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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고의 민간 전통정원…담양 소쇄원제월당 풍경…비갠 하늘에 뜬 상쾌한 달
박은수 기자  |  park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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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6.29  00:4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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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고의 민간 전통정원…담양 소쇄원
제월당 풍경…비갠 하늘에 뜬 상쾌한 달

글·사진 박은수

남도에 가면 아름다운 정원 소쇄원(瀟灑園)이 있다. 우리 조상들의 인의예지仁義禮知가 숨 쉬는 곳 소쇄원. 한국의 전통 정원의 진수를 보여 주는 곳이 바로 소쇄원이다.

   
제월당 측면 모습(사진=헤럴드저널)

소쇄원은 양산보(梁山甫, 1503∼1557)가 스승인 정암 조광조(趙光祖, 1482∼1519)선생이 기묘사화로 전라도 화순 능주로 유배되어 세상을 떠나게 되자 출세에 뜻을 버리고 자연 속에서 은둔하며 살기 위해 전라도 담양에 꾸민 별서정원(別墅庭園)이다.

남도 담양은 대나무와 정자가 많은 고장이다. 정자가 많다는 것은 선비 문화가 널리 퍼져 있었다는 의미다. 담양의 경우는 이 정자문화가 가사문학의 산실로 자리 잡은 매개체가 되었다는 게 국문학자들의 말이다. 소쇄원은 광주호를 따라 구불구불 상류로 올라가면 끝자락에 안내판이 나타난다.

식영정과 가사문학관을 지나면 개울 건너 환벽당을 마주한 자리다. 관광안내판에서 왼쪽 작은 개울을 따라 오르면 소쇄원 입구 매표소가 나온다. 원내는 일부 보수 중이어서 모두 관람할 수 없기 때문에 오는 10월까지 무료입장이다. 전망대 정자인 대봉대에서만 관람이 가능하다. 취재진은 관리소 측의 양해를 얻어 일부 사진 촬영만 할 수 있었다.

   
대봉대로 광풍각과 제월당이 한 눈에 보이는 전망대 같은 곳이다

대나무가 하늘을 향해 절을 한다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유월의 소쇄원은 여느 때 보다 조용한 오후 대나무 숲길을 걸어 오르니 대나무가 푸른 하늘을 향해 절을 하고 있다. 빽빽한 대나무 사이로 간간이 들어오는 햇살이 대숲을 보듬고 앉아 있다. 천년의 세월 동안 감금되었던 속살이라도 비추는 듯 오후의 햇살이 여유롭다.

비가 오지 않아 어디에서도 물이 필요한 이때 소쇄원 계류에도 수량이 부족하다. 산수 간에 어디를 간들 푸른 산과 맑은 물은 음양의 조화이건만 소쇄원 계류에는 푸른 이끼만이 방문자의 여흥을 달래는 형편이었다. 대봉대에 이르니 양인용 문화관광해설사가 “소쇄원 해설을 듣겠느냐”고 묻는다.

해설을 부탁했더니 그동안 수많은 관람객이 다녀갔을 터라 소쇄원에 격을 모르는 사람이 많더라는 우스갯소리를 한다. 그렇다. 소쇄원은 관광지가 아니다. 한 선비가 스승의 가르침을 더 이상 받을 수 없는 시대를 한탄하며 자신의 모든 인생을 바쳐 평생 동안 학문에 정진하기 위해 조성한 학문 토론 공간이었음을 촌로들이 어찌 알겠는가.

   
광풍각에서 제월당으로 오르는 계단으로 전통 건축 양식을 잘 살리고 있다

흔히 우리가 ‘미술관’하면 전시공간으로만 알고 있는 것이 상식이지만, 전시 이전에 연구 공간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가 흔치 않듯이 소쇄원은 학문연구의 산실이자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수양 공간이었음을 소요(逍遙)하며 생각할 일이 아닌가.

소쇄원은 당시의 시절 당쟁으로 사화가 끊이지 않았고, 사회를 요동치게 했던 때 기묘사화가 일어났다. 기묘사화는 1519년(중종 14) 11월 남곤(南袞)·심정(沈貞)·홍경주(洪景舟) 등의 재상들에 의해 조광조·김정(金淨)·김식(金湜) 등 사림(士林)이 화를 입은 사건이다.

이런 역사 속에서 양산보가 귀양 온 스승 정암 선생을 숭모하면서 조성한 정원이 바로 이 소쇄원이다. 이 소쇄원의 소쇄瀟灑는 ‘맑고 깨끗하게 마음을 씻는다’는 뜻으로 양산보의 호이다.

소쇄원은 주거와의 관계에서 볼 때에는 하나의 후원(後園)이며, 공간 구성과 기능면에서 볼 때에는 입구에 전개된 전원(前園)과 계류를 중심으로 하는 계원(溪園) 그리고 내당(內堂)인 제월당(霽月堂)을 중심으로 하는 내원(內園)으로 구분되어 있다.

전원(前園)은 대봉대(待鳳臺)와 상하지(上下池), 물레방아 그리고 애양단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계원(溪園)은 오곡문(五曲門) 곁의 담 아래에 뚫린 유입구로부터 오곡암, 폭포 그리고 계류를 중심으로 여기에 광풍각(光風閣)을 세워 풍류를 더하고 있다.

   
상류 계류에서 내려다 보이는 광풍각

특히 애양단(愛陽壇)이라는 예서체 담장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겨울철 북풍을 막기 위하여 세운 단으로 손님을 맞는다는 대봉대 바로 뒤편에 있다. 이는 북풍을 막아주는 따뜻함을 의미하면서 ‘효’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 단은 공간의 이중적 함축성을 지니고 있다. 즉 황량함을 담장으로 막아 공간감을 주고 햇살이 담에 비쳐 따뜻한 질감을 표출하는 것이다. 광풍각의 대하(臺下)에는 석가산(石假山)이 있는데, 이 계류구역은 유락공간으로써의 기능을 지니고 있다. 광풍각에 앉아 유유히 맑은 하늘을 감상하거나 계곡에 흐르는 계류를 보며 시흥에 젖어 볼 수도 있다.

내원(內園) 구역은 제월당을 중심으로 하는 공간으로써 당(堂)과 오곡문(五曲門) 사이에는 두 계단으로 된 매대(梅臺)가 있으며, 여기에는 매화, 동백, 산수유 등의 나무와 기타 꽃나무로 조성되어 있다. 오곡문 옆의 오암(鼇岩)은 자라바위라는 이름이 붙여져 있다.

또 당 앞에는 빈 마당이 있고 광풍각 뒤편 언덕에는 도화나무가 심어진 도오(桃塢)가 있다. 당시에 이곳에 심어진 식물은 국내 종으로 소나무, 대나무, 버들, 단풍, 등나무, 창포, 순채 등 7종이고 중국 종으로 매화, 은행, 복숭아, 오동, 벽오동, 장미, 동백, 치자, 대나무, 사계, 국화, 파초 등 13종 그리고 일본산의 철쭉, 인도산의 연꽃 등 모두 22종에 이른다고 전한다.

   
자연 지형을 그대로 살린 자연미가 돋보인다. 현대의 조경 학자들이 걸작으로 꼽고 있으며, 한국의 조경 사상 질적 수준에서 민간정원 중 최고 수준으로 평하는 소쇄원 풍경(사진=담양군청 제공)

霽月堂, ‘비 개인 하늘에 뜬 상쾌한 달’

소쇄원은 1530년(중종 25년)에 양산보가 중앙 정치에 나아가지 않고 전원생활을 위해 꾸민 조선시대 대표적 민간 정원이다. 제월당, 광풍각, 애양단, 대봉대 등 10여개의 건물로 이루어졌으나 지금은 몇 남아 있지 않다. 정원의 맨 위에 위치한 제월당(霽月堂)은 ‘비 개인 하늘의 상쾌한 달’이라는 뜻의 주인을 위한 집으로 정면 3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대봉대 바로 앞에 보이는 광풍각(光風閣)은 ‘비갠 뒤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이라는 뜻의 손님을 위한 사랑방으로 1614년 중수한 정면 3칸, 측면 3칸의 역시 팔작지붕 조선시대 양식이다. 광풍각 앞에는 너럭바위를 타고 흐르는 계류가 푸른 이끼에 둘러싸여 있어 신비감을 느끼게 한다.

   
김인후의 소쇄원 48영 중 제31영 낭떠리지 새

정원의 구조는 크게 애양단을 중심으로 입구에 전개된 전원(前園)과 광풍각과 계류를 중심으로 하는 계원(溪園) 그리고 내당인 제월당을 중심으로 하는 내원(內園)으로 구성되어 있다. 도가적(道家的)인 색채도 풍기는 오암(鰲岩), 도오(桃塢), 대봉대(待鳳臺) 등 여러 명칭이 선계를 연출한다. 제월당에는 하서 김인후(河西 金麟厚)가 쓴 「소쇄원사십팔영시(瀟灑園四十八詠詩)」(1548)가 걸려 있다.

1755년(영조 31년)에 목판에 새긴 「소쇄원도(瀟灑園圖)」가 남아 있어 원래의 모습을 알 수 있게 한다. 소쇄원은 1528년 처음 기록이 나온 것으로 보아 1530년 전후에 착공한 것으로 보인다. 김인후가 화순으로 공부하러 갈 때 소쇄원에서 꼭 쉬었다 갔다는 기록이 있고, 1528년 「소쇄정즉사(瀟灑亭卽事)」에는 간접적인 기록이 있다.

   
제월당 현판

송강 정철(松江 鄭澈)의 「소쇄원제초정(瀟灑園題草亭)」에는 자기가 태어나던 해(1536)에 소쇄원이 조영된 것이라고 했다. 1542년에는 면앙 송순이 양산보의 소쇄원을 도왔다는 기록도 있다. 소쇄원은 양산보 개인이 꾸몄다기보다는 당나라 이덕유가 경영하던 평천장(平泉莊)과 이를 모방한 송순, 김인후 등의 영향을 크게 받았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1574년 고경명 쓴 「유서석록(遊瑞石錄)」에는 소쇄원에 대한 간접적인 언급이 있어 당시 소쇄원에 대한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아직 보수 중이어서 구석구석 둘러 볼 수 없는 점이 못내 아쉽지만 사계에 따라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정원의 모습을 생각하면 가을에 개장을 하면 다시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양산보 선생의 15대 종순인 양재혁 씨가 꼭 다시 찾아달라며 새 단장 후의 안내를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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