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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토지제도 '양안'에 어떤 내용이 있나?
조경렬 기자  |  herald@heraldjourna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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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2.09  23: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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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토지제도 '양안'에 어떤 내용이 있나? 
조선시대 토지와 고문서 자료정보 서비스

조경렬 기자

   
양안으로 경상도 북안현 병자개량전안(내서면)의 표지이다(사진=규장각 조선시대 토지자료 서비스DB)

우리나라의 토지제도는 대체적으로 기록이 상세히 남아 있는 것은 고려시대부터일 것이다. 고려시대부터 내려오는 토지제도 '양안(量案)'에서 비교적 상세히 살펴 볼 수 있다. 이런 우리나라 토지제도의 사료들을 모아 DB를 구축했다.

조선시대 토지자료 서비스(http://kyujanggak.snu.ac.kr)가 그것이다. 조선시대의 토지자료에 대한 정보를 양안에 바탕을 두고 지역별로 구분하여 제도 자료를 정리하여 미래부와 한국정보화진흥원의 지원 사업으로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데이터베이스화 했다.

양안은 고려와 조선시대에 경작지의 소유자와 크기를 측량하여 기록한 농민층의 토지 대장으로, 조세를 부과하고 그에 따라 국가 재정을 안정적으로 운용할 목적으로 작성되었다. 조정에서 양안을 작성하려고 토지를 측량하는 작업을 양전(量田)이라 한다.

이 양전을 실시할 때에는 논밭뿐만 아니라 산림이나 임야도 그 대상이었다. 왜냐하면 과세를 해야 조정의 재정(財政)이 확보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종이의 재료이던 닥나무밭(저전), 대나무밭(죽전), 솔밭(송전), 과일밭(저전) 등으로 구체적으로 조사하여 기록하였다.

이 양안에는 면적과 경작자가 기록되어 있어 농민 개개인의 경작 면적이라든가 소득관계를 추정하는데 아주 중요한 사료가 된다. 가장 특징적인 것은 지역별로 구분하면서도 군·현·면 단위로 내려가면서 작성되었다는 점이다.

<경국대전>에 따르면 양전은 20년마다 새롭게 작성되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그대로 지켜지지는 않았고, 부분적인 개량조사가 이뤄졌다. 그리고 보관도 호조와 도와 군.현에서 하도록 되어 있었지만 유실이 많아 현재 전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한편 조선의 고문서는 매우 방대하고 널리 분포되어 있어 모두 한 곳에 모아 보관하고 DB로 구축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하지만 규장각에서 고문서 자료를 수집하고 취합하여 데이터베이스화 했다.

이 조선시대 토지자료·고문서 DB에서는 큰 섹션에서 자료 소개와 양안, 고문서로 구분되어 있다. 그리고 하위 메뉴에서는 먼저 자료 소개에서 양안소개와 고문서 소개로 나눠진다. 두 번째 양안에서는 각 도별, 책별로 구분하여 자료를 분류하고 있다. 경기도를 클릭하니 안산군을 시작으로 여주군까지 12개 군이 나열되어 있다.

책별 분류는 양안의 지역양안을 원문 이미지와 함께 PDF파일로 내용까지도 열람할 수 있도록 서비스 되고 있다. 이용자가 찾고자 하는 도(道)에서 군의 면과 현을 찾아서 열람하면 된다. 여기에는 서지정보와 해제 그리고 이미지 까지 열람이 가능하다.

그리고 고문서DB는 지역별, 제출자별, 서명별로 구분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지역은 제한적인 자료로 인하여 경기도와 충청도 그리고 지역을 알 수 없는 고문서로 나눠서 데이터베이스를 적용했다. 지역정보가 없는 목록에서 수표 문서자료를 클릭하니 수기로 만든 수표 이미지가 나타났다. 처음 발행한 수표를 돌려서 이서한 부분까지 나타나 수표가 유통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고문서DB에서 제출자 분류에서 도장차첩문기(導掌差帖文記)를 열어보니 그 내용이 이미지와 함께 상세히 검색된다. 그 내용은 조선시대 토지를 관리할 때 국가의 토지를 관리하는 사람을 파견하기도 했는데, 여기에 도조(賭租)를 관리할 관리를 파견하는 명령서이다. 한마디로 지방 세금관리의 사령장인 셈이다.   

조선시대 토지제도 정보의 활용

어느 사회를 살펴보든지 세금을 거두어들이는 일만큼 온 국민의 관심사도 없다. 지금처럼 복잡하지는 않지만 조선시대 역시 세금 문제는 조정의 고민거리 중에 하나였다. 조선시대 세금은 땅에 부과하는 전세(田稅)와 집집마다 부과하는 공납(貢納) 그리고 호적에 등재된 정남(丁男)에게 부과하는 군역(軍役)과 요역 등이 있었다.

이들 세금 중 국가 재정에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땅에 부과하는 것이 전세였다. 즉 토지세이다. 조선시대 전세를 부과하기 위해서는 원칙적으로 20년 마다 한 번씩 전국적으로 토지조사사업이 '양전(量田)'이었다. 그러나 전국적인 토지조사는 막대한 비용 때문에 조선시대 500년 동안 4차례 정도 시행되었을 뿐이다.

그래서 필요에 따라 부분적인 지역별로 이루어졌다. 이런 조사를 바탕으로 '양안(量案)'이라는 토지대장을 작성하여 세금의 부과 기준으로 활용하였다. 이렇듯 현대의 공시지가를 조사하고 그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은 같지만, 조선시대에는 수확량에 따른 토지면적(결수)을 함께 표시하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조선시대에는 토지면적을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하지 않고 수확량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므로 어느 규모의 토지에 얼마만큼의 쌀이 생산되는가가 중요했다는 사실을 이 양안에서 찾을 수 있다.

이렇듯 조선시대 토지제도를 알려면 양안을 검토해야 한다. 이런 고문서를 통해 우리는 현대의 세금부과 원칙과 기준을 참고로 삼을 수 있는 자료이다. 이처럼 이런 역사자료를 연구하여 현대의 법제도에 활용할 가치가 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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