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태산이소천하(登泰山而小天下)…산동성 태산
중국 산동성의 태산으로 가는 길

조경렬 기자

대관봉 각자로 암석 벼랑을 깎아 다듬은 석문이다. 역대 제사들이 바위 비석에 암각으로 새겨져 있다. 당 현종이 개원 13년(725년)에 태산에 와서 봉선제를 올릴 때 남긴 '당마애'가 유명하다. 1천여 글자로 구성되었는데 서체는 당나라 예서체이다. 오른쪽 황금색 서체는 당 현종의 '기태산명'(726년)이다(사진=조경렬)

"태산에 올라 천하가 작다는 것을 알았다"는 의미의 등태산이소천하(登泰山而小天下)라는 말이 있다. <맹자(孟子)> 진심(盡心) 장에 나오는 말로 "공자께서 노나라 동산에 올라가서는 노나라를 작게 여기시고, 태산에 올라가서는 천하를 작게 여기셨다."라는 구절이다.

공자는 태산에 올라 천하가 작다는 말로 태산의 위용을 표현했다. 그렇게 큰 산이 아닌데도 왜 그렇게 말했을까? 역사적 가치를 말한 것일까. 이렇게 태산은 공맹(孔孟)의 호산으로 알려지고 있다.

텐외천광장 계단을 따라 오르니 벌써 봄 냄새가 코끝으로 날아오른다. 우수가 지난 이곳 태산에도 봄기운이 완연하다.

태산으로 오르기 위해 하루 전날 태안 시에 도착하여 태산 입구 주점(酒店)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중국에서는 호텔을 주점이라 칭한다. 산동성 태안의 태산은 천하 오악에 드는 산이다. 숭산 화산 형산 항산 그리고 태산을 말한다.

북송 때 화가 곽희(郭熙)는 그의 산수화론서 <임천고치(林泉高致)>에서 "嵩山多好溪(숭산은 아름다운 계곡이 많다), 華山多好峰(화산은 아름다운 봉우리가 많다), 衡山多好別岫(형산은 아름답고 특이한 암봉이 많다), 恒山多好列岫(항산은 아름답게 늘어선 암봉이 많다), 泰山特好主峰(태산은 특히 주봉이 좋다)"고 표현했다.

남천문으로 들어서면 넓은 공간이 펼쳐진다.

오악의 하나인 태산은 여러 곳으로 오르는 길이 있다. 필자와 일행은 중국 12황제를 상징하는 용뉴석이 세워진 태산 입구에서 버스를 타고 중천문까지 올라가 다시 케이블카를 타기로 했다.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등산로를 따라 트레킹을 하면 더할 나위 없는 산행길이 된다. 직구저수지를 따라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오르는 버스는 산허리 이쪽저쪽을 헤집으며 달린다.

산 중턱의 중천문이 버스 종점이다. 이곳에서 월관봉(月觀峰)까지는 케이블카를 탔다. 언제부턴가 우리나라 대권주자들은 이 태산을 올라야 당선된다는 속설이 생겼다. 노태우 김대중 전 대통령은 우중(雨中) 산행을 하여 당선 되었는데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맑은 날 등산하여 대권을 잡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입심 좋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중국 특유의 어처구니들로 벽사의 상징이다.

지난 해 중국의 전승절에 참가했다가 태산을 오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그날 비가 내렸다는데 과연 대권을 잡을 수 있을까! 오늘 태산을 오른 필자도 올해는 어떤 큰일을 이룰 수 있을까!

월관봉에서 남천문으로 가는 길은 하늘 길이다. 천가(天街:하늘 길로 암릉을 닦아 길을 냈다)의 하늘 길은 아찔한 낭떠러지를 옆으로 끼고 돈다. 10분쯤 하늘 길을 거닐면 남천문이 나타난다. 트레킹으로 7000여 계단을 올라오는 길과 마주친다. 하늘 아래 태산에 이렇게 엄청난 건축물을 세운 중국인들의 끝없는 의지가 엿보인다.

그들은 왜 이렇게 험준한 산정(山頂)에 이렇게 많은 사당을 짓느라 고생을 했을까? 역사는 바로 문화이고 정신이다. 그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 바로 유적이다. 여기 이 태산의 일원 건축물도 그 시대정신의 산물이다. 중국다운 인적 자원의 무한한 활용이 이런 엄청난 난공불락의 요새 같은 산정에 사당을 세워 당대 황제들 통치의 정당성을 확인하려 했을 것이다.

필자는 사진을 촬영하느라 발걸음이 한사코 일행의 뒤로 처지고 있었다. 오전 일찍 나선 산행길이라 사람들은 많아 보이지 않았지만 케이블카는 사방에서 사람들을 실어 날랐다. 날씨는 좋은 편이지만 운무가 먼 산을 덮고 있어 시계가 썩 좋지 않았다. 바위와 암반으로 구성된 태산의 위용은 과연 중국 천하 오악독존이라 할만 했다.

오악독존(五嶽獨尊)은 중국에서는 태산泰山(동), 화산華山(서), 형산衡山(남), 항산恒山(북), 숭산嵩山(중악)이 오악에 해당하고, 우리나라는 금강산(동), 묘향산(서), 지리산(남), 백두산(북), 삼각산(중악)이 오악으로 불리고 있다.

옥황정 마당에 있는 자물쇠와  태산극정(泰山極頂) 1,545m라 새겨진 표지석

태산의 정상에도 주점이 있었다. 창문이 보이는 건물이 주점 즉 호텔이다.

옥황정으로 오르는 돌계단 길목의 암각자들

전설 속에 묻힌 산 태산(泰山)

       유태산(遊泰山)

               이백

초여름 사월 태산에 오르는데
가는 곳마다 돌이 평평하여 현종께서 가시는 길이 열려있다
여섯 마리 말이 만길 골짜기를 지나고
산골짜기 구불구불 둘러있다
말발굽의 자취는 푸른 봉우리를 두르고
지금까지도 푸른 이끼에 가득하다
폭포 물줄기 높은 봉우리에서 흩뿌리고
물 경사 급하니 소나무 소리 애달프다.

북쪽을 보니 병풍 같은 봉우리 기묘하고
절벽은 동쪽을 향해 꺽여 있다.
동굴 문의 돌문 닫히고
땅바닥에서 구름과 벼락이 일어난다.
높이 올라 동쪽의 봉래섬과 영주를 바라보며
휘황찬란한 금은대를 상상한다.

남천문에서 휘파람 길게 부니
만리의 깨끗한 바람이 달려온다.
옥녀 너덧이
구천에서 옷자락 나부끼며 내려와
함박웃음을 머금고 흰 손을 내밀어
내게 유하배를 건넨다.

머리 숙여 두 번 절하고 술을 마셨는데
신선의 재질 없음이 부끄럽다.
그러나 초연하게 우주를 작게 여기고
썩은 세상을 버리는데 어찌 근심하랴.

이백은 태산에 올라 이렇게 읊었다. 당시 세태에 대한 감정을 태산의 위용에 은유했다. 태산은 전설과 문화 속에 잠겨 있는 산이다. 판구(盤古 : 도교의 천지 창조 설화에 나오는 최초의 인간)의 창조 신화에 따르면, 판구가 죽자 그의 머리가 태산이 되었다고 한다. 도교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5대 산 중 하나인 이 산은 불교에서도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천하 오악독존의 암각자로 천하에 으뜸이란 의미이다.

수천 년이라는 세월 동안 태산은 중국에서 가장 신성한 봉우리였으며, 고대 중국의 황제들은 이를 천제(天帝)의 아들로 여겼다. 새로 자리에 오른 황제가 처음으로 하는 일 중 하나는 태산에 올라가 천상과 지상에 선조들을 위한 제(祭)를 올리는 일이었다.

태산의 높이는 해발 1,545m로 십 수 채의 사당과 1000여 개의 비석과 비문이 절벽과 바위틈에 새겨져 있다. 가장 높은 곳에는 옛사람들이 세상의 통치자라 믿었던 옥황상제의 옥황정(玉皇頂)이 있다.

옥황정에서 내려와 동쪽의 일관봉(日觀峰)으로 가는 길에 있는 비석과 마애명이다. 왼쪽 비문은 중국 청나라의 제4대 강희황제(康熙帝)의 웅치천동(雄峙天東 : 태산이 하늘 동녁에 웅장하게 솟아있다)이고,  오른쪽은  공자소천하우(孔子小天下虞 : 공자가 태산에 올라서 천하가 작은 것을 알았다.) 비문이다.

옥황정 앞에는 글자가 없는 비석인 무자비(無字碑)가 서 있는데, 제안된 비문이 황제의 마음에 차지 않아 텅 빈 채로 남았다고 한다. 가장 크고 완벽한 건물은 진나라 때 처음으로 지어진, 태산의 산신전 대묘(垈廟)이다.

출산과 새벽을 상징하는 도교의 여신 벽하원군(碧霞元君)에게 바쳐진 '푸른 구름의 사찰' 역시 많은 이들이 찾는 장소이다. 산으로 이르는 7000여 개의 돌계단은 고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태산은 고대 중국의 문명과 신앙을 상징하는 중요성이 인정되고, 산세와 경관 또한 아름다워 1987년 유네스코 복합유산, 즉 세계문화유산과 세계자연유산으로 동시에 지정되었다.

산정에 까지 담장을 쌓아 신성한 공간과 구별했다(사진=조경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