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의 산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3패스 트레킹-쿰중으로 가는 길 사진:이상기 객원기자

히말라야, 구름 위를 걷다
에베레스트 3패스 쿰부 트레킹①…루쿠라-팍딩가는 길

헤럴드저널 이상기 객원기자

에베레스트 트레킹-쿰중으로 가는 길에서 만난 고산지대 야생화

인간이 발로 뚜벅뚜벅 걸어서 오를 수 있는 지구상 가장 높은 곳 히말라야.

신이 허락해야 오를 수 있다는 '에베레스트에 도전한다'는 말은 아직 인간에게 어울리지 않습니다.

오로지 신(神)이 허락해야 오를 수 있다면 허망한 비약일까요? 인간의 능력으로는 아직도 영산(靈山)으로 남아 있는 히말라야에 우매한 인간은 세계 도처에서 오늘도 오를 꿈과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기자도 히말라야 트레킹은 꼭 해보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거려서 벼르고 별러 계획한 트레킹 장도에 올랐습니다. 오지 탐사에 남다른 호기심과 탐험심리가 작동해 늘 지구촌 오지로 떠나는 꿈을 꿉니다.

해외 오지를 찾아 떠난다는 것은 부풀어 오르는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는 한편으로는 그만큼 위험한 요소들이 산재해 있을 것입니다. 오랜 바람으로 신이 나에게 길을 허락하기를 기도하며 지구의 가장 끝자락 히말라야 산맥의 에베레스트 3패스(3개의 큰 고개) 트레킹에 나섰습니다.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인 쿰부 히말라야 트레킹은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산행을 즐기는 산 꾼이라면 한번쯤 히말라야 3대 트레킹 코스를 꿈꿉니다. 흔히 말하는 히말라야 3대 트레킹 코스는 안나푸르나(ABC) 트레킹, 쿰부 에베레스트(EBC) 베이스캠프 트레킹, 랑탕 히말라야(캉진콤파) 트레킹을 일컫습니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전문 산악인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한 번쯤 도전해 보고 싶은 '버킷 리스트'에 올려놓고 있을 것입니다.

남체로 가는 길에 많은 트레킹 족들이 줄지어 걷고 있다

히말라야의 나라 네팔 카투만두로 떠나다

지난 11월 3일 인천공항을 떠나 네팔의 수도 카투만두로 향했습니다. 첫날부터 화창한 날씨로 기분이 상쾌했습니다. 경비행기가 제시간에 뜨면서 루쿠라에서 시작되는 트레킹의 첫발이 산뜻합니다. 약간의 불안한 심리와 설렘이 교차되면서 미묘한 감흥을 자아냅니다. 미지에 대한 두려움과 호기심, 기대감이 오버랩 되는 순간입니다. 마음은 이미 촐라에 가 있습니다.

약 50분 정도 소요되는 카투만두-루쿠라 간의 하늘 길은 날씨의 변덕이 심해 비행기가 뜨는 시간이 바로 비행기 시간표일 정도로 연발착을 밥 먹듯 하는 곳이 이곳 네팔의 히말라야 하늘 길입니다.

루쿠라는 흔히들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고쿄리, 촐라패스 트레킹으로 일컬어지는 쿰부 히말라야 트레킹의 관문입니다. 쿰부 히말라야는 에베레스트에 오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지역으로 두드코시 강 중상류 지역을 말합니다.

남체를 비롯해 쿰중, 쿤데, 타메 팡보체, 로프체 등 비교적 큰 마을과 롯지(lodge)만 몇 채 있는 작은 마을들이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가 있는 해발 5140m의 고락셉에 이르기까지 쿰부 히말라야 계곡 곳곳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지역은 셰르파족의 본거지로 1만 여명(솔루 쿰부지역 포함)의 고산 셰르파들이 산악가이드, 포터, 롯지 운영 등 관광업과 농사를 지으며 수 천년을 살고 있습니다.

루쿠라는 해발 2840m의 히말라야 만년 설산의 가파른 골짜기에 자리 잡고 있어 도저히 공항이 들어설 수 없는 지형이지만 150m 길이의 짧고 경사진 활주로, 즉 미친년 널뛰듯 종잡을 수 없는 날씨와 급경사 등 여건이 열악한 곳으로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공항에 속할 정도입니다.

루쿠라 공항(텐징 힐러리공항)은 히말라야 깊은 골짜기 지형을 절묘하게 활용하고 있습니다. 경비행기가 내릴 때는 가파른 오르막을 치고 올라가 제동거리를 줄이고, 이룩할 때는 짧은 내리막길을 치달아 활주로 끝 벼랑 위를 잠자리처럼 날아오릅니다.

마치 절벽 위에서 행글라이더를 띄우듯이 비행사가 곡예비행 하듯 이착륙을 해 약간은 공포심이 밀려오는 느낌입니다. 이·착륙지점이 조금만 어긋나도 절벽이나 활주로 끝 언덕배기에 처박혀 대형 참사가 날 수 있는 아슬아슬한 비행장입니다. 비행기에서 히말라야의 만년설 파노라마를 제대로 느끼려면 카투만두에서는 왼쪽에, 루쿠라에서는 오른쪽 좌석에 앉는 게 좋습니다. 날씨가 워낙 안 좋아 며칠씩 비행기가 뜨지 못해 발이 묶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합니다.

1953년 힐러리와 텐징 노르게이가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정복할 때도 루쿠라를 거쳐 갔습니다. 그 인연으로 힐러리가 공항 건설에 적잖은 재정적 지원을 했고, 루쿠라 공항이 2008년 ‘텐징 힐러리공항’으로 새롭게 명명되어진 것도 이에 연유한 듯합니다. 루쿠라 공항은 긴급한 업무나 화물운송, 응급환자, 구조 등을 위한 헬기가 계류장에 항시 대기하고 있습니다.

팍딩에서 쿰중으로 가는 길. 저 길로 전세계 수많은 트래커들이 오가며 히말라야에 도전한다

10시 40분 루쿠라 공항 도착…쿰부 트레킹의 시작

탐사팀 일행은 여느 시골버스터미널 같은 공항을 아무 제재 없이 빠져 나왔습니다. 롯지에서 이른 점심 후 마음을 단단히 다잡고 12시께 트레킹의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루쿠라-팍딩-남체-쿰중, 멀리 촐라로 가는 험하고 긴 트레킹은 활주로 끝인 마을 언덕 위 철조망 길에서부터 시작됐습니다.

언덕 위에서 우리가 타고 온 비행기의 짧은 활주로를 내려다보니 아찔하게도 눈 덮인 5~6000m 고봉준령들이 루쿠라를 사방으로 둘러싸고 있는 형국입니다. 루쿠라 시장 거리를 지나고, 네팔여성으로 에베레스트를 최초로 오른 <파상라무>의 흉상이 있는 아치형 관문을 지나면서부터 계속 내리막길이 이어집니다. 오늘 숙소인 팍딩은 해발 2610m로 루쿠라(2840m)보다 낮은 계곡 밑 두드코시 강가에 있습니다.

약간의 오르막 내리막이 있으나 전체적으로 완만한 내리막길이어서 고소 적응이나 워밍업에 제격입니다. 내려 갈수록 햇볕은 따가우나 바람은 칼칼하게 날을 세웁니다. 곳곳에 티베트불교의 초르텐(불탑)과 룽다, 마니석, 마니차, 타루초 등이 트래커들을 맞이하며 먼 길을 떠나는 이들의 마음에 위안을 줍니다. 신이 허락해야 무사히 트레킹을 마칠 것입니다.

룽다는 긴 장대를 세워 세로 줄로 매단 깃발로 마치 휘말리는 모습이 바람을 박차고 달리는 말과 비슷하다 하여 풍마(風馬: 티베트 어로 룽다)라고 합니다. 타루초는 오색의 깃발을 초등학교 운동회 때의 만국기처럼 길게 엮어 바람에 날리게 한 것으로 깃발에는 불경구절이나 기도문, 불보살상 등이 인쇄되어 있습니다. 마을 어귀나 다리, 길가 불탑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한번 달면 닳아 헤어질 때까지 그대로 둡니다.

마니차는 둥근 원통에 경전, 진언 등을 새겨 넣은 기도 도구로 손에 들고 항상 돌리는 소형 마니차와 길가나 건물 안, 절집 등에 하나 혹은 여러 개의 대형 마니차를 설치하여 코라를 돌 때 손으로 밀고 돌리며 기도를 합니다.

깃발이 바람에 펄럭일 때마다, 마니차를 한 번 돌릴 때마다 거기에 적힌 불경을 한번 읽는 것과 같은 공덕을 쌓는다고 이들은 믿고 있습니다. 마니석(瑪尼石)은 티베트불교의 경전이나 기도문, 진언을 얇고 넙적한 돌이나 크고 작은 바위에 새겨 넣은 것으로 트레킹을 하면서 가장 자주 접하게 됩니다. 흔히 사찰에 가면 사찰 증축할 때 쓰이는 기와에 소원을 써서 공양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마니석이나 마니차에는 대개 옴 마니 반메 훔(om mani padme hum: 일체의 복덕 지혜와 모든 공덕 행의 근본을 갈무리한 진언)이라는 진언이 색색으로 예쁘게 새겨져 있다. 관세음보살이나 물고기 등이 조각된 경우도 있습니다. 티베트 어로는 마니는 마니주(보석, 지혜)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셰르파족이 자나 깨나 암송하는 '옴 마니 반메 훔'이라는 진언은 관세음보살에게로 귀의를 염원하는 것입니다. "온 우주[om]에 충만해 있는 지혜[mani]와 자비[padme]가 세상의 모든 중생[hum]에게 퍼진다"는 의미의 불성이 집약된 진언입니다.

초르텐은 스투파 즉 불탑을 말하며 마니퇴는 마니석 등을 쌓아 놓은 돌무더기를 말합니다. 이곳 쿰부 히말라야는 먼 옛날 티베트(현 중국 자치구)에서 이주해 와 정착한 셰르파족에 의해 티베트불교가 생활화 되었고, 고산족이 뿌리를 내리고 사는 이곳이 티베트불교의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고 있는 지역입니다. 안나푸르나 지역만 해도 불교보다는 힌두사원이 많고 힌두교 색체가 더 강합니다.

탐사팀은 천천히 여유를 부립니다. 첫날은 이동 거리가 짧기 때문입니다. 어느새 계곡 깊숙이 들어 와 뒤를 돌아보니 저 아래 계곡에 흐르고 있는 두르코시강 물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옵니다. 마을은 오래된 트레킹 코스로 아이들이 때가 묻었을 법한데 표정이 해맑습니다.

사진을 찍는데 연신 해맑은 웃음을 잃지 않습니다. 도무지 욕심과 허망한 것은 찾아 볼 수 없는 얼굴입니다. 초콜릿을 주는데도 쭈뼛쭈뼛 수줍어하며 받으려 하지 않습니다. 이런 이유 없는 선심은 오히려 이들에게 오염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앞섭니다.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3패스 트레킹에 나선 이상기 객원기자

타다코시 마을 못 미쳐서 산봉우리에 구름이 걸리더니 빗방울이 떨어지고 바람이 거세졌습니다. 벗었던 옷을 입고 배낭 단도리를 합니다. 얼마 남지 않았다는 가이드의 말에 힘을 내 봅니다. 깊은 계곡에 걸쳐 있는 흔들다리를 건너 산기슭에 전원풍으로 예쁘게 지은 롯지에 첫날 여장을 풀었습니다.

이 산골에 수세식 화장실에 전기도 밤새 들어와 아직까지는 호사를 누려봅니다. 첫날은 이렇게 반나절 내리막 트레킹으로 비교적 수월했으나 내일부터는 등산화 끈을 단단히 조여매야 할 것이라고 가이드가 엄포를 놓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