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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일본군‘위안부’ 5만명 이상이었다"일본군'위안부',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
조경렬 기자  |  herald@heraldjourna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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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2.26  22:4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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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평론] 일본군'위안부'-아직 끝나지 않은 고통Ⅰ

"조선인 일본군‘위안부’ 5만명 이상이었다"
생존 30명은 극소수의 정부 신고자 일뿐
일본군'위안부',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

글 조경렬 국장(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전문위원)

일본 제국주의 망령이 아직도 서슬 퍼렇게 되살아나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극우적 정치성향이 바로 제국주의로 회귀의 신호탄이다.

   
일본군'위안부'였던 고 심미자 할머니가 일본에 가서 일본군'위안부'에 대한 증언을 하고 현지 관계자들과 기념 사진을 촬영한 장면(사진=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제공)

일본정부는 사사건건 한국과 역사 문제에 있어서 시시비비로 일관하고 있다. 박근혜정부가 2015년 12월 28일 양국 외교장관 회담을 통해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의 해결 방안에 합의하고 합의 사항의 이행을 전제로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을 선언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그 배경에는 당시 미국정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윽박에 의해 마지못해 한일간 협상이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실질적 피해당사자인 일본군‘위안부’ 할머니들의 의견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채 정부 간의 정치적 해결이었다는 점이다.

대부분 90대에 들어선 일본군‘위안부’ 할머니들의 절체절명의 소망은 살아생전에 일본국 정부의 진심어린 사죄와 반성이라는 점이다. 박근혜 정부는 일본군‘위안부’ 할머니들의 의견을 무시한 채 가장 현실적이고 절실한 소망을 버리고 오직 협상타결에만 매달렸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태평양전쟁 당시 끌려간 조선인 여성 5만~8만에 달해

정부가 지난 1992년에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신고를 접수받고 238명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가 정부에 신고하여 등록했다. 다시 말해서 태평양전쟁 당시인 1942년부터 일본군이나 군속 등에 의해 강제로 끌려가 군부대 내의 ‘위안소’ 즉 일본군의 성적 만족을 위한 장소에 감금되었던 일본군‘위안부’의 수는 동남아 12개국에서 약 20만명에 이른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 가운데 조선인은 약 5만~8만명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그 중에서 정부가 신고를 접수하자 내가 일본군‘위안부’였다고 신고한 할머니들이 238명(정부에 등록한 238명의 일본군‘위안부’는 고령으로 사망자가 늘어 2018년 2월 15일 현재 30명으로 줄었다.)이라는 뜻이다. 그외 수많은 피해자 할머니들은 이미 전쟁터에서 사망하거나 치욕이 부끄러워 신고를 하지 않았다.

이 중에서 1991년 8월 14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인 故 김학순 할머니가 첫 증언 기자회견(1991년 8월 14일 김학순 할머니의 일본군‘위안부’ 증언 보다 앞서 故 심미자 할머니가 당시 <시대인물>이라는 월간지 1990년 5월호에 ‘치욕과 절망의 인생을 극복하고 국가의 독립을 바라며 살아온 심미자 씨’라는 5페이지 분량의 기사가 게재 되었다. 이때 심미자 할머니는 자신이 일본군‘위안부’라는 사실을 이미 밝혔다.)을 하면서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후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은 1992년 1월 8일부터 매주 수요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집회를 지금까지 27년째 해 오고 있다. 이들은 일본 정부에 ‘진심어린 사죄와 정당한 배상을 할 것’과 ‘책임자를 처벌할 것’, ‘역사 교과서를 통해 진실을 알리고 교육할 것’ 등을 요구하고 있다.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가 폴란드를 방문해 바르샤바 외곽 홀로코스트 기념비 앞에 무릎꿇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나찌에 저지른 만행에 대해 사죄하고 있다.

1991년 8월 김학순 할머니의 공개증언 이후, 이 문제는 학계는 물론이고 일반 대중과 동아시아차원에서 국제문제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와 동시에 한일간의 뜨거운 정치적 파장을 가져왔다.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1990년 인도네시아에 살았던 네덜란드인인 얀 할머니가 <KBS스페셜>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일본군위안부’의 피해자였다는 사실을 증언하면서 실질적인 일본군‘위안부’에 대한 실상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특히 독일의 경우 제2차 대전 때 유대인 학살로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자 당시 서독총리 빌리 브란트(Willy Brandt)는 1970년 12월 7일 폴란드 바르샤바의 외곽 홀로코스트 앞에서 12월 엄동설한에 털썩 무릎을 꿇고 진심어린 사죄를 했다. 이후 독일은 2000년 7월, ‘기억 책임 미래재단’을 설립하여 독일 정부와 독일 기업 등에 의해 100억 마르크(약 5조원)의 기금으로 피해보상을 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정부 총리 아베 신조는 진정한 사죄와 반성은 물론 정당한 보상을 외면한 채 일본군‘위안부’는 강제성이 없었으며, 자발적으로 일본군‘위안부’가 되었다고 망언과 망발을 계속하고 있다. 역사 교과서까지 왜곡시키고 날조하여 후진에게까지 일본군‘위안부’에 대한 허위 사실을 교육시키고 있는 것이다.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진실 드러나다

일본군‘위안부’가 사회문제로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에 들어와서다. 1980년대부터 일부 학계에서 연구가 시작되어 그 내용이 사회에 알려진 결과 민간에서 먼저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1990년 7월 한국정신대연구소의 전신인 ‘정신대연구반’이 꾸려졌고, 1990년 11월에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발족했다. 이듬해에는 피해자들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 대책으로 공동생활공간인 ‘나눔의 집’이 세워졌다.

한국 정부는 1990년 5월 노태우대통령의 방일 때 민간 차원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이슈로 떠오르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1991년 9월 정부는 ‘정신대 실태조사대책위원회’를 구성하였고 일본에 철저한 진상 규명을 요구했다. 또한 일본의 범죄를 입증할 자료 찾는 데도 노력해 미국국립문서보관소에서 일본군이 위안부 모집, 수송, 관리 등에 개입한 사실을 입증하는 문서를 발굴했다. 정부는 이후 정신대문제실무대책반을 설치하고 시·군·구청에 피해자 신고센터를 설치해 신고를 받는 한편 피해자들에 대한 생활지원을 시작했다.

   
일본군'위안부'로 끌려갔던 김순덕 할머니의 회상 그림

일본국의 소국적(小國的) 대응이 화를 키우다

일본 정부는 1990년까지는 민간 업자의 소행이었다며 일본군의 관여를 전면 부정하는 태도로 일관했다. 1992년 1월 일본 방위청 방위연구소 도서관에서 발견된 위안소 관련 자료가 공개되자 어쩔 수 없이 일본군의 관여와 동원의 강제성을 부분적으로 인정하고 형식적인 사과를 하게 된다. 그러나 한국인 피해자 보상 문제는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과 1965년 한일협정으로 이미 끝났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이후 일본 정부는 1995년 7월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 국민기금’을 설립한다. 이 기금은 일본 정부가 법적인 책임은 회피하면서 도의적인 책임만 지겠다는 취지의 민간차원 기금으로 설립된 것으로 피해 할머니들과 시민단체에서는 강력히 반대하며 현재까지 수요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아예 관심조차 없었던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박근혜 정부가 다시 이 문제를 해결한다는 취지로 2015년 12월 28일 한일 외교장관 차원에서 합의문을 발표했지만 반발을 더욱 고조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일본군‘위안부’ 피해당사자인 일본군‘위안부’ 할머니들의 의견을 전혀 듣지 않고 정부의 일방적인 판단에 따라 한일 양국의 정치적 타협이라는 비판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1월 9일 지난 2015년 12월 이뤄진 한·일 일본군‘위안부’ 합의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의 진정한 문제 해결이 될 수 없지만 일본 정부에 재협상은 요구하지 않겠다는 다소 모호한 입장을 발표했다. 강경화 외교부장관은 지난해 말 “2015년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가 나오기까지 피해자와의 소통이 상당히 부족했다”고 과거 정부의 실책을 인정했다.

그러나 강 장관은 2017년 12월 27일 '위안부 합의 처리 방향 정부 입장 발표'를 통해 "일본 측이 스스로 국제보편 기준에 따라 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피해자들의 명예·존엄 회복과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노력을 계속해 줄 것을 기대한다"는 말로 불만족을 표현했지만 일본 정부에 항의나 재협상은 거론하지 않았다. 특히 강 장관은 "일본 정부가 출연한 화해·치유재단 기금 10억 엔은 전액 우리 정부 예산으로 충당하고, 이 기금의 향후 처리 방안에 대해서는 일본 정부와 협의하도록 하겠다"며 후속 논의를 예고했다.

이에 대하여 앞서 일본 아베 신조 총리는 박근혜 정부의 일본군‘위안부’ 이면합의 논란이 확대되자 위안부 합의와 관련 “합의는 1mm도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해 합의 사항에 대해 전혀 재협상은 없다는 의중을 드러냈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도 "한일 위안부 합의는 양국 정상이 국제사회 앞에서 약속한 것인 만큼 높이 평가받고 있다"며 "착실하게 실행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혀 아베 신조의 발언을 지원했다.

고노 외무상은 1월 9일 한국정부의 발표에 대해 "정권이 변했다고 해서 (전 정권이 체결한 합의를) 실현하지 않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은 국제적이고 보편적인 원칙이다. (2015년 한일 일본군위안부) 합의로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합의했음에도 불구하고 실행하지 않는 것은 일본으로서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발하고 나섰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도 아베 신조 정부와 치열한 신경전을 예고하며 아직 끝나지 않은 한일간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양국 간의 줄다리기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일본군‘위안부’ 피해 당사자들인 30명 할머니들의 고통도 끝나지 않고 있다.

<일본정부가 발표한 일본군‘위안부’ 문제 4대 담화>

∎고노 담화(河野談話) 
1990년대 들어 한국 정부가 과거 태평양전쟁 당시 군이 강제로 연행한 일분군‘위안부’에 대한 문제를 지속적으로 거론하자 1993년 8월 4일 일본 정부의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내각관방장관이 일본군 부대 내 ‘위안소(慰安所)’ 설치와 일본군‘위안부’ 강제납치를 인정하고 ‘사죄와 반성’을 한다는 내용의 담화(談話)를 발표했다.

∎무라야마 담화(村山談話) 
1995년 8월 15일 당시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일본 총리가 태평양전쟁 종전 50주년을 맞아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의 역사를 인정하고 ‘총체적인 사죄와 반성’의 뜻을 표명한 담화이다.

∎고이즈미 담화(小泉談話) 
2005년 8월 15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당시 일본 총리가 태평양전쟁 종전 60주년을 맞이하여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평화와 번영이 전쟁에 의해 본의 아니게 목숨을 잃은 많은 분들의 고귀한 희생 위에 있음을 자각하고, 두 번 다시 우리나라가 전쟁의 길로 가서는 안 되리라는 결의를 새롭게 한다 담화를 발표했다.

∎간 나오토 담화(菅直人談話) 
2010년 8월 10일 일본 정부의 간 나오토(菅直人) 내각총리대신이 일본국에 의한 식민지 지배가 초래한 다대(多大)한 손해와 아픔에 대해, 여기에 재차 통절한 반성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죄의 심정을 표명한다는 담화를 발표했다.

이렇게 일분 역대정부의 총리나 관방장관이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역사 앞에 사죄와 반성을 한다는 담화를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극우 정권인 아베 신조가 집권하면서 정반대 입장을 고수해 오고 있다. 아베 신조는 일분군‘위안부’ 문제에 대하여 강제성이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망언을 지속적으로 일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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