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국가가 최선의 사회는 아니다"
복지 포퓰리즘이 위험한 이유

최기덕 논설주간
 

▲ 최기덕 논설주간

복지 포퓰리즘(Populism:대중 영합주의)은 의도적이든 아니든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길을 닦는 역할을 충실히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사회주의의 결말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을까.

1970년대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은 “우리 모두는 케인지언”이라고 말했다. 21세기 현재 우리는 이제 이렇게 말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 모두는 사회주의자다.” 이미 저만큼 앞서 사회주의로 달려가고 있는 유럽 복지국가들은 말할 것도 없고 ‘복지 광풍’이라고 표현될 정도로 매일매일 새로운 복지 제도와 정책이 쏟아지고 있는 한국도 그렇다.

세계 그 어느 곳을 둘러봐도 복지가 늘어나지 않는 곳이 없다. 이에 따라 국내총생산(GDP)에서 정부가 차지하는 비중은 계속해 증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현재 27~28%, 유럽 복지국가들은 약 50%를 정부가 차지하고 있다. 각각 그만큼 좌클릭, 즉 사회주의화 됐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사회주의는 무엇인가. 사회주의의 특징은 생산수단의 사회화·국유화다. 그런데 생산수단의 사회화나 생산된 생산물의 사회화는 차이가 없다.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인정하지만 그것으로부터 생산된 모든 생산물을 사회화한다면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GDP에서 정부가 차지하는 비중이 계속해 증가하고 있다는 말은 곧 계속해 사회주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말과도 같다. 이것은 어찌 보면 자본주의 기본 의미와 매우 상반되는 것이다.

그리고 최근의 추세는 복지 예산의 증가가 전체 예산의 증가를 견인하고 있다. 즉, 복지 포퓰리즘은 의도적이든 아니든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길을 닦는 역할을 충실히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사회주의의 결말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역사 경험이 보여주듯이 사회주의로 가는 길은 파멸과 노예의 길이다. ‘완전 복지국가’인 북한을 보라.

복지 포퓰리즘은 근본적으로 민주주의의 취약성과 연관돼 있다. 표를 쫓는 정치인들은 유권자들이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다 할 태세다. 유권자들 역시 자신에게 유리하게 보이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요구할 태세다.

한 번 생겨난 복지는 수혜자들을 만들고 이 수혜자들은 복지 정책의 지지자가 돼, 한 번 시작된 복지를 되돌리지 못하도록 하는 세력을 형성한다. 그리고 이들 세력의 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정치인들도 기존의 복지를 유지, 확대하고 새로운 지지층을 만들기 위해 새로운 복지를 만들어 낸다. 이렇게 복지는 팽창을 거듭한다.

복지 포퓰리즘의 이러한 추세를 막아야만 한다. 민주주의가 복지 포퓰리즘과 연계되는 중요한 지점은 바로 ‘복지=공짜’라는 인식에 있다고 본다. 따라서 민주주의 하에서 복지 포퓰리즘을 막을 수 있는 방안은 바로 복지가 결코 공짜가 아니라는 사실을 유권자들이 인식하도록 만드는 일이다. 즉 내가 복지를 창출하여 수혜자이면서 동시에 공여자가 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또 ‘복지=공짜’가 아니라 ‘복지=내 돈’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도록 해야만 한다. 이를 위해 복지 재원은 반드시 한 종류의 세금에서만(예를 들어 복지세) 지출되도록 할 필요가 있으며 세금의 납부 대상은 전체 납세자의 80% 수준, 즉 대부분의 납세자가 부담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이때 하위 20%는 ‘복지세’를 전혀 부담하지 않고 혜택만 보게 된다. 이렇게 될 때 무분별한 ‘묻지 마 복지’가 지양되고 지속 가능한 자유주의 복지 정책이 가능해질 것이다.

정부와 여당은 자랑할 만한 일이 생길 때마다 자신의 공로를 대대적으로 선전한다. “여러분, 우리가 집권한 다음 얼마나 행복해졌는지 알고 있지요? 여러분이 더욱더 안전해졌고 경제가 좋아졌다고 느낀다면, 정치를 잘해온 덕분입니다.” 이를 맞받아치는 것은 당연히 야당의 몫이다.

“여러분, 힘들지요? 그 모든 게 정부·여당이 정치를 잘못해왔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집권을 하면 여러분을 반드시 행복하게 해 주겠습니다.”

정치인들의 요란한 수사와 자기선전이야말로 행불행을 막론하고 모든 운명을 만들어내는 ‘운명의 여신’으로 정치를 생각하도록 만든 원인이다. 정치란 작을수록 아름다운 법이다. 한데 공룡처럼 커지니 두려운 느낌마저 든다.

이제 곧 6·4 지방선거가 다가온다. 물론 대선과 총선은 내년의 일이지만, 그건 일반인들의 생각일 뿐 정치인들에겐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지금이야말로 우리나라를 단순한 ‘지상의 왕국’이 아니라 무릉도원과 같은 ‘천상의 왕국’으로 만들겠다는 거대하고도 달콤한 약속을 경쟁적으로 내놓을 절호의 기회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정치인들은 좀 더 정직해져야 한다. ‘정직이 최선의 방책’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정직한 정치인이라면, 자신들이 하는 일이 ‘돌’을 ‘빵’으로 변하게 하거나 ‘물’을 ‘기름’로 변하게 하는 기적과 같은 것이 아님을 국민들에게 말해야 하지 않을까. 오히려 ‘빵’을 ‘돌’로 변하게 하고 ‘기름’을 ‘물’로 변하게 한 적이 많았음을 실토하며 용서를 구할 필요가 있다.

마찬가지로 가난에 찌들어 살고 사람들을 하루아침에 행복한 신데렐라로 만드는 기적을 행할 수 없다는 사실도 국민 앞에 솔직히 밝혀야 한다. 정치인 가운데 누가 있어 옛날에 바다를 가른 모세의 기적을 재현할 수 있으며, 또 어떤 정치인이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우렁각시’처럼 일터에서 돌아오면 공짜로 집 안에 밥상을 차려줄 수 있으랴.

오히려 평지에 풍파를 일으키지 않으면 다행이고, 또 ‘공짜’로 주지 않아도 좋으니 국민들의 ‘쪽박’이나 깨지 않으면 오히려 도와주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미다스왕’처럼 자신의 손에 닿으면 무엇이든 황금으로 만드는 기술을 가진 연금술사가 아니다. 『호밀밭의 파수꾼』에 나오는 홀든처럼 사람들이 낭떠러지에 떨어지지 않도록 테두리를 쳐놓고 파수꾼 역할을 하는 것이 본연의 임무다. 인기는 없을는지 몰라도, 바로 그렇게 말하는 것이 정치인의 정도(正道)일 터다.

정치인들이여! 국민들에게 정치로부터 무엇인가 받는 일 말고도 아름답고 소중한 영역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해 줄 수 없겠는가. 무엇인가 받기보다는 남에게 주며, 또 받은 것보다 더 많이 주고 심지어 생명까지도 주는 것이 그런 것이라고.

아프리카 수단에서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의술을 베풀다 목숨을 바친 이태석 신부처럼 자기 자신이 가진 것을 사람들에게 베풀고 사는 것이 아름답다고 말해줄 수 없겠는가. 또 구제역 퇴치를 위해 엄동설한에 밤낮으로 헌신하다 과로와 추위로 숨져간 순직 공무원들의 삶이 아름답다고 말해줄 수 없겠는가.

자신의 몸을 추스르지 못하는 독거노인들을 찾아 그들을 목욕시키며 등을 긁어주는 따뜻한 마음씨의 젊은이들이 실천하는 봉사의 삶이 아름답다고 말해줄 수는 없겠는가.

또 스스로 일터에서 땀을 흘리며 살아가는 많은 보통사람들처럼 혼신의 힘을 다하는 자구의 노력과 자립의 정신이 아름답다는 것도 말해줄 수 있어야 한다. 모름지기 정치인들은 국민들을 향해 큰 소리로 외칠 수 있는 용기를 보여라. “하늘이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것”처럼 “정치도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