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렬 칼럼]

청와대 문건 유출은 인사 실패가 시발
拘猛酒酸 "술집 개가 사나우면 술이 시어진다"

조경렬 국장

한비자(韓非子)가 쓴 '외저설우(外儲說右)'에 나오는 구맹주산(拘猛酒酸)이란 고사가 있다. 집을 지키는 개가 사나우면 술이 시어진다는 뜻이다. 중국 춘추시대 어느 주막에 술을 빚어 파는 장 씨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되를 속이지 않았고 친절했으며 술 빚는 솜씨도 뛰어났다. 또한 멀리서도 주막이라는 것을 잘 볼 수 있도록 깃발까지 높이 세워 놓았다. 그러나 주막의 술이 잘 팔리지 않아 독채로 시어버리기 일쑤였다.

고민하던 장 씨는 현자 양천을 찾아가 이유를 물었다. "왜 제 주막은 장사가 안 되서 술이 시어버립니까?" 그의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양천은 "혹시 당신 주막을 지키는 개가 사납지 않소?" 장씨는 "개가 사나운 것과 술이 팔리지 않는 것과 무슨 상관입니까?"라고 되물었다.

양천의 대답은 주막을 지키는 개가 사나우면 최고의 술을 빚어도 사람이 찾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말은 나라(정부 조직)에 간신배가 있으면 어진 신하가 모이지 않음을 비유한 말이다. 나랏일뿐만 아니라 모든 조직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느 정부나 실세라는 표현은 많이 써 왔고, 또 그런 일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권력의 핵심인 청와대의 공식 문건이 외부로 유출된 것은 흔치 않은 일임에 틀림없다. 정권이 끝난 후 그런 야사가 있었다는 스토리는 있었어도 권력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 이런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한 것에 국민들은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속칭 ‘정윤회 국정개입’ 문건으로 촉발된 비선실세 권력암투설이 증폭되면서 최근 정권 내에서 이뤄진 이른바 ‘권력암투설’에 대한 우려가 우리 사회의 에너지를 소진시키고 있다. 경제 회생이나 민생을 위해 써야할 국가에너지가 불필요한 권력의 이전투구에 소진된다면 우리 사회는 그만큼 발전이 더디게 될 것이다.

정부의 비선실세로 지목된 정윤회씨의 국정개입 의혹을 담은 청와대 문건의 파장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 EG회장과 정씨의 권력암투설이 확산되는 양상이다. 특히 박 회장의 인맥으로 분류되는 인사들이 올 들어 잇달아 요직에서 물러난 사실이 다시금 주목을 받으면서 정 씨와 박 회장 간의 ‘파워게임’이 아니냐는 세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당장 논란이 된 문건의 작성을 지시한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부터 박 회장의 인맥으로 분류된다. 조 전 비서관은 1994년 박 회장이 마약류 투약 혐의로 기소되자 수사를 담당했고 이후 박 회장과 친분을 쌓아 온 것으로 알려졌다.

조 전 비서관은 올해 1월 정씨가 이 비서관을 비롯한 10명의 청와대 내·외부 인사와 매달 정기적으로 만나 국정에 개입하고 있다는 내용의 문건을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 전 비서관은 그 후 약 3개월 뒤인 올해 4월 청와대를 떠났다.

조 전 비서관은 12월 2일 보도된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청와대 재직 기간 중 이재만 총무비서관,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 등 이른바 핵심 비서관 3인방과 마찰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흔히 말하는 문고리 권력인 이들 3인방이 박 대통령과 인연을 맺게 된 데는 정씨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같은 정황만 놓고 보면 박 회장과 정씨가 각자의 대리인인 조 전 비서관과 비서관 3인방을 통해 힘겨루기를 벌인 것으로 추론된다.

이런 문제의 원인은 인사를 잘 못한 것에서 연유한다. 옛말에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말이 있지 않는가. 박근혜 정부 들어 정권 초기부터 인사문제로 홍역을 치른 게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김용준 총리 내정자에서부터 윤창중 전 대변인에 이르기까지 인사가 박근혜 정부의 발목을 잡고 있는 현실이다.

이런 문건 파문도 역시 인사 문제가 올바로 이뤄지지 않은 결과 청와대에서 작성된 문건이 청와대에서 외부로 유출되는 문제는 단순한 문건의 문제가 아니라 안보의 문제로 직결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제 박근혜 정부가 앞으로 남은 3년여의 임기 동안 제대로 국정을 챙기면서 성과를 거두려면 공명정대한 인사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올바른 국정의 수행을 위해서는 좋은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인사정책이 바로 서야 한다. 술집 개가 사나우면 술이 시어진다는 ‘구맹주산(拘猛酒酸)’의 의미를 되짚어 볼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