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산 가을 유산기…"도봉산의 문사동을 아십니까!"
북한산국립공원 도봉산지구 가을 비경

[헤럴드매일] 조경렬 기자

도봉산 우이암 부근의 단풍풍경(사진=헤럴드매일 사진팀)

한양 도성 밖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으면서도 심산유곡을 자랑하는 도봉산. 옛 선비들은 이 깊은 산속 자연에서 심신을 수련하고 학문을 정진하고 후진을 양성했다. 도봉서원이 있는 도봉산 문사동계곡이 바로 그곳이다. 도봉산은 북한산국립공원의 도봉산지구에 속하면서 북한산과 함께 전국에서 가장 인기 높은 탐방코스를 자랑한다.
    
서울 북쪽에 위치한 도봉산은 북한산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많은 탐방객이 찾는 산으로 기네스북에 올라 있다. 지난 주말 도봉산을 다녀오는 길 탐방안내소에 의하면 놀랍게도 도봉산이 단일 산으로서는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많은 연간 500만~600만 명의 탐방객이 찾는다고 한다.

도봉산 문사동 계곡의 '고산앙지' 서각

이런 도봉산의 주 계곡은 도봉산지구 탐방안내소에서 도봉서원 터를 따라 오르는 문사동 계곡이다. 이 문사동 계곡에는 조선시대 선비들의 심신수련과 학문 탐구의 발자취가 숨 쉬는 흔적들이 아직도 남아 있다.

선비들의 수련계곡 도봉산 문사동

도봉산의 이 도봉계곡을 따라 오르면 선조들의 학문 탐구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무더운 여름에 아무리 더워도 옷을 벗는 일이 없이 선비의 품격을 지켰다.

더위를 참지 못하면 맑게 흐르는 계곡에서 탁족(濁足: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그다)을 즐기며 시문을 짓는 것으로 만족했다. 탁족이 최고의 피서요, 운치 있는 선비의 풍류놀이였다.

그런 흔적이 도봉계곡에 아직도 남아 있다. 문사동(問師洞)이라는 마애각자가 바로 그것이다. 계곡을 압도하는 운치 있는 마애각자 문사동은 '스승을 찾는 계곡'으로 풀이된다. 바로 도봉서원 터가 있는 도봉계곡을 따라 오르다 너럭바위가 수직으로 급경사를 이루는 끄트머리에 문사동이 서각 되어 있다.

군자(君子)의 도(道) 실현을 가장 중시했던 조선시대 선비들은 군자의 도를 가르치는 스승이 있다면, 그 스승이 아무리 깊은 계곡에 숨어 있어도 찾아가서 가르침을 받았다. 이 서각 역시 도봉서원이 가까워 서원과 관련된 조선시대의 선비가 새겨 놓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선비는 굽이굽이 흐르는 도봉계곡을 따라 오르며 선비의 길을 생각했을 것이다. 이 각자를 보면서 이 시대의 선비정신이 무엇이며, 지식인의 양심이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고산앙지(高山仰止)…높은 산처럼 우러르다

우이암 능선에서 오봉으로 오르는 길 이정표

이 보다 앞서 도봉서원 터 앞에는 도봉계곡의 흐르는 바위에 또 다른 전각자 고산앙지(高山仰止)가 새겨져 있다. 이 서체는 1700년(숙종26) 7월에 곡운 김수증(金壽增, 1624~1701)이 쓴 글씨로 알려져 있다.

고산앙지란 「시경(詩經)」 소아(小雅) 거할편(車舝篇)에 나오는 '고산앙지경행행지(高山仰止景行行止)'[높은 산은 우러러 보지 않을 수 없고, 큰 행실은 그칠 수 없다]라는 글귀를 인용한 것이다.

여기에서는 "높은 산처럼 우러러 사모하다"라는 의미이다. 이는 김수증이 정암 조광조 선생과 송시열 선생의 학식과 덕망을 우러러 사모한다는 의미에서 새긴 것으로 추정된다.

그 근거로 도봉서원은 조선 전후기의 가장 대표적인 성리학자인 조광조와 송시열을 배향(配享: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냄)한 사액서원(賜額書院)으로 백사 이항복 등 저명한 시인 묵객들이 시문을 남긴 오늘날 서울 지역 내 가장 대표적인 서원이기 때문이다.

정암(1482~1519) 선생은 조선 중기 당대 최고의 사상가이자 성리 학자였다. 중종 때 도학정치를 주창하며 급진적인 개혁정책을 시행했으나, 훈구 세력의 반발을 사서 결국 죽음을 당했다. 그는 20세 때 김종직의 학통을 이은 김굉필의 문하에서 가장 촉망받는 청년학자로서 사림파의 영수가 되었다.

그는 한 때 성균관에서 수학했다. 정치관은 유교를 정치와 교화의 근본으로 삼아 왕도정치를 실현하려 했다. 이 왕도정치의 구체적 실현방법으로 왕이나 관직에 있는 자들이 몸소 도학을 실천궁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것은 지치주의 도학정치이다. 정암은 이 왕도정치를 내세워 중종 개혁정치의 선봉에 섰다. 과감한 정치개혁과 도학국가 건설을 주도했다.

그러나 이는 훈구파의 반발을 샀고, 모략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후대 역사가들은 이 왕도정치가 성공했더라면 조선의 역사가 바뀌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아는 만큼 느낀다'는 말이 있듯이 알고 계곡을 산책하면 더 많은 것을 느끼고 선조들의 지혜를 배우게 된다.

도봉산 가을 단풍의 고운 자태

오봉으로 오르는 길 단풍터널

북한산국립공원 도봉산지구 문사동 트레킹

고산앙지에 대하여 사색하면서 오르는 문사동 계곡이 새롭다. 오늘의 트레킹 코스는 탐방지원센터-도봉서원-도봉계곡-구봉사-문사동-도봉산주능선-오봉-오봉능선-자운봉-포대능선-다락능선-은석암-녹야원-탐방지원센터(원점)으로 다소 먼 거리이다.

많은 옛 선비들이 이 문사동 계곡 길을 걸으면서 학문에 대한 사색과 나라를 걱정했을 거라는 생각에 머리끝이 쭈뼛쭈뼛 바로섰다. 가을 단풍을 구경 나온 사람들로 산은 이미 인파로 가득했다. 단풍구경인지 사람구경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지경이니까.

산행에 동행한 친구는 이제 산행을 배우기 시작한 초보 산행자이다. 오래 전부터 단풍 산행을 제안해 와서 도봉산으로 코스를 정했다. 본격적으로 산행을 하려면 이것저것 준비할 장비가 많다. 그래서 같이 산행을 하면서 산행에 대한 상식과 장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트레킹을 함께 했다.

문사동 계류를 타고 오르다 도봉산 주능선으로 치고 올라서면 우이암 능선 갈림길에 도달한다. 여기에서 오른쪽 도봉산 주능선 쪽으로 향하면 오봉고개가 나오고, 오봉능선 허리춤을 돌아서 숲속을 돌아가면 오봉샘이 있다.

다섯 형제의 전설이 서린 오봉의 모습

오봉에 가을 단풍이 참 아름답게 물들고 있다. 자연은 이렇게 기온의 변화 따라 사계에 맞춰 새 단장을 한다. 시집가는 새색시가 연지 찍고 분단장을 하듯이 말이다. 오봉샘 근처 전망이 근사한 너럭바위에서 점심 도시락을 펼치고 앉는다. 박주산채일망정 입맛이 어찌 없을까?

오봉과 여성봉의 애틋한 전설

단풍이 물들어가는 너럭바위에서 친구와 먹는 산상의 점심은 환성 그 자체였다. 오봉샘 약수를 마시고 오봉으로 오른다. 도봉산의 오봉은 바위 봉우리 다섯 개가 연달아 한 줄로 늘어서 있다 하여 붙여졌다. 그런데 여기에 연유한 전설이 전해진다. 다섯 형제와 고을원님 외동딸에 얽힌 애틋한 설화이다.

옛날 도봉산 아래 부잣집에 힘이 장사인 다섯 형제가 살았다. 그런데 새로 부임한 원님에게 아리따운 외동딸이 있었는데 이 처자의 미모에 다섯 형제 모두가 반하고 말았다. 난처한 원님이 이에 제안을 했다. 산꼭대기에 가장 무거운? 바위를 올려놓는 사람에게 딸을 시집보내겠고…….

오형제는 각자 커다란 바위 하나씩을 메고 산꼭대기기에 올려놓았는데, 그만 힘이 부족한 넷째만 바위를 제대로 올려놓지 못해 오봉 중에 4봉은 감투가 없단다. 원님은 이에 네 명 가운데 한 명을 골라야 했는데 너무 뜸을 드리다 그만 딸의 혼기를 놓쳐버려 딸이 혼사도 치르지 못한 채 죽고 말았다.

오봉능선에서 자운봉으로 오르는 암봉의 모습

이를 불쌍히 여긴 하늘의 옥황상제가 오봉이 마주보이는 곳에 '여성봉'으로 환생시켜 주었는데 짓궂게도 양다리를 쩍 벌리고 있는 형상으로 만들어 놓았고, 다섯 형제도 오봉으로 환생해 이 여성봉을 애타게 바라보고 있다는 전설이다. 이곳 오봉에서는 길이 여성봉으로 가는 길과 오봉능선-자운봉에 이르는 길로 나뉜다. 여성봉을 가까이서 보려면 하산길이 양주시 송추분소이다. 오봉을 옆에서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 같은 코스이다.

필자는 가을 단풍이 만산홍엽으로 온 산을 뒤덮고 있는 도봉산 자운봉으로 향했다. 가을바람이 시원하게 땀을 식혀주고 눈은 울긋불긋 단풍에 호사를 누린다. 이 자운봉만 보면 필자가 산행을 배우기 시작하던 20여 년 전 초보 산행자 때 살 떨리게 겁먹었던 일이 생생하다.

그때 트레킹 산악회를 따라 자운봉 코스로 갔는데, 지금은 자운봉 정상에 오르는 릿지 코스를 금지 시키고 있지만 당시에는 오른쪽으로 돌아서 오르는 루트를 개방했었다. 그런데 중간 쯤 올라섰을 때 내려진 자일을 타고 정상에 손쉽게 올라갔다.

자운봉 정상은 10여명이 앉을 수 있도록 평평한 공간이 있다. 일행들과 그곳에서 사방을 조망하며 구경하는 사이에 자일을 내렸던 릿지팀이 철수해 버린 것이다. 약 7~8명이 장상에 고립되고 말았다. 그때는 정말이지 정신이 아찔했다. 지금이야 휴대폰으로 산악구조대를 바로 부르면 되겠지만 그 때는 그런 환경이 아니었다.

도봉산의 단풍은 절정을 지나고 이제 하나 둘 낙엽이 되어 가고 있다.

릿지를 해본 경험도 없는데 난감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 중에서 릿지 경험이 있는 한 사람이 앞서 내려가면서 다음 사람의 발의 위치를 지정해주면서 차례로 무사히 모두 내려갈 수 있었다. 정상에서 보면 북동쪽으로 오르내리는 루트가 있는데 거의 직벽의 경사로 만약 발을 잘못 디뎌 미끄러진다면 그대로 100m 이상의 낭떠러지로 추풍낙엽이다.

필자는 그때 그 트리우마로 지금까지도 릿지(ridge)에 도전은 안하고 있다. 비록 누가 겁쟁이라고 말할지라도……. 차라리 자일을 타는 암벽은 도전할 수 있어도 손과 다리로만 바위를 타는 릿지는 매우 위험해 안하고 있다.

도봉산은 서울에 근접해 있는 산이라서 누구나 찾을 수 있는 산이지만 바위가 많아 곳곳에 위험한 코스가 많다. 북한산국립공원 도봉산은 한국의 명산이고, 동양의 명산이다. 특히 북한산 인수봉과 도봉산 선인봉은 동양 최대 석화성의 단일 암괴로 매우 이색적인 명산에 속해 외국 암벽 등반가들의 찬사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