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특집 > 길위의 인문학
"문명의 허울이 장터를 변화시켰다"경기 남앙주시 마석 5일장을 가다
조준기 기자  |  e2bizcom@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7.06.24  18:26:01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우리의 장터-남양주 마석장날

"문명의 허울이 장터를 변화시켰다"
경기 남앙주시 마석 5일장을 가다

글 조준기

세상은 모든 게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거의 없다. 물질의 본질이나 변하지 않을까. 만물의 영장 인간의 마음도 수시로 변하는데 어찌 변하지 않는 게 있기를 바라겠는가.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장날 야채전에서 야채를 사고 있는 고객(사진=조준기)

우리의 전통 장(場)을 생각하면 유년시절 부모님 손잡고 따라 나섰던 추억이 40대 이상의 장년층이라면 아스라이 떠오를 것이다. 노천명 시인의 ‘장날’은 그런 추억을 상기시킨다.

장날

詩 노천명

대추 밤을 돈사야 추석을 차렸다.
이십 리를 걸어 열하룻장을 보러 떠나는 새벽
막내딸 이쁜이는 대추를 안준다고 울었다.

송편 같은 반달이 싸리문 위에 돋고,
건너편 성황당 사시나무 그림자가 무시무시한 저녁,
나귀 방울에 지껄이는 소리가 고개를 넘어 가까워지면
이쁜이보다 삽살개가 먼저 마중을 나갔다.

   
야채전에서 갖가지 싱싱한 야채를 팔고 있는 할머니들

추석을 앞두고 아버지는 대추와 밤을 팔러 이십 리 길을 걸어 열하룻장에 간다. 막내딸은 그 대추가 먹고 싶다. 그렇지만 장에 내다 팔아야 추석 맞을 준비를 할 수 있기에 딸에게 줄 수가 없다. 천진난만한 딸은 아버지가 대추를 안준다고 울기만 한다.

새벽에 나간 장, 어둠이 깃들어서야 집으로 돌아온다. 이쁜이는 아버지를 기다리다 지쳐 잠이 들고, 일행들의 나귀 방울 소리가 고개를 넘어올 때면 삽살개가 먼저 반가움에 뛰어 나간다.

가난한 살림살이이지만 참으로 평화로운 모습이 아닌가. 집안을 꾸려가야만 하는 아버지, 막내딸이 얼마나 귀여울까. 그럼에도 울며 달라는 대추를 주지 못하는 아버지의 마음은 오죽할까. 어쩌면 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이쁜이 주려고 눈깔사탕이라도 샀을지 모른다.

   
건레몬으로 차로 끓여 먹는다고 했다(사진=조준기)
   
앵두와 보리수 열매

그러나 어린 딸은 아버지가 장에서 돌아올 때쯤에는 이미 잠들어 버린다. 아무 것도 모르는 삽살개만 주인을 반긴다. 이처럼 노천명의 ‘장날’은 어렵던 시절 우리네 삶의 모습이 평화롭게 그려져 있다.

장에 내다 팔기 위해 어린 딸에게 대추 몇 알 줄 수 없는 가난이지만, 가난해 보이지 않는 것은 왜 일까. 장에서 돌아오는 길 역시 아늑하다. 반달이 솟고, 어둠 속에 성황당이 무섭게 느껴질지 몰라도, 함께 걷는 일행과 주고받는 이야기 그리고 나귀의 방울소리가 오히려 평화롭다.

거기에 삽살개의 마중은 정겹기까지 하다. 잠들어버린 이쁜이가 안타까우면서도 우리를 아득한 추억 속으로 안내한다.

   
잡동사니 전에 코끼리 모형의 조형물들

변하고 있는 전통 장…마석장 경춘 철도 아래로 이전

노천명의 '장날'을 생각하면서 추억의 전통 5일장인 경기 남양주시 마석 장을 다녀왔다. 매월 5일 간격으로 열리는 마석5일장이다. 아무래도 전통 장에는 어르신들이 주로 많이 장을 보러 간다. 그래서 옛날에는 장날이면 소통과 정보의 교환, 물물교환의 역할을 했다.

요즘이야 마트나 슈퍼에서 장을 다 보기 때문에 재래시장이나 이렇게 지역에서 열리는 5일장들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그래도 어르신들은 옛 추억을 생가하면서 장으로 모여든다. 장날에 모든 생필품을 사오는 것이다.

그래서 마트나 슈퍼도 좋지만 볼거리도 있고 가격도 그곳보다 훨씬 저렴한 재래시장이나 지역 5일장을 이용한다면 그 즐거움도 배가 될 것임이 틀림없다. 장날은 항상 왁자지껄하다. 이날은 평일이라서 조용하다는 야채 파는 할머니가 주말에 오면 사람들이 많이 몰려든다고 말했다.

   
한과전으로 여러 가지 종류의 강정과 한과를 팔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수입한 허브차 히비노비스

5일장이니 주말과 같이 맞물려 들기란 쉽지 않지만 그래도 주말에 장이 서면 인파가 많다고 한다. 5일장이라 야채들이 모두 싱싱했다. 이런 장터에서는 시든 야채를 볼 수가 없다. 할머니들이 조금씩 가져와 파는 야채나 과일은 모두가 집에서 기르거나 따온 것들이다.

큰 카메라를 들고 있는 필자를 보더니 앵두 알 몇 개를 주시면서 맛 좀 보란다. 그리고 또 보리수열매를 한 움큼 쥐어주신다. 이런 것들이 장날의 정이다. 장터에서 먹을 것 빼놓을 수가 없다. 가장 기본이 되는 옛날 통닭이다. 통째로 튀김옷 입혀서 가마솥에서 튀겨내는 옛날방식의 치킨이다.

   
인절미를 즉석에서 만들어 파는 떡집아저씨

먹어본 사람만이 아는 맛이다. 인절미를 파는 아저씨, 전통 한과를 죽 늘어놓고 파는 중년 부부, 인도네시아에서 수입하여 판매한다는 히비스커스 허브차 주인아저씨, 무더운 여름날인데도 호떡 굽는 아주머니, 모든 잡동사니를 파는 잡화가게 아주머니 모두가 장터를 일구며 살아가는 장터 사람들이다.

취재차 사진을 촬영한다고 해도 한사코 얼굴은 안 나오게 해 달라는 히비스커스 주인아저씨를 뒤로 하고 인절미를 썰고 있는 떡집아저씨에게 인절미 한 팩을 사고서는 인절미 써는 모습을 촬영하겠다고 하니 전체가 다 나오게 촬영해 달라고 한다. 자신이 좀 유명해져서 장사가 잘 되게 해달라고 말했다. 
 

조준기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여백
여백
헤럴드시사영상
여백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회대로72길 22  |  대표전화 : 02-783-6699  |  팩스 : 02-783-6677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3가 24-2 제복빌딩 303(편집국)
등록번호 : 영등포 라 00389  |  사업자번호 : 107-20-37674  |  발행·편집인 : 조경렬  |  청소년보호책임자 : 양병수
Copyright © 2016 헤럴드저널.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