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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시원한 한산 모시적삼 입어~봐"한산모시…삼국시대 복식이 오늘날까지
이형구 기자  |  leehkg1478@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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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01  00:3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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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복식-한산모시

"한여름 시원한 한산 모시적삼 입어~봐"
한산모시…삼국시대 복식이 오늘날까지

[헤럴드저널] 이형구 기자=한여름 시원한 모시 적삼을 입고 나가면 보는 이로 하여금 시원하겠다는 느낌을 자아내게 하는 옷이 모시옷이다. 고급 한복의 소재로 사용해 왔던 우리 조상들의 지혜와 슬기가 담긴 모시. 여름옷의 대명사이다.

   
충남 서천군 한산면의 모시짜기 모습(사진=서천군청)

하지만 제한된 생산으로 비싸다는 게 흠이고 디자인이 부족하다는 게 아쉬움이다. 가장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우리 옷이 모시옷이다. 한산지방의 구전에 따르면 삼국시대 때 한 노인이 건지산에 약초를 캐러 올라갔다가 처음으로 모시풀을 발견하고 이를 재배하여 모시를 짜기 시작했다.

조선시대 예종 때에는 한산지역의 생모시를 토산품 공물로 지정하였다. 또 18~19세기에는 저산 팔읍에서 생산된 모시가 많이 유통되기도 했다. 세모시는 머리카락보다 곱게 짜여진 모시로 삼국시대에는 30~40승, 고려시대에는 20승, 조선시대에는 15승까지 세밀한 모시가 짜여졌다.

현재 최고로 곱게 짠 것은 12승 모시이다. 광폭세포는 폭이 넓은 모시로 현재 한산지역에서 62cm까지 짜고 있다. 저포교직은 모시와 다른 천연섬유와 함께 섞어 짠 옷감으로 저마교직, 사저교직, 면저교직 등이 있다. 면저교직은 춘사라고 부르기도 했다.

   
한산모시 옷의 아름다운 모습

우리 옷, 한산모시짜기

모시는 모시풀 껍질을 벗긴 것을 재료로 만든다. 모시를 저포(紵布)라고도 하는데, 그 역사는 매우 오래됐다. 실의 재료인 모시는 1년에 보통 세 번 정도 수확하는데, 수확 시기는 5월~6월초, 8월초~8월 하순, 10월초~10월 하순이며 두 번째 수확한 모시의 품질이 가장 좋다.

모시의 원료인 모시풀은 습기가 많고 기후가 따뜻한 지방에서 성장하며, 한국을 비롯하여 중국의 중부와 남부, 일본·필리핀·인도·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재배되고 있다. 모시풀은 숙근식물이므로 번식방법은 포기나누기로 한다. 한번 심으면 약 20년간은 계속 수확할 수 있다.

수확은 성장이 끝나서 줄기의 밑 부분이 갈색으로 변하고 밑의 잎이 시들어 말라갈 때가 수확에 적당한 시기이다. 우수한 품질의 모시를 얻으려면 수일 동안을 밤낮으로 바깥에서 표백하고 여러 번 되풀이하여 말린다. 이 한산모시는 충남 서천군 한산 지역에서 만드는 모시로 다른 지역에 비해서 품질이 우수하며 섬세하고 단아하여 모시의 대명사로 불리어 왔다.

   
한산모시

한산 지역에서 모시짜기가 성행한 이유는 이 지역이 모시풀의 생장조건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모시는 여름철에 기온(평균 20~24도)이 높고 연평균 강수량이 1,000mm 이상이면서 습기가 많은 곳에서 잘 자라는 속성이 있는데, 서해안을 끼고 있는 한산 지역 일대가 이런 조건의 최적지이다.
 
제작과정은 크게 재배와 수확, 태모시 만들기, 모시째기, 모시삼기, 모시굿 만들기, 모시날기, 모시매기, 모시짜기, 모시표백 순으로 이루어진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모시를 재배하여 수확한 모시를 훑고 겉껍질을 벗겨 태모시를 만든 다음, 하루쯤 물에 담가 말린 후 이를 다시 물에 적셔 실의 올을 하나하나 쪼갠다.

이것을 모시째기라고 한다. 쪼갠 모시올을 하나하나 이어서 실을 만드는데, 이 과정을 모시삼기라 한다. 모시삼기의 과정 중에 중요한 점은 실의 균일도인데, 한산모시는 균일도가 좋다. 이렇게 만들어진 실을 체에 일정한 크기로 담아 노끈으로 열 십(十)자로 묶어 모시굿을 만든다.

모시날기는 실의 굵기에 의해 한 폭에 몇 올이 들어갈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모시매기인 풀먹이기 과정을 거친 후 베틀을 이용해 모시를 짜며 마지막으로 모시표백은 물에 적셔 햇빛에 여러 번 말려야 비로소 흰 모시가 된다. 이처럼 직물이 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하며, 완성될 때까지 무한한 노력과 노동을 필요로 한다.

모시짜기는 통풍이 되지 않는 움집에서 짜는데, 이는 습도가 적으면 끊어지기 쉬운 모시의 속성 때문이다. 모시는 통상적으로 7새에서 15새까지 제작되는데 보통 10새 이상을 세모시(가는 모시)라고 하며 그 숫자가 높을수록 고급품으로 여긴다.

1새는 30cm 포폭에 80올의 날실로 짜는 것을 말한다. 한산모시는 우리나라의 미를 상징하는 여름 전통옷감의 대표적인 것으로 국가에서 1967년에 중요무형문화재 제14호로 지정했다. 중요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로는 방연옥, 전수교육조교로는 박승월·고분자 씨가 있다.

   
모시삼기

한산모시는 이렇게 발전했다
 
모시는 저마포 또는 저포라고도 했다. 모시는 순백색이고 비단 같은 광택이 나며 내수력과 내구력이 강하다. 여름철 옷감으로 많이 사용하며, 그 밖에 레이스·커튼·손수건·책상보 등에 이용된다. 한산은 모시의 주요 재배지로서 세모시가 유명하며, 이곳의 모시를 특히 한산모시라고 하여 우수 특상품으로 쳤다. 이 모시는 「삼국지」, 「후한서」 등의 기록에 보면 한국에서는 이미 삼한시대부터 마섬유를 재배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삼국시대에 와서 모시 짜는 기술이 매우 발달하여, 신라 제48대 경문왕 때는 모시가 해외 수출품이 됐다. 고려시대에는 백저포를 상하귀천 없이 모두 사용할 정도로 모시를 일상생활에 많이 애용해 그 제작기술도 상당히 발달했다. 조선시대에는 극상세저포·흑저포·황저포·아청저포·진헌백저포·구승백저포 등의 명칭으로 불리며, 특산물의 하나로서 각광 받기 시작했다.

현재에도 충남 한산은 모시의 주요 재배지로서 세모시가 유명해 축제도 열고 있다. 한산모시는 우리나라의 미를 상징하는 여름 전통옷감이다. 모시는 백제 때부터 유래를 찾을 수 있으니 1500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그만큼 역사적 가치가 높아 제작기술을 보호하고자 국가에서 중요무형문화재(제14호)로 지정 관리하고 있고, 2011년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한산모시축제에서 모시짜기 장면 시연
   
 

한편 조선 시대 후기(18세기)에 한산모시가 처음 상업화된 이래, 한산 모시짜기의 주된 목적은 소득 창출이었다. 더 많은 소득을 얻기 위해 가족은 함께 모시풀을 생산하기 위해 노동을 했으며 지역사회도 힘을 모았다. 이는 모시 두레(모시 생산을 위해 공동 작업하는 것)로 이어졌고, 이후 오늘날의 특화된 활동인 한산모시짜기로 발달했다.

모시 두레는 주로 친지나 이웃으로 조직되어 가족과 이웃이 집단 안에서 결속되어 조화로운 분위기에서 모시와 관련된 활동을 함께 한다. 모시는 일반인을 위한 다양한 의류를 만드는 데 쓰인다. 표백한 순백색 모시의 섬세함과 단아함은 옷으로 지었을 때 우아한 느낌이 살아있어 고급 의류에 매우 적합하다. 이 모시의 흰색 의복은 한국을 상징하는 역사·문화적 상징으로서 한국의 정체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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