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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군의 경복궁 공사에서도 불린 아리랑한민족의 대서사시 '아리랑' 대 해부②
장철수 기자  |  637416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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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1.06  14: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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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형문화] 민족의 노래 아리랑

대원군의 경복궁 공사에서도 불린 아리랑
한민족의 대서사시 '아리랑' 대 해부②

[헤럴드저널 11월호] 글 장철수=흔히 우리 민족을 한(恨)의 민족이라고 하지만 인류 역사상 어느 민족이던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에 없었던 민족이 있을까?

   
민족의 대서시, 아리랑 공연 그래픽

우리 민족은 지배의 역사보다는 피지배의 역사를 더 많이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감성을 갖는 것으로 이해된다. 지난 호의 ‘아리랑 대 해부’에 이어 아리랑 탄생의 배경을 정리한다.<편집자 주>

아리랑의 기원설과 전설들은 대원군의 경복궁 공사와 관련된 아리랑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매천야록梅泉野錄」(황현)에 고종이 궁중에서 아리랑을 즐겼다고 전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대원군·고종 때 당시 서울에도 이미 아리랑이 전해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경복궁 공사를 위한 징용의 가혹함과 이 공사 경비조달을 위한 가렴주구가 아리랑에 얽혀서 전해지고 있음을 고려한다면 적어도 대한제국 말기의 가혹한 정치와 사회현상을 타고 아리랑은 ‘흙의 소리’에서 ‘역사와 사회의 소리’로 탈바꿈해 나갈 결정적 단서 내지 동기를 잡은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이것은 대원군 시대를 계기로 해서 비로소 아리랑이 역사성·사회성을 갖추게 되었다는 것을 일방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아리랑의 기원을 고려 말 유신들의 망국의 한에서 찾고 있는 아리랑의 기원설 내지 전설이, 이미 아리랑이 원천적으로 지니고 있을 역사·사회성에 대하여 시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리랑은 대중문화에까지 영향 미쳐

아리랑의 흙다움과 역사·사회다움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비중의 우세를 지적할 때 제기될 수 있는 개념들이다. 그것은 아리랑이 원천적으로 지니고 있었던 역사·사회성이 대원군 시대와 같이 역사적 충격을 받아 상대적으로 흙다움보다 훨씬 목소리를 높였음을 뜻하는 것이다.

아리랑이 사회화하고 역사화 하는 제2의 충격은 일제의 침략에 의하여 촉발된 것이라고 가정해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표현이 나운규(羅雲奎)가 제작한 영화 ‘아리랑’이었다고 더불어 가정해 볼 수 있다.

그와 같은 아리랑의 사회화와 역사화는 8·15광복과 6·25전쟁을 거치면서 중첩되어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아리랑의 자체 변화는 민간전승이 역사적 변화에 적응한 결과라고만 설명될 이상의 또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민간전승이 민간전승으로서, 다른 차원으로 옮겨 갔음을 의미하면서 동시에 민간전승이 민간전승의 테두리를 떠나 다른 문화영역으로 옮겨 갔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아리랑은 농어촌 전통사회의 민간전승에서 좁게는 도시 민간전승, 넓게는 사회 민간전승으로 탈바꿈해간 것이다.

이와 같은 일은 다른 민간전승에서 그 유사한 사례를 찾기 힘든 것이다. 이 경우, 사회 민간전승이란 동시대의 한국사회 전체가 공유한 민간전승임을 뜻한다. 그런 한편, 아리랑은 그 사회화와 역사화를 통하여 대중문화·상업소비문화, 그리고 창조적인 예술문화에까지 그 영역을 확대해 간 것이다.

이 같이 ‘흙의 소리’ 아리랑이 역사화·사회화해 간 사실은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해서, 이른바 제3세계들에 걸쳐 광범위하게 일어난 민족주의적 문화운동으로서 일어난 민요운동과 동궤의 것으로 평가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기도 한 것이다.

아리랑은 앞서 언급한 3대 전통 아리랑이 그 원류라고 보인다. 그러나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에서 비롯하였을 것으로 짐작되는 ‘경기아리랑’ 또는 ‘서울아리랑’은 신아리랑 또는 신민요 아리랑이 잇따라 발생할 수 있는 동기 구실을 다한 것으로 생각된다.

신아리랑 또는 신민요 아리랑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대중가요화한 아리랑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민요아리랑 또는 전통아리랑으로 하여금 새로운 시대, 말하자면 상업시대 및 산업사회의 대중들의 노래로서 살아남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 것이다.

가령 ‘아리랑삼천리’(박시춘 곡)를 효시로 삼아서, 일제강점기에 창작된 다섯 편 가량의 대중가요 아리랑에서 오늘날의 ‘영암아리랑’(하춘화 노래)에 이르기까지 ‘대중가요 아리랑’의 맥이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노래로서 아리랑은 전통민요→신민요→대중가요의 길로 이어졌으며, 한편 ‘가곡 아리랑’의 흐름도 있다. 노래로서 아리랑은 그만큼 다양한 장르들을 포괄하게 된 것이다.

신민요 아리랑의 효시라고 보아도 무관한 ‘경기아리랑’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라는 노랫말로 유명하지만, 음율 언어의 원류는 대체로 ‘정선아라리’에서 찾을 수 있다.

1930년대 이후 숱한 신민요 아리랑이 잇따라 창작되었을 때, ‘경기아리랑’은 달리 ‘본조아리랑’으로도 호칭되었거니와 그것은 ‘경기아리랑’이 신민요 아리랑의 본조, 곧 본류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경기아리랑’이 외의 나머지 신민요 아리랑들은 ‘별조아리랑’으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아리랑은 결국 또 다른 변천을 가져올 것

이와 같이 삼대 아리랑을 중심으로 일어난 아리랑의 물살은 시대의 차이, 갈래의 차이를 넘어서서 우리의 근대사회에 널리 또는 깊게 파장을 미쳐간 것이지만, ‘종두(種痘)아리랑’이나 ‘한글아리랑’으로 이름 지을 만한 특수한 아리랑의 파생을 보기도 하였던 것이다.

‘종두아리랑’은 천연두 예방주사를 널리 보급시키기 위하여, ‘한글아리랑’은 문명퇴치교육의 보급을 위하여 각기 창안된 것들이다.

이들 두 가지 보기들은 아리랑이 특정한 목적을 위해 의도적으로 창조되기도 하였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나, ‘독립군아리랑’이라는 또 다른 보기와 함께 이들은 아리랑이 민요의 텃밭인 민간전승 밖으로 벗어나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가령, 이와 같은 아리랑의 탈 민요 내지 탈 민간전승을 크게 보아 아리랑의 원심력 방향 확산이라고 부르게 된다면, 앞에서 이미 언급한 대중가요화나 가곡화도 그 같은 확산의 일례로 수용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아리랑의 탈 민간전승운동이 굳이 한 방향, 한 범주로 묶여서 제약받을 수는 없다.

가령 상업화 하는 경향, 예술(문학·음악 등)사에 편입되는 성향, 실용성 높게 사회화하는 경향 등을 지적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립군아리랑’의 경우는 가령 그것이 집단적 의지에 의하여 자연발생적으로 자체 내에서 창작되어 집단의식의 독자성을 강하게 향유하고 있었다면, 전통 민속이 아닌 새로운 시대의 민속으로 평가하여도 좋을 것이다.

원심적 확산의 다양화는 민요아리랑의 사회화 내지 역사화로 표현할 수도 있는데, 이것은 아리랑이 원형 지향적 전통성 이외에 시대변화에 적응하는 높은 정도의 가변성을 향유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구심성과 원심성의 극대화된 사례를 다른 전통 민요에서 찾아보기 힘들다는 사실을 지적한다면, 다른 민요와 상대적으로 아리랑이 가지게 되는 개성이 그만큼 크게 두드러져 보이게 될 것이다.

결국 신민요 아리랑의 파장은 급기야 일파만파를 불러 일으켜 여러 방향으로 동시에 또 다른 파장이 일어나게 한 것이다. 아리랑은 이처럼 시대의 변화에 따라 변천을 거듭한 민초들의 한을 풀어내는 노래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앞으로 다문화시대가 확장되더라도 아리랑은 계속 변천하며 한민족의 노래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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