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일본군'위안부' 세계기록유산 등재 예산 전액 삭감
정대협, "일본군위안부 할머니들 복지예산 전액 반납"

조경렬 기자

강일출 일본군'위안부' 할머니의 기억을 되살린 그림(그림=강일출 할머니)

정부와 여성가족부가 최근 내년 예산편성에서 일본군'위안부' 할머니들의 기록물에 대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예산 전액을 삭감한 것으로 알려져 파장이 커지고 있다.

문제의 진원은 지난해 말 한일 일본군'위안부' 협정에 따른 결과로 해석 되고 있어 정대협 등 일본군'위안부' 관련 시민단체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일본 정부와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한일 간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합의'라는 문구를 삽입해 타결한 이후,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의도적으로 발을 빼고 있는 모양새다.

21일 박주선 국민의당 의원이 여성가족부로부터 제출 받은 내년도 예산안에 따르면, 일본군'위안부' 기록물 관련 유네스코 등재 추진사업 예산 4억 4,000만원이 전액 삭감됐다. 이에 따라 일본군'위안부' 교육콘텐츠 제작 사업(2억), 국제학술심포지엄 시업(1억), 국외 자료조사 사업(3억) 등도 모두 전액 삭감됐다.

정부가 사실상 이 사업을 '백지화'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민간단체의 국제공조활동 및 기념사업지원 예산도 6억 5,000만원에서 3억 5,000만원으로 절반이나 삭감해 국제무대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알리려는 노력에도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일본의 의도대로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국내외적으로 매몰시키려는 작전에 놀아난 꼴이 되고 있다.

조윤선 전 여성부장관 재직 당시 일본군'위안부' 기록물에 대한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중점 사업의 하나로 꼽을 만큼 관심 분야였고, 현 여가부 장관도 직접 챙길 만큼 중점 사업의 하나였다. 또 김희정 전 장관 역시 여가부 장관 재임시절 지속적으로 이 문제의 필요성을 역설했고, 여가부 내에는 유네스코 사업 추진단까지 별도 설치할 정도로 강한 의지를 드러냈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28일 일본 정부와 일본군'위안부' 합의 이후 정부 내에 위안부 문제 거론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졌고, 급기야 관련 예산까지 삭감하며 없는 일로 치부해버리는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를 두고 '불가역적'이라고 못 박은 합의문 조항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당시 양국 정부는 일본 측의 후속조치 이행을 전제로,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상호 비난이나 비판하는 것을 자제한다"고 강조했기 때문이다.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더 이상 '국제사회에서 거론하지 말자'고 약속한 것이나 다름 아니라는 얘기다.

실제 지난해 한일 양국 합의 이후 여가부는 "유네스코 등재사업은 민간단체가 추진하는 일"이라고 돌연 태도를 바꾸는 모습을 보이며 급기야는 예산을 전액 삭감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는 게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이에 정부는 기록물 소장자의 자율의사에 따라 등재를 신청한다는 유네스코 등재추진 원칙에 따라 관련 사업에 관여하지 않기로 한 것 뿐이라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해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은 올해 상반기 정부로부터 지원 받은 일본군'위안부' 할머니들의 쉼터 운영비를 전액 반납한 것으로 알려졌다. 21일 정대협에 따르면 올해 1월 여성가족부로부터 받은 지원금 1,500만원을 지난달 돌려줬다. 정대협은 서울 마포구에 일본군'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위한 쉼터인 '평화의 우리집'을 운영하고 있다.

정부는 2014년부터 매년 상ㆍ하반기 1,500만원씩 인건비와 시설유지관리비 등 쉼터 운영비 명목으로 지원해왔다. 정대협은 올해 1월 상반기 지원금을 받아 3월까지 일부를 집행했다. 그러나 4월 12일 여가부에 공문을 보내 반환 의사를 밝힌 데 이어 지난달 1,500만원 전액을 반납했다.

윤미향 정대협 상임대표는 "일본군'위안부' 할머니인 피해 당사자의 의견도 듣지 않고 일본과 말도 안 되는 합의를 한 정부의 지원을 거부하고 시민의 힘으로만 쉼터를 꾸려나갈 것"이라며 "정부가 (국가 차원에서) 정의롭게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지원받지 않기로 회의를 통해 결정했다"고 밝혔다.

한편 정부의 내년 예산안 편성에서 일본군'위안부' 기록물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예산이 빠진 것을 확인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등 야당은 이 문제를 거론하며 예산 편성에 있어 손을 보겠다는 입장이어서 그 결과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