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특집 > 길위의 인문학
"민족의 영산靈山 태백산에 오르다"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이라는 주목군락 장엄
조경렬 기자  |  herald@heraldjournal.co.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20.02.27  23:01:17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태백산 천재단이 있는 장군봉(사진=헤럴드저널)

[길위의 인문학] 조경렬 기자= 동지섣달 엄동설한에 산으로 든다. 태산준령의 심설 속으로 산행을 떠난다. 겨울 산으로 든다는 것은 바람과 추위와 싸워야 한다는 의미이다. 겨울에 찾아든 태백산은 과연 백두대간의 심장부답게 광활함과 엄숙함이 상존하고 있었다.

12월 중순 태백산은 1월 만큼이나 많은 적설량을 보이지는 않지만 겨울의 눈 산행지로 최고의 산이다. 전세버스가 서울에서 영월을 지나 구절양장 31번 국도를 달려 태백시 혈동 화방재(936m)에 이르니 새벽 3시였다.

버스 안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산행 준비를 한다. 4시가 되자 어둠을 뚫고 산행이 시작되었다. 작은 헤드랜턴에 의지해 하얀 눈길을 걷는다.

   
 

심설 산행으로 찾은 국립공원 태백산太白山. 태백산(장군봉: 1,567m)은 말없이 태곳적부터 그 신비감을 간직하며 영겁의 세월을 숨 쉬어 왔다. 그래서 산은 말이 없다. 다만 온 몸으로 사계四季를 보여 줄 뿐이다.

새가 와서 시끄럽게 지저귄다고 탓하거나 나무라지 않는다. 세찬 비바람이 가슴을 후비며 때려도 신경질을 부리지 않는다. 살갗을 파헤쳐 뿌리를 캐고 허리를 잘라도 투정부리지 않는다. 오직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며 자연의 순리에 따를 뿐이다. 이렇게 사람도 산을 닮을 수 있을까? 우매한 생각을 하며 태백산을 오른다.

   
 

한 줄로 늘어 선 산행객 머리 위로 반달이 떠 있다. 그윽한 반달. 반달은 태백산 새벽 설원을 헤치고 산으로 오르는 산행자의 뒤통수를 포근히 감싸고 따라오며 친구가 되어준다. 나뭇가지에 걸린 그 반달이 잊지 못할 추억이 된다. 칼칼한 새벽바람을 나무라듯 쏟아지던 별빛도 유유하지만 흰 눈밭에 은빛으로 빛나던 그 달빛, 참 아름다웠다.

화방재에서 유일사로 오르는 코스로 접어들어 십 여분을 오르니 산령각이 나왔다. 이 ‘산령각’은 보부상들이 무사안전을 빌기 위해 고갯마루에 당집을 짓고 제사를 지낸 곳이다. 태백산 중턱의 사길령(화방재 옛 지명)은 경상도에서 강원도로 들어가는 관문으로 높고 험하기로 이름났지만 가장 가깝게 강원도로 들어 올 수 있는 곳이기에 길손의 왕래가 많았다.

   
태백산 주목군락은 정상부를 중심으로 넓은 지역에 걸쳐 자생한다(사진=헤럴드저널)
   
 

특히 보부상들이 수십 명씩 대열을 이뤄 넘던 곳이다. 『천금록』에 따르면 산이 험하여 맹수와 산적들이 많이 출몰하기에 이 고갯길의 무사안전을 위해 수백 년 전부터 당집을 짓고 제祭를 올렸다. 옛길은 민족의 숨결이다. 수 백리에 이르는 산길을 마다하지 않고 등짐을 지고 물건을 팔기 위해 몇날 며칠을 걸어야 했던 조선시대 보부상들은 길이 곧 인생이었다.

안축의 등태백산

눈길을 헤치며 천제단天祭壇에 오르니 바람이 거세게 몰아쳤다. 산행객들을 날려버릴 듯 바람이 ‘우우~’ 하며 휩쓸고 지나간다. 고려 말 한 선비는 태백산을 올라 이렇게 읊었다.


直過長空入紫烟    
긴 허공 곧게 지나 붉은 안개 속 들어가니

始知登了最高巅    
최고봉에 올랐다는 것을 비로소 알겠네.

一丸白日低頭上    
둥그렇고 밝은 해가 머리 위에 나직하고

四面群山落眼前    
사면 뭇 산들이 눈앞에 내려앉았네.

身逐飛雲疑駕鶴    
몸은 날아가는 구름 쫓아 학을 탄 듯하고

路懸危磴似梯天    
높은 층계 달린 길 하늘의 사다리인 듯

雨餘萬壑奔流漲    
비 온 끝에 온 골짜기 세찬 물 불어나니

愁度縈廻五十川    
굽이도는 오십천을 건널까 근심이 되네.

       -안축의 〈등태백산登太白山〉 전문

이 한시는 고려 말 문신 안축安軸(1282~1348)이 여름에 태백산을 오르고 나서 감회를 시로서 감탄했다. 국립공원이 되기 전에는 이 시를 적은 푯말이 장군봉에 세워져 있었다. 안축은 태백산의 풍광과 감흥을 시를 통해 오십천을 어떻게 건널까 하고 너스레를 폈다.

   
 
   
 

흔히 민족의 영산靈山으로 불리는 태백산은 백두대간 중심부에 있는 국립공원이다. 지난 2016년 8월 22일 한국의 22번째 국립공원이 되었다. 태백산은 강원 태백 문곡동, 영월 상동면 천평리, 경북 봉화 석포면에 걸쳐 드넓게 펼쳐진 백두대간 길로, 북으로는 함백산과 덕항산, 남으로는 구룡산과 소백산으로 연결되는 대간의 등뼈이다.

산맥으로 보면 함경남도 원산의 남쪽에 있는 황룡산黃龍山에서 비롯된 태백산맥이 금강산·설악산·오대산·두타산 등을 거쳐 태백산에서 힘껏 솟구쳐 올랐다가 서남쪽으로 곤두박질치다 소백산맥의 분기점이 된다.

   
 

태백산은 산세가 완만한 육산이라 특징이 없어 보이지만 우리 민족의 영산으로 오래 전부터 숭배되어 왔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산 정상에 있는 천제단天祭壇에서 왕이 친히 천제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다.

1991년 국가중요민속자료 제228호로 지정된 이 천제단은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치는 동안 지방 수령과 백성들이 천제를 지냈고, 일제 때는 독립군들이 천제를 올렸던 성스러운 제단이다. 지금도 태백시는 매년 10월 3일 개천절에 태백제를 열고 천제天祭를 올린다.

   
 

민족의 영산인 만큼 유일사와 백단사, 망경사 등 곳곳에 암자와 사찰들이 있고 산령각이 세워져 있다. 정상에는 고산 식물이 자생하고 겨울엔 흰 눈으로 덮인 주목군락의 설경이 빼어난 풍광을 자랑한다.

고산식물이 주로 자생하는 태백산은 봄이면 산철쭉이 아름답게 만개하여 온 산을 연분홍으로 수놓는다. 여름에는 울창한 수목과 차고 청정한 계곡물이 어우러지며, 가을에는 오색단풍이, 겨울에는 흰 눈으로 뒤덮인 주목군락의 설경이 천하제일이다. 특히 주목은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이라는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한다.

천제단을 중심으로 북쪽 300m 지점이 태백산의 주봉으로 가장 높은 장군봉, 남동쪽으로 능선을 따라 수만 개의 바위로 이루어진 문수봉이 있다. 고지대 능선에는 주목군락지가 즐비하다.

   
개천절인 10월 3일 단군왕검에 천제를 올리는 천제단에 선 필자

고산지대에 군락을 이루며 서식하는 주목

거센 찬바람과 눈보라를 맞으며 늠름하게 서 있는 주목나무를 보면서 작은 기온 차에도 못 견디는 인간의 간사함이 얼마나 나약한 미물인가를 인식케 된다. 언제나 변함없이 그곳에 서 있는 나무의 덕성을 인간이 배운다.

산행객들이 우뚝 솟은 수백 년생 주목 아래서 기념사진을 촬영한다. 상고대가 나뭇가지를 하얗게 장식한 설화가 가장 아름답다. 하늘에는 간간이 흘러가는 구름과 거센 바람뿐, 광활한 백두대간은 하늘 아래 홀연히 엎드려 있다.

태백산의 겨울은 눈과 설화로 온 산이 은세계다. 주목과 어우러진 설화는 동화속의 설경을 이룬다. 적설량이 많고 바람이 세차기로 유명하여 눈이 잘 녹지 않고 계속 쌓인다. 세차게 몰아치는 바람이 눈을 날려 눈꽃을 만든다. 매년 1월 중순에서 하순 사이에 눈꽃축제가 태백산국립공원 일원에서 열린다.

   
 

태백산은 일출산행으로도 인기가 높아 새해를 맞이하는 첫 일출을 정상에서 맞이하려는 많은 산객들이 찾는다. 산 정상 밑 해발 1,500m 지점에는 단종을 모신 단종 비각과 우리나라 명 약수 100선중 으뜸인 용정龍井이라는 우물이 있다. 신라시대 자장율사가 창건했다는 망경사 입구의 용정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샘물로 개천절에 올리는 천제天祭의 제수祭水로 쓰인다.

태백에는 또 국내에서 가장 높은 역인 추전역(855m)과 가장 높은 포장도로인 만항재(1,340m)가 있는 산이다. 천 삼백리에 이르는 낙동강의 발원지인 황지에서는 하루 수천 톤의 물이 솟아 시내를 이뤄 드넓은 영남평야의 온갖 곡식들을 키우며 남해로 흘러든다.

또 다른 태백산 줄기 금대봉의 검룡소는 한강의 발원지로 일천 수백 리를 흘러 서해로 합류한다. 이처럼 태백산은 한강과 낙동강의 발원지가 있는 산으로 그야말로 민족의 영산임을 일깨운다.

   
 

백두대간의 중심을 이루는 장군봉

장군봉에 이르러 멀리 백두대간을 굽어본다. 대간 길, 지리산 천왕봉에서 시작하여 능선을 타고 걸으면 물을 건너지 않고 속리산을 거쳐 이곳 태백산과 설악산, 금강산을 지나 백두산에 이를 수 있는 길이다. 1300여 Km의 이 백두대간이 한반도의 등뼈를 이루며 국토의 지형을 형성하고 있다. 얼마나 장엄한 길인가.

천제단을 지나 안부로 내려서니 세찬 바람이 잦아들고 눈 속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이 열려있다. 하얀 자작나무 군락이 열병식을 하듯 눈 속에 좌우로 늘어서 있다.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에 나무들이 ‘우~우~’ 하고 신음소리를 낸다. 오직 자연 속에서만 체험 할 수 있는 각색되지 않은 자연의 숨소리이다.

산행 기점인 화방재에서 지금 이곳 무쇠봉 갈림길 까지가 대간길이다. 필자는 여기에서 길을 틀어 문수봉으로 가는 길로 접어든다. 길은 능선길이라 험하지 않지만 세찬 바람과 싸워야 한다. 문수봉을 잠시 올랐다가 다시 당골 갈림길 삼거리로 회귀하여 당골로 하산하는 코스를 택했다.

소문수봉에 오르니 사방의 시원한 조망으로 시계가 열려 있다. 삼거리에서 오르는 길은 꽤 경사가 큰 오르막길이다. 문수봉은 너덜로 둘러싸인 봉우리로 태백산맥의 줄기를 조망할 수 있다.

 

조경렬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