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당대표와 이종걸 원내대표 사진=새정치민주연합

[여의도 단상]진퇴유곡의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
새민련의 정상화, 문재인 대표의 사퇴가 답이다

조대형 주간

진퇴유곡은 나아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물러설 수도 없는 딱한 처지를 말한다. 속된 표현으로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다. 흔히 진퇴양난이라고도 한다.

여왕은 서주 말의 폭군이었다. 奢侈(사치)를 좋아했고 거만했을 뿐만 아니라 욕심이 많아 온갖 못된 짓을 자행했다. 충신 예량부와 측근 소공이 수차 간했지만 듣지 않고 오히려 비방하는 자들을 잡아다 죽였다.

이리하여 비방은 줄어들게 됐지만 제후들은 입조하지 않았으며, 충신들도 하나둘 떨어져 나갔다. 백성들도 입을 굳게 다물고 혹 길거리에서 사람을 만나도 눈짓만 보낼 뿐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민요를 지어 여왕을 풍자하기 시작했다. 세상에 떠도는 말이 있으니(人亦有言) 이젠 빼도 박도 못하노라(進退維谷)고. 과연 백성들은 막다른 골목에 와 있었다. 여왕을 섬길 수도 그렇다고 참고 있을 수도 없었다.

마침내 백성들이 여왕을 습격했다. 쫓겨난 그는 체(逮)로 피신했다가 얼마 뒤 비참하게 죽고 말았다. 쥐도 막다른 곳에 몰리면 고양이에게 달려드는 법이다. 진퇴양난에 처했을 때 사람들은 분연(憤然)히 일어났다. 그것은 역사에서 흔히 보아왔던 장면들이다.

딜레마인 것이다. 딜레마는 두 가지 대안 중 어떠한 것을 택하든 동시 만족 해(解)를 얻지 못하는 상황을 일컫는다. 논리학에서는 이를 쌍도논법(雙刀論法) 또는 쌍관논법(雙關論法)이라 하지만, 흔히 쓰는 표현으로는 진퇴유곡(進退維谷)으로 이해하면 사뭇 빠르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

유(維)란 본래 ‘매다(繫)’란 뜻을 가지니, 수레 또는 말을 매어 ‘묶다’라는 의미다. 이게 기(紀) 또는 강(綱)과 같이 ‘벼리’란 뜻도 가지나 이들은 각기 조금씩 차이가 있다.

그러하니 진퇴유곡(進退維谷)이란 골짜기에 들어, 나아가지도 물러가기도 어렵게 된 상황의 모습이다.

즉, 진퇴양난(進退兩難)이니 이러거나 저러거나 ‘곤란한 지경에 빠졌다’라는 의미인데, 이 처지가 작금의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의 처지와 똑같다.

정청래 최고위원이 주승용 최고위원에게 유감 표명을 했지만, 최고위원 사퇴를 거두어들이진 않을 것 같다.

두 사람의 말씨름이 새민련 불화의 도화선이 된 것은 분명하지만, 이를 쓸어 담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문제인 대표의 리더십이 가장 큰 문제다. 이젠 한발 더 나아가 김한길 전 대표도 문재인 대표의 사퇴를 노골화 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답은 없다.

그렇다고 해서 작금의 현안을 외면한 채 장기간 이어지고 있는 식물 정당 상태를 마냥 방치할 수도 없는 상황이니 현재 새민련이 처해 있는 갑갑한 처지는 그야말로 진퇴유곡이라 할 수 있다. 어떤 결연함도 보여주지 못한 채, 거대 여당의 폭주에 휘둘려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는 궁색한 모습이 수구정권 폭주 시대에 대중들에게 비쳐진 새민련의 초라한 자화상이다.

이 지경에 이르러 너무나 안타까운 것은 비록 여러 가지 논란이 교차하지만 새민련이 정부 수립이후 독재 권력과 싸워온 민주 개혁정당의 적통을 이은 적자(嫡子)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 여당의 거듭된 실정과 비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한민국의 다수 유권자들이 현 정권의 대안 세력으로 새민련을 선택하려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예전의 열린우리당에서 여러 차례 당명을 바꾸며 거듭 반복해온 '반성'이나 '환골탈퇴' 같은 말들이 여전히 지지자에게 신뢰를 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것으로 다수 유권자의 뇌리에 새민련을 위시한 진보 좌파정치 세력에 대해 뿌리 깊은 불신이 각인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새민련의 입장에서는 수구 정권의 실정과 부정에도 불구하고 대중이 새민련을 대안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며, 수구 집권당의 무능이나 부패에 대해서는 관대하기 이를 데 없는 한국 대중이 유독 민주개혁세력에 대해서는 높은 가치기준을 척도로 해서 판단하려하는 이중적 태도가 못마땅하고 야속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지사지의 입장으로 본다면 위의 사실들은 한국의 민주개혁 세력이 자신들의 10년 집권기간 동안 대중을 상대로 자신들의 정치 철학을 이해시키고 설득시키고 소통시키는 일에 근본적으로 실패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한국의 대중에게 민주개혁 세력의 주장이나 읍소 보다 조․중․동식의 선동이 더 설득력 있게 작용했다는 것을 뜻하는데, 만약 야당이 이에 대한 책임을 단순히 '선동 책략에 넘어간 대중이 무지해서…'라고만 받아들이고 있다면 국민은 더 이상 새민련을 상대로 어떤 희망도 품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는 국민들만 탓할 일이 아니라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 현실의 토대 위에서 발전을 위한 전략을 모색하는 것만이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식의 소모적인 논쟁을 넘어서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친노 중심의 폭주에 새민련이 무기력하게 끌려 다니는 현상이 단지 수적 열세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다.

문재인 대표,이종걸 원내대표를 비롯한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가 5월 13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새정치민주연합

열린우리당 시절 원내 과반의석을 확보하고도 한나라당의 공세에 무기력하게 끌려 다닌 만성적인 무소신과 패배주의가 목하(目下), 의회민주주의의 위기 앞에서도 여전히 새민련의 사고를 지배하고 있는 까닭이다.

과거 미국산 쇠고기 수입파문으로 민심이 폭발할 당시, 여론의 눈치만 살피고 있다 촛불이 확산되자 비로소 81명의 소속 의원들이 촛불 대열에 합류한 것은 어느 모로 봐도 집권을 노리는 제1야당의 모습이라고 보기에는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당시 민주당 소속 81명 의원이 촛불이 켜진 광장에서 대중에게 눈도장을 찍히기 위해 어슬렁거릴 것이 아니라, 집회 참가자를 강제 연행하고 군화발로 짓밟도록 명령한 명령권자의 근무처를 찾아가 거기에 자리를 깔고 경찰의 폭력과 과잉 진압을 성토하며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보장하라'고 농성했다면 국민은 야당이 훨씬 미더웠을 것이다.

이러한 새민련의 무소신과 보신주의는 다수 국민과 지지자들에게 민주주의 수호와 사회 개혁에 대한 새민련의 의지를 의심하게 만들고 있다. 만약 새민련이 개혁과 민주수호에 대해 결연한 의지가 있다면 친노의 폭주를 두려워하기 이전에 결사 항전의 의지를 먼저 보여줘야 옳지 않을까? 새민련으로서의 지난 대선은 친노의 부활이라는 데서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따라서 국민 대중이 정권을 선택하는데 있어서 국가 경영의 리더십 못지않게 '민주화'란 주제가 큰 의미를 가지고 있었고, 오랜 기간 지속된 남북 간의 대립구도를 와해시킬 남북화해 또한 지지정당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이유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 대중은 민주화나 남북화해 같은 정치적 이슈보다 고용이나 소득증대 같은 경제적 문제를 우선적으로 고려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이 과정에서 서민 대중은 집권 민주세력이 외환위기의 최대 피해자인 실직자나 비정규직 근로자, 그리고 영세 자영업자의 재기나 회생을 적극 지원하는 정책을 기대했지만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세계화의 조류 속에서 일자리 창출에 실패했고, 나날이 증가할 수밖에 없는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안정적 생계 대책을 전혀 제시하지 못했으며, 대형 할인 마트 등 거대 자본에 상권을 잠식당한 영세 자영업자들의 경쟁력을 제고 할 방안을 제시하지 못했었다.

과거 민주당 집권 10년 동안 국가 경제는 지속적으로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중산층 이하 서민의 소득은 오히려 대폭 감소한 것이다.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정당'이라는 민주당의 집권 시기에 서민과 중산층의 경제가 몰락한 것은 피해자인 서민 대중의 분노를 유발시켰다.

이 분노가 바로 대중에게 "다소 부패하더라도 경제만 살리면 된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 주었고, 대중의 잘못된 인식은 진실 여부를 판단할 여유도 없이 '경제를 반드시 살리겠다.'는 당시의 한나라당을 무조건 지지 하도록 만든 것이다.

정당한 경쟁이 보장되지 않는 기득권자의 '기득권 나눠먹기판', 경쟁의 결과가 자신의 맘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지 짐을 꾸려 당을 떠나는 '정치철새들의 이동 통로', 당사자의 입장에서 아주 야박하게 받아들이겠지만 새민련의 문재인 대표에 대해 줄 수 있는 냉정한 평가인 동시에 사퇴가 답이라는 말로 이 글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