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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고성오광대놀이…서민들의 애환 녹아 있어
조경렬 기자  |  herald@heraldjourna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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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2.31  13:4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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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특집]
 
고성오광대놀이…서민들의 애환 녹아 있어
국가지정 무형문화재 제7호 오광대놀이

조경렬 기자

   
경남 고성군의 '오광대놀이' 장면(사진=고성오광대놀이보존회) 

한국의 전통을 이어오는 오광대놀이는 서민생활의 애환과 아픔을 놀이공간에서 위트와 해학을 몸짓으로 풀어헤치는 민중의 놀이로 내려왔다. 오광대는 낙동강 서쪽지역의 탈춤을 가리키는 말로, 초계 밤마리 마을 장터에서 놀던 광대패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오광대'란 다섯 광대 또는 다섯 마당으로 이루어진 놀이라는 뜻에서 비롯됐다고 하기도 하고, 오행설에서 유래된 오[五]에서 온 것이라고도 한다. 전에는 정월 대보름을 중심으로 행해졌으나 현재는 봄, 가을에 오락적인 놀이로 공연되고 있다.

고성오광대는 1910년경에 남촌파(南村派) 서민들이 통영오광대를 보고 오광대놀이를 시작했고, 그 뒤에 창원오광대의 영향을 받으면서 오늘날과 같은 탈놀이로 성장한 것으로 생각된다. 놀이는 문둥이춤·오광대춤·중춤·비비춤·제밀주춤의 5마당으로 구성된다. 문둥이·말뚝이·원양반·청제양반·적제양반·백제양반·흑제양반·홍백양반·종가도령·비비·비비양반·중·각시·영감·할미·제밀주·마당쇠 등 총 19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탈춤을 추는 장면

고성오광대 놀이의 내용은 민중의 삶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으며 양반과 파계승에 대한 풍자, 그리고 처와 첩의 문제 등을 다루고 있다.

그 가운데 말뚝이의 양반에 대한 조롱이 매우 신랄하지만 파계승에 대한 풍자는 아직 이 지역에 불교신앙이 남아 있어서인지 약한 편이다.

고성오광대는 다른 지방의 오광대에 비해 놀이의 앞뒤에 오방신장춤, 사자춤 같은 귀신 쫓는 의식춤이 없고, 극채색(極彩色)을 많이 쓰며 오락성이 강한 놀이들로 구성되어 있다.

고성오광대의 탈은 예전에는 종이로 만든 탈이 특색이었으나, 근래에는 오동나무로 만든 나무탈을 사용하기도 하고 종이탈, 바가지탈을 쓰기도 한다.

주된 춤사위는 덧뵈기(탈놀이)춤인데 배역에 따라 인물의 성격이 춤으로 잘 표현되어 있고, 반주음악으로는 꽹과리·징·장구·북 등 타악기가 주로 사용된다. 고성오광대는 서민생활의 애환을 담고 있는 전통놀이마당으로 중요무형문화재 제7호로 지정되어 있다. 특히 5마당 중에서 두 번째 마당인 오광대놀이에서는 양반의 잘못과 허세를 풍자하는 부분이 절정을 이룬다.

이 마당에서는 말뚝이와 원양반이 번갈아 원 안에서 배김새를 하고 원양반 그리고 말뚝이가 개인무를 추며 말뚝이와 원양반이 재담을 나누며 놀다가 나중에 비비가 등장해 양반들을 몰아내는 과장이다.

이 마당의 내용은 봉건사회에 있어 양반들의 권세로 일반 평민들을 멸시하며 천대하고 괴롭히는 그 시대의 아픔을 말뚝이라는 비도덕적인 그들의 추악상을 낱낱이 꼬집어 내어 신랄하게 비판하고 조롱하는 대목은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주는 카타르시스적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양반들의 치부를 풍자하는 장면
   
오광대놀이는 낙동강 서남지역을 중심으로 공연되던 탈춤이다
   
탈춤을 중심으로 공연돼 양반들의 사치와 부패를 풍자한 장면이 많다. 사진은 상여 나가는 장면

현재 무형문화재 고성오광대 보유자는 이윤순(90) 옹과 이윤석 씨로 이 옹은 오광대 역사의 산 증인 이시며 71년 고성오광대에서 장구부분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그는 7~8세 때부터 동네 굿판이나 매구판 이 벌어지는 날이면 어김없이 맨 먼저 달려가 어깨춤으로 장단을 맞추고 늦도록 풍물패를 쫓아다녔다. 이 옹은 장구를 비롯하여 많은 예능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시조 학교인 명인부를 나온 선생의 시조는 진주 개천예술제 등 각종 예술제에서 시조부문 대상을 휩쓸기도 했다. 지금도 공연 시에 흥에 도취된 그 모습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기인의 예능을 선보인다. 그는 늙었으니 모든 부분을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시고 명예보유자로 있다. 고성오광대 대표인 이윤석 씨는 경남 고성군 마암면 명송마을에서 벼농사와 토마토를 재배하는 소박한 농부다.

춤추는 시간외 '농부'로서 농사일은 열 손가락 모자랄 정도로 일복을 타고났다.  그는 75년 군 제대 후 오광대에 입문해 고 조용배 씨에게 승무와 문둥북춤을, 고 허종복 씨로부터 말뚝이춤, 허판세 씨에게 원양반, 이금수 씨에게 꽹과리를 전수 받는 등, 고성오광대 5마당을 전수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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