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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천년 한민족의 혼이 담긴 소나무"민족의 혼을 앵글에 담다…소나무 사진작가 김세권
조경렬 기자  |  herald@heraldjourna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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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5.20  10: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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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6월호] 초대작가-김세권 사진작가

"5천년 한민족의 혼이 담긴 소나무"
민족의 혼을 앵글에 담다…소나무 사진작가 김세권

글 조경렬 | 사진 김세권

"이 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고 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 되어 있어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청하리라."

조선조 세조가 단종을 폐위하고 왕위에 오르자 사육신과 생육신은 벼슬을 버리고 산속으로 들어간다. 성삼문은 집현전 학사로서 곧은 절개와 높은 학식을 지닌 선비였다.

   
사진은 빛의 예술이라고 강조하는 김세권 사진가의 아침 햇살과 소나무(사진=김세권)

세조가 덕망 높은 신하였던 성삼문을 꾀여 보지만 그는 '이 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고 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 되었다가 백설이 온 천지를 덮을 때 홀로 푸르고 푸르리라.'고 했다.

사시사철 푸르고 푸른 큰 소나무처럼 변치 않는 절개를 간직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끝내 사육신으로 생을 마감한다. 성삼문은 사육신의 한 사람으로 모진 고문을 받고 처형장으로 끌려갈 때 불렀다는 충의가로 단종임금에 대한 불타는 충정을 읊은 시조다. 죽어서 저승에 가서라도 충정을 다하겠다는 굳은 절개와 깨끗한 인품이 빛난다. 여기에서 낙락장송은 가지가 축 늘어진 큰 '소나무'를 말한다.

이처럼 소나무는 우리 민족의 불변의 충의와 굳은 의지를 대변해 왔다.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는 변함없는 푸름에서 꿋꿋한 절개를 찾을 수 있다. 우리 선조들은 소나무는 어떤 역경 속에서도 변함없는 충신열사(忠臣烈士)의 상징으로 여겨왔다.

이 시에서도 절의의 상징으로서 소나무를 칭송하면서, 자신의 강직한 고절(高節)을 은유하고 있다. 소나무는 이렇듯 변함없는 애국애민 정신을 상징해 애국가 가사에서도 우리 국민들의 기상을 함의하고 있다. 곧 민족혼의 상징이다.

   
5월 소나무의 푸르름과 몸통의 무늬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소나무를 소재로 30년 동안 촬영

이렇게 곧은 절개와 민족혼을 담고 있는 소나무를 소재로 30년 이상 작품 활동을 하여 소나무 사진가로 알려진 김세권 사진작가, 그를 만났다. 김 작가는 처음부터 소나무를 소재로 작품 활동을 했던 것은 아니다. 가장 힘들고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는 국가원수인 대통령 전속 사진담당으로 12년 동안 일하면서 틈나는 대로 소나무를 찍었다.

그가 처음 사진을 시작한 계기는 아주 우연한 일로 시작된다. 1960년대 청년시절이었다. 미군부대에 다니시던 부친께서 카메라 한 대를 선물해 주셨는데, 그 카메라로 사진 찍기에 즐겼다.

그 때는 사진이 평생을 좌우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러던 차에 군 입대를 하게 됐고, 운 좋게도 김포 547부교 부대에서 카추샤로 근무를 하게 되어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그 때 ‘페추리 7S’라는 카메라를 사서 시간만 나면 여기저기 사진을 찍으러 다녔다. 한마디로 사진에 푹 빠져들고 말았다.

그렇게 시작된 사진은 여러 촬영대회에 나가 장려상이나 우수상도 받고 입상도 하다 보니까 사진에 자신이 생겼다. 이렇게 사진에 자신이 생겨 전역 후에는 당시 문화공보부의 사진과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래서 공식적인 정부기관에서 사진 업무를 담당했다.

   
4월의 진달래와 소나무

항상 겸손함으로 나서기를 꺼려하는 김 작가는 "내가 뭐 실력이 좋아서 (문공부에) 들어간 게 아니라 우연히 그렇게 됐지!"라며 웃는다. 그때가 1968년으로 문공부에 들어가 사진담당으로 일하다가 69년도에 청와대 대통령 사진 촬영보조로 발령이 났고, 72년도에 청와대 전속 사진기자로 발령을 받았다.

그 당시에는 사진기자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청와대 사진담당이 촬영을 하여 각 부처나 언론사에 배포하는 시스템이었다. 그때 박정희 대통령이 가는 곳은 공식이든 비공식이든 모두 수행하면서 사진을 촬영했다.

공식행사에는 대한늬우스와 KBS 영상팀 등이 함께했고, 비공식 행사는 김 작가 혼자서 촬영했다. 그렇게 박정희 대통령 전속 사진담당으로 청와대에 근무하던 중 갑자기 10.26 사태를 맞아 박 대통령이 서거하고 말았다. 그는 그 때 상심이 매우 컸다. 그 후 최규하 대통령을 수행하면서 사진기자를 했지만 흥미를 잃고 의욕 상실에 빠지고 말았다.

   
소나무는 사시사철 변함없는 푸르름을 자랑한다

그만둔다는 말에 전두환 소장이 만류해

김 작가는 당시 일화로 청와대 작전차장보였던 전두환 소장이 불러서 자신의 사진을 좀 찍어 달라고 하여 찍어준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그 때 이미 전두환 소장과 노태우 소장을 잘 알고 있던 터였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청와대 작전차장보를 할 당시 행사 때면 항상 같이 동행하면서 필요한 곳의 사진을 촬영하곤 했다. 그 후 의욕이 상실되어 청와대 사진기자를 그만두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전두환 소장을 찾아가 그만두고 싶은데 일할 공간을 좀 마련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 때 전 소장은 그에게 청와대 사진기자를 그만두는 걸 극구 만류했다. 하지만 김 작가는 그 말만 던지고 나왔다. 조급함에 얼마 후 그는 당시 수도경비사령부에 있던 노태우 소장에게 찾아가 부탁을 했다.

그랬더니 당시 마침 교보빌딩이 준공을 하게 됐는데 거기에 사진관 공간을 마련해 줬다. 이렇게 하여 청와대를 나와 일반인으로서 사진업을 다시 시작했다. 그 때가 1981년이었다.

88올림픽 공식보고서 총단장 맡아

김 작가는 그 후 문화공보부에서 아시안게임 정부 공식보고서를 기획해야 하는데 일을 같이 진행 했으면 좋겠다는 제안이 왔다. 그래서 그는 86아시안게임 정부기록물 사진전문위원으로 참여했다.

그 후 연이어서 88서울올림픽도 촬영단을 구성하여 정부 공식보고서를 기획하는데 참여하게 된다. 당시 사진으로 한국에서 유명하다는 사진가들 30명으로 아시안게임 촬영단을 구성했다. 그 때 김한영 사진가, 홍순태 전 신구대학 교수(작고)도 같이 참여했다.

이런 경험과 커리어를 인정받아 1993년 대전엑스포, 1997년 동계 유니버시아드 대회까지 이어서 정부 공식보고서를 기획 촬영하는 업무를 도맡아 해 왔다. 그러는 가운데 그가 추구했던 사진은 전국의 소나무 군락지를 찾아 소나무 사진을 앵글에 담는 것이었다.

한 컷의 사진을 얻기 위해서 새벽 서너 시에 일어나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세상의 이치가 그렇듯이 좋은 작품을 얻기란 고통과 인내가 담보되어야 한다.

   
충북 보은군의 속리산 입구 정의품송의 본래 모습

김 작가가 소나무 사진을 처음 찍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초 충북 보은 속리산 법주사에 있는 정이품송(천연기념물 제103호)을 보면서부터다. 이때부터 소나무에 매료되어 민족의 혼이 담긴 소나무를 주로 촬영해 왔다. 개발이라는 미명아래 노송이 점점 사라져 가는 현실이 안타까워 소나무를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으로 1990년부터 본격적으로 촬영해 왔다.

그는 "사진은 순간의 예술이자 빛의 예술이다. 그래서 사진은 타이밍이 매우 중요하다. 어둠이 걷히고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하면 소나무에 동트는 아침 햇귀가 서서히 물들기 시작한다. 그 순간 빛의 내면의 세계까지도 포착한다는 느낌으로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고 말한다.

하늘을 향해 뻗어 오른 소나무 가지 사이로 붉은 빛이 사선으로 내리 꽂히면 카메라 셔터의 찰칵대는 울림이 숲을 덮는다. 이런 감성이 모아져야 한 장의 사진 예술을 탄생시키는 것이다.

혹자는 그에게 청와대에 있으면서 장래에 전망 좋은 곳에 땅이라도 좀 사 두지 왜 사지 않았느냐고 묻곤 한단다. 대통령 전용헬기를 타고 수행했으니 개발이 어디가 되는지는 그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욕심을 버려야 한다고 항상 스스로를 다짐했다.

욕심이 넘쳐 대통령 사진을 계속 촬영했더라면 미얀마 아웅산 국립묘지 테러사건 때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욕심을 버려야 건강하게 살 수 있다며 웃는 그의 모습에서 청렴한 공직자의 정신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소나무 사진가 김세권

김세권 사진가는 현재 한국사진작가협회 이사, 한국프로사진가협회 고문으로 또 전국의 각종 사진대회 심사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작가 약력>

1968년 문화공보부 사진과 입사
1972년~1981년 청와대 대통령 직속 사진담당
1986년~1987년 86아시안게임 정부 공식기록물 제작
1988년~1989년 88서울올림픽 조직위원회 사진전문위원
1988년~2012년 한국프로사진가협회 회원전 20회
1989년 88서울올림픽 다큐멘터리 사진전(교보문고)
1990년~1994년 대전 엑스포 조직위원회 사진실장
1994년 93대전 엑스포 다큐멘터리 사진전(KORAIL)
1997년~1998년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 사진전문위원
1997년 97동계유니버시아드 다큐멘터리 사진전(전주문화센터)
2010년 국제페스티벌(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2010년 서울사진전(서울 삼성동 코엑스)
2010년 2010서울 오픈 아트 페어(서울 삼성동 코엑스)
2013년 제2회 대한민국 사진축전 김세권의 '한민족의 혼'展(서울 SETEC)
2015년 서울-뉴욕 포토페스티벌 초대작가(동대문DDP 국제회의장 전시)

대한민국사진대전 초대작가 및 심사위원
대통령표창 수상
국민훈장 산업포장 수상
한국사진작가협회 이사
한국프로사진가협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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