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후기[2014년 9월호]

모기도 입이 삐뚤어진다는 처서處暑를 바라보며

콩이 누렁누렁 익으면 고장 아이들은 콩서리를 잘 해 먹었다. 마른 나무를 주워 다가 불을 피우고 콩 가지를 꺾어다 올려놓으면, 콩은 '피이 피~' 하고 김을 뿜으며 익었다. 가지에서 콩꼬투리가 떨어져 까뭇까뭇해지면 불을 헤집고 콩을 주워 까먹었다.

참 구수하고 달콤했다. 한동안 이렇게 콩서리를 해 먹고 나면 입 가장자리는 꼭 굴뚝족제비 같이 까맣게 되어 서로 바라보면서 웃어댔다. 초가을 무렵부터 밤밭골에는 콩서리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지 않는 날이 별로 없었다. 혹 마을 어른들이 지나더라도,
 

"이놈들, 한 밭에서만 너무 많이 꺾지 마라!"
 

할 뿐, 별로 나무라지는 않았다. 그것은 어른들 자신도 아이 때에는 밀서리, 콩서리를 하며 컸기 때문이었다.

오영수의 소설 <요람기>의 한 부분이다. 누구나 유년시절 꿈같은 초가을 풍경을 상상하기에 충분한 글이다. 처서가 내일 모레다. 가을 하늘이 성큼 머리 위로 다가와 설렘의 가을이 문턱에 왔음을 알린다. 며칠간 가을장마가 기승을 부리자 더위도 물러난 느낌이다.

이제 모기도 입이 삐뚤어진다는 처서가 오고 있다. 의미는 더위가 물러간다는 서퇴(暑退)를 뜻한다. 옛 문헌에는 처서 기간에 매가 새를 잡아 늘어놓고, 천지가 쓸쓸해지며, 논에 벼가 익는다고 적고 있다. 이렇듯 여름이 지나 더위도 한풀 꺾이고 선선한 가을을 맞이하게 된다고 하여 '처서'라 불렀다.

아침저녁으로 제법 서늘한 기운을 느끼게 되는 계절이다. 농부들은 익어가는 곡식을 바라보며 농쟁기를 씻고 닦아서 둘 채비를 한다. 옛 조상들은 처서가 지나면 따가운 햇볕이 누그러져서 풀이 더 자라지 않기 때문에 논·밭두렁이나 산소에 벌초를 한다.

9월호 원고를 마감하니 마음이 허허하다.
며칠 밤을 야근하며 이것저것을 챙기다 보니 1주일이 금세 지나갔다.
처서를 바라보며 1년 농사를 짓는 마음으로 이번 호를 내 놓는다.
인터넷을 넘어 SNS가 판을 치는 시대에 오프라인 '월간지'라는 매체를 붙들고 악을 쓰듯 발행하고 있는 내가 어떨 땐 바보스럽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도 우직하게 발행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여러모로 신경 쓰고 힘을 모아 주신 편집국 가족 여러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또 여러모로 도움을 주시고 계신 전 단국대 법대학장이셨던 석종현 한국법제발전연구소 이사장님과 사진작가 최낙민, 배석문 선생님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편집장 조경렬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