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특집 > Korea Culture
국악특집③ 죽향 이생강의 대나무 숲 젓대소리'神의 소리'로 불리는 이생강의 대금산조
조경렬 편집장  |  herald@heraldjournal.co.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6.01.08  12:41:16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국악특집③ 죽향 이생강의 대나무 숲 젓대소리
'神의 소리'로 불리는 이생강의 대금산조

[헤럴드저널] 조경렬 편집장

   
대금의 명인 이생강 중요무형문화재 제45호 대금산조보유자(사진=이생강)

대금 산조를 들을 때면 대금 청성곡과 마찬가지로 대나무 숲 사이에서 불어오는 한 줄기의 청아한 바람인 양 느껴진다. 우리네 현세의 먼지를 털어 내 주고 죽림의 도가적 명상 세계로 인도해 주는 듯한 음악이 대금 산조다.

대금산조는 고대로부터 전래 되어 온 시나위와 판소리의 방대한 가락들이 정리되어 이룩된 曲으로써 정악의 청아한 음색과는 달리 민중의 애환을 노래하는 토속적이며, 극적인 요소가 강해 '신의 소리'라고도 했다.

보통 느린 진양조로 시작하여 중모리, 중중모리, 엇모리, 휘모리 등 점차 빠른 장단으로 짜여 있어 연주자의 세련된 기량으로 악곡이 전개 되며, 내재율의 표출에 따른 각고가 요구 되어지는 대자연의 생동을 묘사한 민속악 중 대표적인 기악곡이 대금산조다.

젓대라고도 하는 대금은 약 1,300년 전 신라 신문왕대로부터 이어져 온 한국의 대표적인 관악기다. 음색이 곱고 은은하며, 높은 음역의 울림은 청아하고 장쾌한 소리로 연주자의 기량에 의해서 많은 변화를 가져온다.

대금산조는 두 가지의 큰 줄기로 형성 되었는데, 이 산조에는 '시나위 더늠 대금산조'와 '판소리 더늠 대금산조'로 구분된다. 시나위 더늠은 고대 신악(神樂)에서 무속악으로 파생되어 구전으로 전래돼 계면조의 흐름으로 반전된 음악인 반면, 판소리 더늠은 시나위를 모체로 해서 판소리의 좋은 가락을 영입하고 우조 계면의 가락과 더불어 조 바꿈의 변조를 가미한 대자연의 생동을 묘사한 곡으로 구분된다.

시나위 더늠 대금산조는 구한말 강백천에 의해서 만들었으며, 판소리 더늠 대금산조는 박종기에 의해 구성됐다. 전라도 진도 사람 박종기가 만든 산조는 한주환, 한범수를 거쳐서 전해지고 있으며, 강백천의 산조는 역시 한범수에게 이어져 오늘날에는 홍종진 등이 연주하고 있다.

두 가지 큰 줄기 중 판소리 더늠 산조가 오늘날 그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이생강 외에 서용석(2013년 3월 17일 별세), 원장현, 김동식 등 일가를 이룬 명인 연주자들이 대부분 '판소리 더늠'의 한주환류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연주되고 있는 대금산조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명인을 꼽는다면 아마 일제 말기 박종기를 꼽는다. 그는 대금연주에 있어서 대단한 기량을 지니고 있었으며, 산조를 최초로 만들어 대금산조의 조종으로 꼽히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박종기의 그늘에 가려 있는 명인이 있다면 한주환이라는 게 이보형 문화재전문위원의 지적이다. 쉽게 말해서 오늘날 가장 많이 연주되고 있는 대금산조가 한주환 바디이거나 한주환 바디의 영향 아래 짜인 것이라는 것.

한주환은 전남 화순군 동북면 한천리 농악마을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대금연주를 배우며 자랐다. 화순군 이서면 보산리 적벽마을의 당대 가야금의 명인 한숙구, 한수동 부자-가야금의 명인이지만 거문고와 대금에도 능통했음-에게서 대금을 배우기도 했다. 그 후 그는 박종기를 만나 산조의 기틀을 다져 한주환류 대금산조를 완성하게 된다.

죽향 이생강 젓대소리 세계

   
이생강 대금연주

바람이 지나면 대나무가 대나무 숲 소리를 내듯이 이생강은 대나무를 들면 우주의 소리, 생명의 소리, 만물의 소리 그리고 현생의 소리를 낸다.

별이 옷을 입는 소리, 달빛이 산책하는 소리, 땅이 숨 쉬는 소리 까지도 이 작은 대나무에 실어 보낸다.

이생강(79, 중요무형문화재 제45호 대금산조 예능보유자)의 대금연주는 누구나 한 번쯤 접했을 것이다. 그는 대금뿐만 아니라 피리, 단소, 소금 할 것 없이 관악기를 최고 수준으로 연주하는 음악가다.

서울 성북구 삼선동에 이 명인의 자택 겸 전수소가 있다. 현재 50여명의 전수생들이 대금연주를 전수 받고 있으며, 일반인이나 음악교사 등 직업인들까지 틈틈이 그를 찾는다.

그는 나이 어린 제자가 이마에 핏대를 세워 가며 부는 태평소 가락을 보다 편안하고 구성지게 불어 보인다. 이생강은 대대로 국악인 가족으로 알려져 있다. 고종 때 감찰사까지 지낸 집안의 억압적 분위기를 뛰쳐나와 트럭을 몰며 경남 일대의 장터를 누비던 아버지 이수덕은 관악기라면 동서양 악기를 막론하고 연주하던 재주꾼이었다.

소년 이생강은 자연스럽게 어려서부터 손에 잡히는 대로 관악기를 불게 됐고, 어물이 가득 실린 트럭 짐칸 위에 앉아 한 가락을 연주하면 사람들이 절로 모여 들었다고 한다. 스승 한주환도 이때 만났다.

부친은 전주역 앞 장사꾼들이 묵던 곳에 우연히 들른 한주환의 봇짐에 대금이 꽂혀 있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음악적으로 단짝이었던 동생 이성진 이야기가 나올 때면 그는 항상 아쉬움에 숙연해지곤 한다. 꽹과리, 장고 등 타악은 물론 상모돌리기까지 통달했던 그는 뇌졸중으로 46세에 세상을 뜨고 말아 형의 장단을 더 이상 맞춰 줄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이생강과 그 제자들의 공연(사진=이생강)

이생강, 국악 대중화로 한계 뛰어넘기

국악이 천대 받던 시절 이생강은 국악 대중화가 그의 살 길이라고 믿고 이미 1950년대부터 가요와 팝 등 타 장르와의 접합, 대금의 옥타브 파괴, 반음 표현 등 국악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생강은 한때 국악에 대해 큰 회의를 품은 적도 있었다. 서양 음악만 알아주고 국악은 저잣거리에 굴러다니는 음악 정도로만 여기던 시대의 무정함이 청년 이생강의 마음을 흔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내린 대안은 국악의 변신이었다. 요즘 말로 크로스오버다. 이생강은 단순히 기존의 음악만 연주하는 것이 아니고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상황에 맞는 곡을 만들어 연주할 수 있을 창조적인 음악가로 평가되고 있다. 대금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다는 얘기다.

타 국악과 어울리면 시나위나 산조가락으로 합주를 하고 무용반주 현장에 나가면 즉흥적으로 추는 춤에도 반주를 효과적으로 연주해 낸다. 이생강의 대금연주는 늘 기대를 갖게 한다. 특히 고법 정철호(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고법 예능보유자)와 만났을 때 그 능력은 '신의 젓대소리'로 비유된다.

수많은 연주회와 발표회를 거듭하고 있지만 한 번도 똑같은 내용으로 연주를 한 적이 없다고 한다. 늘 새로운 것을 추가하여 국악의 영역을 확대해 가는 그는 청중의 심금을 붙들어 매는 마력이 몸에 밴 연주가다.

그렇게 되도록 현장에서 음악을 즉흥적으로 창조해 연주할 수 있는 명인이다. 늘 젊은 사람들에 둘러 싸여 떠들썩하게 말을 주고받는 그의 모습은 인간문화재 이생강이 아닌 친근한 이웃 할아버지다.

그는 현재 중앙대학교 국악과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출강을 하면서 후진 양성과 연주회 활동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조경렬 편집장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여백
여백
헤럴드시사영상
여백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회대로72길 22  |  대표전화 : 02-783-6677  |  긴급전화 : 010-7620-2777  |  팩스 : 02-6008-2566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2길 8 중앙빌딩 305(편집국)
등록번호 : 영등포 라 00389  |  사업자번호 : 107-20-37674  |  발행·편집인 : 조경렬  |  청소년보호책임자 : 조준기
Copyright © 2016 헤럴드저널.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