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이슈] 한미FTA 재협상

한미FTA 재협상이 가져오는 무역 파장
美, 한미FTA 재협상 공식 요구…"무역장벽 제거 필요"
韓보다 美 유리, 국제규약 어기며 밀어붙이는 트럼프

[헤럴드저널 11월호] 글 양병수 기자=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라는 자국 우선주의 정책을 내세우며 버락 오바마 정부가 협정했던 한미 FTA를 전면 재협상을 요구해 우리 정부가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환담하고 있다(사진=청와대 공공누리)

트럼프 정부가 지난 7월 13일 우리 정부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공식적으로 요구하고 나서면서 우리 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미 무역대표부(USTR)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대표는 서한을 통해 오는 8월 워싱턴DC에서 한미FTA 특별공동위를 개최할 것을 한국에 요구했다.

라이트하이저 대표는 “특별공동위 개최는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미국 무역의 장벽을 제거하고 협정 개정의 필요성을 고려하기 위해서다. 특별공동위는 한미FTA 개정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실상 현행 한미 FTA를 전면 개편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미국은 ‘재협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으나, 이미 특별공동위가 재협상 개시를 위한 사전 절차라는 점에서 사실상 재협상을 요구한 것으로 해석한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월 문재인 대통령과 정상회담 직후 가진 언론발표에서 “지금 한미FTA 재협상을 시작하고 있다”며 한미FTA 재협상을 기정사실로 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한미FTA의 상호간의 효과에 대한 분석과 평가가 선행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어 양측 간 의견이 달랐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협상을 주장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경우는 USTR이 지난 5월 의회에 “8월 16일부터 재협상을 시작하겠다”고 공식으로 통보한 바 있다.

美, 공정한 무역기반 조성 Vs 韓, 무역수지 적자 우려

미국 대표부가 산업통상부에 보낸 서한에서 "특별공동위는 중요한 무역 불균형 문제를 다루고 미국의 대한 수출의 시장 접근성과 관련한 문제를 해결하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며 "균형잡힌 무역 관계와 공정한 운동장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USTR은 미국의 대한(對韓) 무역수지 적자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며 이를 완화 시킬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미국의 대한 무역수지적자는 지난 20년 동안 지속됐고 한미 FTA 발효 이후 적자는 2배 이상 증가했기 때문에 공정하며 균형을 이룬 무역관계 구축이 중요하다는 게 미국 측의 주장이다. 이런 미국 대표부의 주장에 대해 'FTA 전면 개정'이 아닌 '일부 개정'이 목적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산업부는 "정부는 지난 6월 말 한미 정상회담에서 우리가 제의한 바와 같이 양측 실무진이 한미 FTA 시행 효과를 공동으로 조사·분석·평가해 한미 FTA가 양국 무역 불균형 원인인지 먼저 따져보는 게 필요하다는 입장을 당당하게 개진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자동차·농산물, 한미FTA 재협상 최대 쟁점

지난 2006년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 때나 2010년 재협상 때 한미 양국간 최대 쟁점은 자동차와 농산물이었다. 이번 합의한 재협상도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FTA 재협상을 요구하는 미국이 자동차는 무역적자 주범으로, 농산물은 흑자 확대의 주력으로 꼽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미 양국이 합의한 FTA재협상이 시작되면 예상되는 최대 쟁점분야로는 자동차와 철강, 농산물과 서비스 4개 영역이 될 것이다. 미국은 한미 FTA 뒤 자국 자동차 업계의 피해를 강조해 왔다.

윌버 로스 미 상무부 장관이 “한국과의 무역불균형은 한미FTA가 발효된 이후 2배가 됐다. 불균형이 가장 큰 분야는 자동차 무역이다”라고 언급한 데서 알 수 있다.

만약 개정 협상에서 관세가 부활하면 우리 자동차업계는 수출 물량 3분의 1을 차지하는 미국시장에서 지금보다 더 어려운 여건에 처하게 된다. 미국 현지 생산물량은 절반 밖에 안 되기 때문에 나머지 절반은 가격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

미국이 계속 덤핑판정을 내리며 보호주의 공세를 취해온 철강도 마찬가지다. 자동차와 철강이 미국이 벽을 쌓으려는 분야라면 농산물은 미국이 우리 시장을 더 열어젖히려는 분야다. 더 열어서 자국의 농산물을 한국으로 수출 길이 넓어지기를 원하고 있다.

이미 8월 1차 공동위에서 미국은 과거 합의한 농산물 관세철폐 일정을 무시한 채, 우리 측 관세의 즉시철폐를 요구한 바 있어 농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은 한미FTA 뒤 미국산 농축산물 수입 확대로 인한 농가의 어려움과 쌀 개방 가능성을 우려하며 이번 재협상 합의에 반발하고 있다.

미국은 재협상에서 무역적자 축소를 내세워 자국이 우위를 가진 농축산물과 서비스분야에서 추가 개방 파상공세를 펼칠 전망이라 쉽지 않은 협상이 예상된다.

한미 FTA 손익계산…“미국보다 한국이 더 손해다?”

이렇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한미FTA 재협상이 한미 양국은 어떤 파장과 득실이 있을까? 전문가들에 의견을 종합해 보면, 한미 상품교역 실적의 흐름을 근거로, 미국의 주장이 절대적으로 옳다고만 볼 수 없다는 분석이 나왔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FTA 재협상의 근거로 삼고 있는 우리나라에 대한 무역적자는 올해 들어 감소추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1~6월 누계 미국의 대한(對韓) 무역수지(수출액-수입액)는 82억 달러 적자로 전년 같은 기간대비 50억 달러 감소했다.

2015년과 비교해서는 57억 달러 줄었다. 만약 올 하반기에도 상반기와 마찬가지로 미국이 82억 달러 적자를 보게 된다면 올해에는 지난해 보다 94억 달러 감소한 164억 달러 적자를 기록하게 된다.

특히 이달부터 20년간 연 280만톤(수입액 10억 달러 규모)의 미국산 셰일가스가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것까지 포함하면 올해 미국의 대한 적자폭은 더 줄어들 전망이다.

이럴 경우 한미 FTA가 발효된 2012년 이후 미국이 2013~2016년까지 연평균 236억 달러 적자를 본 것과 비교해 적자폭이 상당히 개선되는 것이다. 오히려 FTA 발효 직전연도인 2011년(116억 달러 적자)과 발효년도인 2012년(151억 달러 적자) 수준으로 회귀하게 되는 셈이다.

결과적으로는 양국 간 상품교역에서 우리나라가 흑자를 보고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순 없다. 그러나 여행, 법률 서비스 등 서비스 교역에서는 미국이 막대한 흑자를 보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나라가 한미 FTA에서 미국보다 상당한 이익을 취한다고 말할 수 없다.

한미 FTA 발효 직전연도인 2011년 109억 달러를 기록한 미국의 대한 서비스 흑자액은 2012년 124억 달러, 2013년 110억 달러, 2015년 140억 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아울러 FTA 발효 후(2012~2016년) 우리나라의 대미 투자액(370억 달러)은 미국의 대한 투자액보다 168억 달러 더 많다. 여기에 수출입 통계로 집계되지 않는 한국의 미국산 무기 수입액(연평균 약 43억 달러)까지 고려하면 오히려 미국이 한국보다 경제적으로 더 이득을 취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한미정상회담에서 양국에게 상호호혜적인 성과를 내고 있는 한미 FTA를 더욱 발전시켜 나가자며 사실상 미국 측의 재협상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들 때문이다. 통상 전문가들은 미국 측에서 FTA 재협상을 강력히 촉구한다면 우리 정부가 굳이 이를 피할 이유가 없다고 주문하고 있다.

미국이 상품교역에서 자동차 등 타격을 입고 있는 일부 품목의 관세 철폐 기간 연장, 비관세장벽 완화 등을 요구한다면 우리나라가 적자를 보고 있는 투자·서비스분야에서 미국 측의 양보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한미FTA 재협상…주요 쟁점 및 향후 일정

미무역대표부(USTR)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대표가 지난 7월 12일(현지시각) ‘한미 FTA 공통 관심사항 협의를 위해 양국 특별 공동위원회 설치 공식 요청 서한’을 우리 정부에 정식으로 보내왔다.

USTR은 발송 서한에서 △협정문 22.2조에 따라 미국은 워싱턴 DC에서 한미 특별 공동위원회를 소집해 개정 및 수정 가능성 등을 포함해 협정의 운영에 영향을 주는 요소에 대해 논의 △특별공동위원회와 이후 개시되는 후속 협상을 통해 한미 FTA 이행문제 해소, 미국 수출품의 한국시장 접근 제고, 미국의 대한무역수지적자 완화 문제 해결 기회가 제공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하여 미 의회 무역협상 관련 상임위 의원들은 성명을 내고 “강력한 한미동맹의 중요성이 강조됐다”면서, 개선을 위한 논의에는 찬성하지만 완전한 철수에는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톰 도너휴 미 상공회의소 회장도 “무모하고 무책임한 한미FTA 폐기에 반대한다”면서 “중부지역 주들이 농업과 제조업 상품 수출 감소로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따라서 미국 내 민주당을 비롯해 일부 공화당 의원들도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의식해 반대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고, 설령 트럼프 대통령이 폐기를 추진하더라도 한국과의 대북 공조 문제뿐만 아니라 미국내 의회 승인 문제도 걸려있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분석이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