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단상]

"여·야, 현대판 게리맨더링은 이미 시작됐다" 
선거구획정, 여야 합의 어려운 '태생적 한계'

조경렬 편집장

여야는 헌법재판소의 선거구의 인구 불균형 위헌 결정에 따른 법 개정 시한을 넘겨 위헌을 자행하고 있다(사진=대한민국국회)

민주주의 발전이 보다 앞선 미국에서도 선거구 획정으로 문제가 됐던 일이 있다. 자당에 유리하게 만든 '게리맨더링'이다. 1812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지사 엘브리지 게리는 새로운 상원선거구법을 입안하여 몇 개의 선거구에 연방 당의 지지표를 집중시킴으로써 민주공화당이 다수의 의석을 차지하도록 만들었다.

이때 이렇게 나누어진 선거구들 가운데 하나의 윤곽이 샐러맨더(salamander：도롱뇽)를 닮은 것으로 생각되어 게리와 샐러맨더를 합성한 '게리맨더링'이라는 용어가 생겨났다.

게리맨더링은 선거구민이 지역적으로 밀집해 있어야 하며 선거인수가 균등해야 한다는 선거구 할당의 2대 기본원칙을 어기는 것이라고 하여 비난 받았다. 1964년 연방대법원은 선거구의 확정에는 인구의 실질적인 균등분할이 반영되어야 한다고 판시해 사실상 선거구획정의 표본이 되고 있다.

하지만 게리맨더링은 경우에 따라서는 소수당의 대표를 확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서 옹호되기도 한다. 선거구의 책정에 지역경계를 무시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결속된 집단에게 발언권을 전혀 주지 않는 것보다 바람직하다는 논지에서다.

사실상 우리 헌법재판소는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시의 논리를 인용해 선거구간의 인구 편차가 2배 이상으로 벌어지면 대표성에 심각한 훼손이 발생한다는 취지에서 선거구획정을 조정하라고 결정한 것이다.

하지만 현역 의원들은 여야의 합의가 안 된다는 핑계 삼아 자신들은 의정보고회 등 선거운동을 마음대로 하고 있다. 스스로 입법을 포기하거나 방임한 채 다른 다수의 예비 후보들의 권익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여·야간 당리당략으로 선거구 획정기준 논의가 장기간 표류중인 것으로 비춰지고 있지만 사실 더 깊이 들여다보면 자신들은 손해 볼게 없다는 심산이 깔려 있다. 여야 합의에 의해서만 의원 입법이 국회에 상정한다는 국회선진화법이 발목을 잡느니 차라리 의원 정수를 늘려야 한다느니 이런 기막힌 발상도 모두 특권욕의 편린(片鱗)이다.

사실 여·야는 국회의원 수와 지역구 등을 결정하는 선거구획정 논의가 정치권의 영향력으로부터 분리, 객관성·독립성·공정성 등을 담보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지난해 5월말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됐다.

개정안은 기존 국회의장 직속의 선거구획정위를 중앙선관위 산하에 별도 독립기구로 설치하고, 여야로부터 각각 4명씩 추천받아 획정위원으로 두고, 재적위원 3분의 2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토록 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여야 합의가 전제되지 않는 어떠한 선거구획정안도 사실상 처리가 불가능한 구조였다는 지적이다.

우선 정치권으로부터의 입김을 최소화하기 위해 선거구 획정위를 중앙선관위 산하에 뒀지만 여야가 각각 추천한 위원들이 여야 입장만을 대변하는 바람에 '재적위원 3분의 2이상 찬성'이라는 의결규정은 지켜지지 못하고 있다.

이런 한계에 부딪친 여·야가 선거구획정의 시한(2015년 12월 31일)을 넘겨 현재 초헌법적 행위로 헌법을 유린하고 있는 실정이다. 법을 제정하는 국회가 스스로 법을 어기고 헌법을 유린하는 현실에도 국회의원들은 죄의식도 없는 '위헌집단'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