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특집 > 길위의 인문학
"선사시대의 무덤은 큰 돌 아래 있었다"강화지역 고인돌 문화와 고려궁지를 찾아
황경빈 기고가  |  hkb1004@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7.11.07  17:40:48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길 위의 인문학-강화지역 유적지②

"선사시대의 무덤은 큰 돌 아래 있었다"
강화지역 고인돌 문화와 고려궁지를 찾아

[헤럴드저널 11월호] 글 황경빈(자유기고가)┃사진 조경렬=우리문화 유적지 강화도를 찾는 길은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한여름 보다 시원한 가을바람이 솔솔 부는 시월에 찾는 것이 더 한갓지다.

   
강화군 강화읍에 위치한 고려궁지의 규장각으로 가족단위 탐방객들이 이동하고 있다(사진=조경렬)

필자는 본지의 지난 호에 이은 연재로 인천 강화지역의 문화유적 답사 길에 나섰다. 강화지방은 우리나라 역사의 숨 가쁜 한 자락을 이루며 면면히 이어왔다. 이날은 강화읍에 위치한 고려궁지와 하점면 부근리의 고인돌 유적지를 답사했다.

고려궁지는 고려가 몽고군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하여 도읍을 송도(松都:지금의 개성)에서 강화로 옮긴 1232년(고종19)부터 다시 환도한 1270년(원종 11)까지 38년간 사용되던 고려 궁궐터이다. 강화는 그래서 유적지 이상의 역사성을 지닌 문화유적지이다.

고려궁지는 강화읍에 위치한 아주 한적한 곳이다. 강화풍물시장에서 강화읍사무소 쪽으로 가다보면 강화초등학교 입구가 나온다. 강화초등학교까지는 약 300m 남짓 거리로 바로 위에 고려궁지가 위치한다. 국난극복의 성지로서 궁궐터는 아직도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강화초교를 지나 약간 오르막길을 올라가니 가파른 산비탈에 넓은 궁지가 나타났다. 이 궁은 송도로 환도할 때에 거의 허물었다. 1270년(원종 11년) 5월 고려가 몽골에 항복하며 임시 수도였던 강화도에서 개경으로 환도하면서 몽골과의 협상에 따라 모든 궁궐을 헐어버리거나 불 질러버림으로써 고려궁지에는 빈터만 남게 되었다.

   
고려궁지 터 뒷편에서 내려다 본 규장각 모습

정묘호란 때도 강화도 천도

조선시대에도 국난 시 강화도를 피난지로 정하여 1631년(인조9) 고려 옛 궁터에 행궁을 건립했었다. 이는 1627년 청이 3만 대군을 이끌고 조선으로 쳐들어온 정묘호란이 일어난다. 인조는 황급히 강화도로 피신해 3개월을 머물렀다.

인조는 강화행궁의 대대적 정비에 나서며 1631년 행궁을 짓는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났다. 이번에도 인조는 강화도로 피신하려 했다. 그러나 청의 군대가 미리 알고 길을 막았다. 먼저 떠난 왕비 일행만이 강화도에 머물러야 했던 아픈 역사가 서려 있다.

그 후 전각과 강화유수부·외규장각 등을 세웠으나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에 의하여 거의 소실되고, 현재 관아건물인 명위헌(明威軒)·이방청(吏房廳) 등이 남아 있다. 그래서 이곳은 외침에 줄기차게 저항했던 민족의 저력이 흐르는 국난 극복의 역사 현장이다.

한 무리의 초등학교 어린이들과 부모들이 함께 한 문화유적답사팀이 해설사의 해설에 따라 설명을 듣고 있다. 다른 여행지도 많겠지만 역사의 숨결이 흐르는 고려궁지를 찾아 문화해설을 듣고 역사를 새기는 것도 참 의미 있는 여행이 아닐까?

해설사의 설명을 같이 들으며 이들의 아름다운 문화 여행을 따라 궁지의 한가운데 위치한 외규장각으로 향했다. 잘 가꾸어진 잔디밭 위에 세워진 외규장각에는 의궤와 도서들이 전시되어 있다. 물론 복제본이다.

궁지를 나서면서 고려의 고종과 조선의 인조는 이곳에서 얼마나 고통을 느끼며 국력의 쇠약함을 한탄했을까를 생각했다. 북핵문제로 한반도 정세가 세계정세로 변한 지금과도 별반 차이나 보이지 않아 필자의 마음이 착잡했다.

   
이날은 마침 가족 단위 탐방객들을 위한 문화해설사가 고려궁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하고 있었다.

고인돌, 2700년 전의 문화유적을 찾다

필자는 다시 고인돌공원 강화지석묘가 있는 하점면 부근리로 향했다. 지금으로부터 2700년에서 2800년 전에 조성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고인돌을 만나러 간다. 큰 돌을 이용한 무덤이 시작되는 시대는 역사가 시작되는 시대와 비슷하다.

우리나라 거석문화의 한 축을 이루는 인천 강화도의 고인돌 유적지는 전북 고창과 전남 화순의 고인돌 유적지와 함께 세계문화유적으로 등재됐다. 고인돌은 기원전 7~8세기 당시 거석을 옮길 노동력을 이용할 수 있었던 군장 집단의 등장을 알려주는 유물이다.

신석기시대 이래 유행한 거석 숭배 문화가 무덤으로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와 동아시아의 경우에는 대체로 신석기시대 후기에서 청동기시대 사이에 나타났다. 부장품으로 마제석기가 발견되는 것에서 이렇게 유추한다.

   
북방식 고인돌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는 강화 부근리 고인돌이다. 무려 2700년 전 청동기시대의 무덤으로 추정되고 있다(사진=조경렬)
   
현재 세계유형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관리되고 있는 강화 부근리 고인돌 모습

북유럽과 아프리카 등지의 고인돌은 그보다 앞선 기원전 4천~5천년의 건축물로서 존재한다. 현재 인정받는 세계 최고(最古)의 고인돌은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의 고인돌이다.

고인돌은 선사시대의 대명사처럼 쓰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한반도에서 고인돌은 청동기시대의 정의에 따라 선사와 역사 두 시대의 경계선에 놓여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전 세계 고인돌의 40%는 한반도에 존재한다.

이로 추측건대 당시 한반도에 살았던 청동기 세력에게서 지배세력에 대한 성대한 장례문화가 광범위하게 유행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인돌 밑에는 무덤이 있는데 왠지 ‘무덤’보다는 ‘거석 구조물’이라는 뉘앙스가 더 강하다.

대개 위에 돌널무덤 형식으로 방을 만들어 사람을 매장하고 그 위에 굄돌과 고인돌을 놓는다. 다만 전부 무덤방이 있는 것은 아니다. 묘표석, 제단 등으로 만들어진 고인돌도 있다.

   
이 고인돌은 전복 고창과 화순 등에 분포한 남방식 고인돌로 북방식 고인돌과 비교를 위해 모형으로 제작됐다.

북방식 고인돌의 대표적인 부근리 지석묘

강화 하점면 부근리, 평원이라고 해야 어울리는 곳에 강화 지석묘가 있다. 이 고인돌은 무려 2700년 이상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기원전 7~8세기 청동기시대에 조성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유적이다.

천년의 세월도 유규한데 거의 그 3배에 가까운 세월 동안 저렇게 풍진에 씻기며 지금까지 우뚝 서 있는 모습이 신비하기 까지 했다. 원시시대 돌을 갈아서 칼을 만들고 농기구를 만들거나 이제 겨우 청동기를 만들기 시작한 시대의 건축술을 보여주는 유적이니 말이다.

군장 세력에 의한 여러 사람이 합심하여 통나무 위로 큰 돌을 굴려서 축조했을 것으로 보이는 고인돌은 그 자신만이 역사를 기억하고 있을 뿐, 우리는 그저 그 상황을 추측 할 따름이다. 오랜 전 이곳 부근리 지석묘를 만나러 왔을 때는 48번국도 변에서 바로 접근할 수 있었다.

세계문화유산이 된 현재는 거대한 강화역사박물관이 건립되어 대형 주차장과 함께 그 위용이 대단하다. 그때 기억으로 강화 지석묘는 넓은 평원에 위치해 주변의 환경과 지석묘가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두 개의 거대한 박물관 건축물이 평원의 시야를 흐트러뜨리고 있다. ‘왜, 하필이면 고인돌 옆에 박물관을 지어야만 했을까?’하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고인돌의 주변 환경을 자연 그대로 살리면서 조금 외진 곳에 세워도 될 것을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여백
여백
헤럴드시사영상
여백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회대로72길 22  |  대표전화 : 02-783-6699  |  팩스 : 02-783-6677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2길 8 중앙빌딩 305(편집국)
등록번호 : 영등포 라 00389  |  사업자번호 : 107-20-37674  |  발행·편집인 : 조경렬  |  청소년보호책임자 : 양병수
Copyright © 2016 헤럴드저널.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