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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선사시대 고인돌유적…세계유산고창 화순 강화의 선사시대 '고인돌' 유적
조경렬 편집장  |  herald@heraldjourna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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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9.02  22: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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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Culture]

한국의 선사시대 고인돌유적…세계유산
고창 화순 강화의 선사시대 '고인돌' 유적

조경렬 편집장

   
전북 고창 죽림리의 지석묘군(사진=국가문화유산포털)

현재까지 알려진 인류의 시원은 아프리카의 유인원 '루시'로 약 318만 년 전에 에디오피아에서 탄생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런 선사시대의 문화의 뿌리는 큰 바위 문화이다. 그런 선사시대 거대한 바위를 어떻게 활용해 왔는가를 알 수 있는 게 거석문화의 일종인 고인돌이다.

고인돌은 선사시대 돌무덤의 일종이다. 고인돌은 거석기념물의 하나이며 라미드(Pyramid), 오벨리스크(Obelisk) 등 이집트나 아프리카 대륙의 각종 석조물과 영국의 스톤헨지, 프랑스 카르낙의 열석(列石) 등이 모두 거석문화의 산물이다. 우리나라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 중의 하나인 고인돌은 세계적인 분포를 보이고 있으며, 지역에 따라 시기와 형태가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동북아시아 지역이 세계적인 분포권에서 가장 밀집된 곳으로 그 중 우리나라가 그 중심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전국적으로 약 30,000여 기에 가까운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는데, 그중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고창·화순·강화고인돌 유적은 밀집분포도, 형식의 다양성으로 고인돌의 형성과 발전과정을 규명하는 중요한 유적이며 유럽, 중국, 일본과도 비교할 수 없는 독특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또한 고인돌은 선사시대 문화상을 파악할 수 있고 나아가 사회구조, 정치체계는 물론 당시 인류의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선사시대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되어 보존가치가 높다. 우리나라 고인돌 유적은 2000년 12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고창지석묘군(사적 제391호)

고창지석묘군(사적 제391호) 고인돌 유적

전북 고창군 죽림리와 도산리 일대에 매산마을을 중심으로 동서로 약 1,764m 범위에 442기가 분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고인돌 군집을 이루고 있는 지역이다. 10t 미만에서 300t에 이르는 다양한 크기의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으며 탁자식, 바둑판식, 지상석곽형 등 다양한 형식의 고인돌이 예술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이 고인돌이란 선사시대 무덤형식의 하나로 지석묘라고 부르기도 한다. 기원전 400년∼600년 무렵 청동기시대 사람들의 집단무덤으로, 이 지역을 지배했던 족장들의 가족무덤으로 추정하고 있다. 당시에 살았던 사람들은 낮은 야산과 농사짓기 좋은 이 지역에 터를 잡았던 것으로 보인다.

고창지역은 바둑판 모양의 남방식, 탁자 모양의 북방식, 천장돌만 있는 개석식 등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고인돌의 각종 형식을 갖추고 있어 고인돌의 발생과 성격을 아는데 매우 중요하다. 아산면 상갑리 일대 고인돌은 북방식 고인돌의 남쪽 한계선으로 학술적 가치가 높다.

   
전남 화순의 마당바위 지석묘군(사진=국가문화유산포털)
   
화순지석묘군(사적 제410호)

화순지석묘군(사적 제410호) 고인돌 유적

전남 화순군 도곡면 효산리와 춘양면 대신리 일대의 계곡을 따라 약 10㎞에 걸쳐 500여기의 고인돌이 군집을 이루어 집중분포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 발견되어 보존상태가 좋다. 또한 고인돌의 축조과정을 보여주는 채석장이 발견되어 당시의 석재를 다루는 기술, 축조와 운반방법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유적으로 평가된다.

화순군 효산리 모산마을에서 월곡제, 춘양면 대신리로 넘어가는 보성재 양쪽 계곡 지역에 청동기시대의 바둑판식(남방식: 시신을 지하에 매장한다) 고인돌 230∼500기 이상이 분포하고 있다.

조사 결과 고인돌, 돌방무덤(석실분), 독무덤(옹관묘), 돌널무덤(석관묘), 널무덤(토광묘)을 확인하였고, 석기류, 토기류, 청동기류 치레거리(장신구)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특히 주변의 암벽에서 고인돌의 덮개돌을 떼어냈던 흔적이 남아 있어, 고인돌을 만들었던 과정을 알 수 있게 해준다. 대신리 산 중턱에는 길이 7m, 높이 4m, 무게 약 200여t 이나 되는 커다란 덮개돌이 있다. 이것은 현재까지 알려진 것 가운데 가장 큰 것이다.

   
전형적인 남방식 지석묘의 형식을 띤 화순의 고인돌

인천 강화고인돌 유적

인천광역시 강화군 부근리, 삼거리, 오상리 등의 지역에 고려산 기슭을 따라 120여 기의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다. 이곳에는 길이 7.1m, 높이 2.6m의 우리나라 최대의 북방식 고인돌이 있다. 한반도 고인돌의 평균 고도보다 높은 해발 100m-200m 지역까지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다.

강화에는 4개 지역으로 나눠 사적으로 등록되어 있는데, 강화 부근리 지석묘(사적 제137호), 강화 내가지석묘(인천기념물 제16호), 강화 대산리고인돌(인천기념물 제31호), 강화 부근리점골지석묘(인천기념물 제32호) 등이다. 먼저 강화군 하점면 부근에는 40여 기의 고인돌이 있는데, 이 중 부근리 고인돌이라 부르는 규모가 큰 탁자식 고인돌이 1964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전체 높이는 2.6m이며, 덮개돌은 길이 6.5m, 너비 5.2m, 두께 1.2m의 화강암으로 되어 있다. 이 고인돌에 대한 발굴조사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인근 삼거리에 있는 고인돌에서 무문토기 조각과 간돌검(마제석검), 돌가락바퀴(방추차)를 비롯한 유물들이 나온 것으로 미루어 삼거리 유적과 비슷한 유물들이 들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인천 강화 부근리지석묘(사진=국가문화유산포털)
   
강화 오상리고인돌(사진=국가문화유산포털)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4개의 받침돌을 세워 지상에 돌방을 만들고 그 위에 거대하고 평평한 덮개돌을 올려놓은 탁자식과, 땅속에 돌방을 만들고 작은 받침돌을 세운 뒤 그 위에 덮개돌을 올린 바둑판식으로 구분된다.

내가지석묘(인천기념물 제16호)는 강화군 내가면에 있다. 이 지석묘는 탁자식(북방식: 시신을 지표에 안치한다)으로 돌칼·돌화살촉·민무늬토기 등이 출토되어 당시의 생활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강화 대산리고인돌(인천기념물 제31호)은 고려산 동쪽 봉우리인 북산의 해발 약 20m 능선에 위치한다. 이 고인돌은 북방식인 탁자형이다. 약간의 흙과 자갈로 지면을 높이고 그 위에 받침돌을 세운 뒤 덮개돌을 올렸으나 현재는 무너져 내려 앉았다.

부근리점골지석묘(인천기념물 제32호)는 강화군 하점면 고려산 북쪽에서 흘러내린 능선 끝자락 해발 약 15m 지점에 있다. 이 고인돌은 탁자식으로 덮개돌 무게에 의해 약간 기울어진 상태로 발견됐다. 이들 고인돌군 역시 2000년 12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이렇게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지역으로 나눠 그 특성이 드러나지만 같은 지역에서 여러 유형의 고인돌이 발견되기도 한다. 이는 시대가 거듭되면서 그 형식이 점차 분포지역이 넓어지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인류는 이처럼 돌을 통해 문화를 발전시켜 왔음을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아프리카, 유럽, 유라시아 등 모든 지역에서 입증하고 있다. 그게 바로 바위를 통한 거석문화이다. 이 거석문화는 현재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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