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타산은 동해의 푸른바다가 솟구쳐 올라 1400고지를 만들며 태백산맥으로 줄기에 맞댄다.

두타산과 청옥산 종주에 나서다
"관음암, 아련한 추억의 조각 모으기"

헤럴드저널 조경렬 편집장

오래 전 부터 계획을 세우다가 7월이 돼서야 찾은 두타・청옥산은 내게 아련한 추억과 20대 젊음의 고뇌가 녹아 있는 그런 산이다. 주말에 서울을 출발한 산행 팀이 도착한 곳은 삼척시 미로면 사둔리 천은사였다. 천은사에서 산행을 시작해 쉰움산을 지나 두타・청옥산에 이르는 종주코스를 잡았기 때문이다.

명산대천을 찾는다는 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산길 20km에 달하는 종주 코스의 경우 대부분 새벽에 산행을 시작해야 하는 관계로 서울에서 전날 밤 늦게 전세버스로 출발한다. 그래야만 산행 탐사에 넉넉한 시간을 잡을 수 있다.
 
새벽부터 오르는 이 쉰움산은 두타산頭陀山(1353m)의 영지로 산정에는 천제봉, 고초봉이 있다. 산정에는 수많은 사람이 앉을 만큼 넓고 평평한 반석이 있고, 기암괴석이 솟아 있는 반석 위에 원형의 크고 작은 우물이 50여 개가 있어 이름을 오십정산 이라고도 불린다. 천은사는 입구에서부터 수백 년생의 고목이 군락을 이루어 산사의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었다. 작은 개천의 물소리가 시원하게 산행객의 귀를 간질인다.

쉰움산 정상에 이르는 길은 매우 가파르게 치달아 허벅다리를 두드리며 올라야 한다. 날씨가 꿈틀대며 동해바다의 염분 섞인 해풍을 쉴 새 없이 밀어 올렸다. 그 덕에 덥지는 않지만 끈적끈적한 염분의 촉감이 온 몸을 감싸고 돌았다.

새벽에 산행을 시작한지라 1시간 반을 오르니 일출의 장엄한 모습이 동해바다로 열리고 있다. 해는 구름에 가려 붉은 노을만 가득하다. 내려다보이는 계곡의 푸른 숲은 마치 그린의 잔디처럼 아름답다. 이제 쉰움산을 지나 두타산을 향해 능선 길로 접어든다.

두타산은 청옥산과 인접하여 종주 산행을 하는 코스가 일반적이다. 무릉반석은 예부터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찾아 음풍농월하던 명소이다.

평평하고 넓은 공간이 있는 두타산 정상

쉰움산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다시 능선 길로 2시간을 오르니 두타산 정상이 나타났다. 산 이름인 두타頭陀는 '속세의 번뇌를 버리고 불도 수행을 닦는다'는 의미이다. 두타산에는 두타산성, 사원터, 무릉반석, 학소대와 신비로운 여러 폭포가 있다. 계곡에는 수백 명이 함께 놀 수 있는 반석이 많아 별유천지別有天地를 연상케 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두타산 정상에 이르니 날씨가 변덕을 부리며 운무雲霧가 산정을 에워싸며 세찬 바람이 몰아친다. 마치 태풍이라도 부는 것처럼……. 꽤 넓고 평평한 공간이 열려있는 정상에서 몰아치는 바람 때문에 오래 쉬지는 못했다. 이곳 정상에서 부터 박달령 까지는 숲속을 내려가는 내리막길이다. 잠시 사진 몇 컷을 찍고 청옥산으로 향했다. 일행 한 명이 힘들어 하는 뽄새라 빨리 내달릴 수가 없어 쉬엄쉬엄 이야기를 나누며 걸었다.

그 이름도 정겨운 박달령……. 산에 들어서면 여기저기 계곡이나 산정의 이름들이 어찌 그렇게도 정겹고 흥미로운지 모른다. 이 곳 두타・청옥산의 경우만 보더라도 박달령, 연칠성령, 바른골, 문간재 등등. 쌍폭으로 바로 내려갈 수 있는 박달령에서 간식으로 요기를 했다. 장거리 산행에 힘들어 하는 팀원도 있고, 또 먹어야 힘이 생겨 심산유곡의 흥취에 빠져 볼 것이 아닌가.

청옥산으로 오르는 길, 멧돼지들의 흔적들

1403m 청옥산으로 오르는 길목의 군데군데에 누가 야생화를 채집 해 간 것처럼 땅이 파헤쳐져 있다. 누가 이런 불법을 자행했단 말인가. 경험 많은 산행대장 왈, 멧돼지란 놈의 소행이란다. 산행길 주변의 자생식물 뿌리를 캐먹느라고 땅을 파헤친 모양이다. 그만큼 멧돼지 개체수가 많다는 증거였다.

청옥산에 이르니 또 거센 바람과 운무가 산정을 감싸고돈다. 이 곳 청옥산 정상, 오늘 산행의 반환점에 서 있는 것. 청옥산은 두타산에 비하여 정상의 공간이 좁았다. 아주 소박하고 정감 있는 산정이다. 산행을 하다보면 어느 산은 정상의 품위가 넉넉한 공간을 제공하는가 하면 어느 산은 아주 비좁아서 사진 촬영도 힘든 곳도 많다.

이제 연칠성령으로 하산을 해야 한다. 바른골로 내려서는 길이다. 군데군데 하늘나리, 말나리 꽃이 이제 막 피기 시작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서 있다. 1400m 고지라 꽃망울은 작지만 앙증맞고 귀엽다. 하산 길은 오르는 등산登山보다야 수월하다.

수십 길 낭떠러지 칠성폭포를 지나 바른골의 넓은 반석들을 구경하며 앉아도 보고, 거닐어 보기도 하며 그 신비함에 취하고 심산유곡의 경이로운 풍취에 또 한 번 놀란다. 조화신공 조물주의 능력은 어디까지 일까. 이토록 넓은 반석 위로 계류를 사시사철 흐르게 하고, 짙은 녹음방초綠陰芳草로 뒤덮이게 했으니 말이다.

사실은 여기서 부터가 하산 길에 두타・청옥산의 명물들이 즐비하게 다 모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선 문간재 위에 있는 신선봉의 남근석, 그 건너편 장군바위, 쌍폭, 용추폭포와 선녀탕 그리고 그 유명한 하늘문에서 관음암까지…….

신선봉의 남근석은 보는 방향에 따라 남근의 리얼리티한 모습과 낙타가 하늘을 보고 서 있는 것 같은 형상 등 다양한 모습을 지니고 있어 신비하다. 그 건너편에는 수십 길의 절벽으로 된 장군바위의 패기 넘치는 위용이 웅장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박달령 계류와 용추폭포가 합류 되면서 쌍폭을 이루는 장관은 폭포로 병풍을 두른 것처럼 아름다운 풍취의 절정을 이루고 있다.

-조경렬 기자의 100대명산 유산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