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야 모두가 정당공천제를 공히 폐지한다고 약속을 했지만 6.4 지방선거에서 이를 지키지 않았다.

30년간 정치개혁 단골메뉴 '정당공천제'
"여야 당리당략 따라 변질되는 전리품"

조대형 기자

1990년 10월 8일 당시 김대중 평화민주당 총재는 단식 농성에 돌입했다. 농성의 명분은 지방자치제도 전면 도입과 정당공천제 실시. 지방선거가 30여년 만에 부활돼 기초·광역 의원 선거 도입이 구체화되면서 당시 야당이었던 평민당은 "지방자치제의 정착을 위해서는 정당 참여가 필요하다"며 정당공천제 도입을 주장했다.

여당이었던 민주자유당은 정당공천제 도입에 반대했다. 풀뿌리 민주주의에 정당이 개입해선 안 된다는 것이 주된 논리였다. 야당으로서는 후보들의 성향을 알리기 위해 정당공천제 도입에 사활을 걸어야 했고, 여당은 피아(彼我)를 모호하게 하는 것이 유리한 상황이었다. 팽팽한 대결이 이어지자 김대중 총재는 단식을 결행, '광역 의원 정당공천'을 성취한다.

5년 뒤 김영삼 대통령 시절이던 1995년에 정당공천제 논란은 되풀이된다. 기초 의원·단체장과 광역 의원·단체장 선거를 동시에 실시하기 위한 공직선거법 개정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김영삼 대통령은 정당공천제 폐지를 강력 주문했다. 하지만 김대중 당시 아태재단 이사장은 정당공천 배제는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결국 기초 의원 선거만 정당공천을 배제하는 쪽으로 정리됐다.

하지만 기초 의원 선거의 정당공천 배제 논란은 계속됐고, 2003년에는 헌법재판소가 기초 의원 선거 정당공천 배제는 정당정치를 원칙으로 하고 있는 헌법에 위배된다며 '위헌' 판결을 내렸다.

▲ 새정치민주연합의 전신인 민주당은 애시당초 정당공천제를 폐지한다고 했지만 끝내 이를 지키지 않았다.

결국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2006년부터 기초 의원 선거에도 정당공천제가 도입됐다. 하지만 이후에도 정당공천제로 인해 중앙당과 현역 의원들이 공천권을 휘두른다는 기초 의원·단체장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반면 정당공천을 폐지하면 토호 세력이 지자체를 장악할 것이라는 반론이 나오는 등 정당공천제를 둘러싼 잡음은 끊이지 않고 있다.

1990년 이래 이 이슈는 정치개혁 메뉴의 주요 항목이었다. 후보자들의 정당공천 실시 여부는 정치개혁 의지를 가늠하는 잣대로 여겨지기도 했지만, 여야는 상황에 따라 주장을 180도 바꾸면서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대의보다는 당리당략에 따라 움직인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여야가 모두 6·4 지방선거의 '공천 룰'을 결정할 정치개혁특위의 가장 큰 쟁점 역시 정당공천제 폐지 여부였다. 지난해 대선에서 여야 대통령 후보들은 앞 다퉈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를 대선공약으로 내걸었다. 당론으로 정당공천제를 폐지한 민주당은 상대적으로 느긋하다.

지방선거를 겨냥해 후보를 물색 중인 '안철수 신당'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정당공천제 폐지가 유력했다. 결국 민주당은 정당공천제 배제를 전제로 안철수 신당과 합당을 발표하면서 급반전 되어 새누리당만 궁색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 정당공천제 폐지를 반대하는 국회 기자회견

새누리당은 정당공천제에 대한 입장을 ‘고수’한다는 당론을 정하고 공식화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대선공약이었던 정당공천제 폐지가 내년 지방선거에서는 불리할 뿐 아니라 정치 개혁에도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인식이 보편적이다.

다만 정당공천제 유지로 지난 대선 공약을 지키지 않고 기득권 지키기에 급급했다는 비난을 받으면서 6·4지방선거를 치러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되었다.

공천 폐지, 유권자 편에서 판단해야

실제 우리 정치 현실에서는 기초 자치단체 선거에서만이라도 정당공천을 배제하는 것이 풀뿌리 민주주의의 기본 취지를 살리는 길이라고 입을 모으는 이유는 정당공천제의 순기능도 분명히 있지만 일선 지자체의 행정과 의정이 정파에 따라 양분되고 중앙정치에 휘둘리는 등 폐해가 더 심각하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정당공천제의 역기능으로 정치성이 낮은 지방행정이 정당개입으로 인해 합리성을 상실, 비능률을 초래하고 당선 이후 중앙당이나 지역 국회의원에게 예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지적한다. 또 정당공천으로 인해 지방의회와 자치단체장 간의 견제와 균형이라는 제도적 기능이 잘 작동되지 않고 후보자에 대한 시민의 선택권을 제한한다는 점도 단점으로 꼽히고 있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 고경훈 박사는 "2006년과 2010년 지방선거 결과를 봤을 때 순기능보다는 역기능이 더 뚜렷하게 나타났다"며 "선거의 주역을 지방에서 중앙으로, 그리고 주민에서 정당으로 전락 시켰고 정당공천을 둘러싼 비리와 부패가 심각하게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정당공천 폐지가 진정한 정치개혁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정당공천제가 그 지역 맹주격인 국회의원들과의 관계에서 정치 부패의 온상이 되고 다음 선거 공천을 의식해 평상시에도 국회의원에게 예속되기 때문이다.

지역 발전을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할 지방 행정ㆍ의회가 중앙의 정치논리로 황폐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국회의원과 지방정치인 사이의 충돌은 대개 국회의원이 지방정치인을 자신의 정치적 하수인으로 삼으려고 하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사슬 관계를 끊는 것이 진정한 정치개혁이라는 주장이다.

정당 공천제를 없애면 지방정치의 자율성이 증대하면서 국회의원의 공천도 민주화돼 당원들의 의견이 존중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국회의원과 지방의원, 자치단체장의 갈등도 오히려 줄어들고 중앙정치인도 지방정치인도 주민을 두려워하게 되는 명분도 있기는 하지만, 사실은 회의적인 부분이 더 많다.

정당공천 폐지 또는 개선 방법에 대해 전문가들은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다. 정당 공천제를 폐지하고 주민에게 주도적인 역할을 부여하는 주민추천제나 시민단체ㆍ비영리단체의 후보자 추천제도 도입, 기초단체ㆍ의회 선거자의 정당가입 금지 등을 도입하자는 것이다. 이밖에 정당공천 기준을 명확하게 하거나 지역정당제의 허용, 공천기구의 상설화 등은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정당공천제의 순기능도 엄연히 있는 만큼 일방적으로 폐지를 요구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지적도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정당공천제가 지방자치의 책임성을 높이고, 유권자에게 후보자 선택 기준을 제공해주는 데다 유능한 정치지도자와 여성 정치인을 발굴ㆍ육성할 수 있는 통로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여기에 지방선거의 정당 관여를 통해 효율적인 업무 추진도 가능해져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고 설명한다.

또 다른 관점으로 정당공천제가 득실이 있기는 하지만 그 동안의 사례를 보면 갈등을 야기하고 지역사업의 발목을 잡는 등 폐해가 많았다"며 "정당이 추천한 후보가 아닌 주민이 선출한 후보가 실패했다면 그에 따른 책임도 주민들이 직접 지게 될 것이고 그래야 지역 정치에 더 큰 책임을 느끼고 관심을 갖게 될 것이 분명하다는 것.

지난해 초만 해도 당연히 정당공천제가 폐지될 것이라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결정이 된 것처럼 이야기가 오가기도 했다. '기초의원은 당연히 폐지되고, 자치단체장은 폐지할 가능성이 높다.'이런 전망이었다. 한데 2013년이 지나가면서 새누리당에서 ‘정당공천제 폐지 불가’ 입장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동안 여야가 지방선거에서 정당공천제를 두고 첨예하게 대립각을 세우는 이유는 단 한 가지, 폐지가 자당에 유리한 것이냐, 아니냐의 문제일 뿐 그 이상의 가치가 없는 게 정치다.

이 문제에 대한 화두가 공천권을 가진 국회의원들이 권력을 놓기 싫어한다는 이유가 가장 크게 손꼽혔던 것으로 기억하지만, 국회의원들이 공식적으로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은 없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민주당이 정당공천제 폐지를 실천하라고 새누리당에게 요구하는 것은 기득권을 내려놓겠다는 것으로도 보일 수 있겠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안철수 신당 창당이 본격화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2014년 지방선거는 민주통합당에게 전혀 유리하지 않다는 전망이 우세했다. 안철수 신당의 위력이 경기권에서는 제대로 먹힐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다.

다른 지역은 모르겠지만 경기도는 판이 흥미롭게 돌아가고 있다. 지난 2010년 지방선거에서 경기도는 31개 시·군 가운데 19개 시·군에서 민주통합당 시장이 당선됐다. 2006년에 단 1명의 시장이 당선되었는데, 상황이 확 바뀐 것이다. 그것도 경기도에서 큰 규모의 기초자치단체는 죄다 민주당 후보가 당선됐다.

참고로 얘기하지만 2006년에 민주통합당 시장이 당선된 곳은 구리시 딱 한 곳이다. 박영순 구리시장은 현재 3선이지만, 내리 3선이 아닌 징검다리 3선. 지난 2006년에 659표 차이로 당선됐다. 민주통합당 소속 후보들이 죄다 낙선할 때 홀로 당선됐다. 징검다리 3선은 4선에 도전할 수 있고, 당선된 뒤 5선 도전도 가능하단다. 자치단체장은 재선 이상 하지 못하게 법으로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데, 징검다리로 당선된다면 당선 회수에 제한이 없을 수도 있다.

단체장의 당선 회수에 대해 물으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재선까지만 하게 하자’는 주장이 많다. 법으로 아예 딱 못을 박아놔야 한단다. 왜 그럴까? 이유는 곰곰이 생각해보자.

2006년 지방선거에서 경기도의회에서는 민주당 소속 도의원이 단 1명도 당선되지 못했다. 2006년, 지방선거의 결과는 아주 참담했다고밖에 할 수 없었다, 민주통합당은, 특히 경기도에서 기초자치단체장 단 1명 당선에 경기도의회는 비례대표만 진출했으니까. 2010년 상황이 확 바뀌었다. 수원·성남·고양·안양·안산·의정부·화성 등 규모가 큰 자치단체에서 죄다 민주당 시장들이 당선됐다. 경기도의회는 과반수가 넘었다. 그래도 새누리당은 2006년의 민주당처럼 전멸하지 않았다. 그게 현실이다.

그렇다면 2014년에는 어떻게 될까?

'Again 2006'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한 때 우세했다. 꼭 낙선해야 하는 민주당 시장 3인방 이름이 공공연하게 거론되기도 했다. 아마 3인방 이야기는 아직도 유효할 것이다. 하긴 모 국회의원은 지난 2010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에서 함량 미달인 시장들이 당선되기도 했다며 물갈이가 필요하다는 말을 한 적이 있기는 하다.
 
그렇다면 현직 시장이 공천을 받지 못하는 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전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경우가 비일비재하지 않나. 그래서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이들도 더러 있었다. 선거에는 늘 그런 일이 일어난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소속 자치단체장이 경기도에서 3명 정도가 당선되면 ‘아주 많이’ 되는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적어도 안철수 신당과 통합을 발표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크고 굵직굵직 한 자치단체는 죄다 새누리당으로 넘어갈 것이라는 전망을 하는 이들도 제법 많다. 물론 죄다 ‘전망’이다. 판은 아직 벌어지지 않았으니 전망만 흘러넘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때문에 정당공천제가 폐지된다면 현직 민주당 시장 가운데 많은 이들이 현직 프리미엄 때문에 출마한다면 당선될 수 있다는 전망 또한 많았다. 그렇다면 정당공천제 폐지가 정답일 것 같기는 한데, 문제가 없을까?

‘함량 미달’로 거론되는 시장들이 현직 프리미엄으로 재선된다면? 이런 문제제기가 당연히 나온다. 그걸 두려워하는 지역이 몇 군데 있다.

최근 여의도 정가의 소식에 의하면 안철수 신당에서는 경기도 31개 시·군 가운데 5곳 정도는 당선시키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단다. 하지만 당초 새누리당과 민주당, 그리고 안철수 신당이 합류해 3파전이 될 것으로 예상했던 정가의 분석은 이미 설득력을 잃었다. 민주당과 안철수 신당이 통합을 발표한 마당에 속된 표현으로 빡센 2파전 양상으로 바뀌었다.

Again 2010,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지방자치에서 자치단체장과 기초의원의 정당은 중요하지 않다는 주장이 많다. 중요한 것은 정당이 아니라 시민들이다. 자치단체장이나 기초의원들은 시민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판을 그렇게 만들어 놓지 않고 선거가 다가오니 긴급성명을 발표 ‘정당공천제’를 폐지하자고 나서는 것 또한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진즉에 했어야지. 정당공천제 채택은 2003년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힘입어, 지방정치를 중앙-정당정치의 영향력 하에 두려는 국회의원과 정당 사이의 상호작용의 결과였다.

그러나 지난 수년간 정당공천의 문제점은 극복되지 못했다. 우선 지방자치 최고의 과제인 지방의 자주성 확보문제는 중앙정치 예속화로 말미암아 지체되었다. 더불어 중앙정치의 낡은 정치문화 즉 공천과정의 부패나 지역주의 정치가 전이되면서 지방정치는 더욱더 낡은 정치지대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이번 6·4 지방선거도 역시 공당공천제 존폐 문제가 빅 이슈로 떠오를 게 분명하다. 지난 대선 공약에도 불구하고 현행대로 정당공천제를 유지한다는 당론을 정한 새누리당과 야당인 민주당과 안철수 신당이 통합을 발표하면서 이번 지방선거에서 정당공천제를 배제한다는 것을 전제로 합의 도출한 결과이므로 첨예한 대립이 불가피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