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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궤콘텐츠 개발로 가치를 재창출서울대 규장각 고전DB-조선왕조의궤 활용
조경렬 기자  |  herald@heraldjourna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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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4.29  16:3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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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의궤 중 정조대왕 반차도

 

의궤콘텐츠 개발로 가치를 재창출
서울대 규장각 고전DB-조선왕조의궤 알아보기

조경렬 기자

우리는 역사적 사료들을 연구하고 분석하여 우리 선조들이 당시에 어떤 생활과 삶의 방식을 영위했는지를 유추하고 이를 바탕으로 고증해 낸다. 그 가장 좋은 사료가 바로 한국학 고전원문정보DB가 제공하고 있는 조선왕조의궤이다.

이 DB에는 조선의 왕실이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풍속과 문화를 유지하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는 사료로써 어느 민족도 이처럼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체계적으로 기록한 왕실의 문서는 찾아보기 힘든 귀중한 유산이다. 이런 가치가 인정돼 세계기록유산이 되었다.

따라서 이 포스팅에서는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한연구원의 의궤종합정보DB 중에서 <의궤콘텐츠>에 있어서 의궤이야기, 의궤와 왕릉, 의궤속의 왕실의례, 반차도 등의 검색정보를 알아보고, 그 가치적 활용의 사례와 활용가치 창출에 대하여 살펴본다.

   
정조건릉의 능상설도

규장각 조선왕조의궤DB 검색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의 콘텐츠 <자료검색>을 열면 원문자료 검색 화면이 하위 메뉴로 나타난다.

여기에는 조선왕조실록에서 부터 승정원일기, 일성록 등과 함께 조선왕조 의궤가 이미지업 된다.

이곳을 다시 열면 의궤에 대한 보다 상세한 정보가 수록되어 있다. 의궤 소개와 의궤 열람에 이어 의궤콘텐츠 섹션이 나타난다.

조선의궤이야기 '국새'

이 의궤에 나오는 이야기에는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연구원들의 연구와 고증을 통해 연구소고 형식으로 편재되어 있다. 박권수 충북대 교수의 <의궤속의 시각>이라든지 양진석 규장각 학예연구관의 <진찬의궤에 보이는 '고임'의 의미>, 강문식 규장각 학예연구사의 <의궤에 찍힌 관인> 등 다양한 이야기가 DB로 구축 되어 있다.

여기에서 김문식 단국대 사학과 교수가 정리한 <국새 제작을 기록한 보인소의궤>에는 국새의 제작과 쓰임새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 현재 대한민국 국새 제작의 비밀을 알 수 있다.

조선왕조처럼 정부도 국새(國璽)를 사용하고 있다. 1948년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태극익룡 1호를 국새로 사용했는데, 이로부터 계산한다면 최근 제작한 국새는 제5대에 해당하는 국새이다. 새 국새는 봉황 모양의 손잡이에 훈민정음 서체로 '대한민국'이라 새겼는데, 그 동안 국새의 손잡이는 용 모양에서 거북 모양, 봉황 모양으로 변해왔다.

   
보안소의궤

현재 대한민국 국새는 전통 방식을 따라 주물로 제작했고 부속되는 끈이나 자물쇠 주머니, 상자와 같은 16가지 물품들도 전통적인 방식을 따라 제작했다. 의궤에 나오는 국새를 기본 틀로 삼아 제작했다.

국새는 대통령이 국가 원수로서 헌법을 공포하거나 5급 이상 공무원에게 임명장을 수여할 때, 중요한 외교 문서를 작성할 때에 사용한다. 오늘날 국새를 사용하는 횟수는 연간 1만 번 이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새는 국가를 대표하는 도장으로 국가의 공식 문서에 사용된다. 우리나라는 단군신화에 환웅이 환인으로부터 천부인(天符印)을 받았고 부여 예왕 때에 국인(國印)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렇지만 이는 모두 새(璽)라는 이름에 부합하는 도장은 아니다. 우리나라 국새로는 대한제국 때 고종 황제가 사용한 대한국새(大韓國璽)가 새라는 이름에 부합하는 도장이다.

국새와는 별도로 보인(寶印)이라는 도장이 있다. 보(寶)와 인(印)이라는 2종의 도장을 합한 것인데, 조선시대의 왕실과 관청에서 보인을 사용했다.

보는 어보(御寶)라고도 하는데 국왕과 왕비만이 사용할 수 있는 도장이고, 인은 국왕과 왕세자를 비롯한 왕실 가족은 물론이고 중앙과 지방의 각급 관청에서도 사용했다. 환웅의 천부인이나 예왕의 국인은 바로 인에 해당하는 도장이며, 오늘날 우리들이 사용하는 도장도 모두 인이다.

조선시대에는 새란 이름을 가진 도장이 없었지만 국새라는 표현은 많이 사용했다. 조선 국왕의 도장에는 여러 종류가 있었는데, 이것이 국가를 대표하는 경우에는 국새라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선 국왕의 보인은 넓은 의미에서 국새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 국새는 전통적인 방식을 따라 만들었고 국새 관련 물품도 역시 함께 만들었다. 이는 곧 조선왕조의궤에 실려 있는 국새를 기본으로 삼아 만들어졌다. 창조적 활용 사례의 하나이다.

   
정조 반차도

의궤와 왕릉이야기

의궤콘텐츠의 또 다른 이야기는 의궤에 나타나 있는 세계유형문화유산에 등재된 조선왕조 왕릉에 대한 자료의 데이터베이스이다. 이는 역대 왕릉이 어떻게 구축되었는가를 상설도를 통해 상세히 설명하고 있고, 후대 왕이 선왕의 무덤을 찾을 때 반차도까지 설명되어 있다. 각 왕릉별로 검색을 통해 필요한 자료를 검색할 수 있다.

의궤속의 왕실의례

다음은 왕실의례는 국왕의 장례와 정조의 왕세손책례, 그림으로 본 경모궁으로 나눠서 데이터베이스 되어 있다. 영조의 국장, 정조의 국장 그리고 사도세자의 천원 등이 검색된다.

여기에서 영조의 국장의 경우 1776년 3월 5일 영조 승하로부터 7월 26일 발인(發靷), 27일 하현궁(下玄宮), 28일 반우(返虞)까지 5개월간의 국장 과정과 원릉(元陵) 조성 역사에 대한 관련 의궤 자료를 살펴볼 수 있다.(PDF 자료임)

정조의 왕세손 책례에 대한 내용이 1759년(영조35) 정조는 8세에 왕세손으로 책봉된 사실과 책례의 준비 과정과 왕세손 책봉 의례에 대해 <정조왕세손책례도감의궤>에 나타나 있다.

가장 현실적 활용도가 높은 반차도

반차도는 한마디로 궁중의 각종 행사 장면을 그린 의궤도(儀軌圖)이다. 반열도는 행사의 내용에 따라 구체적인 명칭이 붙여진다. 궁중 행사의 의식과 늘어선 관원들의 배치 상황이 정확히 묘사되어 있어 넓은 의미의 풍속적인 성격을 띤 기록화라고 할 수 있다.

그림의 앞과 끝에 행사 내역 및 참가 인원과 관직을 적은 좌목(坐目)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 내용의 정확한 고증이 가능하다.

의식의 광경을 한 화폭에 효율적으로 담기 위하여 높은 위치에서 내려다보는 식으로 그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리고 정확하고 상세한 기록을 위하여 섬세한 세필과 아름다운 색깔의 안료가 사용되었다. 그림의 주제는 사연도(賜宴圖)와 진연도(進宴圖)를 비롯하여 관례(冠禮) 또는 가례반차(嘉禮班次)가 많다.

이런 내용들이 현대의 새로운 디자인 재료가 되어 상품의 디자인이나 고전풍의 원단 디자인, 스카프 디자인 등에 활용되고 있다. 특히 정조대왕반차도는 화성의 벽면에 원형대로 복원하여 탐방객의 이해를 돕고 있고, 서울 청계천에 반차도를 새겨 우리 전통문화의 이해를 돕고 있다. 앞으로 더 많은 분야에서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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