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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한국의 세계유산 탐방하기…창덕궁 그리고 석굴암왕실 정원의 정수 창덕궁 후원, 근대 창조적 건축 수원화성
조경렬 기자  |  herald@heraldjourna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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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6.09  20: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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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후원. 가장 한국적인 정원의 모습을 보여 주는 후원의 부용지와 부용정으로 비원이라고도 했지만 일제가 붙인 명칭이라고 해서 사용하지 않는다(사진:헤럴드저널)

[헤럴드저널] 조경렬 기자= 세계문화의 중심, 한국 전통문화 이야기로 창덕궁을 비롯해 해인사 장경판전, 수원화성, 경주역사유적지구 신라문화를 탐방하기로 합니다. 한국의 역사 문화의 산실, 문화재를 답사하다 보면 처음 갈 때와 두 번째 갈 때의 느낌이 다릅니다. 그리고 답사하기 전에 그곳에 대하여 미리 자료를 살펴보고 조사하여 가면 이해가 빠릅니다.

우리가 흔히 고궁에 가서도 정전이나 궁궐 건축의 귀마루에 장식되어 있는 동물상들은 무심결에 지나칩니다. 이를 잡상이라고 하는데, 순수 우리말로는 ‘어처구니’입니다. 이런 상식들을 미리 알고 탐방하면 종류와 순서, 개수 등에 대한 이해로 문화재에 대한 안목이 더욱 넓어집니다.

   
△소요정의 소소한 가을 풍경

창덕궁…광해군부터 고종까지 258년간 정궁이었다

창덕궁은 비교적 건물배치가 오밀조밀해 조금은 답답함을 줍니다. 하지만 그 원형 보존이 매우 잘 되어 있어 한국 고궁의 백미로 꼽습니다. 그래서 보존상의 이유로 제한적인 입장만 가능합니다. 경복궁의 시원한 눈 맛과 웅대함 보다는 창덕궁은 그보다 고졸한 맛을 느끼게 하는데 그것은 아마도 한국 궁궐정원의 정수인 후원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창덕궁은 궐의 정문격인 돈화문(보물 제383호)을 출발하여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화강암을 사각으로 조형해 만든 아치형의 금천교가 나옵니다. 이것은 1411년에 축조한 약 6백년의 역사를 지닌 서울의 현존 석교 중 가장 오래 된 돌다리입니다. 이 금천교를 지나 왼쪽으로 돌면 아담한 모습의 정전 인정전(국보225호)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왕의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외국사신 접견 등 국가의 중요한 행사를 거행했던 곳으로 현재의 건물은 1804년(순조4년)에 복구한 것으로 조선 말기의 건축양식입니다.

약간 위쪽으로는 연이어 선정전과 희정당이 있는데, 선정전은 왕과 신하가 국사를 논의하던 곳으로 우리 궁궐 중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청기와 전각입니다. 희정당 뒤로 돌아가면 대조전(보물816호)이 나옵니다. 이곳은 왕과 왕비의 침전입니다.

   
△낙선재를 관람하는 탐방객들. 이곳은 이방자 여사가 한 때 기거했던 곳이다(사진:헤럴드저널)

이웃한 창경궁과 인접한 곳에 덕혜옹주와 영왕비 이방자 여사가 기거했던 낙선재를 지나 숲 속으로 오르면 그 끄트머리에 아름다움의 절정 왕실 정원 후원이 나옵니다. 공식 명칭은 부용지와 부용정입니다. 이 후원은 1405년 창덕궁 창건당시 조성된 것으로 임진왜란 때 대부분의 정자가 소실되고 지금 남아 있는 누정은 인조 이후 증축한 겁니다.

부용지에는 연잎이 수면을 덮고 있고, 그 가운데 작은 바위섬에 늙은 적송이 긴 허리를 구부리고 서 있습니다. 후원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통 조원 시설로서 자연적인 지형에다 꽃과 나무를 심고 못을 파서 아름답고 조화로운 건물 배치로 조경미의 절조를 보여줍니다.

창덕궁은 1610년 광해군 때 정궁으로 사용한 후 부터 1868년 고종이 경복궁을 중건할 때까지 258년 동안 역대 제왕이 정사를 보살펴 온 법궁입니다. 건축물의 배치가 자연스런 산세에 따라 자연지형을 크게 변형시키지 않고 그 산세에 의지하여 인위적인 건물이 자연의 수림 속에 포근히 자리를 잡도록 했습니다.

이는 자연과 인간이 만들어낸 완벽에 가까운 건물 배치로 평가 됩니다. 또한, 왕들의 휴식처로 사용되던 후원은 300년이 넘은 거목과 연못, 정자 등 조원시설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도록 함으로써 건축사적, 조경사적 측면에서 귀중한 가치를 지닙니다.

이런 가치를 인정받은 창덕궁은 1997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정받았습니다. 동아시아 궁전 건축사에 있어 비정형적 조형미를 간직한 대표적 궁으로 주변 자연환경과의 완벽한 조화와 배치가 탁월하다는 평가입니다.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 내부 모습

550년 세월의 해인사 장경판전

해인사 장경판전은 13세기에 축조된 세계적 문화유산인 고려 대장경판 8만여 장을 보존하는 보고로서 해인사의 현존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건물입니다. 장경판전은 정면 15칸이나 되는 큰 규모의 두 건물을 남북으로 나란히 배치하고 있습니다.

장경판전 남쪽의 건물을 수다라장, 북쪽의 건물을 법보전이라 하며 동쪽과 서쪽에 작은 규모의 동·서사간판전이 있습니다. 건물을 간결한 방식으로 처리하여 판전으로서 필요로 하는 기능만을 충족시켰을 뿐 장식적 의장을 하지 않았습니다. 실용적 가치를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전·후면 창호의 위치와 크기가 서로 다르게 설계되어 있는데, 이는 통풍의 원활, 방습의 효과, 실내 적정 온도의 유지, 판가의 진열 장치 등이 매우 과학적으로 우리 선조들의 지혜를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바로 대장경판이 지금까지 온전하게 보존되고 있는 큰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장경판전의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조선 세조 3년(1457) 어명으로 판전 40여 칸을 중창하였고, 성종 19년(1488) 학조대사가 왕실의 후원으로 30칸의 대장경 경각을 중건한 뒤 보안당이라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 후 광해군 14년(1622)에 수다라장, 인조 2년(1624)에는 법보전을 중수했는데, 장경판전은 가야산 중턱의 해인사에 위치한 관계로 서기 1488년 조선 초기에 건립된 후 한 번도 화재나 전란 등의 피해를 입지 않았습니다.

이 장경판전은 세계 유일의 대장경판 보관용 건물이며, 해인사의 건축기법은 조선 초기의 전통적인 목조건축 양식을 따르는데 건물 자체의 아름다움은 물론, 건물 내 적당한 환기와 온도·습도 조절 등의 기능을 자연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과학적으로 설계되었습니다.

이 판전에는 81,258장의 대장경판이 보관되어 있는데, 현존 대장경 중에서도 가장 오랜 역사와 내용의 완벽함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지니고 있는 인류문화유산입니다. 해인사 장경판전은 국보 제52호로 지정 되었으며, 1995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수원화성 성곽(사진:헤럴드저널)

근대 건축술의 절조, 수원 화성

화성은 우리의 전통 효[孝] 문화의 상징입니다. 조선왕조 제22대 정조대왕이 선왕인 영조의 둘째 왕자로 세자에 책봉되었으나 당쟁에 휘말려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뒤주 속에서 생을 마감한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침을 옮긴 곳입니다.

경기도 양주 배봉산에 있던 능침을 조선 최대의 명당인 수원의 화산(팔달산)으로 천봉하고 화산 부근에 있던 읍치를 수원의 팔달산 아래 지금의 위치로 옮기면서 성도 축성되었습니다.

화성은 정조의 효심이 축성의 근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당쟁에 의한 당파정치 근절과 강력한 왕도정치의 실현을 위한 원대한 정치적 포부가 담긴 정치구상의 중심지로 조성된 것입니다. 거기에 더하여 한양 남쪽의 국방요새로 활용하기 위한 다목적용이었습니다.

화성은 규장각 문신 정약용이 동서양의 기술서를 참고로 설계하여 재상을 지낸 영중추부사 채제공의 총괄아래 조심태의 지휘로 1794년 1월에 착공해 1796년 9월에 완공했습니다. 축성 시에 거중기, 녹로 등 신 기재를 특수하게 고안·사용하여 장대한 석재 등을 옮겼는데, 이는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한 실학의 발현이었습니다.

화성은 축조 이후 일제강점기를 지나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성곽의 일부가 손실되었으나 1975~1979년까지 축성직후 발간된 "화성성역의 궤"에 의거하여 대부분 축성 당시 모습대로 복원하여 현재에 이릅니다.

   
△수원화성의 성벽으로 화서문에서 장안문 쪽으로 담쟁이덩굴이 아름답다(사진:헤럴드저널)

성의 둘레는 5.7Km(5,744m), 면적은 130ha로 동쪽지형은 평지를 이루고 서쪽은 팔달산에 걸쳐 있는 평산성의 형태로 성의 시설물은 문루와 수문, 공심돈, 장대, 포(鋪)·포(咆)루, 암문, 봉돈 등 총 48개의 시설물로 일곽을 이루고 있습니다.

성은 축성 시 성곽이 거의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을 뿐 아니라, 북수문(화홍문)을 통해 흐르던 수원천이 현재에도 그대로 흐르고 있고, 팔달문과 장안문, 화성행궁과 창룡문을 잇는 가로망이 현재에도 도시 내부 가로망 구성의 주요 골격을 유지하고 있는 등 200년 전 성의 골격이 그대로 현존하고 있습니다.

축성의 동기가 군사적 목적보다는 정치·경제적 측면과 부모에 대한 효심으로 성곽자체가 "효"사상이라는 동양의 철학을 담고 있어 문화적 가치 외에 정신적, 철학적 가치를 가지는 성으로 평가 됩니다. 특이한 것은 성곽의 전돌, 건조물의 기와 등이 독특한 방법으로 제작되어 있어 현재의 기술로 이를 재현하기 어려워 보수 시 문제점으로 나타나고 있어 계속 연구해야 할 과제입니다.

화성은 중국, 일본 등지에서 찾아볼 수 없는 평산성의 형태로 군사적 방어기능과 상업적 기능을 함께 보유하고 있으며 시설의 기능이 가장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며, 실용적인 구조로 되어 있는 동양 성곽의 백미입니다. 성벽은 외측만 쌓아올리고 내측은 자연 지세를 이용해 흙을 돋우어 메우는 외축내탁의 축성술로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성곽입니다.

화성은 또 철학적 논쟁 대신에 백성의 현실 생활 속에서 학문의 실천과제를 찾으려고 노력한 실학사상의 영향으로 벽돌과 돌의 교축, 현안·누조의 고안, 거중기의 발명, 목재와 벽돌의 조화를 이룬 축성방법 등은 동양성곽 축성술의 결정체로서 희대의 수작이라는 평가입니다.

화성은 사적 제3호로 지정 되었으며, 소장문화재로 팔달문(보물 제402호), 화서문(보물 제403호), 장안문, 공심돈 등이 있고, 1997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첨성대는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인 석조물로 당시 천문과학에 깊은 연구가 이뤄지고 있었다(사진:문화재청)

천년고도 경주역사유적지구

경주역사유적지구는 신라 천년(B.C 57~A.D 935)의 고도(古都)인 경주의 역사와 문화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불교유적, 왕경(王京)유적이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2000년 12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경주유적지구는 신라의 역사와 문화를 한 눈에 파악할 수 있을 만큼 다양한 유산이 산재해 있는 종합역사박물관으로써 유적의 성격에 따라 모두 5개 지구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불교미술의 보고인 남산지구, 천년왕조의 궁궐터인 월성지구, 신라왕을 비롯한 고분군 분포지역인 대능원지구, 신라불교의 정수인 황룡사지구, 왕경 방어시설의 핵심인 산성지구로 구분되어 있으며 52개의 지정문화재가 세계유산지역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경주 황룡사지구 분황사탑

경주 남산은 신라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곳으로 신라 건국설화에 나타나는 나정(蘿井), 신라왕조의 종말을 맞게 했던 포석정(鮑石亭)과 미륵곡석불좌상, 배리석불입상, 칠불암마애석불 등 수많은 불교유적이 있습니다.

월성지구에는 신라왕궁이 자리하고 있던 월성, 신라 김씨 왕조의 시조인 김알지가 태어난 계림(鷄林), 신라통일기에 조영한 임해전지, 그리고 동양 최고(最古)의 천문시설인 첨성대(瞻星臺)등이 있습니다.

대능원지구에는 신라 왕, 왕비, 귀족 등 높은 신분계층의 무덤들이 있고 구획에 따라 황남리고분군, 노동리고분군, 노서리고분군 등이 분포되어 있습니다.

황룡사지구에는 황룡사지와 분황사가 있으며, 황룡사는 몽골의 침입으로 소실되었으나 발굴을 통해 당시의 웅장했던 대사찰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으며, 4만여 점의 출토유물은 신라시대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입니다.[사진: 헤럴드저널사진팀,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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