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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특집④ 가향 박양덕의 구성진 남도민요
조경렬 편집장  |  herald@heraldjourna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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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1.12  15:4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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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특집④ 가향 박양덕의 구성진 남도민요


구슬픈 계면조 가락 사무쳐도 '흥'으로 승화
박양덕의 남도민요 그 구성진 소리

조경렬 편집장

   
박양덕 명창의 남도민요(사진=전주세계소리축제위원회)

남도에 가면 우리 민족의 자지러지는 한恨과 그 한을 때로는 맺힘으로, 때론 신명으로 맺고 풀고 어르는 가락 '남도민요'가 있다. 남도 소리는 구슬프다. 맺고 푸는 조임새에 꺾어 달아, 마치 낙엽이 떨어지는 것처럼 푹 소리를 떨구는 시김새가 듣는 이의 가슴을 슬픔으로 쓸어내리게 한다.

어린 시절 꽃피는 봄날 살구꽃 마을에 대한 환영(幻影)처럼 그립게, 아니 그립다 못해 사무치게 가슴을 후벼 파는 소리에 취하면 절로 남도 사람이 되는 것이 우리 민족이다.

'남도민요' 가락은 지역적으로 충청 이남과 전라도, 경상도 일부를 포함하는 지역의 민요를 일컫는데, 이 지역의 민요는 대개 육자배기토리-토리라는 말은 한 지역의 민요가 다른 지역과 구별되는 음악적 특징을 의미-로 되어 있는 경우가 흔하다.

육자백이토리의 가장 큰 특징은 떠는 소리, 평으로 내는 소리, 꺾는 소리의 3음을 중심으로 선율이 구성 되는데, 화사한 경기민요나 애수에 젖은 듯한 서도민요와 달리 굵고 극적인 소리 구사를 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로 안해 표현력이 풍부하다는 인상을 주면서 구성진 멋을 풍긴다.

대표적인 민요로는 <육자백이>, <자진육자배기>, <새타령>, <흥타령>, <농부가>, <진도아리랑> 등이 있고, 장단은 판소리나 산조의 장단을 그대로 사용하는데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장단 등이 가장 많이 쓰인다.

"인생 백년이 멀다 해도 못 참을 것 참어가며 울고만 살었드니 어어간 내 청춘이 간 곳이 없네.

-중략-

아깝다 내 청춘 언제 다시 올거나 철 따라 봄은 가고 봄 따라 청춘가지 오날 백발을 어찌 할거나."

-흥타령 中에서

이처럼 남도 민요는 초탈의 도가적(道家的) 정서가 녹아 있는 흥타령에서 보듯 문학적인 함의도 함축하고 있는데, 특히 구성지고 구슬픈데 그 맛이 있다. 이는 계면조 중에서도 가장 슬픈, 한을 구곡간장에서부터 끄집어 내 서러운 느낌을 주는 진계면조가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눈물 보따리' 소리를 내며 꺾어지지만 그 슬픔은 결코 절망에 머물지 않고 슬픔을 이겨내고 '흥'으로 승화하는 지경에까지 넘나들고 있다. 바로 이 점이 남도 민요의 멋이다. 이것은 마치 남도의 소쩍새 소리 같기도 하고, 훤한 달밤에 핀 배꽃 같기도 하다.

이런 남도민요는 민간에 구전되던 것을 판소리꾼들이 세련된 가락으로 정립한 것으로 판소리와 시나위의 영향을 받아 그 극적 구성이 뛰어나다. 또 소리가 진득하고 깊은 맛이 있어 타지방 민요와 구별되는 특징을 갖고 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판소리 장르에 밀려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남도민요는 국가가 지정하는 중요무형문화재 지정이 안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강강술래>가 중요무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되어 있고, 진도의 농요가 <남도들노래>라는 명칭으로 중요무형문화재 제51호로 지정되어 있다. 하지만 <화초사거리>·<육자배기>·<흥타령> 등 많은 남도 민요가 있음에도 경기민요처럼 무형문화재 지정이 되지 않고 있는 점이 아쉽다.

   
남도민요의 박양덕 명창(사진=전주세계소리축제)

"50여년 국악인생, 남도 민요에 바칠 터"

가향(歌香) 박양덕(전북무형문화재)은 판소리 명창인데도 남도민요에 애착이 남다르다. 그는 "판소리와 시나위의 영향이 많았지만 남도민요는 별개의 장르"라며 "부르기 쉽다는 잘못된 인식이 민요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그는 또 "경기민요는 국악의 장르로 인정하면서도 남도민요만 인정하지 않는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하고, "국악발전과 민요의 발전을 위해서는 엄연히 국악의 한 장르로 인정함이 마땅하다"고 말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 한국어문학 박찬응 교수도 "인식의 부족인가 편견인가, 화려한 '문화재' 석상에 이미 오른 여러 장르를 탄생시킨 원초소리들이 아직도 방치되어 있다. 유독 남도민요만이 서열에서 빠진다. 반짝임의 허구성(虛構性)이란 시각에서 보면 오히려 다행스럽기도 하나, 소멸의 위협 속에 한시라도 바삐 보호가 시급하다"고 그 문제점을 지적한다.

현재 문화체육관광부가 무형문화재로 지정한 민요는 경기민요의 경기잡가와 제주민요의 오돌또기, 봉지가, 산천초목, 맷돌노래 등이다. 박양덕의 남도민요에 대한 애착은 무엇을 바라기 위한 짧은 생각에서가 아니라 진정으로 서민들의 고달픈 삶의 애환과 恨이 녹아 넘쳐흐르는 남도소리를 그대로 보존하여 후손에 전한다는 사명감에서다.

박 명창은 "판소리에 비해 민요는 구성진 맛이 있어요. 민요는 말 그대로 서민들의 정서를 잘 반영한 만큼 슬픔과 즐거움이 여실히 드러납니다." 한마디로 "감칠맛이 있어요"라고 말하하는 박 명창은 전북 남원시 운봉읍에서 '운상원 소리터'를 열고 부군인 거문고 명인 김무길씨와 후진 양성에 여념이 없다.

국립민속국악원의 지도위원으로 활동하면서도 나머지 여가를 후진 교육에 열을 올리고 있는 박 명창이 남원에 오기까지는 우여곡절도 많았다. 한 때는 경기도 양평군 청운면에 국악연수원을 내고 대학 강의와 후진 교육에 힘썼으나 전북 남원시에 소재한 국립민속국악원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남원 운봉에 터를 잡았다.

유랑 국극단서 김소희 명창 찾아 상경

   
박양덕 명창과 김무길 고수

박양덕의 본바탕은 여느 명창과 마찬가지로 판소리다. 12남매 중에 다섯째로 태어난 그는 피리와 대금을 좋아했던 부친의 권유로 열살 무렵부터 소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김연수 명창의 첫 스승으로 알려진 박봉선에게 처음 판소리를 배웠고, 그 후 열 네살이 되던 해 '신신국극단'에 들어가 전국을 유랑하는 단체생활을 하다가 '해님국극단'으로 옮겨 활동할 무렵 지금의 부군인 김무길-거문고 신쾌동류와 한갑득류 이수자-씨를 만났고, 1964년 김소희 명창을 찾아 함께 상경했다.

이후 김소희 명창에게 '춘향전'을 배웠고, 그후 민요 명창인 김소희 명창의 친동생 김경희로부터 남도민요를 사사 받았다. 1980년 성우향에게 '심청가'를 사사 받고, 1982년 <공간사랑>에서 신영희, 김경희, 안숙선, 김동애, 유수정 등과 함께 '민요발표회'를 가진 뒤 남도민요의 보급과 대중화에 더욱 힘쓰게 된다.

박 명창은 이후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수궁가'를 남해성 선생에게 이수 받아 1987년 국립극장 소극장에서 '수궁가' 완창발표회를 성공적으로 마치면서 국내외 순회공연 등 활발한 활동을 해 왔다.

비음鼻音과 수리성 일품

박양덕은 1990년 춘향제의 '제17회 전국국악 판소리경연대회'에서 영예의 대통령상을, 1994년 'KBS국악대상 민요부문 대상'을 각각 수상하면서 최고의 전성기를 맞는다. 또 1996년 판소리 '흥보가' 완창발표회를 전북 고창의 동리국악당에서 성황리에 마치고, 지금까지 판소리 '수궁가' 완창발표회 다섯 번, 판소리 '흥보가' 완창발표회 두 번 등의 관록을 세웠다.

지금도 국내외 공연은 물론 국악원 등 강단에서 후진 양성에 앞장서고 있는 그를 전문가들은 굵은 목을 눌러 내는 판소리성의 발성법이 특징인 남도민요에서 박양덕은 특히 목을 떨어 소리내는 비음과 꺾는 소리, 다소 쉰 듯한 '수리성'이 일품이라는 평한다.

박양덕 명창의 이런 활발한 활동들이 앞으로 국악 발전과 남도민요 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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