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뮤직] 낙타의 눈물 주제곡

낙타의 눈물 2003…낙타는 속으로 운다
"인간을 감동시키는 감성의 동물 쌍봉낙타"
몽골 비암바수렌 다바아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헤럴드저널 11월호] 장철수 기자=동물이 인간의 음악 연주에 눈물을 흘리며 감동하는 장면을 보았는가. 모래바람 몰아치는 고비사막 몽골 여인의 구슬픈 구음소리와 두 줄 현악기 마두금 연주에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는 낙타, 낙타의 눈물이다. 낙타는 울지 않는다고 했다.

유목민 가족으로 젊은 부부로 등장하여 낙타와 가축을 기르고, 가족을 건사하는 역할을 한다. 낙타는 자기 새끼가 아니면 절대 젖을 물리지 않는 영악한 동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몽골 고비사막에서는 쌍봉낙타에게 마두금 슬픈 연주를 통해 낙타의 심리를 자극하여 다른 새끼에게도 젖을 먹이도록 하는 전통방식이 있다.

속으로만 운다고. 자기 새끼가 아니면 절대로 젖을 주지 않는 영악한 동물로도 알려진 낙타. 고비사막을 건너온 감동적이고 따뜻한 이야기.

단순히 몽골의 유목민과 그들과 함께 생활하는 낙타와의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으려 했던 비암바수렌 다바아(Byambasuren Davaa)와 루이지 팔로르니(Luigi Falorni)는 그 어떤 허구보다도 드라마틱한 현실을 담았다. 이 작품이 이들 감독이 2003년 발표한 다큐멘터리 영화 「낙타의 눈물」이다.

“몽골 남부의 고비사막. 한 유목민 가족의 낙타 한 마리가 새끼를 출산한다. 그런데, 출산과정이 너무 힘들었던 탓인지, 어미 낙타 테미는 새끼 보톡을 멀리 한다. 새끼를 살려야 하는 유목민 가족은 마지막 방법으로 몽골의 전통악기 마두금 연주자를 불러다가 어미에게 연주를 들려준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어미 낙타는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새끼를 받아들인다.”

다바아와 팔로르니는 유목민의 전통과 관습이 인간과 자연, 그리고 동물간의 관계를 얼마나 중요시 하고 또 긴밀하게 유지하고 있는가 하는 데에 이야기의 초점을 맞췄다. 몽골 유목민들의 전통적인 소리와 음악은 인간과 동물간의 대화를 가능케 하고 서로의 정서를 교감하게 한다.

이는 주로 ‘의식(ritual)’을 통해서 표현되며, 따라서 이 작품에서 ‘의식(儀式)’은 매우 중요하다. 자신의 삶 그 자체만으로 관객을 감동시킨 낙타 모자 테미와 보톡은 인간 이상의 감성으로 우리를 감동시킨다.

어미 낙타가 자기의 새끼에게 젖을 물리지 않자 멀리 읍내에 있는 학교의 음악선생이자 마두금 연주자를 불러 마두금 연주를 통해 어미 낙타가 눈물을 흘리며 새끼를 받아들이게 한다.

난산으로 낳은 새끼에게 젖을 주지 않는 어미 낙타

영화는 몽골의 남부, 고비 사막의 외딴 곳에서 양과 염소와 낙타들을 기르면서 살아가는 한 유목민 가족의 삶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된다. 나이든 할아버지는 사막에서 말라죽은 삭정이들을 주워 땔감을 모으고, 할머니는 게르(유목민들의 원통형 천막집) 안에서 음식을 만들면서 손자를 돌본다.

젊은 며느리와 그의 남편은 밖에서 가축을 돌보느라 여념이 없다. 거친 사막 저 멀리 지평선 쪽으로 붉은 해가 질 무렵 사내는 집안으로 들어서기 전, 출산이 가까워져 신음하는 어미 낙타를 살펴보지만 새끼가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어미 낙타의 배에서 삐쭉 삐져나온 새끼의 가느다란 다리가 보이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머리는 보이지 않고 다리부터 나오고 있으니 난산이다. 어미 낙타는 밤새 힘을 썼던 모양인지 기진맥진 쓰러져 있고, 새끼는 그 상태에서 더 나올 기미가 없다.

젊은 아들 내외와 할아버지는 한편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어미를 달래고 또 한편에서는 새끼의 다리와 머리를 살살 잡아당겨 가까스로 아기 낙타를 탄생시킨다. 아직 탯줄이 묻어 있는 아기 낙타의 털 색깔이 어미의 누런 황토색과는 전혀 다른 흰색이다.

희귀한 변종이 태어난 것이다. 가족들은 흰둥이 아기 낙타의 탄생을 기뻐하지만, 정작 어미 낙타는 갓 태어난 자신의 새끼를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너무나 고통스럽게 낳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렇게 힘겹게 낳은 새끼가 평생 한 번도 보지 못한 흰둥이여서 실망한 것일까.

새끼에게 젖을 물리는 것은 고사하고 자신의 옆에 다가오는 것도 거부하는 어미 낙타의 모습은 비정하기까지 했다. 그 모습을 보다 못한 아들 내외가 새끼 낙타를 끌어다 억지로 어미 낙타의 젖을 물리려고 하면 어미 낙타는 새끼에게 뒷발질을 해댄다.

3대가 함께 모여 사는 게르에서 온 가족이 식사를 하고 있는 가운데, 손자 손녀들이 재롱을 부리는 모습은 여느 민족이나 같은 풍경이다.

세상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새끼 낙타가 이제 굶어죽게 생겼다. 할아버지는 전통 요법을 따르기로 결정하고, 어린 두 손자 두드(Dude)와 우그나(Ugna)를 읍내로 보내 도움을 청한다. 한나절 낙타를 타고 사막을 건너 도착한 마을에서 동생 우그나는 난생 처음 TV를 보고 그 신기함에 매료됐다.

집에 돌아와서 우리도 TV를 사자고 어른들에게 조른다. 할아버지는 TV는 좋지 않은 환영(glass image)일 뿐이라며 손자의 요구를 일축한다. 더군다나 그 곳은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외진 곳이니 어떻게 TV를 본단 말인가.

우그나는 건전지로 작동되는 할아버지의 구식 라디오를 곁눈질하며 건전지로 작동되는 TV는 없냐고 구시렁거린다.

그에게는 할아버지가 밤마다 구수하게 들려주는 낙타의 전설들도 이제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어 재미없는 이야기일 뿐이니, 마을에서 잠깐 보았던 TV 브라운관에 반짝거리는 디즈니 만화의 유혹은 신세계의 환영(幻影)이 되고 말았다.

마두금과 슬픈 구음소리에 낙타도 눈물을 흘리다

이틀이 지난 후 읍내에서 달려온 오토바이 한 대가 이들의 집 앞에 멈춘다. 굶어 죽어가는 새끼 낙타를 구하기 위해 달려 온 중년 사내의 손에는 악기가 들려 있다. 그는 읍내 학교의 음악선생님이자 몽골의 전통 악기 마두금 연주자이다.

가족들과 인사를 나눈 후, 문제의 그 낙타 테미와 보톡 모자를 치유하기 위한 의식이 시작된다. 가까이 붙잡아 맨 어미 낙타와 새끼 낙타 앞에서 전통 악기 연주자는 마두금을 연주하고 젊은 며느리는 어미 낙타의 몸을 쓰다듬으며 그 곡조에 맞추어 나지막하고 구슬픈 구음으로 노래를 부른다.

처음에는 저항하던 어미 낙타는 음악 소리에 조용해지더니 이내 눈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한다. 이윽고 마치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기라도 하듯이 어미 낙타의 두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스크린 속에 클로즈업된 어미 낙타의 눈은 소의 눈처럼 크고 둥글고 맑아서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다.

할아버지가 손자들에게 말해 준 낙타의 전설처럼, 신(神)께서는 낙타에게 정말 소의 눈을 준 모양이다. 옛날에 신께서 하늘에 여러 동물들의 이름을 붙인 황도 12궁 하늘 길을 만들었는데 이를 부러워한 낙타가 자신도 하늘 길에 올려달라고 간청했단다.

그러나 이미 다른 동물들이 자리를 모두 차지한 뒤라 낙타의 소원을 들어줄 수가 없었던 신께서는 그 대신 황도 12궁 동물들의 특징들을 하나씩 뽑아서 낙타에게 주기로 했는데, 낙타의 눈은 바로 소(牛)에게서 가져 온 것이란다.

이렇게 해서 언제 보아도 슬퍼 보이는 소의 눈을 지니게 된 낙타의 눈에서 눈물은 하염없이 떨어지고 있다. 노래와 연주는 계속되고 새끼 낙타를 어미 낙타의 곁으로 끌고 가 젖꼭지를 물려본다. 신기하게도 어미 낙타는 이제 더 이상 자기 새끼를 내치지 않는다.

새끼 낙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맘껏 어미의 젖을 빤다. 비로소 자신의 새끼를 받아들인 어미 낙타 옆에서 새끼 낙타는 가녀린 울음소리를 낸다. 이제 더 이상 슬픔이 담겨 있지 않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가족들의 얼굴에도 비로소 안도의 웃음이 보인다.

게르 안에서 무엇인가 유심히 바라보고 있는 어린 우그나는 상기되어 있다. 그의 앞에는 지지직거리는 작은 TV가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게르 밖에서는 전파 방향을 잡느라 이리저리 둥근 비행접시 모양의 안테나를 돌리는 형 두드의 모습이 클로즈업 된다.

처음에는 내쳤으나 마침내 새끼를 받아들인 어미 낙타 테미처럼 우그나의 부모 역시 어린 자식의 소원을 끝까지 거절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낙타는 자기 새끼가 아니면 절대 젖을 주지 않는 영특한 동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엄마를 잃으면 그 새끼 낙타는 굶어 죽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몽골 유목민들은 수 천 년의 세월 동안 낙타와 교감하는 방법을 터득했고, 그것이 음악으로 통하는 교감이다.

척박한 땅에서 목축을 하며 수 천 년 동안 살아 온 고비사막의 유목민들의 애환과 삶의 숨결이 녹아 있는 이 「낙타의 눈물」은 가장 감성적인 동물 낙타와 유목민들의 삶 속에 깊숙이 스며 있는 정서가 상호 교감하며 살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