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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지리로 본 계룡산과 한양 북악산
조경렬 기자  |  herald@heraldjourna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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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6.13  16:5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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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악산을 배산으로 경복궁이 안치되고 左 인왕산, 右 안산(창신동 뒷산)으로 앞으로는 청계천과 남산, 멀리는 관악산이 궁을 포진하고 있는 형국이다(사진=헤럴드저널)

"한양 천도, 정도전과 무학대사의 수쌓기"
풍수지리로 본 계룡산과 한양 북악산

글ㅣ사진 조경렬 기자


지난 1월 말경 동학사를 탐방하는 길에 들은 계룡산국립공원 해설사의 계룡산에 얽힌 풍수지리적 설명이 이채로왔다. 이 글은 동학사를 품고 있는 계룡산에 대한 풍수지리학적 의미와 역사적 사실에 대하여 알아보고 조선왕조가 북악산을 배경으로 하여 도읍지를 한양으로 천도한 풍수지리적 의미를 살펴 보기로 한다.
 
계룡산…천년고도가 될 기운을 품고 있는 금계포란형

우리나라 세 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계룡산은 수려한 산세와 울창한 숲을 지닌 데다 교통의 요지인 대전광역시에 가까이 있어 전국적으로 많은 이들이 즐겨 찾는다. 신라 오악(五嶽) 가운데 서악(西嶽)으로 백제 때 이미 계룡 또는 계람산, 옹산, 중악 등의 이름으로 알려졌다.

삼국사기는 계룡산을 토함산, 지리산, 태백산과 함께 오악 중의 하나로 꼽으면서 계룡산은 하늘을 향하는 용의 모양이고 '산태극', '수태극', '회룡고조' 등의 하늘의 이치를 가진 신비의 땅으로 언젠가는 이곳이 수도가 되어 천하 36국으로부터 조공을 받는 시대가 도래한다고 묘사하고 있다.

신라말기 도선은 그의 저서 도선비기에서 개성은 5백년 도읍지이고 한양은 4백년 도읍지이며 계룡산의 신도안은 8백년의 도읍지라고 했으며, 정감록에는 정도령이 나타나서 8백년 동안 도읍을 삼는다고 하였다. 금강이 계룡산을 휘어 감고 있으며 계룡산 주변의 산들이 태극을 이루고 있어 수태극, 산태극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조선시대 풍수지리상으로도 계룡산이 한국의 4대 명산으로 꼽혀 이 산 기슭에 새로이 도읍지를 건설하려 했었다. 특히 '정감록(鄭鑑錄)'에는 계룡산을 십승지지(十勝之地), 즉 큰 변란을 피할 수 있는 장소라 했으며 이러한 도참사상으로 인해 한때 신흥 종교와 전통 종교가 성행했으나 종교 정화 운동으로 1984년 이후 모두 정리되었다.

풍수지리학자들은 계룡산을 용세가 제 몸을 휘감아 제 꼬리를 돌아보는 회룡고조형국(回龍顧祖形局)을 이루었고, 상봉인 천황봉이 형제봉·중두봉(中頭峯)·종봉(終峯)을 이루어 이것을 제자봉(帝字峯)이라 한다. 즉 황제가 앉을 자리라는 의미다.

계룡산이라는 산 이름은 조선 초기에 태조 이성계가 신도안(계룡시 남선면 일대)에 도읍을 정하려고 이 지역을 답사하였을 당시 동행한 무학대사가 산의 형국이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 금닭이 알을 품는 형국)이요, 비룡승천형(飛龍昇天形: 용이 날아 하늘로 올라가는 형국)'이라 일컬었는데, 여기서 두 주체인 계(鷄)와 용(龍)을 따서 계룡산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이 있지만 오래 전부터 이미 불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계룡산은 845.1m의 천황봉을 중심으로 관음봉·연천봉·삼불봉·도덕봉·수정봉·신선봉·장군봉 등 28개의 봉우리로 되어 있다. 특히 계룡팔경은 대표적인 관광명소인데 제1경은 천황봉의 일출, 제2경은 삼불봉의 설화(雪花), 제3경은 연천봉의 낙조(落照), 제4경은 관음봉의 한운(閑雲), 제5경은 동학사계곡의 숲, 제6경은 갑사계곡의 단풍, 제7경은 은선폭포, 제8경은 오누이탑의 명월(明月)을 가리킨다.

   
태조 이성계는 본래 길지로 계룡산 중턱에 궁궐을 세우기 시작했으나 정도전과 하륜의 반대로 무학대사 조언을 통해 한양에 궁궐 터를 잡았고, 궁궐의 방향은 정도전의 뜻대로 현재의 방향으로 지었다(사진=헤럴드저널)

태조가 처음 도읍지로 낙점 했던 계룡산 자락

태조 이성계는 권문세족들이 밀집한 고려의 도읍지 개성을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 새로운 도읍지에서 새 왕조의 기틀을 다지기를 원했다. 그 결과 계룡산이 길지라는 결론을 내리고 궁궐 축조 공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개국공신 정도전과 경기도 관찰사 하륜의 반대로 공사를 중단하게 된다. 이후 새로운 도읍지 선정을 무학대사에게 맡겨 선택한 곳이 한양이었다.

 당시의 정황을 <태조실록>은 이렇게 적고 있다. 정도전과 하륜은 "도읍은 마땅히 나라의 중앙에 있어야 될 것 이온데 계룡산은 지대가 남쪽에 치우쳐서 동면 서면 북면과는 서로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계룡의 산은 건방(乾方)에서 오고 물은 손방(巽方)에서 흘러갑니다. 이것은 송나라 호순신(胡舜臣)이 이른 바 '물이 장생(長生)을 파(破)하여 쇠패(衰敗)가 곧 닥치는 땅'이므로 도읍을 건설 하는 데는 적당하지 못합니다."라고 반대했다.

당시 풍수지리에 능한 사람으로서는 무학대사와 권중화 그리고 하륜이 있었다. 태조 이성계도 하륜이 도참설에 능통한 학자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던 터라 외면 할 수 없었다. 계룡은 쇠하고 망하는 땅이라 하는데 어느 군주가 강행할 수 있겠는가?

   
동대문이 흥인지문은 흥인문이 되어야 할 것인데, 궁궐 동쪽의 안산이 산세가 약하여 이를 보(補)한다는 취지에서 화(火)를 의미하는 지(之)자를 첨부했다.

무학대사는 다시 한성 인왕산을 주목했다

무학대사의 선정에 의해 한양 땅 인왕산 아래에 궁궐을 짓게 되는데 당시 개국공신으로 첫째 신하 자리를 꿰차고 있던 정도전은 사사건건 무학대사의 진언에 제동을 걸고 나선다.

그도 그럴 것이 무학대사는 당시 불교를 대표하는 인물로 왕사였으며, 정도전은 불교를 배척하고 유교를 숭상하는 정책을 펴려는 야심을 갖고 있었기에 무학대사의 참견은 걸림돌이 아닐 수 없었다.

이 때 무학대사는 풍수지리적인 여러 면을 참작하여 궁궐의 방향에 대하여 태조에게 진언하기를 "인왕산을 한양의 진산으로 삼고 북악과 남산을 좌우의 청룡백호로 삼아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정도전이 바로 반대 의견을 내놓았다. "전하, 그것이 아닙니다. 임금이 동쪽을 향하고서 정무를 보는 일은 안 됩니다. 남쪽으로 향해야지요."라고 말했다.

정도전의 말대로라면 경복궁이 관악산을 마주보게 되는 형국으로 관악산은 풍수리학상 불을 상징하는 산이다. 관악산의 모습도 불꽃처럼 솟아 있는 모습이다. 여기에서 당시 실세였던 정도전이 그렇게 말하자 무학대사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무학은 당시 혼잣말로 '내 말을 따르지 않으면 200년이 지나 반드시 화가 있을 것이다'라고 예언했다. 무학대사의 예언대로 경복궁은 1553년(명종), 1592년(임진왜란)에 잇따라 화마에 불타고 말았다. 그러다가 300여년이 지나서야 흥선대원군에 의해 다시 중건되어 현재의 경복궁에 이른다.

결국 무학대사의 예견이 맞은 것으로 역사가 말하고 있지만 여기에서 풍수지리학자들이 말하는 아주 중요한 포인트는 왕조의 흥망성쇠에 관한 사실이다.

이에 대하여 동국대학교 평생교육원 김동완 교수는 "무학대사가 궁궐의 근정전을 동쪽으로 향하게 하려했던 이유는 왕위 장자상속과 깊은 관련이 있다. 무학대사의 주장은 풍수지리적으로 서쪽의 인왕산을 뒤로하고 북쪽의 북악산을 좌청룡, 남쪽의 남산을 우백호로 하여야만 임금의 양기가 왕성하여 장자 상속의 왕위가 이뤄져 왕권이 튼튼해진다. 그러나 정도전의 주장처럼 북악산을 뒤로하여 낙산(창신동)을 좌청룡, 인왕산을 우백호로 하면 낙산은 산세가 약해 결국 2~3자의 왕위 상속이 이어질 것이란 우려를 알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풍수지리에도 능통했던 정도전은 무학의 숨은 뜻을 알고 있었기에 적극 반대했다. 그는 왕권강화를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는 입장이었다. 그는 강력한 왕권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왕권의 강화는 곧 신권의 약화다. 결국 정도전은 태종(3대) 이방원에게 암살당하며 권세를 마치게 된다.

역사적 사실을 보더라도 조선 왕위의 상속은 장자상속은 거의 없었고 장자상속이 이뤄졌더라도 단명이 그쳤다. 거의 모두 2~3자가 왕위에 올랐다. 유교 국가이면서도 비정형의 왕위세습이 이어졌고 비교적 왕권은 약하여 중신들의 섭정이 판을 치던 시대였다는 것을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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