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반구대 암각화 국비 28억 날리고 원점으로
반구대 암각화 물막이공사로 훼손…누가 주도했나

조경렬 기자
 

반구대 암각화 물막이 조감도(그래픽=문화재청)

세계 최고(最古)를 자랑하는 선사시대 암각화인 울주의 반구대 암각화(국보 제285호)가 정치적 입김으로 훼손이 더욱 심해졌다는 평가가 나왔다. 암각화를 안전하게 보존한다는 취지로 물막이 공사로 국비 28억 원을 날리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진단이 나와 문화재 전문가들이 허탈감에 빠졌다.

박근혜정부는 2013년 암각화 주변의 물막이 공사를 채택해 3년간 28억 원을 들여 추진했으나 3차례 모형실험에서 누수 등이 발생하자 최근 포기했다. 동아일보가 인터뷰한 변영섭(고려대 교수) 당시 문화재청장의 말에 따르면 "전문가들 의견을 바탕으로 임시 물막이가 과학적으로 실현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총리실의 국무조종실이 물막이 설치를 강하게 추진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문화재 전문위원들과 댐 전문가들로 구성된 검증위원회에서 물막이 공사를 하면 암각화의 보존을 장담할 수 없다는 의견이 많았음에도 국무총리실의 압력으로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어 정치적 외압이 있었음을 시사한다.

국비 28억 원이 투입된 임시 물막이 모형 검증 실험의 실시 여부를 놓고 장장 5시간에 이르는 난상토론이 벌어졌다. 당시 14명의 검증위원 중 9명만 참석한 가운데 댐 전문가 4명 모두 검증 실험이 예산만 낭비한 채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문화재청 당국자와 임시 물막이를 제안한 함인선 포스코A&C 기술고문은 실험 착수를 계속 종용했다. 검증위는 수리, 토목, 건축, 기계 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민간 위원회다.

이렇게 검증되지 않은 물막이 공사를 고집하는 사이 반구대 암각화 훼손만 심해졌고, 또 예산 28억 원이 날라가고 말았다. 관료와 정치인들이 전문가 집단 의견을 무시한 채 밀어붙이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를 여실히 증명한 결과다.

앞서 문화재청은 21일 반구대 암각화의 보존을 위해 설치하려고 했던 '가변형 임시 물막이' 사업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50년 넘게 암각화가 울주 대곡천에 수시로 잠겨 훼손이 심각하다는 지적에 따라 2013년부터 임시 물막이 건설이 추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