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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힝야족, 민족 분쟁이냐 종교 분쟁이냐"세계 인권문제로 떠오른 미얀마 로힝야족
김정남 기자  |  epic103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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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2.14  13:2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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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사회-미얀마 리힝야족 학살

"로힝야족, 민족 분쟁이냐 종교 분쟁이냐"
세계 인권문제로 떠오른 미얀마 로힝야족

[헤럴드저널] 김정남 기자=동남아시아는 아직 저개발국이 대부분이어서 아시아 경제의 새로운 발전의 축으로 성장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베트남을 비롯하여 인도가 그 중심축을 이끌고 있다.

   
미얀마 로힝야족 난만들이 굼주림과 학대에 절규하고 있다.(사진=VOA)

하지만 군부독재의 오랜 틈바구니에서 아직도 저개발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나라 라오스와 미얀마가 있다. 이 두 나라 접경지역에 소수민족 로힝야족(Rohingya people)의 난민촌이 줄을 잇고 있다.

최근 미얀마 정부군에 의한 로힝야족의 대학살로 인종청소 논란으로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고 있다. 왜 이런 현대판 민족분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로힝야족은 미얀마 서부와 방글라데시가 접하는 접경 지역인 라커인주에 집단으로 사는 소수민족이다.

최근 로힝야족은 미얀마 정부에 의해 학살과 인권을 유린당하고 있다고 국제 사회에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미얀마인들의 생각은 다르다. 로힝야족은 애초부터 불법 이민자들이기 때문에 자국의 영토에서 살 자격이 없다는 입장이다.

일부 미얀마족들은 과거 자신들을 핍박해온 로힝야족이 역사의 심판을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민족 간의 갈등으로 생명을 위협받고 있는 로힝야족은 유엔과 세계 인권단체에 구원을 호소하고 있다.

로힝야족은 어떤 민족인가

로힝야족이 미얀마에 소수민족으로 살게 된 배경에 대하여 7세기경부터라고 말한다. 이들은 그때부터 아랍 무슬림 상인으로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미얀마족은 로힝야족이 영국 식민지배 시절 불법으로 이주해 왔다고 말한다. 이들은 로힝야족이 방글라데시에 살던 무슬림들이 조금씩 미얀마로 몰래 숨어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미얀마 민족 간 갈등이 국제문제로 번지면서 국제구호 단체들의 구호가 절실한 상황이다(사진=위키트리)

갈등의 씨앗은 영국이 뿌리고 일제가 철저히 이용

그렇다면 왜 이들은 갈등의 골이 깊어졌을까? 갈등이 깊어진 배경에는 세계 제2차 대전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얀마가 소수민족 로힝야족을 이용한 데서 찾을 수 있다. 영국은 식민지배시절 미얀마를 쌀 생산 기지로 전락시키며 로힝야족을 이용했다.

로힝야족은 미얀마족과 종교, 언어, 외모 등이 모두 달랐다. 영국은 당시 미얀마족의 농경지를 모두 몰수해 거대 집단농장을 만들어 로힝야족에게 경영을 맡겼다. 두 민족이 서로 적이 된 것은 이때부터다. 로힝야족이 미얀마족과 민족적 적대관계가 형성된 결정적인 배경이다.

하지만 일제는 이를 다시 역이용하는 악랄한 수법으로 미얀마족을 앞세워 로힝야족을 배척한다. 이는 순전히 영국을 견제하기 위한 일제의 간악한 속셈에서 비롯됐다. 일본이 아시아태평양전쟁 당시 동남아시아를 침략하면서 미얀마족을 영국으로부터 독립시켜준다는 명분으로 일본군에 협조하게 했다.

일본군은 로힝야족이 경영하던 농경지를 빼앗아 미얀마족에게 주면서 농장을 운영하도록 했다. 그러면서 은근히 영국에 대항하도록 조장했다. 영국은 또 여기에 로힝야족이 일본군과 미얀마족에게 반감이 커지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로힝야족에게 무기를 지원하면서 일본에 맞서게 했다.

이로써 대영제국과 일제는 민족 분쟁을 부추기는 꼴이 되고 말았다. 로힝야족은 영국의 지원으로 일본군이 아닌 미얀마족을 공격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미얀마족을 학살하고 미얀마 전통 종교인 불교 사원을 불지르고 파괴했다.

   
미국의 소리방송이 보도한 미얀마의 로힝야족의 비극(사진=VOA-미국의 소리방송)

민족 갈등에서 종교 갈등으로 비화

영국 쪽에 선 로힝야족과 일본 쪽에 선 미얀마족들의 감정의 골은 종교 갈등으로 증폭되어 갔다. 즉 무슬림과 불교의 갈등이 그것이다. 무슬림 교도인 로힝야족은 영국으로부터 지원 받은 무기 등으로 불교 사찰을 파괴하면서 승려들도 학살했다고 알려진다.

그렇게 갈등이 이어 지다가 미얀마는 1948년 영국의 식민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을 하게 된다. 이때 로힝야족은 독립 조건 덕분에 탄압을 면했다. 이후 14년 뒤인 1962년 미얀마 쿠데타로 군부가 집권하면서 처지가 바뀌게 된다.

로힝야족은 농장 경영계급에서 탄압받는 소수 부족으로 전락했다. 군부정권이 시민권법을 개정한 1982년, 로힝야족은 시민권마저 박탈당했다. 이들은 재산을 빼앗기고 노동력을 착취당했으며 민족운동도 철저히 제한됐다.

가난과 핍박에 내몰린 로힝야족은 두 가지 방법으로 대처했다. 미얀마 정부군에 맞서서 싸우거나, 미얀마 국경 밖으로 탈출했다. 1978년 미얀마 군부는 무슬림 반군을 토벌한다는 명분으로 로힝야족을 대거 숙청하는 탄압을 했다. 이때 로힝야족 20만 명이 방글라데시 국경을 넘어 피난했다.

최근 문제가 심각하게 받아들여져 국제 인권문제로 비화한 것을 두고 국제사회는 조심스러운 접근을 하고 있다. 이유는 오랜 민족 간의 갈등이자 종교 간 갈등이라는 이유에서다. 이후 미얀마를 떠나는 난민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배를 타고 미얀마를 탈출한 일부 로힝야족은 동남아 어느 국가에서도 이들을 난민으로 받아주지 않아 바다 위를 떠돌고 있다. 탈출하지 않은 로힝야족 일부는 미얀마 군부에 맞섰다. 지난 2012년 미얀마 라커인주에서 대규모 유혈사태가 발생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미얀마 로힝야족의 비극(사진=VOA)

발단은 로힝야족 남성이 미얀마 라커인족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소문이 원인이었다. 이때 200여명이 숨졌는데, 대부분은 로힝야족이었다. 지난 8월 25일에는 미얀마군과 로힝야족 반군 사이에 사상 최악이 유혈충돌이 일어났다.

로힝야족 반군이 경찰 초소를 습격하면서 발생한 유혈 충돌이었다. 이 사태로 희생자가 급증하고 난민들이 속출했다. 유엔은 이 사태를 ‘인종청소의 전형적인 사례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유엔과 국제사회, 로힝야족에 구호의 손길 쉽지 않아

최근 국제구호기구들은 고민에 빠졌다. 로힝야족에게 구호 물품조차 공격을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9월 20일 미얀마 라커인주에서는 로힝야족을 위한 구호 물품이 살려 있는 선박이 파손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불교도 300여명으로 구성된 시위대가 구호물품이 실린 선박에 화염병을 던지며 구호활동을 못하게 막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로힝야족 난민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지난 8~9월 중 방글라데시로 넘어 온 로힝야족 난민이 45만 명에 이르면서 이들의 구호가 절실한 상황이다.

   
아웅산 수치 국가자문역도 로힝야족의 사태를 묵인하는 뉘앙스를 보이자 국제사회가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사진=VOA)

로힝야족 유혈사태에 눈감고 있는 아웅산 수치 도마에

현재 미얀마의 실권자인 아웅산 수치 국가자문역은 이런 민족 간의 유혈사태에 대하여 입을 다물고 있었다. 이를 비판하는 국제 인권단체의 목소리가 커지고 국제사회가 인권문제를 문제 삼자 최근 태도를 바꿔 이 사태에 관해 국제사회의 감시와 개입을 받아들이겠다고 밝히고 나섰다.

수치 자문역은 지난 8월 사상 최악의 유혈사태에 관해 침묵으로 일관한다는 비판을 받아야 했다. 그는 유혈사태에 관한 뉴스가 ‘가짜뉴스’라며 사태 책임을 반정부 무장잡단에 돌리기도 했다.

이에 따라 국제사회 일각에서는 그가 1991년 받은 노벨평화상을 철회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처럼 국내외 비판이 심해지자 수치 자문역은 “난민 송환을 위해 신원학인 절차에 착수할 용의가 있으며, 국제적 감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런 국제사회의 비난의 목소리가 커져감에도 미얀마 내부에서는 수치 자문역의 인기가 오히려 올라가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이는 미얀마족의 적으로 여기는 로힝야족에 대한 반감의 골이 그만큼 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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