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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봉화산 철쭉이 만발 했더이다"
조경렬 기자  |  herald@heraldjourna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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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6.18  15:5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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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 남원의 봉화산은 백두대간의 한 축으로써 봄이면 철쭉의 군락지로 유명하다.

명산기행_백두대간 봉화산

"백두대간 봉화산 철쭉이 만발 했더이다"   
넓은 평원에 펼쳐지는 철쭉꽃 잔치


집을 나서는 아침 공기가 매우 상쾌함을 전해 왔다. 참 오랜 만에 산행에 나서는 아침이라서 그런지 맑은 햇살이 싱그러운 오월의 신록을 영롱하게 수놓고 있었다. 좋은 기분이라서 오월의 신록은 연초록의 아름다움이 더했다.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는 창가로 맑은 햇살은 빛났다. 그렇게 4시간을 달려 찾아든 곳이 전북 남원시 아영면 성리 하성마을 입구.
 
흥부마을로 알려진 이곳은 그 유명세 값을 하지 못하고 찾는 관광객이 거의 없는 듯 느껴졌다. 가끔 찾는 산행객들의 발걸음이 전부인 듯 말이다. 이곳 성리 하성마을이 흥부마을로 된 유래는 이렇다.

흥부전의 배경이 '흥부마을'
 

   
▲ 하성마을의 전원적인 모습

남원시 아영면 성리 하성마을은 판소리 다섯 마당 중의 하나인 흥부전의 배경이다. 이 마을은 전해 내려오는 설화와 지명을 근거로, 흥부가 정착하여 부자가 된 발복지(發福地)로 밝혀졌다.

이 마을에는 오래 전부터 복덕가(福德家) 춘보설화(春甫說話)가 전해져 오고 있다. 흥부가와 춘보설화는 가난 끝에 부자가 된 인생역정, 선덕의 베품을 내용으로 한다는 점에서 그 내용이 유사하다.

실재로 성리마을에는 박춘보(朴春甫)의 묘로 추정되는 무덤이 있다. 매년 정월 보름에 망제단에서 흥부를 기리는 춘보망제를 지낸다.

성리에는 흥부전에 등장하는 지명이 마을 곳곳에 남아있다. 허기재, 고둔터, 새금모퉁이, 흰묵배미 등의 지명은 고전에도 등장했던 지명이다. 길 양쪽으로 감자농사가 한창인 '허기재'는 허기에 지쳐 쓰러진 흥부를 마을 사람들이 도왔던 고개라고 전해진다.

'고둔터'는 고승이 가난에 시달리고 있는 흥부에게 잡아 준 명당으로 흥부가 제비 다리를 고쳐준 발복 집터이다. 실재 '고둔'이라는 지명은 곳집(창고)이 모이는 터, 즉 부자가 되는 터라는 뜻이다. 이곳은 장수군 번암면으로 넘어가는 짓재 고갯마루에 높다랗게 자리 잡고 있으며, 마을의 산자락과 이웃 논이 한 눈에 들어온다.
 
남원시청 문화관광과에 따르면 '흰죽배미'란 장소는 흥부가 부농이 된 후 은인들에게 보답으로 주었다는 논이란다. 흥부 아내가 이웃들이 쑤어준 흰죽을 먹고 살아나서 '흰죽'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노디막거리'는 흥부가 부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놀부가 화초장을 지고 건넜다는 개울로 알려지고 있다.
 
지금은 콘크리트로 덮여 있지만 개울가에는 물억새가 무성히 자라고 있다. 이곳저곳을 거닐면서 형제간의 우애, 부(富)와 빈(貧), 성공한 이후에도 어려웠던 시절 함께 했던 이웃을 잊지 않은 겸손과 나눔의 정신은 오늘날에도 함께하는 세상의 거울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집들은 마을 입구부터 폐가로 변한 산촌의 민가는 사람이 살지 않은 지 오래듯 했다. 잡초와 무너져 가는 벽들이 흉물로 변하고 있어 우리 농촌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더 이상 농촌은 경제적 부가가치가 적어 젊은 사람들은 모두 도시로 도시로 경제활동 영역을 찾아 떠난 것.

   
▲ 봉화산 철쭉

"나무는 德을 지녔다"
 
하성마을을 지나 성리 복성이재에서 부터 산행을 시작했다. 정오의 햇살을 한껏 받아 신록은 더욱 상큼함을 발하고 있었다. 산간 마을에는 모내기가 한창이다. 하지만 일하는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고 이양기만 간간히 보일 뿐이었다. 소나무 군락지로 접어드니 송진 냄새가 코를 찌른다. 무질서 속의 질서를 찾아 제 나름대로 가지와 곁가지를 붙이며 자라고 있는 나무들을 보면서 문득 이양하 선생의 수필 '나무'가 떠올랐다. 그 내용을 잠시 읊조려 보면 이렇다.

   
▲ 백두대간에서 내려다 본 아영마을

"나무는 덕(德)을 지녔다. 나무는 주어진 분수에 만족(滿足)할 줄을 안다. 나무로 태어난 것을 탓하지 아니하고, 왜 여기 놓이고 저기 놓이지 않았는가를 말하지 아니한다. 등성이에 서면 햇살이 따사로울까, 골짜기에 내려서면 물이 좋을까 하여, 새로운 자리를 엿보는 일도 없다.

물과 흙과 태양의 아들로, 물과 흙과 태양이 주는 대로 받고, 득박(得薄)과 불만족(不滿足)을 말하지 아니한다. 이웃 친구의 처지(處地)에 눈떠 보는 일도 없다. 소나무는 나무대로 스스로 족하고, 진달래는 진달래대로 스스로 족하다.

나무는 고독(孤獨)하다. 나무는 모든 고독을 안다. 안개에 잠긴 아침의 고독을 알고, 구름에 덮인 저녁의 고독을 안다. 부슬비 내리는 가을 저녁의 고독도 알고, 함박눈 펄펄 날리는 겨울 아침의 고독도 안다. 나무는 파리 움쭉 않는 한여름 대낮의 고독도 알고, 별 얼고 돌 우는 동짓달 한밤의 고독도 안다. 그러면서도 나무는 어디까지든지 고독에 견디고, 고독을 이기고, 고독을 즐긴다.

   
▲ 철쭉길은 꽃이 만개 하는 5월 초 중순이면 장관을 이룬다.

나무에 아주 친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달이 있고, 바람이 있고, 새가 있다. 달은 때를 어기지 아니하고 찾고, 고독한 여름밤을 같이 지내고 가는 의리(義理) 있고 다정한 친구다. 웃을 뿐 말이 없으나, 이심전심(以心傳心) 의사(意思)가 잘 소통되고 아주 비위에 맞는 친구다.

바람은 달과 달라 아주 변덕 많고 수다스럽고 믿지 못할 친구다. 그야말로 바람장이 친구다. 자기 마음 내키는 때 찾아 올 뿐 아니라, 어떤 때에는 쏘삭쏘삭 알랑거리고, 어떤 때에는 난데없이 휘갈기고, 또 어떤 때에는 공연히 뒤틀려 우악스럽게 남의 팔다리에 생채기를 내놓고 달아난다.

새 역시 바람같이 믿지 못할 친구다. 자기 마음 내키는 때 찾아오고, 자기 마음 내키는 때 달아난다. 그러나 가다 믿고 와 둥지를 틀고, 지쳤을 때 찾아와 쉬며 푸념하는 것이 귀엽다. 그리고 가다 흥겨워 노래할 때, 노래들을 수 있는 것이 또한 기쁨이 되지 아니할 수 없다.

나무는 이 모든 것을 잘 가릴 줄 안다. 그러나 좋은 친구라 하여 달만을 반기고, 믿지 못할 친구라 하여 새와 바람을 물리치는 일이 없다. 그리고 달을 유달리 후대(厚待)하고 새와 바람을 박대(薄待)하는 일도 없다."

봉화산, 분홍빛 철쭉꽃으로 물들다

   
▲ 봉화산의 백두대간 표지석

그렇다. 나무는 德을 지녔다. 새가 날아왔다 그냥 가도 아무 푸념 없이 보내고 다시 찾아와도 팔베개를 내어준다. 이것이 나무의 덕성이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참 인간은 얼마나 간사하고 교만한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었다. 이런 덕을 지닌 나무를 마음대로 베어내고 가지를 꺾고 잎새를 따내는 자가 인간이다.

이런 생각에 젖어 산행을 하다 보니 일행의 맨 뒷전으로 밀렸다. 나무와 꽃 사진을 찍는다고 후미가 된 이유도 있지만 이 싱그러운 신록을 보고 즐기기 위함이다. 문득 지금 내가 한반도의 등뼈격인 백두대간의 등줄기를 오르고 있다는 생각을 잊고 있었다. 이 남원의 봉화산은 백두대간의 등줄기 구간이다. 말하자면 남으로는 삼봉산과 지리산을 잇고 북으로는 백운산과 남덕유산을 잇는 백두대간의 본류 봉화산이다.

이 봉화산은 정상아래 주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철쭉 군락이 온 산을 뒤덮고 있어 마치 분홍의 비단이 온산을 뒤덮고 있는 듯했다. 주능선을 오르는 구간에 오래 전에 산불로 나무들이 완전히 소실돼 잡목들만 무성했다. 능선에 나무가 없고 그늘이 없어 여름과 겨울 산행에는 매우 힘들 것 같았다. 다만 봄 산행에 탐방객이 몰리는 이유는 철쭉 군락지로 아름답기 때문이다.

지리산의 바래봉 철쭉은 너무나 잘 알려진 곳이지만 봉화산 철쭉도 그 분홍색 꽃들의 축제가 자연의 신비를 깨닫게 하기에 빼어난 아름다움이 있다. 철쭉 군락으로 난 산행 길로 접어드니 2m 이상의 높은 키로 자란 철쭉이 빽빽하게 숲을 이뤄 길이 아니고서는 빠져나갈 공간이 없을 정도로 우거져 있다. 이 봉화산(919.8m)은 전북 남원시와 장수군,경남 함양군의 경계를 이루며 펼쳐지는 백두대간으로 철쭉꽃이 무척 곱다.

산릉 곳곳에 철쭉이 드넓게 군락을 이뤄 온종일 꽃향기에 취하며 걷는 봉화산 철쭉은 5월 중순에 만개한다. 산은 언제나 변함없이 그 곳에 우뚝 서 있다. 다만 간사한 인간이 왔다 내려 갈 뿐이다. 산은 눈보라와 장맛비와 운무가 뒤덮여도 묵묵히 서 있을 뿐 말이 없다. 거짓 없이 계절 따라 새 옷으로 갈아입을 뿐 변함없는 게 산이다. 그래서 仁者는 산을 좋아하고 산을 찾는가 보다.

하산 길은 경남 함양군 백전면 대안리로 임도를 따라 내려 왔다. 산 아래 마을을 이루고 계단식 논과 밭을 일구며 수백 년을 살아왔을 자연부락인 대안리 마을도 유서 깊은 마을임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수백 년생 나무들과 마을 입구 느티나무는 그 역사를 증언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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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조아
고장의 내력과 산행이야기가 참 좋습니다~~
안산즐산하세요~~

(2014-09-18 14:3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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