, 네 면 모든 칸에 벽을 두르지 않고 창을 달아 놓았다. 조선 후기 마지막 왕실 침전 건물로 건축사 연구에 좋은 자료다.

한편 함녕전과 덕홍전 남쪽의 행각이 있는데, 행각의 위치는 크게 변하지 않았으나 건축물은 일제 때 개수되어 많이 변모됐다고 한다. 함녕전 앞에는 행각 3칸에 문을 두었고, 덕홍전 앞면에도 3칸의 대문을 두고 그 좌우에 각각 3칸의 행각을 붙여 함녕전 행각과 내부에서 서로 통하도록 했다.

   
덕수궁 즉조당 모습

덕수궁, 그 밖의 전각들

준명당은 석어당, 즉조당과 함께 중화전 뒤편에 나란히 배치된 건축물로 정면 6칸, 측면 4칸의 팔작집으로 중화전 북쪽, 즉조당 서쪽에 위치한다. 고종황제가 이곳에 거처하기도 했고, 한때 고종의 초상화와 순종의 초상화가 봉안되기도 한 곳으로 고종은 이곳에서 외국 사절들을 영접하기도 했다.

내전으로 동쪽에 자리 잡은 즉조당과 같은 기능의 건축물로 양식도 유사하다. 즉조당의 툇간이 동쪽으로 치우쳐 있는 데 비해 준명당의 근간은 서쪽으로 치우쳐져 있다. 즉조당은 중화전의 북쪽에 위치한 건물로, 순종이 이곳에서 즉위했다. 1904년 화재를 입어 소실된 것을 같은 해에 다시 중건했다.

궁의 침전으로서는 규모가 크지 않으나, 정면 7칸, 측면 4칸으로 간결하고 짜임새가 돋보인다. 전면 동쪽으로 편향하여 3칸의 퇴(退)를 두어 개방하였고, 내부는 거실로 이용했다. 건물에 비해 높은 기단을 두었고, 서쪽의 준명당과 연결되도록 2칸 복도를 두고 있다. 석어당은 덕수궁 내의 유일한 이층 건물로, 1904년의 화재로 소실되었던 것을 같은 해에 다시 다른 전각들과 함께 중건했다.

원래의 석어당은 임란 때 선조가 피난으로부터 환도하여 승하 할 때까지 16년간 거처하였던 곳이며, 인목대비가 광해군을 이 건물 앞뜰에 꿇어앉혀 죄를 책한 곳이기도 하다. 아래층이 정면 8칸, 측면 3칸이고, 위층이 정면 6칸, 측면 단간인 굴도리집으로, 올라 다니는 계단은 서쪽 끝에 있다. 중층이면서도 가식이 없는 민간풍의 건축양식을 나타내고 있어 친근감을 준다.

   
덕수궁 석어당 정면
   
덕수궁 석어당 측면의 겨울 풍경

궁중유물전시관-석조전 동관

궁중유물전시관은 1900년 착공하여 1910년 완공된 지상 3층 연건평 1,247평의 석조 건축물로 외관은 19세기 초 서구에서 유행하던 신고전주의적 양식으로 영국인 기사 하딩에 의해 설계됐고, 공사는 영국인 데이비슨이 감독했다.

건물의 구조는 1층은 시종들의 대기 장소, 2층은 접견장소로 이용됐으며, 황제부부는 3층에 거쳐했다. 현재는 궁중유물전시관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5대궁 12개 능·원에 분산 소장되어 오던 중요 궁중유물을 한데 모아 보다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관리와 왕실문화 생활상에 대한 올바른 이해의 장으로 활용하고자 1992년 12월 개관했다.

전시실은 크게 역사실과 유물전시실로 나눠지고 1실부터 10실까지 유물의 재질별, 주제별로 분류 전시하고 있다. 이러한 유물들은 왕실에서 사용하던 당 시대 최고의 장인들이 만들어낸 우리 민족의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또한 매년 주제를 달리하는 특별전을 마련하고 있으며,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교육으로 조선시대 왕실문화 관련분야 강좌를 실시해 시민과 함께하는 문화박물관이 되고 있다.

덕수궁미술관-석조전 서관

1937년 이왕직박물관으로 지은 석조전 서관(별관)은 연면적이 1,104평이며, 해방 뒤 석조전의 부속 건물로 사용되다 현재는 덕수궁 현대미술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덕수궁미술관은 근대미술 전문기관으로서 근대미술의 조사·연구, 작품의 수집과 보존에 힘쓰는 한편 상설전시를 하고 있다.

이처럼 덕수궁은 여타 궁궐에 비해 협소하고 전각들도 많지 않지만 미술관과 궁중유물전시관이 있어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도심 속의 휴식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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