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굴뚝의 미학적 탐구…"노을에 비친 연못과 달이 잠긴 호수"

[헤럴드저널] 조경렬 편집장

경복궁 아미산 굴똑의 벽사적 문양(사진=헤럴드저널)

경복궁에 가면 나지막한 언덕으로 아름다운 아미산이 있다. 앞으로는 왕비의 침전이던 교태전이 있고 그 옆으로 아미산 굴뚝들이 탑처럼 줄지어 서 있다. 이 아미산 굴뚝은 그 품새가 여느 굴뚝과 다른 아름다운 미적 가치를 추구하고 있다. 이렇게 교태전 뒤 아미산 굴뚝에는 전돌에 조각한 문향들이 미적 가치를 더한다.

교태전은 왕비의 중궁전으로 태조 3년(1394) 창건되었고, 아미산은 경회루를 조성할 때 연못을 판 흙을 쌓아 작은 언덕을 만들고 이를 아미산이라 했다. 박쥐 문향이 굴뚝에 부조돼 있는데, 박쥐는 편복鞭輻이라 하여 복福과 중국식 발음이 같기 때문에 복을 상징하는 길조의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이 아미산의 굴뚝은 왕비의 침전寢殿이었던 교태전交泰殿의 구들과 연결된 굴뚝이다. 교태전은 태조 3년에 창건돼 그 후 명종 8년(1553)에 소실되어 1555년에 재건했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으로 다시 소실되어 고종 4년(1867)에 다시 재건되었으나 그 후 고종 13년(1876) 또 다시 소실되었고, 고종 25년(1888)에 복구되었다.

원래의 교태전은 일제강점기인 1918년 창덕궁으로 옮겨 현재의 창덕궁 대조전大造殿이 되었고, 현재의 교태전은 근래에 복원한 것이지만, 굴뚝은 고종 당시 경복궁을 재건할 때 축조한 것이다.

아미산 굴뚝으로 들어가는 교태전 후문

아미산峨嵋山 굴뚝 조형미 뛰어나
 
아미산에는 2벌대의 장대석 석축을 네 층으로 쌓고, 그 위에 괴석怪石의 석분石盆과 석지石池 등 석조물이 배치돼 있는데, 수석 1기는 1단에, 석분과 석지는 1단ㆍ2단ㆍ3단에 놓았고, 굴뚝은 3단에 조성했다. 굴뚝 3기는 3단에 나란히 배치했고, 나머지 한 기는 동쪽 조금 뒤편에 있으며, 주위에는 화초를 심어 후원으로 조성했다.

그 중에서 가장 특징적인 요소는 4기의 육각형 평면을 한 굴뚝들이다. 굴뚝들은 화강석 지대석 위에 벽돌로 30단 또는 31단으로 쌓고, 육각의 각 면에는 당초무늬·학·박쥐·봉황·나티·소나무·매화·대나무·국화·불로초·바위·새·사슴·나비·해태·불가사리 등의 무늬를 조화롭게 배치했다. 각 무늬는 조형전造形塼을 구워 배열했고, 그 사이에는 회灰를 발라 화면을 마무리했다.

육각의 각 면은 네 가지 종류의 무늬로 구성 되었는데, 굴뚝 제일 아랫부분은 벽사-요사스러운 귀신을 물리치다-상으로 불가사리를 부조한 사각형의 벽돌을 끼웠고, 그 위의 직사각형 회벽에 십장생·사군자 또는 만자문卍字文을 조각했다. 그 위에 다시 봉황과 귀면(거북상) 등이 부조된 네모반듯한 벽돌을 끼웠고, 윗부분은 회벽에 당초문唐草文으로 구성했다.

이들 무늬 위로는 목조 건축물의 소로와 창방ㆍ첨차 형태로 만든 벽돌을 쌓고 기와지붕을 이었으며, 정상부에는 점토로 만든 연가煙家를 각 4기씩 두어 연기가 빠지도록 하였다. 기능은 연기를 배출하는 굴뚝이지만, 그 형태나 위치가 정원과 어우러져 뛰어난 조형미를 이루고 있다.

이 굴뚝은 십장생, 사군자와 장수, 부귀를 상징하는 무늬, 화마와 악귀를 막는 상서로운 짐승들이 표현되어 있다. 굴뚝의 위쪽 부분은 목조건물의 형태를 모방하였고 그 위로 연기가 빠지는 작은 창을 설치하였다. 굴뚝의 기능을 충실히 하면서 각종 문양 형태와 그 구성이 매우 아름다워 궁궐 후원 장식 조형물로서 훌륭한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

교태전 옆 작은 동산 아미산 굴뚝

아미산 굴뚝 앞에는 달이 못에 빠져 있다는 '함월지'라는 입석대를 세웠다.

교태전 아미산 굴뚝의 미학

교태전 아미산 굴뚝(보물 제811호)은 화강암 지대석 위에 벽돌을 쌓아 올렸으며, 6각의 각 면은 역시 벽돌처럼 구워 만든 네 종류의 무늬 판을 끼워서 장식한 점이 미적 영역을 넓히고 있다. 제일 아래 무늬 판은 벽사를 상징하는 갖가지 동물을, 그 위의 큼직한 직사각형 무늬 판에는 사군자와 십장생을, 그 위의 네모진 회색 벽돌에는 길상과 수복을 뜻하는 무늬를 장식해 조형미를 높였다.

이렇게 구성된 아미산은 소박하면서도 왕실의 품격이 엿보이고, 여기기 담긴 은유와 상징은 보는 이로 하여금 상상의 폭을 깊고 다채롭게 한다. 튼실하게 다듬은 화강암을 단순하게 쌓아올린 품새나 요란한 장식을 배제한 채 나머지는 자연에 맡긴 여유가 미적 구성을 더한다.

아미산은 4단의 석대를 층층이 쌓아올려 만든 계단식 화단인 화계와 그 위로 석함들과 오묘한 모양의 괴석들이 조화를 이룬다. 석함에 '낙하담落霞潭'과 '함월지涵月池'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낙하담'은 노을에 비친 연못을, '함월지'는 달이 잠긴 호수라는 의미로 자연을 이곳으로 끌어들여 인공 산山의 이미지를 덜게 하려는 의도가 아니었나 싶다.

아미산 기슭에 세워진 굴뚝은 교태전의 아궁이에 숯불을 지피면 가는 연기가 뒷마당 땅 밑에 만들어진 연도를 따라 자연스럽게 아미산 굴뚝 위로 피어오르게 했다. 이 같은 구조는 연기가 좀 더 멀리 효과적으로 빠져나가게 하여 궁중 생활의 불편을 줄였다. 이 아미산 계단식 정원은 산을, 돌함지는 호수를, 굴뚝의 무늬는 동식물들의 생태계를 상징하여 아미산 정원은 신선이 사는 자연의 세계가 되는 의미를 담았다.

경복궁 담장 가운데에는 이처럼 사자나 거북, 대나무 매화 국화 등의 동식물을 새겨 귀신이나 요괴를 쫓는 벽사 기능을 하게 했다.

경복궁 담장의 매화나무 문양

경복궁 자경전 십장생 굴뚝

자경전 십장생 굴뚝은 보물 제810호로 자경전 뒤꼍 담의 가운데에 위치해 있다. 이 굴뚝은 담보다 한 단 앞으로 나오게 하여 장대석 기단을 놓고, 그 위에 전돌을 쌓아 담에 덧붙여 설치했다. 벽면 상단에는 소로와 창방 서까래 모양을 전돌로 따로 만들어 쌓았고, 그 위에 기와를 얹어 건물 모양으로 만들었다.

지붕면 위에는 10개의 연가煙家를 얹어, 자경전 건물의 10개 아궁이에서 불을 때면 여기로 연기가 빠져나가도록 했다. 굴뚝의 아랫부분 좌우에는 불가사리로 서수를 만들어 배치했고, 그 위로 장방형 공간을 만들어 해·산·구름·바위·소나무·거북·사슴·학·바다·포도·연꽃·대나무·백로·불로초 등을 조각했다. 그리고 윗부분에는 가운데에 용(나티), 그 좌우에 학을 새겨 놓았다.

해·바위·거북 등 십장생은 장수長壽, 포도는 자손의 번성, 박쥐는 부귀富貴, 나티·불가사리 등은 악귀惡鬼를 막는 상서로운 짐승으로 상징되고 있다. 십장생을 이와 같이 장식하는 것은 고구려 고분벽화로부터 고려와 조선에 이르기까지 도자기·문방구류·베개모·자수·회사 등에 많이 나타나고 있으며, 조선시대에는 원단에 궁궐에서 십장생도十長生圖를 걸어놓는 풍습이 있었다.

이 십장생굴뚝은 교태전 뒤뜰 아미산峨嵋山 굴뚝과 같은 종류의 무늬를 갖고 있으나 아미산 굴뚝이 평면이 6각형인 독립 굴뚝임에 비해 이 굴뚝은 담장에 딸린 장방형 굴뚝인 점이 다르다. 이렇게 궁궐의 굴뚝은 궁궐 건축물과 잘 조화되면서 자연과 일체를 이루도록 조성하는 미적 배려가 충분했으며, 한편으로는 벽사와 장수, 부귀, 다산 등의 의미를 동식물과 자연을 통해 상징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왕실의 안녕과 왕조의 번창을 기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