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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한편의 서정시를 보는 듯한 소설 '메밀꽃 필 무렵'
조경렬 기자  |  herald@heraldjourna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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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8.31  10:4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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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산책-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
한편의 서정시를 보는 듯한 소설 '메밀꽃 필 무렵'

[헤럴드저널] 조경렬 기자=이효석의 소설은 한편의 서정시이다. 그는 시처럼 살다가 소설처럼 생을 마쳤다. 시처럼 낭만적인 유년시절을 보낸 그는 어느 비극의 소설처럼 불행한 삶을 살아야 했다. 어린 시절은 비교적 여유 있는 집안의 소년이었다.

   
강원도 봉평의 메밀밭

그의 수필 ‘나의 수업시대’에서 보듯이 “열 살 남짓해서 신소설 ‘추월색’을 읽게 되었으니 이것이 이야기의 멋을 알고 문학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된 처음인 듯하다. 추운 시절이면 머리맡에 병풍을 둘러치고 어머니와 나란히 누워 ‘추월색’을 번갈아 가며 되풀이하여 읽었다.

건넌방 벽장 속에는 ‘사씨남정기’, ‘가인기우’ 등속의 가지가지 소설책도 많았건만 그 속에서 왜 하필 ‘추월색’이 그다지도 마음에 들었는지 모른다. 병풍에는 무슨 화풍인지 석류, 탁목조 등의 풍경 아닌 그림이 폭마다 새로워서 그 신선한 감각이 웬일인지 ‘추월색’의 이야기와 어울려서 말할 수 없이 신비로운 낭만적 동경을 가슴 속에 심어 주었다.”라고 적고 있다.

최찬식의 신소설 ‘추월색’을 읽고 문학을 선망했다는 의미다. 효석은 14세에 고보를 서울에서 다니고 1925년 19세에 경성제국대학에 진학한다. 그리고 본과에서 영문학을 선택한다. 그러면서 학문적 소양과 문학적인 토양을 넓힌다.

그리고 그는 이 시기에 사변적이고 분석적인 지성보다는 감각적이고 시적 감성, 냉철한 분석보다는 정감 어린 관조 쪽으로 기울어지는 타고난 성향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아마도 유년시절의 봉평이라는 전원적이고 목가적인 경험이 그의 문학의 토양으로 작용했으리라. 그래서 대학 시절의 습작은 소설보다는 오히려 시가 더 많은 편이다.

   
메밀꽃 필 무렵의 소설가 이효석

젊은 나이에 요절한 이효석

이러한 시 창작의 경험은 그 후 그의 많은 산문에서 시적 색채가 짙게 나타나는 연유이다. 그는 이 시절에 유진오(수필: 김 강사와 T교수)를 만나는데, 그와 성격이나 문학 성향이 정반대이면서도 매우 절친한 1년 선배 문우(文友)였다. 그는 한 때 사회주의 경향의 카프(프로문학)에 심취해 동반작가라는 카테고리를 형성하기도 한다.

그러나 곧 자연과 순수 그리고 성(性)에 대한 작품을 쓰기 시작한다. 효석이 “앞으로는 물론 낭만 리얼의 중간의 길과 아울러 순수한 리얼리즘의 길을 더욱 캐보려 하나 ‘돈豚’ 이상으로 발전할는지 안할는지는 오직 그 때의 나의 ‘性’과 ‘비위’가 결정할 것이다.”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문학의 성향이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효석문학제가 열리는 봉평 메밀꽃 축제장

특히 그는 ‘九人會’라는 순수문학 단체에 창립회원이 된다. 이효석을 위시하여 이태준, 박태원, 정지용, 김기림, 이무영, 이종명, 유치진, 김유영이 1933년 창립했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을 이런 작가 활동 배경 속에서 1936년 그가 평양에 있는 숭실전문대학 교수로 임용되어 생활의 여유가 생긴 시기에 나왔다.

효석은 그렇게 평양숭실학교 교수로서 안정된 생활을 하던 1940년, 아내를 잃은 시름을 잊고자 중국 등지를 여행하고 이듬해 귀국한다. 그러고서도 가족을 잃은 슬픔에 잠겨있던 1942년 뇌수막염에 걸려 언어불능과 의식불명 상태에서 그의 나이 36세로 짧은 생을 마친다.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을 원작으로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2012년)에 출품한 애니메이션 영화의 한 장면이다.

‘메밀꽃 필 무렵’이 나오기 까지

보름을 갓 지난 부드러운 달빛을 맞으면서 고개 둘과 개울 하나를 건너고 또 벌판과 산길을 가야되는 대화까지의 팔십 리 밤길을 따라서 흐뭇한 달빛을 받으며 온통 소금을 뿌린 듯이 숨이 막힐 듯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메밀꽃의 풍경은 서정적인 시적 분위기를 물씬 묻어나게 하고 그 속에서 허생원과 동이의 살아온 이야기가 향토색 짙게 전개된다.

“이지러는졌으나 보름을 갓 지난 달은 부드러운 빛을 흔붓이 흘리고 있다. 대화까지는 팔십 리의 밤길, 고개를 둘이나 넘고 개울을 하나 건너고 벌판과 산길을 걸어야 된다. 길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 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붉은 대공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 길이 좁은 까닭에 세 사람은 나귀를 타고 외줄로 늘어섰다.

   
소금을 뿌린듯이 하얗게 피어난 메밀꽃

방울소리가 시원스럽게 딸랑딸랑 메밀밭께로 흘러간다. 앞장선 허생원의 이야기 소리는 꽁무니에 선 동이에게는 확적히는 안 들렸으나, 그는 그대로 개운한 제멋에 적적하지는 않았다.” 이렇게 이어지는 이야기는 허생원이 겪었던 오래 전 물레방앗간에서의 성 서방네 처자와 하룻밤 이야기가 이어지며 밤길을 걷고 또 걷는다.

물방앗간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성 서방의 딸인 성 처녀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정을 나눈 뒤 아직까지 그 처녀를 잊지 못해 지금껏 한 번도 빼먹지 않고 봉평장을 찾는 허생원의 살아온 이야기와 아버지도 없이 피붙이라고는 오로지 홀어머니 밖에 없는 동이의 집안 이야기는 장돌뱅이들의 애잔한 삶을 짐작케 한다.

그리고 소금을 뿌린 듯이 하얀 메밀꽃 밭길을 걷는 장돌뱅이들의 모습은 한 장의 수채화를 그리듯 유려하다. 물에 빠진 허생원을 등에 업고 개울물을 건너는 동이의 탐탁한 등어리가 뼈에 사무치도록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은 두 사람의 혈육관계를 암시해 주는 복선이다.

한기를 느끼면서도 알 수없이 둥실둥실 가벼워지는 허생원의 마음은 이미 내일 대화장을 마친 다음 제천으로 떠나기로 생각을 정한 상태이고 보니 동이의 어머니이자 평생을 잊지 못하고 살아 왔던 성 서방네 처녀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에 찬 생각에 허생원의 걸음은 가볍고 나귀에 달린 방울소리까지 밤 벌판에 한층 청청하게 울려 퍼진다.

민속적이면서 향토색 짙은 배경을 바탕으로 우리의 전통적인 혈연의 의미를 새삼 되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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