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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대명산)대야산, 최치원이 음풍농월했던 용추계곡과 선유동 경승
조경렬 기자  |  herald@heraldjourna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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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7.18  17: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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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야산 용추폭포

 

[글·사진/조경렬]

대야산이 여름 산행지로 잘 알려진 터라 오래 전부터 산행의 기회를 엿보던 차에 드디어 오르게 되었다. 용추계곡으로 더 유명한 이 대야산大耶山을 오랜 산우와 오르기로 했다. 이제 대서가 지나고 입추가 되면 한여름 더위가 가시고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 것이다. 처서가 되면 들판에는 여름 무더위와 비바람에 익어가는 곡식들이 출렁일 것이다.

517번 지방도로변의 칠보산 쌍곡휴게소를 지나니 이제 용추계곡이 코앞이다. 오늘 산행은 초입 무당소를 출발하여 용추폭포-월영대-밀재-거북바위-대문바위-전망대-삿갓바위-대야산 정상-피아골-월영대-무당소로 하산하는 원점회귀 코스이다.

   
 

충북 괴산의 대야산 용추폭포 장관

대야산(930m)은 속리산국립공원 북부 대야산권을 이루는 산으로 경북 문경 가은읍과 충북 괴산 청천면에 걸쳐 있는 중부권의 100대 명산이다. 백두대간 마루금을 지나는 대야산은 거친 듯 하면서도 아담하게 절제된 계곡미를 자랑한다. 대야산에서 둔덕산(970m)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백두대간 곁가지에 뿌려놓은 수많은 암봉과 아름드리나무가 장엄한 산세를 자랑하며 용추계곡과 선유동계곡을 품고 있다. 용추곡에서 흐르는 물은 다시 빼어난 경승지 선유동계곡을 이루어 상주를 지나 유유히 흐른 물은 낙동강으로 합류된다.

문경시 가은읍 완장리의 주차장에서 작은 둔덕을 하나 넘어야만 용추계곡 입구 산행로가 나타난다. 계곡 입구 무당소에 이르니 수량이 의외로 빈약했다. 얼마 전 큰비가 왔는데도 풍부한 수량을 만들지 못했나 보다. 등산로 입구부터 숲이 울창하다. 삼복염천三伏炎天에도 더위를 잊을 만큼 수목이 하늘을 가리며 솟구쳤다. 수심이 깊은 무당소에서 계곡의 옆구리를 돌아가니 용추폭이 거대한 반석을 타고 철철 쏟아진다.

녹수는 성난 듯 소리쳐 흐르고
청산靑山은 찡그려 말이 없구나
산수山水의 깊은 뜻을 생각하노니
세파에 인연함을 저어하노라.

일찍이 조선의 성리학자 우암 송시열이 화양구곡에 은거하며 빼어난 산수와 자신의 심경을 이렇게 노래했다. 이 보다 앞서 신라 때 고운 최치원은 이미 화양구곡의 빼어난 경승에 취해 음풍농월하며 소요逍遙를 즐겼다. 대야산 서쪽 산록이 시원지인 화양구곡의 유래는 우암이 효종을 잃고 은거하며 주자의 무이구곡武夷九谷을 본떠 명소마다 이름을 붙이면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구곡의 승경은 제1곡 경천벽을 시작으로 운영담雲影潭, 읍궁암, 금사담, 첨성대, 능운대凌雲臺, 와룡암, 학소대鶴巢臺, 파천까지 9곡이다. 이 명소들은 대부분 바로 옆에서 옆으로 이어진다. 경천벽은 기암이 가파르게 솟아 마치 하늘을 떠받드는 형상을 하고 있어 자연의 오묘함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와 반대로 대야산 동쪽 용추곡의 계류는 무당소를 지나 문경 선유동으로 흘러든다. 선유동 계곡에는 ‘학천정’이라는 운치 있는 정자가 있다. 숙종 때의 학자인 이재李縡를 기리기 위해 1906년에 지은 것이다. 학천정 앞의 큰 바위에는 선유동문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여기서부터 선유구곡이 시작된다.

옥석대, 난생뢰, 영귀암, 탁청대 등의 음각글씨는 신라시대 인물  최치원이 남긴 글씨로 알려진다. 또 용추계곡 여러 바위 면에도 세심대 활청담 옥하대 영차석 등의 음각 글씨 역시 고운孤雲의 서체이다. 이렇듯 대야산은 동쪽으로 용추곡을, 서쪽으로 화양구곡의 시발점을 이루어 속리산국립공원의 대야산권에 속한다.

   
 

 
용추폭에 도착하니 벌써 많은 피서객들이 물놀이를 하고 있다. 용추폭포는 오랜 세월동안 폭포수의 낙하로 하트 모양으로 바위가 형성돼 자연의 신비한 풍광을 간직한 경승지이다. 특히 용추폭포의 기묘한 모습은 보는 이의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거대한 화강암반을 뚫고 쏟아지는 폭포 아래에 하트모형으로 패인 소沼가 윗용추이며, 물이 소에 잠시 머물 새도 없이 매끈한 암반을 타고 흘러내리면서 그림 같은 아랫용추를 빚어내고 있다.

이 용추는 에메랄드빛 투명한 물이 넘쳐흐르고 있어 신비감을 더한다. 이 폭포에는 암수 두 마리의 용이 하늘로 승천했다는 전설이 있다. 폭포 양쪽의 큰 바위에는 두 마리의 용이 승천 할 때 남긴 용비늘 자국이 설화로 남아 있다.

폭포에서 쏟아져 푸른빛을 띤 해맑은 물은 좁은 바위 틈 홈통을 타고 그 아래 용소로 떨어진다. 그 아래에는 용이 승천하기 전 알을 품었다고 하는 움푹 파인 웅덩이가 있다. 이 용추폭 아래의 무당소는 수심이 3m 내외로, 100여 년 전 물을 긷던 새색시가 빠져 죽은 후 그의 넋을 기리기 위해 굿을 하던 무당마저 빠져 죽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예전에는 대야산을 대하산, 상대산 등으로도 불렸고 1789년에 발행된 『문경현지』에서 부터는 대야산으로 적고 있다. 특히 철종 때 발간된 『대동지지』(大東地志)에는 “대야산은 희양산의 남쪽 갈래로 제일 높은 봉우리가 비로봉이고, 선유동의 주산이다. 서쪽의 청주 화양동이 삼십 리이다(大耶山 曦陽山南支上峯曰毘盧爲仙遊洞主山西距淸州華陽洞三十里).”라고 기록하고 있어 대야산 정상을 비로봉毘盧峯으로 불렀음을 알 수 있다.

용추폭에서 오솔길을 따라 20분쯤 오르면 월영대가 길손을 반긴다. 달이 뜨는 밤이면 바위와 계곡에 달빛이 그윽하게 비친다 하여 월영대月影臺라고 했다. 여기가 산행의 분기점으로 오른쪽으로 곧장 오르면 백두대간 밀재에 이르고, 왼쪽으로 오르면 피아골로 대야산 정상까지 급경사 오르막길이다.

월령대의 넓은 반석에는 이미 많은 피서객들로 왁자지껄 했다. 하산 길에 다시 앉아 보기로 하고 산행을 재촉한다. 밀재를 향해 숲속 길로 향했다. 등산로 양 옆으로 조릿대가 오솔길을 만들어 놨다. 겨우 한 사람만 빠져 나갈 수 있도록 작은 길만 허락한 온통 조릿대 숲이다. 조릿대 숲 틈새로 간간이 빛나는 오전 햇살이 해맑다.

   
 

밀재에 이르니 벌써 이른 점심을 먹는 산행객으로 붐빈다. 백두대간 산행자들이다. 이곳 밀재에서 거북바위까지는 통나무계단 오르막길이다. 거북바위, 옆모습이 마치 큰 거북을 닮아서 거북바위라고 했다. 머리 모양까지 흡사하다.

대야산은 아직까지도 조망을 허락하지 않고, 조금 더 오르면 대문바위가 나온다. 대문바위에선 사방으로 전망이 좋다. 바위가 마치 솟을대문처럼 3m 높이로 솟아 겨우 한사람만 빠져나갈 수 있다. 아래로는 수십 길 벼랑이다.

오늘 대야산은 소나무와 솟을대문 바위와 파란 하늘이 잘 어우러진 진경산수화이다. 이런 절경은 산행이 아니고서야 어찌 친견할 수 있으랴. 멀리 주봉 자락이 뭉게구름에 걸렸다. 오전에 흐리던 하늘이 화창하게 열리며 두둥실 뭉게구름을 띄우고 있다. 저 멀리 첩첩이 쌓인 산과 산들의 아름다운 곡선이 구름 아래 선계仙界를 꾸미고 있다.

   
 
   
 

여기에서 다시 능선을 따라 돌아가니 삿갓바위가 나왔다. 마치 삿갓 모양을 닮았다 하여 삿갓바위라고 이름 붙였다. 우리 국토의 산야에는 이렇게 여러 형상으로 피조물을 닮은 바위가 많고, 수많은 전설과 설화를 품어 억겁의 세월을 이어왔다. 그 이름도 아름답고 신비한 바위들이다. 수많은 산행객이 오르내리며 이들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며 오갔을 것이다.

이제 멀리 대야산 정상이 보인다. 좁은 정상에 수많은 산행객의 모습이 빼곡하다. 필자도 이제 30분 후면 정상에 다다를 것 같았다. 이글거리는 8월의 뜨거운 태양이 산정을 달구며 대야산 피아골, 다래골로 미끄러져 내리고 있다. 여기가 한반도의 등뼈 백두대간 대야산 구간이다. 밀재에서부터 정상까지로 남으로는 조항산으로 뻗어가고, 북으로는 대야산 위쪽 촛대봉에서 곰넘이봉으로 이어진다.

   
 

정성에서 잠시 휴식을 마친 필자는 이글거리는 태양을 머리에 이고 하산길로 접어든다. 이 대야산 정상에서 피아골로 하산 길은 매우 급경사면이다. 숲이 우거져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이지만 계곡의 수량은 많지 않았다. 숲이 우거진 계류의 암반에 앉아 탁족濯足으로 소요하는 풍류는 산행의 또 다른 즐거움이요 산행자의 낭만이다. 이제 계곡 물소리가 제법 커지는 것을 보니 월영대가 가까워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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