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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전통음악, 농담의 안개 속을 거니는 듯"지구의 끝 '세계의 지붕' 티베트를 아시나요?
조경렬 기자  |  herald@heraldjourna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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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1.27  19: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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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뮤직-티베트 전통음악

"티베트 전통음악, 농담의 안개 속을 거니는 듯"
지구의 끝 '세계의 지붕' 티베트를 아시나요?

[헤럴드저널 신년호] 글 조경렬=드넓고 적막한 고산지역의 산지와 초원의 생활 속에 히말라야 티베트 사람들에게는 늘 음악과 노래, 춤이 그들의 삶이고 일상이다.

   
티베트 피리 ‘링부’ 소리는 자연 속에서 바람을 타고 들을 때 가장 아름답다.(사진=카락 스튜디오)

하루의 일과를 마무리한 저녁식사 자리에서 가족들과 함께, 몇 날 며칠 손님을 대접하는 결혼식 마을잔치나 떠들썩한 새해 설날, 명절과 축제일, 티베트 사람들의 삶에서는 매순간 노래와 춤과 음악이 있다.

또 집을 떠나 멀리 유목생활을 떠난 목동들은 깨끗한 물과 신선한 풀을 배부르게 먹고 곁에 둘러앉은 가족과도 같은 가축들의 평화로운 시간을 위해 음악을 연주한다. 그들은 그렇게 소박하고도 아름다운 삶을 대자연 속에서 가축들과 함께 나누며 살아간다.

티베트 설산고원의 바람과 메아리를 담은 피리 링부, 이 링부의 아름다운 울림은 멀리 떠난 온 여행자에게 이국적인 선율과 편안한 안식을 전해준다.

설산고원의 바람과 메아리의 아름다운 울림 '링부'

티베트는 중앙아시아에 있는 최대 고원 지역으로 토착 티베트인들의 고향이다. 평균 고도 약 4,900미터.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고원이어서 '세계의 지붕'이라고 불린다. 티베트에서 가장 높은 곳이 해발 8,848미터의 에베레스트 산이다.

행정 구역상 티베트의 서부와 중부는 티베트 자치구(서장자치구), 동부는 쓰촨성과 칭하이성 등의 민족자치주로 나뉜다. 티베트는 중국과 인도의 사이에 위치해 있으나 히말라야 산맥과 티베트 고원에 둘러싸여 오래도록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티베트는 히말라야 산맥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어 지리적으로뿐만 아니라 외교적으로도 고립무원의 지역이었다.

티베트불교는 티베트에서 일어나 원나라 이후 몽골로 전파되어 성행했다. 이어 명·청나라로 이어지면서 융성하여 오늘날에 이른다.

따라서 티베트·몽골·중국 등 나라마다 조금씩 그 음악이 다르지만 대개 몽골은 티베트 양식을 계승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중국에서는 몽골식·중국식 음악이라는 두 가지 양식으로 구별되어 전해진다.

몽골에서는 경문도 티베트와 마찬가지로 산스크리트를 쓰고 있으나 중국식 음악에서는 한자어를 쓰고 있다. 악기도 중국악기, 이를테면 동라(銅鑼)·생(笙) 횡적(橫笛) 등을 쓴다. 허나 티베트는 마두금이나 링부 같은 악기를 연주한다.

   
티베트 설산고원의 바람과 메아리를 담은 티베트 피리 ‘링부’의 아름다운 울림(사진=카락 스튜디오)

티베트의 현실과 독립운동

티베트는 13세기 이후 중국의 통치와 영국의 영향을 번갈아 가며 받아 왔다. 1911년 신해혁명 이후 중국은 티베트를 떠나게 되었다. 이후 1950년까지 티베트는 북경 중앙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은 독립국가 형태를 띠고 있었다.

그러나 1914년 소위 맥마흔(McMahon) 라인이 히말라야 산맥 분수령에 설정되어 영국령인 인도와 티베트 간의 국경선으로 간주되었는데, 영국은 이 라인의 서쪽까지만 행정권을 행사하여 1949년 10월 중화인민공화국 정부가 수립될 당시 중국은 티베트(서장)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많은 근거가 되었다.

중국은 한국전쟁 개입과 유사한 시점인 1950년 10월 인민해방군을 동원, 티베트를 강제 점령하였다. 당시 티베트인들은 유엔, 인도, 영국 등에 도움을 호소하며 저항하였으나 중과부적이었다.

이후 티베트는 1951년 5월 서장자치구로 통합되고 만다. 1954년 중국·인도간 협정에서 인도는 티베트에 대한 중국의 통치권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1959년 3월 티베트에서 중국의 티베트 점령을 반대하는 대규모 폭동이 발생하여 달라이 라마는 자치정부 관리 및 추종자 약 1,000명과 함께 인도로 망명하여 임시정부를 수립한다.

이 폭동으로 인해 약 4만 명의 티베트인이 사망하고, 같은 해 티베트 중부지역에서만 8만 7천명이 추가로 처형당하는 참사가 이어졌다.

1989년은 티베트와 관련된 많은 사건이 또 발생했다. 1월 중국정부에 우호적이고 달라이 라마에 이어 서열 2위인 판천 라마가 사망하면서 중국은 티베트에 대한 주요 통제수단을 잃게 된다.

또 3월에는 1959년 티베트 폭동 30주기로 인해 대규모 소요가 발생했는데 1989년 3월(천안문사태 3개월 전)부터 1990년 4월까지 티베트에는 계엄령이 선포되었다.

이 기간 동안 소요로 인해 중국의 병력과 치안 인력 600여명이 사망했다. 하지만 민간인인 티베트인의 피해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티베트의 자치·독립운동은 달라이 라마가 이끄는 망명정부를 중심으로 유엔을 비롯하여 미국과 유럽 활동 등 국제적인 지원을 받으며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미국은 티베트 문제를 중국의 민주주의, 인권문제에 포함시켜 미국의 대중국 정책에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티베트 지역 에 대한 영토 주권 및 중국내 다른 지역인 신강, 내몽고 등 소수민족에 영향을 고려해 기존의 강경노선을 고수하고 있다.

중국정부에 대한 티베트의 저항운동은 중국내에서 폭탄테러 등의 유형으로 간헐적이지만 끈질기게 지속되고 있다. 달라이 라마가 이끄는 인도 망명정부를 중심으로 국제적인 노력도 활발한 편이다.

그러나 중국정부가 국내 종교 세력의 정치활동을 강력히 통제하고 있는 가운데, 중국은 국내문제에 간섭하는 국제적 움직임에 대해서는 강경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적 여건을 감안하여 달라이 라마도 최근 독립보다는 자치권 확대를 추구하는 쪽으로 투쟁의 노선을 바꾸는 분위기이다.

불교 음악은 이렇게 전해졌다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음악은 구자국(龜玆國: 중국과 서역의 교통요지에 위치, 인도 불교문화는 대부분 이곳을 통해 중국으로 유입됨)을 비롯한 서역을 거쳐 중국에 전래된 후 중국에서 새로운 불교음악 문화를 꽃피웠다.

그리고 그 음악이 불교와 더불어 우리나라에 전래되었다. 범패를 비롯해 기악(伎樂)과 같은 형태의 불교음악이 인도에서 서역을 거쳐 중국으로 전래된 후 다시 우리나라에 유입된 경로를 이어왔다.

인도불교에서 음악의 중요성은 산치 등의 불교 유적과 벽화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팔리어 경전에 따르면 소라, 자바라, 피리, 요령을 반주로 독경이 행해졌다.

세존 생존 시에도 범패를 비롯해 기악이 존재했음을 경전을 통해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경전에 “발제(跋提)가 범패 소리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라는 기록이 있다. 또한 여러 경전에 악가무(樂歌舞)가 중심을 이루는 총체적 불교음악의 연주가 기록되어 있다.

대반열반경에 보면 세존 열반 후 다비식에서 가패(歌唄)와 세존의 공덕을 찬탄했던 음악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한편 불교가 가장 성하였던 시기에는 대규모 법회도 열리고 여러 가지 악기를 사용한 음악이 연주되었다. 힌두교에 압도당해 오늘날 인도에서는 북인도 일부에 겨우 불교음악의 명맥이 이어져 오고 있을 뿐이다.

티베트의 음악가 나왕 케촉과 추키

현대에 와서는 티베트 출신의 세계적인 명상 뮤지션인 나왕 케촉(Nawang Khechog)은 전 세계에 티베트의 전통 악기와 음악을 널리 알린 최초의 티베트 음악가이다.

그는 지금까지 4장의 독집음반과 키타로(Kitaro), 카를로스 나카이(R. Carlos Nakai) 등의 뉴에이지 뮤지션들과 공동 작업한 음반을 발표해 왔다.

케촉은 11년간 승려 생활을 했다. 그가 승려생활을 할 당시 달라이 라마와 많은 다른 티베트 스승들로부터 불교 철학과 명상을 공부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또한 달라이 라마의 지도 아래 히말라야 산기슭에서 은둔자로써 수행하며 수년간을 지내기도 했다. 그의 음악 속에는 이러한 오랜 기간 동안의 출가자 생활의 수행에서 비롯된 정신적 체험과 지혜가 담겨 있다.

장 자끄 아노가 감독하고 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영화 <티베트에서의 7년>에 그의 음악이 영화음악으로 사용된다. 그 영화에서 그는 티베트 조감독 역할과 함께 6개 장면에서 직접 출연하기도 하였다.

독실한 불자인 나왕 케촉은 2000년 한국과의 인연을 맺은 이후 매년 한 차례씩 방한해서 문화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또 한 사람의 티베트 음악가 추키(Kelsang Chukie Tethong)는 월드뮤직 분야에서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며 티베트 민족 음악을 알리는 대표적 뮤지션이다.

티베트 본토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히말라야를 넘어 인도의 다삼살라에 망명한 그녀는 달라이 라마가 1950년에 티베트 문화 예술의 보존과 발전을 위해서 설립한 티베트 공연예술협회(TIPA: Tibetan Institute of Performing Arts)에서 11년 동안 춤과 성악 그리고 악기 수업을 받았다.

노래에 남다른 소질을 보였던 추키는 민족의 전통 음악을 기반으로 하며 현대적 음악 요소를 접목해서 민요에서부터 티베트 불교의 만트라(기원문)에 이르기까지 뛰어난 가창력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티베트 가창의 전형적 특성이라고 할 수 있는 짜내는 듯한 고음의 전통 창법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서양인들에게 동양의 정서를 상징하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달라이 라마가 음반 제목을 지어준 것으로 알려져 있는 그녀의 첫 앨범 「Voice From Tara」속에는 티베트 불교 사상의 정수인 지혜와 자비를 노래하는 만트라 곡들을 비롯해서 티베트의 자연과 산의 노래, 일할 때 부르는 일노래 등 그들의 삶과 애환이 깃들어 있는 전통 민요가 담겨 있다.

현재 인도 다람살라에 거주하고 있으며 매년 해외 순회공연과 국제적인 티베트 행사 참여하며 활발한 음악 활동을 하고 있다. 이렇듯 티베트 음악은 중국 정부의 억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분위기 속에서도 그들만의 고유한 티베트 정신과 삶의 방식을 음악 속에 녹여내며 보존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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