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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연해주 농업경제특구의 정치·경제적 효과
이병화 박사  |  leeb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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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2.11  13:3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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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기고]

"러시아 연해주 농업경제특구의 정치·경제적 효과"


이병화 (재)국제농업개발원 연구소장

   
이병화 (재)국제농업개발원 연구소장(사진=헤럴드저널)

*본 기고는 이병화 박사의 통일정책 세미나 주제발표 내용이 극동러시아 개발의 소중한 기초 자료로 게재합니다.(편집자주)


1. 고려인 자치구역의 농업경제특구 발전을 기대했던 러시아 법률적 근거

극동지역에서 대립하던 일본에 대한 견제라는 표면적 사유로 극동지역의 우수한 농업 인력이던 고려인들(17만 3천여 명)이 스탈린에 의해 1937년부터 강제이주 당하였다. 거주지에 대해서 철저히 제한받던 이들에게 거주이전의 제한이 해제된 것은 스탈린 사후 1954년부터였다. 이후 고려인들은 우크라이나, 벨로루시 등 서부지역부터 극동지역까지 전 지역에 고르게 분포하며 강한 생존력과 적응력을 보여 왔다.

1991년 체제변환기를 전후한 러시아는 극동지역의 지속적인 경제력 약화 및 인구감소를 해소할 필요가 있었으며, 이에 대한 해결 방안 중 하나가 충실히 러시아화된 고려인들과 이들의 모국인 한국의 자본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했던 것으로 보인다.

-발표자는 고르바초프의 소개로 한·소 수교 3개월 전인 1990년 8월 연해주 국립농업 아카데미 총장인 A.A 데민 박사를 만났다. 그는 '머지않은 시기에 연해주 내에 고려인자치구(郡=okrug)가 성립될 것이다. 당신과 남·북한은 지금부터 이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1991년 4월 26일, 러시아 연방정부는 '억압된 민족의 복권에 관한 법'을 제정, 소련 시절 있었던 소수민족들에 대한 강제이주, 언어 및 교육 제한 등의 정책이 적법하지 못했음을 시인하며, 이로 인해 피해를 입은 이들에 대한 보상과 복권에 대한 내용을 알았음.

-1993년 러시아 정부는 러시아연방 최고회의에서 '고려인 복권에 관한 포고령' 제1472-1호(1993.4.1.) 반포함. 고려인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킨 스탈린 정책의 잘못을 인정하고 강제이주로 피해를 당한 고려인 혹은 그 자체가 원주거지로 귀향할 경우 러시아의 해당 지방정부는 그들의 정착을 위한 주거지 및 농지, 융자 등에 실질적 지원방안을 수립할 것을 지시.

-이에 따라 연해주 지방정부의 소수민족 국장(자이카 지나이다)은 농지가 많은 연해주내의 일정지역에 1,500명 이상의 마을을 30~35개 만들면 고려인자치구역이 성립된다는 성명서를 한국에서 발표함.(러시아 국적을 취득한 고려인의 숫자 부족으로 지금도 충족시키기는 불가능함.

-독일게 민족자치회는 현재 알타이州 및 옴스크州에 각각 1곳이 공식 등록되어 있음. 알타이州 소재 독일 민족郡(라이온)은 1927년 등록 이후 1938년 폐쇄.

이후 1991년 7월 권한 회복됨. 옴스크 주 소재 아좁스키 독일 민족郡(라이온)은 1992년 2월에 건립. 행정구역으로 등록된 독일계 자치구는 모두 소련 말기(1989년)부터 러시아 초기에 있었던 민족 억압정책에 대한 반성과 피해국민의 보상 및 복권의 바람을 타고 매우 신속히 만들어졌음.

-러시아연방 의회는 1996년 6월 '민족 문화 자치회에 관한 법령'을 승인함. 이에 따라 1997년 등록한 연해주 고려인 민족문화자치회 등 다양한 지역과 민족들이 '민족문화자치회'로 등록함.

이로써 고려인들은 연해주 내에서 모든 문화행사와 고유의상, 학교, 언론 등을 자유롭게 활동 및 건설하는 권리를 확보함. 그러나 민족문화자치회는 단체의 형태로만 인정되며, 자치행정구역의 권리는 없음이 제1장 총강, 제4조에 명시 되어 있음.

-2003년 11월 10일, 푸틴 대통령은 '민족문화 자치회에 관한 법령개정안'에 서명함. 2003년 개정안에서 "민족문화 자치회는 러 연방 법령에 준거하나, 자치회와 관련하여 국제협약 등이 있을 경우 해당 국제협약이 러 연방법에 우선한다."라는 문구로 한·러간 협약에 의한 예외성을 기대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바 있었음.

*상기의 사항 등을 고려하여 직접적 행정자치구 보다 경제특구로 접근하는 것이 양국 간의 이해를 바탕으로 적합한 현실적 협상안이다. 연해주를 대상으로 농업경제특구를 고려함에 있어 러시아의 관련 규정에 근거하여 다음과 같은 곳은 대상지역에서 제외된다.

① 국가 기간도로(국도 및 고속도로가 있는 곳)가 있는 곳
② 국가 기간철도(기차 및 전차)가 있는 곳
③ 외국의 침략을 방해하는 군사시설과 대규모 군대가 주둔하고 있는 곳
④ 이미 개발된 지하자원이 있는 곳으로 국가가 관장하는 곳
⑤ 국가 기밀 시설이 있는 곳(예, 대륙탄두미사일 기지와 핵무기 저장시설 등)

상기 내용에 해당하는 곳을 협상지역에서 제외하면 연해주에서 적합한 곳은 호롤郡외 일부 산악지역 뿐임.

2. 한·소 수교당시 빌려준 차관 14억7천만 달러를 연해주 농업경제특구(고려인자치구역) 건설과 상쇄하려 했던 러시아의 전략

*역대 대통령(고르바초프, 옐친, 푸틴)에게 KGB와 연방보안군(KGB의 후신)은 "지금의 고려인들은 친한파, 친북파, 사할린파, 중앙아시아파 등 4개 조직으로 나눠져 물과 기름 같은 존재로 화합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 이들은 선대인 과거의 고려인들처럼 마을을 만들고 농사짓는 것을 싫어한다.

군대가 철수한 아파트와 농지를 영구무상으로 주어도 버려두고 블라디보스토크와 우수리스크 등 도심지로 떠나 장사를 한다. 그곳에는 학교가 있고, 병원이 있다."
 
"고려인자치구역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침체해 가는 연해주 지방정부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한국의 자본과 기술을 유치해 한국이 중심이 되었을 때만이 가능하다."라는 보고서를 끊임없이 올린 것으로 보고자는 전해 들었다.(국제농업개발원 러시아 하바로보스크 지사장 손 알렉산더 마카일로비치의 큰 아들 사사는 러시아 연방보안군 극동관구 사령부의 좌관급 고급장교로서 이것에 대한 많은 정보를 발표자에게 전달했음)

여기에서 러시아연방 정부에게 왜 고·러 연해주 농업개발경제특구가 매력적인가를 알아야 한다. 극동러시아는 남한의 64배 면적에 인구는 약 670만 명(2012년 현재)이다. 이중 연해주는 극동러시아의 생필품 공급기지이며, 수출입을 관장하는 블라디보스토크와 나훗카 항구가 있으며, 이들은 유럽과 연결된 철도 출발지이기도 하다.

연해주는 남한 면적의 1.64배이고, 인구는 200여만 명에 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극동러시아 지역 내에서 한반도와 비슷한 농작물 생육환경을 가지며, 그 농지면적 또한 남·북한의 농지보다 넓다. 또한 지하자원과 수산자원이 풍부하다.

또 전라북도보다 넓은 내수면 호수(항카湖)도 있다. 북한과 국경을 약 19km 마주하고 있고 철길도 있다.(광괘와 표준괘 병용) 이러한 요충지를 중국은 생필품과 인해전술로 호시탐탐 노리고 있고, 일본 또한 자국의 자동차 제품 등을 통해 이미 극동러시아의 경제에 간접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으며, 석유와 천연가스 등 지하자원의 필요로 인해 극동러시아의 끊임없는 구애를 보냄과 동시에 쿠릴열도 문제 등 군사·정치적 마찰을 빚고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극동러시아의 자국인구 감소는 러시아에게 시급한 해결 과제로 지적되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지속적인 인구이탈을 막기 위해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적극적 투자와 산업시설 기반강화에 노려하고 있다. 2012년 APEC 준비기간 동안 우리나라를 상대로 더 활발했던 러시아의 투자유치 노력 등을 통해 우리는 극동러시아에 있어 우리나라가 중국과 일본에 우선하는 극동지역의 전략적 협동 파트너임을 재차 확인할 수 이었다.

북한의 존재는 극동러시아 개발에 있어 또 하나의 주요 변수가 될 것이나, 지금까지의 극동러시아 정세에서 러시아가 미치는 영향력은 중·미·일에 비해 미비했던 것이 사실이다.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고 남한과는 경제개발의 파트너십을 이룬다면 러시아는 극동아시아에서 그 위상을 다시 세울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발표 처음에 언급했던 바와 같이 러시아는 이미 오래전부터 해당 방안을 연구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을 기조한 러시아연방 당국의 추진배경을 살펴보면

-1992년 10월 고르바초프 독립국가연방 대통령은 옐친 대통령의 양해를 받아 14억7천만 달러의 차관을 연해주 달레네골스키(제주도 면적 2.5배) 지역과 교환하자는 내용을 한국 측에 제의함. 조사요원으로 발표자가 현장 조사했는데, 논·밭은 전혀 없고 대부분 산악지역이며 일부만 목초지가 있어 거부키로 하고, 논과 밭이 많은 항카호수 주변을 달라는 반박 제의 함.(노태우 대통령께 직접 보고함)

-9월 17일, 권영해 안기부장은 연해주에 남·북한과 고려인이 협력하는 연해주특구 프로젝트 팀을 가동하고 현지 업무담당자인 주제발표자와 공동협력하기로 조인을 함. 내용은 차관과 상쇄할 수 있으며, 북한 노동자 5천명을 활용하고, 임금대신 생산 곡물을 북쪽에 발송하는 시스템이었다. 작전명은 「광개토대왕 프로젝트」 이었음. 그러나 이것은 안기부 책임요원이 북한 보위부에 피살되면서 중단됨.

-1996년 10월 하순, 제4차 국제청과유통인대회(서울에서 개최) 때 연해주 농업아카데미 총장과 경제학부장은 당시 농림부 장관(강운태)과 안기부 책임자의 배석 아래 차관과 연해주 일정 농지와 교환을 추진하고자 제의함.

-1999년 5월, 극동러시아의 경제·법률·과학자·철도담당자 등 학자 23명(푸틴의 은사인 극동농공위원회 부위원장인 B.A. 우바로프가 주도함)이 한국에 갚아야 할 차관과 연해주 농지지역(호롤郡)과 교환을 스테파신 총리에게 건의했고, 이에 대한 답변을 안기부 극동책임자와 발표자에게 보내옴. 주요내용은 양국의 정보당국에게 모든 추진업무를 일임하자는 것이었음.
 
1999년 10월, 극동러시아 농업예산심의위원회는 최근 극동지역 농업기술자 경제협의회가 추진되고 극동아카데미 경제학연구소와 모스크바 협동조합대학 극동지부가 검토하여 연방정부에 건의한 한국인(이병화)이 쓴 박사학위 논문 “한국의 자본력과 농업기술에 극동러시아의 자원과 북한의 노동력이 결합한 삼위일체 공생농업”이 연방국가 정책으로 채택했음을 공고.

-2003년 9월, 한·러 양국은 경협차관 상환협정에 서명함. 내용은 원금과 이자를 포함하여 불어난 원금 22억4천만 달러 중 6억6천만 달러(한화 7천7백억 원)를 삭감해주는 대가로 러시아는 북한으로부터 받을 돈(채권) 약 66억 달러를 탕감케 해줌.(러시아 측 주장) 나머지 15억8천만 달러는 지금까지 약 2억5천만 달러 정도의 방산물자를 대물로 받은 바 있고, 잔금은 약 9억 7천만 달러임.(2013년 현재)

-2004년 12월 21일, 주한러시아 부대사(발레니 수히닌)는 ‘고려인 자치구역’이라는 용어는 중국과 일본 등 역학관계로 예민한 문제이니, 한·러 연해주 농업개발 협력지구 또는 경제특구로 표현하자고 제의함. 당시 발표자가 입회했음.

그러나 이것은 며칠 후 북한의 항의로 남·북을 아우르는 용어인 '고·러 연해주 농업개발협력기구'로 결정되었음.(이날 한·러 친선송년회 행사 주최 측은 국제농업개발원(이사장 박의근 박사)이었으며, 주빈으로는 러시아 대사관 부대사 및 임직원이 참석하였고, 한국 측 파트너는 재외동포재단 이사장과 외무부 구주심의관, 경제단체로는 한·러 경제협회 임직원 등이 참석하였음.)

-2005년 3월 15일, '고·러 연해주 농업개발협력기구' 수립추진협의회 창립총회(한국일보 사옥) 때 주한러시아 대사관에서 축하 메시지 보냄.

-2005년 5월 19~23일, 한·중·러 3국 정상회담 기념 및 남·북한 연해주 농업경제개발 촉진을 위한 두만강 하구언 지역 단축 마라톤 대회 때 러시아 극동관구 전권대표부 대변인은 성공 축하 메시지 보냄.

-2006년 6월, 배재학당 12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주한러시아 대사인 글테브 아바센표프는 한·러 연해주 농업공동개발에 러시아 연방정부와 극동관구 전권대표부는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었으나 한국은 공식 파트너가 없었고, 외교통상부·통일부·기획재정부·국방부·농림부 등 너무 많은 조직이 관련하고 있고, 전문성 없는 정치인이 난무하는 것이 문제라면서 과거 안기부 시절 권영해 같은 인물이 필요하다고 발언함.

-동년 7월 4일, 극동러시아 농업위원회 부위원장인 빅토르 우바로프는 주한러시아 대사관에서 박의근(당시 국제농업개발원 이사장)에게 경제학 박사 학위를 전달하는 행사에서 정무참사 이고리 사키도프 등과 함께 "고·러 연해주 농업특구를 만들어서 극동러시아에 떠돌아다니는 무국적자 고려인 1만 5천명과 벌목장을 탈출한 북한 노동자들을 포용해야 한다."고 당부함. 이 내용은 청와대와 국정원에 통보했으나 답변을 받지 못했음.

-2010년 12월, 극동총독 이샤에프(Victor I. Ishaev)는 서울 강남 성모병원에 어린이 장님환자 치료차 인솔책임자로 온 자신의 아내(하바로브스크 의과대학 간호학 부장출신)를 통해 빠른 시일 안에 '남·북한과 러시아가 함께하는 극동러시아 농업개발 세미나'를 개최하자는 전갈을 보내옴.

-2011년 1월, 연해주 식량공사 측은 한국 측의 연해주 용역조사단이 매번 똑같은 질문을, 사람이 바뀔 때마다 되풀이한다고 지적함. 공사 측은 영농 환경 및 기술에 대한 조사보다 더 중요한, 확보 농지 등의 영구 보전 및 활용 방법으로서 과거 검토되었던 농업특구 건설에 대한 질문이 전무함에 답답함을 토로함.

3. 연해주 농업경제특구에 대한 북한의 반응

*한·소 및 한·러 국교 수교 전에는 북한 노동자들의 러시아 파견은 개인비자 없이 단체로 등록하고 입국하였으며, 분야별로 벌목공 1만 9천명, 캄차카 등지에서 고기잡이 일꾼 1천명, 야쿠티아와 추코츠카 등지의 광산에 2천여 명, 하바로브스크와 블라디보스토크 시내 철도 및 건설 일꾼 5백여 명 등이고, 농업일꾼은 벌채를 하지 않는 기간인(5.1~10.31) 사이인 녹음기에 농장에 내려와 일했다.

그러다가 한·러 수교이후 한국인들의 극동러시아 진출이 늘어나자 상대적으로 탈북자가 늘어나고 비자가 강화돼 일꾼들의 숫자가 급속히 줄어들었다.(1993년 3월, 현재 러시아 극동연방보안국에 의하면 북한 일꾼은 약 2만2천~2만3천 명 정도라고 함.) 
 
-1992년 11월, 김일성주체사상아카데미 부총장 김덕수 박사, 김종수 교수, 문상주 박사 등이 농업아케데미 교환교수로 우수리스크에 주재함. 이들은 연해주에 고려인 자치구역이 건설된다면 북한 측은 계절농부인 벌목공을 대대적으로 투입하고 노동의 대가로 곡물을 받을 수 있음을 시사함.

-1998~2013년, 연해주 생산 곡물(벼, 보리 등) 약 1만 톤이 화물열차로 28차례 나누어 북한 전역에 공급함.(이병화 박사 주도)

-2000년 7월 19일 오전, 푸틴 대통령 평양방문. 김정일에게 러시아 차관상환 독촉.(이것은 동년 6월 13~15일 사이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비밀 회담에서 러시아가 한국에 갚아야 할 차관과 북한이 러시아에 갚아야 할 차관에 대한 탕감 건에 대한 모종의 정보를 취득하고 취한 행위로 판단됨.)

-2001년 2월, 이바노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북한을 방문하여 남·북·러 협력 사업에 러시아 연방정부가 적극 협력한다는 문건 삽임을 요구하는 김정일의 의견 승낙.

-2001년 7월 26일~8월 18일, 푸틴 대통령의 초청으로 김정일은 시베리아 횡단열차로 모스크바 방문, 극동관구 전권대사 콘스탄틴 풀리콥스키 동행. 콘스탄틴 풀리콥스키에 의하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북한은 노동자와 제대군인 25만 명을 연차적으로 연해주에 보낼 수 있으며, 러시아의 토지와 남한의 자본을 활용하면 남북한 식량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고 함. 이듬해 5월 폴리콥스키는 김정일 초청으로 평양 방문.

-2002년 8월 20~24일, 북한 김정일이 극동러시아 지역 방문. 하바로브스크의 聖이노제트-이르츄크 성당에서 북한 노동자 대표단과 면담에서 향후 남·북한 및 러시아 농업공동개발협력기구를 결성할 것이므로 그때까지 고생하라고 격려함.

-2006년 9월, 북한 평양주재 신임대사인 발레니 수히닌은 연해주 협력 사업을 원만히 추진하도록 북한이 협력할 것이고, 제대군인들을 수요에 따라 무한정 보낼 수 있다는 김정일의 발언을 한국 측에 전달함.

-2008년 8월, 수히닌 후임으로 임시대사인 알렉산드로 마체오라가 취임했고, 그는 북한 당국자의 말을 빌려 “한국의 새로운 대통령인 MB가 연해주 개발에 아무런 행동을 보여주지 않아서 눈치만 보고 있다.”는 소식을 한국 측에 전달해 옴.

-2007년 한국계 농장인 아그로상생이 민경련 블라디보스토크 사무소 등을 통해 연해주에서 남·북 농업협력(남측 농장제공, 북측 노동력 제공)의 가능성을 타진 한 바 북측은 적극적 입장을 보임. 2010년 북한 당국자의 연해주 현지농장 방문 등 가시적 진행이 있었으나 남북관계의 급경색으로 중단됨.

-2012년 9월, 블라디보스토크의 APEC 정상회담장 건설 때 투입된 북한 일꾼 약 5천명에 대해 김정은은 입국하지 말고 러시아에서 일자리를 찾도록 긴급조치 명령을 시달함.

-2012년 11월, 러시아 외교부는 북한의 농업분야 취업노동자 입국 T/O를 확대 허가함.

결론적으로 북한은 한국의 차관 덕분으로 러시아의 부채를 상당부분 해결했다. 이제는 노후 연령의 제대군인들을 연해주 농업개발에 투입하여 대가로 식량을 조달하려 하고 있다. 에너지 자원을 바탕으로 강국으로 자리매김한 러시아에게 극동개발은 지금도 여전한 난제이다. 극동개발의 일환으로 검토하고 제의했던 농업경제특구건설이 여전히 유효한 방안임을 보고자는 지난 3년간 만났던 관련 러시아 인사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대내외적으로 강대국의 면모를 갖춰가는 러시아의 위상변화로, 이제 그 실효성을 상실한 고려인 자치구나 차관상환 등의 방법을 통한 접근이 아닌, 한·러 양국의 이해관계가 합치하는 에너지자원(천연가스, 석탄 등) 협력 확대, 양국 간 투자불균형(한국의 일방적 투자) 상쇄 등의 방안을 통한 접근을 검토해야 한다.

동북아 평화 번영의 기반을 구축하고 남·북·러 관계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연해주 농업경제특구 건설은 한반도 통일의 기반을 다지는 효과도 갖는다.

4. 고(남북)·러 연해주 농업경제특구에 대한 효과

-정치적 효과

① 러시아 연해주 농업경제특구 건설은 단군 이래로 제3국에 한만족의 경제영토를 확보한다는 큰 의미를 가진다. 이곳은 한민족이 잃어버린 고구려와 발해의 옛 영토이다. 이곳에 거주하는 분리된 한만족인 고려인, 조선족 그리고 남·북한과 극히 소수가 취업하여 생활하는 라이따이한(월남전 사생아)들을 한 곳에 집결시켜 새로운 개념의 경제영토를 확장하는 시발점이 될 것이다.
 
② 남·북한 통일을 위한 제3국에서의 예행연습장이기도 하다. 한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한국, 사회주의와 자유민주주의가 혼재된 체제에 국부시장경제 추구의 러시아,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중국, 공산사회주의에 계획경제의 북한 등, 그야말로 체제가 제각각인 혼합체 속에 살던 한민족이 한곳에 모여 러시아 모법(母法)을 중심으로 좌·우에 남·북한이 협력하는 지구촌 최초의 공동체가 될 것이고, 지구촌 모두에게 주목 받는 곳이 될 것이다. 이곳의 성공은 곧 남북통일의 초석이 될 것이 자명하다.

-경제적 효과

① 남·북 철도(TKR) 연결. 경제특구에서 출발한 화물열차는 북한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출발한 기관차와 화차는 기술적 문제 외의 정치적 문제로 남북관계의 직접적 영향을 받지 않고 국경을 넘을 별도의 국제협약 등을 근거로 우회할 수 있는 방법조차 없다. 북한과 러시아가 모두 가입되어 있는 OSJD(국제철도협의체)의 조약을 우리 측에서 좀 더 유연하게 해석하고 활용할 필요가 있다.

남북관계의 제3국인 러시아에서 남북협력을 통해 남·북·러 3자간 물자교류를 활성화시킴으로써 철도확대의 필요를 가시화 시킨다면, 러시아를 메신저로 남북한 철도연결을 가속화 할 수 있다. TKR(한반도종단열차)와 TSR(시베리아 횡단열차) 연결의 답답한 물꼬를 연해주 농업특구가 틀 수 있다. 러시아 열차에 의한 남북한 철도 연결은 섬나라와 같은 한국의 물류운송에 기적을 낳을 것이다.
 
② 북한은 식량문제를 단숨에 해결할 것이고, 한국도 식용콩과 사료작물 상당부분을 해결할 것이다. 북한은 노동력을 제공하고, 대가로 곡물을 원하고 있다.

③ 예정지역인 호롤郡은 서쪽에는 중국 흑룡강성으로 가는 국경철도(포그라니치늬 + 수분하)가 관장하는 중·러 경제특구가 있고, 동쪽엔 시베리아로 가는 기간철도와 국도가 있어 경제요충지에 필요한 장점을 모두 가지고 있다. 이곳에서 생산하는 모든 물자는 관세 없이 동구권 진입도 가능하다. 다시 말해 북한개성공단보다도 한 차원 높은 제3국에 건설하는 한민족의 식량영토인 경제특구로 보면 되겠다.


*필자 약력

3·4공화국 대통령특보실 농업생산담당관(전), 민주평통상임위원(전), 문교부 정책자문위원(전), 러시아연방 대통령실 극동지역 농업경제자문위원, 한·시베리아 학회 고문, 경제학·농경영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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