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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고려인의 꿈이 익어가는 연해주 농장"극동러시아 연해주 농업개발 역사
김현동 대표  |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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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3.17  12: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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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연해주 고려인의 꿈(下)

"고려인의 꿈이 익어가는 연해주 농장"
극동러시아 연해주 농업개발 역사

김현동 바리의 꿈 대표

   
고려인 정착촌 우정마을에 살고 있는 고려인 후손 어린이들 모습(사진=바리의꿈)

극동러시아 연해주 지역의 농장 개발과 고려인의 터전을 일구기 위해  십 수 연간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오고 있는 김현동 비리의 꿈 대표의 기고를 통해 연해주 농장 개발의 현주소를 짚어 보고자 한다.

1600년대 초기부터 극동러시아 연해주 이주농업으로 고려인촌을 형성하며 전성기를 누렸던 고려인들에게 다시 기회의 땅으로 만들기 위해 최근 한국의 비영리 사회단체들의 노력이 두드러지고 있다. 여기 김현동 대표는 강원도 동해시에 사회적기업 ‘바리의꿈’을 설립하여 연해주에서 유기농으로 생산된 콩과 보리 등의 농산물로 가공한 식품을 협동조합을 통해 유통하고 있다.

「연해주 고려인의 꿈」 하편 기획에서는 고려인들의 연해주 농업개발 역사를 시기별 활동으로 나눠서 살펴본다. 이 기고는 본지의 지난 2월 11일자 상편에 이어 하편으로 게재한다.(편집자 주)

제1기 : 2004~2005년-모색 및 시동(비닐하우스와 자연농업)

2004년 사업초기 한국의 주택건설협회가 건설하던 우정마을을 고려인농업센터로 만들며 농업정착 사업을 시작하였다. 연해주 대규모 영농에 대한 순차적 접근방법 그리고 고려인의 우선적 정착모델 개발 필요성, 중국 농산물의 물량 전에 대비하기 위한 방안 등이 우선 과제로 제기 되었다.

이를 위해 우정마을 10여 가구와 동북아평화기금의 직영 텃밭 등을 중심으로 영농시기를 조절할 수 있고, 소규모 실험이 가능한 비닐하우스 시설 농업을 시작 하였다.(대출방식-재외동포재단 지원)

이미 세계적인 추세가 지속 가능한 영농, 생태적인 영농의 시대로 가고 있음을 인식하고 생산량만을 중시하는 기존의 화학영농과 차별화 되는 질적인 건강한 먹거리로 무농약, 무제초제, 무화학 비료로 생산하는 자연농업을 채택하게 되었다.

21세기 고려인의 연해주 재 정착농업의 상징을 '자연유기농업'으로 규정한 것이다. 이를 위하여 한국에서는 평화연대와 자연농업협회 등 시민단체가 함께 ‘고려인농업희망본부’를 결성하여?이 사업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한편 두 번째 고려인 정착마을로 끄레모바를 선정하고 고려인들의 이주와 주택결연 및 농업대출 결연을 시작하였다. 1500달러 상당의 주택 구입을 위한 주택결연과 영농을 위한 3000달러의 영농결연을 끄레모바 마을을 중심으로 시작하였다.

제2기 : 2006~2007년-건설기

연해주 끄레모바 마을을 기존마을에 주택을 사서 입주하는 새로운 방식의 고려인 정착마을로 조성하기 시작한 것을 필두로 아시노브까, 쑨야센, 노보루사노브까, 치까로브까 등의 마을에도 결연사업방식으로 2009년까지 50여 채 주택구입과 100여 가구 대출을 중심으로 마을사업을 넓혀갔다.

각 마을 마다 센터를 만들어 총 6마을 6센터를 만들었다. 그 중 ?쑨야센, 노보루사노브까, 치까로브까 등의 마을은 주로 기존의 거주 고려인들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마을사업이 이루어졌다. 이 마을들에는 영농대출과 자연농업 교육이 이루어졌다.

2005년부터 끄레모바에 자리 잡은 고합그룹의 프림코 농장에서 생산한 유기농 콩으로 청국장 가공을 실험하고, 제조 방법을 가구별로 전수하여 가구별 청국장 공장을 20여 곳 만들어 생산하게 되었다.

이는 한국에서의 후원자들의 지지를 끌어내는 계기가 되어 판매에 대한 획기적 계기를 만들어 갔다. 한국에서는 이 농산물과 가공물의 판매를 위해 '바리의 꿈'을 설립하였고, 고도원의 아침편지를 통한 청국장 판매는 가공공장을 안정적으로 꾸려가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2007년에는 프림코 농장을 인수하였다.

한·러합작 끄레모바의 프림코 농장은 54.6%의 지분인수로 2007년 10월 마무리 됐다. 원래는 4,200ha 규모의 농장이었으나, 약 10년간 방치되어 720ha의 토지만 남긴 채 나머지 토지는 군과 개인에게 토지가 반납 또는 이전된 상태였다.

하지만 10년 이상 제초제, 화학비료 등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콩, 보리, 밀, 귀리 등을 윤작으로 생산하여 자연농업 생산지로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현재 이 농장에서 생산한 콩으로 약 50가구의 고려인 가구가 청국장 등을 생산하여 안전한 먹거리를 원하는 한국의 소비자들에게 공급하고 있다.

한편으로 이 농장은 원래 사료농장 시설이었는데 현재 침체 상태에 있다. 마을에서 고려인들이 다시 시도 중인 돼지, 소 등의 자연축산에 필요한 유기농 사료를 보급하는 방향으로 사료농사를 재개할 것이다. 옥수수생산과 사료가공시설이 들어서면 작지만 실험모델로 충분히 기여하게 될 것이다.

한편 '70-70 귀향'이라는 프로젝트로 고려인 이주 70주년 기념 프로젝트를 통해 이주한 사람들을 시작으로 미하일로프카 쑨야센 마을 옆에 새로운 고려인정착마을인 '고향마을' 조성이 시작되었다.

고향마을은 구소련시절 양계농장이었던 마을에는 약 100ha에 달하며 인근에 250ha의 호수와 숲 초지 등 100만여 평의 부지와 당시 사용하였던 10여 동의 낡은 건물이 있다. 이 농장은 우정마을 건설본부로 사용되고 있었는데 대한주택건설협회로부터 고려인마을 부지로 기증 받았다.

고려인은 중앙아시아와 연해주 등지의 러시아 전역에 흩어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쪽도 저쪽도 정착이 만만치 않아 유민화로 전락하고 있다. 고려인 강제이주 70주년을 맞아 충분하지는 않지만 상징적으로 이들의 사정을 알리고 다음 사업의 초석으로 삼고자 70명의 이산가족의 상봉 이주를 지원하는 사업을 진행하였다.

결과적으로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SKC 등의 지원으로 60명의 상봉과 40여 명의 이주를 지원하였다. 초청하는 가족들은 먼저 6개 마을에 이주하여 살던 사람들 중 희망자들에 한하여 신청을 받았다. 이들은 1인당 300달러씩의 교통비 지원, 200달러씩의 국적회복지원, 가구당 2000달러의 주택비 지원, 1000달러의 주택마련 대출, 3000달러의 농업대출, 월 300달러 이상의 동계 일자리 지원을 받고 있다.

이들 중 4가구는 ?쑨야센의 고향마을 신축 부지로 이주하여 고향마을 건설과 청국장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 이 사업은 MBC의 강제이주 70주년 특집 2부작 '귀향'으로 방영되어 일반국민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2007년 11월 연해주 고려인 농업정착 지원사업과 연해주 농업 중)

이 해 우정마을에서는 8월 15일 6개의 고려인마을과 미하일로프까군이 함께 개최한 '다민족 평화축제'에 500여 명의 지역 다민족과 한국의 청년들이 참여하여 어엿한 고려인 마을로 거듭나게 되었다. 한편 한국뿐 아니라 유럽 등 외국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고 중앙방송에서는 고려인이주마을로 '우정마을'과 '고향마을'이 소개되기도 하였다.

   
북한 무산 부근의 두만강변(2005년 5월)의 모습으로 산꼭대기까지 밭을 갈아 놓고 있다(사진=바리의꿈)

제3기 : 2008~2009년-자립방안 모색기(프림코와 공동작업장)

2008년부터 가구별로 운영하던 가내 청국장 공장은 효율성과 위생 등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다목적 마을공동작업장으로 변화·발전하게 되었다.(사회복지공동모금회·국제로타리재단3640지구) 우정마을, 고향마을, 끄레모바, 아시노브까, 노보루사노브까에 공동작업장을 만들어 청국장에서 된장, 메주 등으로 장류 전반과 민들레, 고사리 등의 채취 가공 그리고 고춧가루, 김치 등으로 생산 범위를 넓혀 갔다.

이를 위한 생산지로 프림코 농장을 약 1600여 ha(500만평)로 확대하고, 본격적 유기농 부지도 확보하였다. 양돈사업도 개인농에서 협업농을 위한 출발로 모(母) 돈사를 운영하게 되고, 낙농 축산도 유제품의 공동판매를 모색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가구별 모색에서 협업적 모색으로 전화하는 시기를 맞게 되었던 것이다. 협업은 안 된다는 인식에서 다시 협업이 필요하다는 인식으로 전환하는 시기였다.

유통과 판매에 있어서도 그 동안의 경험을 총괄하여 우선 마을 센터, 식당 등 내부의 식자재부터 자급자족하자는 취지로 먹거리를 공급하기 시작하여 내부시장을 운영하고, 주말마다 우수리스크 기념관 부지 내에서 주말시장을 운영하였다. 2009년 하반기에는 우유, 돼지고기, 계란, 된장 각종 채소, 김치, 고사리, 나물, 치즈, 드보락 등 마을 센터와 식당에는 대부분의 식자재를 자급하게 되었다.

하지만 생산가구가 100~200여 가구에 이르고, 500만평의 콩 등 곡류 시장에서 생산되는 농산품들을 위해서는 새로운 시장이 필요하게 되었다. 더구나 2009년 경제 위기와 함께 한국 경제 사정도 나빠지면서 약속했던 청국장 구입과 한국 단체들의 지원 사업 중도포기 등이 발생하면서 여러 계획이 난항에 빠지고, 오히려 판매 목표가 후퇴하게 되었다. 이를 통해 생산자들이 안정적으로 정착 발전 할 수 있는 유통과 판매 조직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게 되었다.

'개인에서 협동으로' 지원사업 초기에는 소련의 사회주의적 협업 방식이 결국은 망하는 길이었다는 경험을 강하게 가지고 있어 친척끼리도 협업을 꺼리고 생산에서 판매까지 개인 혹은 가구별로 진행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초기 3000달러의 대출로 독자적 자활을 모색하던 가구는 실제 생산과 유통 과정에서 한계를 느끼고 협업의 필요성을 느껴가게 되었고, 이런 방향이 자연스럽게 공동작업장과 공동 판매를 모색하며 협업적 방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과정이 되었다.

△기본 생산토대 확보와 생협으로의 방향

200여 농가와 농장, 가공장등 일정한 생산규모와 생산품목을 확보하였다. 대부분의 먹거리는 자급이 가능하게 되었고, 우수리스크나 한국의 회원들에게 공급할 정도의 생산량도 가능하게 되었다.

지원 사업에서 구축된 기반이 생협운동으로 나아가는 물질적 토대가 마련되었고, 이는 한국의 한살림생협이 만들어진 사례와 유사한 과정이라 할 수 있겠다. 한살림생협도 수재를 돕기 위한 해외원조로 만들어진 생산기반과 조직이 협동조합운동으로 발전된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소수민족 정착과 인구 증가 사례

러시아 사회에서도 연해주 고려인 농업정착 지원 사업은 소수민족이 이동하여 성공적으로 정착한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2009년에는 고향마을에서 '연해주 민족총회'를 열고 이주 사업을 평가하였고, 지역의 다민족 평화축제를 이끌어가는 주역으로 등장 하였다. 한편으로 극도의 고질적인 문제인 농촌살리기와 인구증강에도 모범적 사례로 평가되었다. 러시아라는 다민족 사회에서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모범으로 살아가는 소수민족으로 평가되고 있다.

전망과 계획…지속 가능한 자연유기농업으로

   
크레모바 고려인 이주 농가 3호로 5년을 거주하면 소유권을 이전하여 준다(사진=바리의꿈)

시간이 흐를수록 연해주에서도 유기농과 건강한 식품의 수요는 점점 늘어가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연해주 유기농 콩에 대한 관심은 날로 높아지고 있는 추세이다.

장기적으로 유기농이 생산량이 적다는 통념도 비닐하우스 농사 5년의 경험과 휴경과 윤작을 통한 콩 생산으로 극복되었다. 자연농이 관행농과 비교 할 때 생산비와 생산량을 종합하면 결과적으로 크게 차이 나지 않을 뿐 아니라, 지속 가능한 생태농업으로 더욱 긍정적 측면이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하지만 동북아 생협 방식으로 생협 건설의 방법론을 제안하였으나 이런 모색에 대한 실천은 뜻하지 않은 상황이 발생하여 2012년 이후로 늦추어 지게 되었다.

단체·기업의 지원에서 자활자립을 목표로 협동경제로의 전환

△농업정착사업의 위기와 새로운 모색

2009년 고려인 이주 150주년기념관(이하 기념관) 준공과 함께 기념관을 중심으로 연해주 생협을 조직하려던 계획은 한국 외교부의 일방적 조치에 의해 기념관의 운영이 고려인민족문화자치회로 이관 되면서 중단하게 되고, 연이어 기금 이사장과 사무국장의 러시아 입국이 5년간 불허되는 사태로 발전하면서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재정적 압박 등으로 프림코 농장도 2013년 폐업을 단행하게 되었다. 이 사태의 여파로 그동안 지원교류사업의 중심단체였던 한국의 NPO단체인 (사)동북아평화연대는 기념관의 농업정착 지원사업에서 손을 떼고 교육과 문화를 지원하는 사업으로 전환하였다.

이후 농업정착사업은 사회적 경제 영역의 사회적 기업 '바리의 꿈'이 맡도록 하면서 동북아평화연대의 회원들 중심으로 한국 내에 동북아생협을 조직하려던 계획도 수정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로써 초기 동북아차원의 협동조합 운동의 모색은 한국생협의 국외 생산품에 대한 보수적 입장과 동북아평화연대의 시민단체 역할론에 의한 방향 수정으로 시련을 겪으며 바리의 꿈과 연해주동북아평화기금은 새로운 차원의 모색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2011년 바리의 꿈은 서울에 있던 사무실을 연해주와 물류, 여객의 항로가 있는 강원도 동해로 이전하면서 작은 창고와 작업장을 만들어 연해주의 생산품을 판매 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다양한 방식으로 조직하기 시작하였다.

유기농 전통장협동조합(준), 바리의꿈 협동조합, 소이앤허브 동해사회적경제공동매장, 사회적협동조합바리교육네트워크 등이 추진되었다. 이와 함께 연해주 기금에서는 우선 블라디보스톡 교민들과의 꾸러미 배달인 바리바리 생협과 우정마을 하계 유기농 채소매장을 개설하는 사업을 추진하게 되었다.

   
극동러시아 연해주 고려인촌인 우정마을을 찾은 강원도 사절단과 우정마을 사람들(사진=바리의꿈)

유기농 전통 장 협동조합의 추진( 2011~2014)

연해주 마을의 일거리를 위해서는 일정한 물량을 판매해 줄 판매처가 필요 했는데, 바리의꿈 은 유기농 메주의 전통장 공장 판매에 주목하였다. 초기에 생각처럼 빠른 속도로 전통 장 협동조합이 조직되지는 않았다. 기존의 규모 있는 전통 장 공장들은 대부분 유기농 콩과 메주를 확보할 수가 없어서 유기농장 생산을 포기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바리의꿈의 메주를 사용하여 유기농 장을 만들려면 지장자치단체로부터 받은 소위 '전통 장 인증'이라는 것을 포기해야 했다. 전통 장류업체는 유기농을 할 것이냐 전통 장류를 할 것이냐의 기로에 서게 되고, 대부분 전통 장류 인증을 전제로 자치단체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전환이 쉽지 않았다.

새롭게 시작하는 업체를 중심으로 처음부터 유기농 전통 장으로의 방향을 모색 할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조합의 중심은 제도가 개혁되지 않는 한 전통 장 인증을 포기해야 했고, 그만큼 유기농 전통 장 협동조합의 구축은 시간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로운넷과 바리의꿈 협동조합

2013년부터 바리의 꿈의 그간의 해외농업으로서의 성과가 인정되어 연해주에서 자력으로 수확한 곡물(콩)에 대한 수입이 가능해지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사회적 기업을 지원·활성화 하고자 하는 취지로 설립된 단체인 (주)이로운넷과 공동으로 두유를 생산하였는데 소비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게 되었다.

비로소 연해주 생산물이 소비자에게 수입품이라는 장벽을 넘어서서 반응을 얻게 되는 사건이었다. 2014년 두유에 이어 같은 네트워크 소속인 해피브릿지에 유기농 콩국수용 콩물을 공급하게 되었다.

이 경험을 이어받아 5개(해피브릿지협동조합, 우리밀급식, 사회적기업 이로운넷, 쿠키쇼핑, 사회적기업 바리의꿈)의 사회적 경제 기업이 모여 ‘바리의꿈 협동조합’을 창립하였다. 이 협동조합은 연해주 고려인들과 경제적 교류를 통하여 정착을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연해주 콩의 가공과 판매를 협동하는 것을 주 사업으로 삼고 있다.

△연해주 바리바리 생협 활동 시작

연해주에서는 2010~2012년 까지 시련기를 딛고 일어나 2013년 블라디보스토크 교민들을 대상으로 건강한 유기농 먹거리를 공급하는 꾸러미 배달생협을 모색하게 된다. 한인회와 유학생회들과의 설명회를 통해 2013년 6월 첫 꾸러미 배달을 하게 되었다. 2014년 마지막 배달까지 총 40여 회를 실시하였다. 처음에는 20여 가구 16가지 품목으로 시작하였는데 지금은 약 40여 가지의 품목을 100여 가구의 회원들에게 공급하고 있다.

블라디보스톡은 한국과 지근에 위치하면서도 식료품 물가도 비싸고 유기농 개념이 아직 없어 건강한 농산물 구별이 쉽지 않았다. 연해주 고려인 마을에서는 유기농으로 농사를 지었지만 연해주에서의 판로가 많지 않아 농사의 지속성을 담보하기가 쉽지 않았었다.

2014년 겨울에는 교민들이 중심이 되어 고향마을에 떡방앗간 시설을 지원하였고, 2014년부터는 떡(가래떡, 떡볶이용 떡, 절편, 떡국용 떡)을 꾸러미에 포함시켰는데 많은 호응을 불러 일으켰다. 2014년에는 재외동포재단에 의해 지원된 표고버섯시설에서 버섯이 재배되어 일반시장과 생협에서 시판 되었는데 선풍적 인기를 모으며 완판 되는 성과를 기록했다.

△사회적 협동조합 바리교육네트(준)

2004년부터 진행되던 정착마을의 한글문화학교를 정상화시키기 위한 노력이 재개 되었다. 두 사람의 선생님을 고정 배치하고 아이들을 위한 차량을 배정하는 등 지속적인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였다.

한국에서 이를 돕기 위한 바리의 꿈의 교육지원활동도 더욱 전문화시키기 위해 사회적 협동조합방식으로 출범을 준비 중이다. 이 협동조합은 후원자와 실무자들이 동등한 권리로 참여하며, 우정마을센터 뿐 아니라 연해주 4개 한글문화학교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운영을 위한 지원 사업을 실시한다.

2015년부터 강원도교육청과 협의하여 1인의 교사가 파견되고, 강원도에서의 한글연수도 계획되고 있다. 바리교육네트워크는 그동안 진행하던 중국의 조선족학교와의 교류 그리고 일본의 민족학교와도 교류관계를 만들어 동북아 코리언의 평화교육을 준비하고 있다.

△강원도 동해시의 소이앤허브 사회적 경제 공동매장

2014년 동해시는 바리의 꿈의 제안으로 지역의 사회적기업과 협동조합들이 모여 카페형 사회적 경제 공동매장을 개설하였는데, 이 공간에는 바리의꿈의 콩 제품 전시코너가 마련되었고, 즉석두부와 즉석두유를 생산하고, 두부쉐이크, 두유티, 두부샐러드 등의 콩 제품 요리가 개발되어 있다. 동해에는 이를 시작으로 장차 다양한 콩 가공 시설과 식당, 전시장, 체험장 등의 콩 문화의 메카 동해를 구상하고 있다.

   
농산물의 가공시설 떡방앗간을 설치하고 있는 고려인의 모습(사진=바리의꿈)

연해주 농업개발의 전망과 결론

△연해주 유기농 시장 및 가공공단 구축으로 콩 문화 벨트 형성

지금까지 연해주 콩과 유기농 채소시장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것이었다면 이후 이를 모델로 본격적인 유기농 생산, 가공 시설과 유기농 시장의 건설이 필요하다. 콩과 관련해서는 한국과 일본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하나 원료 문제로 사라져 가고 있는 압착식 유기농콩기름 공장과 인류의 대안식품인 유기농 콩단백(콩고기) 공장 등이 동북아 지역에 수요가 있고, 좋은 일자리도 선도할 것이다.

지역적으로도 최근 러시아인들에게 콩소스로 다가가기 시작한 간장 등 장류와 최근 육류와 우유 대신 건강식품으로 제기되는 두부, 두유, 콩나물 등의 수요도 눈여겨 볼만하다.

이들 건강식품과 한국의 떡, 김치 등 전통음식으로 연해주 일대에 새로운 식문화 형성과 공급도 가능해 보인다. 고려인마을 우정마을에서 유기농 채소가 생산·판매되는 일이 이미 10년째 지속되면서 브랜드가 되어가고 있어서 유기농 채소 수요는 꾸준히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유기농 채소 시장의 확대와 함께 규모 있는 유기농 채소 비닐하우스 단지가 여기(시베리아 횡단 철도와 도로 중간)에 들어선다면 유라시아 철도의 명물이 될 것이고, 자연스럽게 유라시아 유기농 시장으로 성장하여 갈 것이다.

이와 함께 동북아 콩 문화 축제, 박람회 등의 문화행사 개최를 통하여 고려인의 3세대 농업은 '유라시아의 자연 유기농업'으로 자리 매김하게 될 것이고 동해지역의 같은 차원의 노력과 결합으로 ‘콩 문화벨트’의 중심이 되어 갈 것이다.

우정마을은 시베리아 횡단철도와 국도 사이에 위치하고 있어서 이 길을 갈 때는 반드시 거쳐 가게 되어 있다. 이미 우정마을은 상징적인 빨간 기와집과 더불어 연해주에서 고려인 마을이라 불리며 모르는 사람들이 없을 정도이고, 고려인 마을에서 10년째 유기농 채소를 한다는 사실도 많이 알려져 있다.

△고려인 농업정착을 통한 남·북·러 농업협력

이런 고려인 마을을 기반으로 농업생산 중심이 마련되는 과정에 자연스럽게 북한 농업 인력의 수요가 발생하고, 이 중심의 기능중 하나로 지역 주변의 농산물 집하와 수출도 가능하게 될 것이다.

이를 통해 북한의 부족한 식량 공급원으로서의 기능도 가능하게 하고, 이에 따라 주변 농장의 생산성을 높이는 일에도 관여하게 될 것이다. 필요에 따라 이를 위한 별도의 생산농장 운영도 가능해 질 수 있을 것이다.

이 시점에 이 사업의 처음 목표 중 하나였던 고려인 농업정착을 통한 남·북·러 농업협력의 프로젝트도 다양하게 구상될 수 있다. 특히 고려인 마을을 통한 북한 인력들의 기본생활과 관리는 경제적으로도 문화적으로 매우 효율적이고 생산적으로 운영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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