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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을 오르다 제2봉에서야 조망 허락하는 가리산가리산, 큰 바위의 얼굴이 있는 제2봉 경관 빼어나
조경렬 기자  |  herald@heraldjourna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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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8.23  00:3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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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을 오르다 제2봉에서야 조망 허락하는 가리산  
가리산, 큰 바위의 얼굴이 있는 제2봉 경관 빼어나

(조경렬 기자) 여름철 산행은 폭염 속을 걸어야 하는 어쩌면 고행의 길이다. 온 몸이 땀에 흠뻑 젖고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훔치며 걷는 산행은 산에 대한 그리움이 없이는 못할 일이다.

   
▲ 강원도 홍천의 가리산은 정상 3봉에 이르러서야 시계가 확 트인다(사진=조경렬 기자)

허나 계곡에서 탁족濯足의 즐거움으로 힘든 산행을 충분히 보상 받는다. 발가락 사이에 와 닿는 시원한 계곡물의 감미로운 감촉은 언어로 표현하기에 부족하다. 이런 산행의 진득한 감흥을 찾아 오늘도 길을 나섰다. 강원도 홍천의 가리산加里山으로 향하는 길이다.

지금의 강원도 홍천은 사실상 수도권에 속하는 지역으로 발전했다. 서울-양양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1시간이면 오갈 수 있는 지역이 되었고, 내륙이지만 강원도 여느 지역에 뒤지지 않는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경승지와 유적지가 많다.

특히 천연기념물 530호인 삼봉약수가 이름났다. 내면 광원리 실론골에 위치한 약수터로 조선시대에는 실론약수實論藥水로 불렸다. 주봉인 가칠봉을 중심으로 좌봉은 응복산, 우봉은 사삼봉 등 3개의 봉우리로 둘러싸여 있어 삼봉이라 하였다.

   
▲ 장상3봉 못미처 2봉 아래 전망대에서 설악산권과 오대산권이 아득히 조망된다

이 삼봉의 중심지에 삼봉약수가 있다. 삼봉약수는 톡 쏘는 텁텁함과 상쾌함을 선사하는 무색의 투명한 탄산수가 나온다. 이는 토양에 흡수된 물이 암반층을 통과하면서 탄산과 철분을 흡수하였기 때문이다.

산으로 치면 구룡덕봉(1,388m), 약수산(1,306m), 응복산(1,360m), 두로봉(1,422m), 오대산(1,563m), 계방산(1,577m) 등 고봉명산高峯名山이 홍천의 동쪽 경계에 접해 있다.

오늘 산행지 가리산(1,051m)은 춘천시와 인제군의 경계를 이루며 홍천군 중북부의 두촌면에 위치한다. 산 정상에 서면 탁 트인 시야와 발 아래로 펼쳐진 소양호의 풍경이 등산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능선에서 소양호 쪽으로 하산 길을 택하면 배를 타고 피로를 풀 수 있는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는 아름다운 그런 산이다. 가리산휴양림을 지나면 산자락 밑에 조그마한 폭포의 물소리가 산행객의 마음을 포근히 감싸 주며, 이곳에서부터 계곡과 능선을 따라 등산이 시작된다.

   
▲ 제2봉 아래 전망대에서 바라다 본 풍광

필자의 산행팀은 좀 더 깊은 원시림을 거닐어볼 생각에서 두촌면 원동리 홍천고개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가리산의 산행코스는 대부분 휴양림에서 출발하여 다시 휴양림으로 돌아오는 원점 회귀코스를 이용한다. 하지만 이날 산행은 홍천고개-등잔봉-새득이봉-가삽고개-가리산 정상-가리산휴양림으로 이어지는 약 11Km의 산행길이다.

이처럼 홍천고개에서 출발하는 산행객은 드물다. 등산로가 잘 닦여 있지 않아 호젓한 오솔길이 산행자를 맞는다. 만약 안개가 낀 날이라면 바짓가랑이를 흠뻑 적셔야 할 판이다. 아직 8월의 염천 폭염이 가시지 않아 숲속에도 바람 한 점 없이 푹푹 찌는 더위가 이어졌다.

우거진 숲을 자랑하는 등잔봉 능선은 하늘이 보이지 않는 원시림이다. 그저 앞사람의 배낭만을 보고 쫓아가는 숲길이어서 좋다. 능선에 온통 풀숲이 우거져 손으로 헤치며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 가리산은 참나무류가 숲의 주류를 이루는 산이다

지리산 삼신봉에서 세석으로 향하던 산행 때처럼 앞이 안 보이는 구간이 많다. 그렇게 작은 언덕을 수차례 오르내리기를 반복한 끝에 새득이봉 안부에 도착하자 휴양림에서 오르는 길과 만나게 된다. 이제부터는 잘 정비된 등산로가 이어진다. 이정표 하나 없는 원시림 오솔길을 무려 4Km 이상을 걸어 왔다.

이제 걷기 좋은 황톳길이다. 멧돼지란 놈은 왜 사람이 다니는 등산로를 따라 그렇게 땅을 파헤쳐 놓는 걸까. 숲속으로 갈 일이지. 그렇게 10여 분을 능선 길로 돌아가니 가삽고개가 나왔다.

휴양림에서 출발하여 오른쪽으로 올라오면 이곳에서 만난다. 평지 같은 능선 길이 계속 이어진다. 백년 이상으로 보이는 굴참나무 졸참나무 등 참나무류가 길 양옆으로 사열하듯 도열해 있다. 그 사이로 붉은 빛을 띠는 적송도 간간이 보인다. 해발고도가 900미터 내외의 고지대로 고사목도 여기저기 앙상한 모습으로 몸통만 서 있다.

   
▲ 정상의 제3봉에서 1봉을 향하는 풍광

제2봉 못미처 쉼터가 나오고 소양호 뱃길 이정표가 보인다. 소양댐 안부로 내려갈 수 있는 길이다. 은주사가 있는 절골로 내려가면 춘천시 북산면 물로리 소양호에 닿는다. 이 절골의 은주사 위쪽에 한韓 천자 묘가 있다. 이 천자 묘의 설화가 산행객을 잠시 쉬어가게 한다.

‘한韓 천자天子 이야기’는 가리산에 얽힌 풍수지리 이야기로 옛날 가리산 기슭에 한韓 씨 부부가 살고 있었다. 하루는 한 스님이 찾아와서 하룻밤을 묵어가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이 스님은 도승이었다. 이 부부는 저녁을 대접하고 아들 방에서 같이 자도록 배려했다. 식사를 마친 도승은 자리에 눕기 전에 아들에게 달걀 세 개만 달라고 했다. 아들은 생달걀을 없고 새참으로 쇠죽에 삶은 달걀이 있다며 가져다주었다.

이 도승道僧은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고, 아들이 자기를 기다리는 눈치였다. 아들이 코를 골며 자는 척 하자 도승은 삶은 달걀 세 개를 들고 가리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아들도 도승이 눈치 채지 않게 뒤를 따라 산을 올랐다.

도승은 달걀 하나는 산 정상에, 하나는 산 중턱에, 마지막 하나는 산 밑에 묻고는 조용히 산을 내려가는 것이었다. 아들은 도승보다 먼저 산을 내려와 자는 체 하였다. 도승도 방에 들어와 자는 체 하며 무엇인가 기다리는 것이었다.

이윽고 동이 틀 무렵이 되자 산 중턱에 달걀을 묻어 둔 자리에서 닭 우는 소리가 들리고, 곧이어 정상에 묻어둔 달걀에서도, 산 아래 묻어둔 달걀에서도 닭 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누워 있던 도승은 혼자말로 ‘축시(오전 1시~3시)에 울어야 제대로 된 묘 자리인데, 축시 중에 울었으니 묘 자리가 맞긴 하다만 시時가 맞지 않는구나. 천자는 못하고 임금은 하겠다.’라는 말을 남기고 홀연히 떠났다. 몇 년 뒤 부친이 돌아가자 아들은 아버지의 묘를 제일 먼저 닭이 운 산 중턱에 묻고는 중국으로 갔다.

   
▲ 가리산 정상 제2봉의 석화성

마침 중국에서는 천자를 뽑는다는 소문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천자를 뽑는 시험은 짚으로 만든 북을, 짚으로 만든 채로 쳐서 쇳소리가 나게 하면 되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도전 했으나 성공하지 못하였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한 씨 아들은 자신이 치면 꼭 쇠북소리가 날 것만 같아 도전하기로 했다. 그가 짚으로 만든 채로 짚으로 만든 북을 치니 정말로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래서 천자에 오른 아들은 부친의 묘소를 찾기 위해 사신을 보냈으나, 묘가 조선에 있다고 알려지면 중국의 속국이 될까 두려워 ‘조선에는 지리산은 있어도 가리산은 없다’고 속였다.

이때부터 한 씨 묘가 명당이라고 알려져 그 곳에 묻으면 후손이 출세를 한다고 믿어 암매장이 잦았다고 한다. 지금도 산삼을 캐러 가는 심마니들이 한 천자 묘에 제를 올리고 해마다 벌초를 하기 때문에 묘가 묵는 일이 없다고 한다.

   
▲ 제1봉에서 바라 본 제2봉과 제3봉의 풍광

한 천자 설화로 잠시 쉬었다가 다시 2봉으로 향했다. 그렇게 능선 길로 10여 분을 돌아가니 갑자기 숲속에 수십 길 적벽이 앞을 막는다. 제2봉으로 오르는 암벽이다. 가리산은 이제야 숲에서 벗어나 산행객에게 조망을 허락한다.

멀리 설악산과 점봉산, 그 아래 4시 방향으로 오대산과 계방산이 가물가물 조망된다. 그리고 2봉을 지나면 3봉이 바로 코앞에 있다. 가리산은 여기에서 모든 시계視界가 탁 트이도록 허락한다. 12시 방향으로는 아름다운 소양호가 아득하다.

여기 2봉에는 또 다른 볼거리가 있다. 가리산 ‘큰 바위 얼굴’이다. 이 큰 바위 얼굴에 얽힌 이야기는 250여 년 전인 조선 영조대왕 후반기, 이곳 가리산이 있는 홍천군 두촌면 천현리에 한 선비가 살고 있었다.

   
▲ 가리산의 큰 바위 얼굴의 모습으로 제2봉에 있다

그는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글공부에 능했고 활달했다. 선비는 틈틈이 가리산 정상에 올라 책을 읽거나 사색하며 호연지기를 키웠다. 그는 스무 살이 되던 해에 과거에 장원 급제하여 후에 판서 벼슬까지 올랐다.

그 후 그가 앉아서 공부하며 호연지기를 키우던 가리산 제2봉의 암벽이 조금씩 사람 얼굴을 띠며 변해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바위를 ‘큰 바위 얼굴’이라고 부르게 되었단다.

이 설화는 필자가 중학교 때 큰 바위 얼굴에 대한 이야기를 배운 기억이 난다. 미국의 소설가 너새니얼 호손(Nathaniel Hawthorne:1804∼1864)의 단편소설 〈큰 바위의 얼굴〉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그 내용은 이 설화와 약간 다르다.

   
▲ 가리산 정상에 선 필자

여기 가리산 정상 3봉은 무쇠말재에서 오르면 1봉 2봉 3봉 순으로 볼 수 있지만 반대로 가삽고개 쪽에서 오르면 2봉 3봉 1봉 순으로 만날 수 있다. 그 중에서 제1봉이 정상이다. 정상 3봉에 오르고서야 가리산이 과연 ‘한국의 100대 명산이구나!’하고 탄식을 하게 된다.

가리산은 특히 강원도에서 진달래가 가장 많이 피는 산으로 알려진다. 봄철이면 역내리 가리산 휴게소에서 산행을 시작해 용소폭포를 지나면 능선 길 좌우에 늘어 선 진달래 꽃길이 장관이다.

가리산 계곡은 여름철 산행의 시원함을 더하며, 참나무가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울창한 산림과 부드러운 곡선의 산줄기가 우리나라 명산의 전형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다.

이런 가리산은 홍천강이 발원하고, 소양강의 수원水源을 이루어 북서면 곳곳에서 시작된 계류가 골골이 소양강으로 흘러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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