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무주 구천동계곡 심설 탐사 산행

조경렬 편집장

덕유산 심설 산행에 나선 산행객들이 향적봉을 향해 오르고 있다

기상관측 이래 12월(2007) 날씨가 가장 따뜻한 해로 기록되면서 겨울다운 추위 없이 한 해를 지나가나 했는데 올해 마지막 주말에 강추위가 한반도를 강타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영상의 포근한 날씨에 겨울비가 내렸건만 비가 그친 토요일부터 영하권으로 뚝 떨어진 기온이다. 토요 무박산행에 나서는 산행객들은 아마도 높은 산보다 영하 10~15도의 강추위를 먼저 넘어야 할 것 같다.
 
정말 오랜만에 심설 산행에 나선 길. 특히 덕유산은 무주리조트와 국립공원 인근에서 희희낙락喜喜樂樂을 즐겼을 뿐 향적봉 정상을 올라 본적이 없어 못내 아쉬움이 컸던 터라 마음이 설렜다. 서울에서 늦은 밤 출발한 전세버스가 새벽 4시께 덕유산국립공원 무주 구천동 입구에 도착했다. 이미 눈이 많이 내려 온통 세상을 설원으로 만들어 놓고 있었다.

갑자기 버스 안에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눈이 많이 내리고 있어 스패츠를 하지 않고서는 산행에 나설 수 없는 상황이라 산행 준비로 모두들 야단법석을 피운 것. 새벽 4시 30분께 입산하는 것으로 결정돼 구천동계곡을 오르기 시작했다. 칠흑 같은 밤에 강추위가 엄습하여 눈보라가 내리치고 있었다.

어둠 속에 고즈넉이 엎드려 있는 구천동계곡 긑 백련사의 눈 덮힌 풍경

아름다운 설경을 구경한다는 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고생을 치러야 그 댓가가 주어지는 것은 세상의 이치다. 구천동 계곡은 어둠 속에서도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콸콸 소리를 치며 계곡물은 쌓인 눈 속을 쉼 없이 흘러내렸다. 랜턴 앞에 하얀 솜이불처럼 펼쳐지고 있는 풍경이 마치 선계仙界에 들어선 느낌으로 온몸에 전율 같은 아득함이 느껴진다.
 
강추위에 칠흑 같은 어둠 속 계곡물 소리와 하얀 눈으로 덮인 숲속 길이 마치 다른 세상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주차장에서 약 5.5km를 터벅터벅 걸어 오르니 백련사白蓮社가 겨울 눈 속에 고요히 엎드려 있다. 이제 여기서 부터 향적봉 까지가 가파른 숲속길이다.

약 3km 이상을 더 올라야 한다. 이직도 눈보라가 매섭게 맹위를 떨치고 있다. 산행대장의 온도계는 영하 12도를 넘나들고 있었지만 체감온도는 영하 20도를 넘을 듯싶었다. 아침 7시가 가까워지자 먼동이 트고 설경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아무도 오르지 않은 신새벽 설경 속으로 필자가 오르고 있다.

설국으로 오르고 있는 덕유산 탐방객이 동화 속으로 가는 느낌이다

숨이 차고 허벅다리가 팽팽해지고 뻐근해 왔다. 배낭이 어느 때보다 무겁고 어깨가 아파왔다. 카메라를 꺼내 들고 사진을 찍는 것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다. 스키용 두꺼운 장갑으로 중무장했는데도 손이 시렸다. 장갑을 벗으면 살을 에는 듯 한 추위에 온몸이 저려왔다. 무엇보다 힘든 것은 지난 밤 버스에서 잠을 이루지 못한지라 추위가 엄습하니 산행 중에 잠이 쏟아져 정신이 혼미했다.

물을 마시고 초콜릿으로 잠을 쫓으며 향적봉 정상을 향해 오르고 있는 필자가 선택한 고행길이다. 그렇게 오른 향적봉. 향적봉에 이르니 눈꽃 터널에 온 세상이 눈으로 덮여 있다. 향적봉에서 중봉 구간에 있는 구상나무군락의 설화는 화선지 위의 한 폭의 동양화를 연출하고 있다. 마치 신선들이 산다는 선계가 바로 여기인가 하는 감탄에 말을 잇지 못했다.

탐방객은 우리 일행밖에 없었다. 새벽 4시가 지나서 폭설로 입산 통제령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내리고 있는 눈발이 그칠 줄 모르고 있었다. 이미 호남지방에 대설경보가 내려진 상황이다.

폭설이 덕유산 자락을 폭격하듯 덮고 있다

이 아름다운 설경을 다 보지 못하는 아쉬움이 컸다. 정상에도 탐사 금지령이 대피소 방송을 통해 전해진 것. 눈보라에 추운 날씨로 향적봉과 설천봉만 개방한 상황이라 중봉 코스를 탐방하지 못하고 향적봉 정상에서 눈 덮인 덕유산의 선경仙境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눈 덮힌 겨울 산행은 탐방객을 동화의 나라로 가는 느낌을 갖게 한다

고대古代 덕유산은 나제통문이었다

이 덕유산德裕山은 백두대간의 산줄기 계통에서 위로는 민주지산과 아래로는 백운산을 거쳐 지리산을 연결해 주는 중요한 위치에 있다. 남한에서는 한라, 지리, 설악에 이어서 네 번째로 높은 해발 1,614m의 향적봉을 주봉으로 삼고 있다.

일찍이 허목은 「덕유산기德裕山記」에서 '남쪽 지방의 명산은 절정을 이루는데 덕유산이 가장 기이하다(南方名山絶頂, 德裕最奇)'고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고대에도 지정학적인 위치의 중요성으로 말미암아 신라, 가야, 그리고 백제의 접경지가 되었다. 그 대표적인 역사경관이 덕유산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백제와 신라의 관문이라 할 수 있는 나제통문羅濟通門이다.

전해지는 덕유산 설화에 '임진왜란 당시 수많은 사람이 전화戰禍를 피해 이곳에 들어 왔는데, 신기하게도 왜병들이 이곳을 지날 때마다 짙은 안개가 드리워 산속에 숨었던 사람들을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다.'는 전설이 있다. 얼마나 덕유산이 높고 신령스러웠으면 민초들의 목숨을 구했겠는가.

끝없는 설국으로 걷고 또 걷는 탐방객은 영하 15도의 추위에도 즐겁다

이런 연유로 덕유산에는 예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은거하였고, 덕유산 지역은 전란이 미치지 않는 십승지지十勝之地 중의 한 곳이었다. 백두대간 줄기 덕유산은 전북 무주군과 장수군, 경남 거창군과 함양군에 걸쳐있다. 주봉인 향적봉(1,614m)을 중심으로 해발 1,300ｍ 안팎의 장중한 능선이 남서쪽을 향해 장장 30여㎞에 뻗어있다.

북덕유에서 무룡산(1,491)과 삿갓봉을 거쳐 남덕유(1,507m)에 이르는 주능선의 길이만도 20㎞를 넘는 웅장한 산이다. 덕유산에서 발원한 계류는 북쪽의 무주로 흘러 금강의 지류인 남대천으로 흘러든다. 설천까지의 장장 28㎞ 계곡이 바로 그 유명한 '무주구천동'이다. 구천동에는 많은 폭포와 소沼가 있다. 그 중에서 백련사 아래 구천폭포에 얽힌 설화 내용이 선문답이다.

하산 길에도 눈은 그치지 않고 산사를 동화의 나라로 만들고 있다

하산 길에 만난 구천동계곡의 아름다운 풍경이 정겹다

백련사에 거의 다다라서 나직이 떨어지는 구천폭포는 2단 폭포로 구천동에서 제일 작은 폭포다. 옛날 무주구천동에 기행을 온 선비가 백련사 스님에게 무주구천동이 어디에 있냐고 물으니 스님이 대답하기를 무주구천동은 눈에 보이지도 않으며 갈수도 없는 곳이라고 일러 주고서는 이 폭포를 가리키고선 말이 없었다.

그래서 이 구천폭포 물속에 구천동으로 들어가는 길이 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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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렬 기자의 100대 명산 유산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