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6일 오전 9시께 전남 진도군 관매도 인근 해상에서 인천에서 출발해 제주로 향하던 승객 447명과 승무원 24명을 태운 여객선 ‘세월호’가 좌초됐다. 안산 정부합동분향소에 학생들과 시민들이 분향을 위해 줄을 지어 서 있다. 사진=공감코리아

세월호 침몰사고, 그 사고의 단초는 어디인가
국가구난시스템의 문제의 쟁점 진단
 

선진국을 지향하는 신흥 경제부흥국 대한민국이 국가구난구조시스템의 표류라는 복병으로 국가 이미지가 침몰하고 있다.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한 세월호 사고에 민관군이 총출동해 구난구조에 나섰지만 초기 구조시기를 놓쳐 위기대응 매뉴얼이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정부는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 지난 4월 16일 조난신고 접수 50분 뒤인 오전 9시 40분에 해양선박사고 위기대응 매뉴얼의 가장 높은 단계인 ‘심각’ 경보를 바로 발령했으나 초기 대응부실이라는 국민들의 따가운 질타를 피하지 못하고 있다.

해경과 군·관·민까지 가용인력과 장비가 총출동해 사고해역에서 구조 수색 작업에 돌입한지 28일 현재 열 사흘째. 아직도 바다 속 어딘가에 갇혀 있을 20여명이 실종된 상태다. 정부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통해 해군과 해경의 구조작업을 독려하고 모든 지원과 협조를 약속했지만 흡족한 결과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475명이 타고 있던 대형 여객선 구조작업은 이를 지켜보고 있는 피해자 가족들은 물론 국민을 안타깝게 했다. 신고 직후 해경이 출동해 헬기와 구명정 등으로 승객들을 구출했지만 이미 기울어진 배에서 밖으로 빠져나오는 승객을 탈출시키는 데 그쳤다. 적극적인 선내 진입을 통한 구조의 타이밍을 놓쳤다. 선장을 비롯한 승무원들의 직업윤리의 부재와 국가구난시스템의 빠른 가동이 늦어진 탓이다.

대규모 인명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군 해난구조대 등이 즉각 나서야 했는데 그 투입 시점도 아쉬움이 크다. 조난신고가 이미 배가 기울기 시작한 뒤에 접수됐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해군 구조대가 도착한 시간은 이미 사고 선박이 기울어져 거의 물에 잠기는 순간이었다.

선체가 완전 침몰하지 않았을 때 출동해 선체 안으로 진입해 구조작업을 벌였더라면 실종자 수를 현저히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사고 선박인 세월호 일부 승무원들의 사고 대응도 비난을 사고 있다. 특히 선장을 비롯한 기관실 근무자와 조타수 등 선박의 안전을 책임지는 핵심 승무원들이 사고 직후 승객 대피를 팽개치고 자신들의 구명을 위해 탈출에 급급했다는 의혹이 검경의 수사에서 사실로 확인돼 전원 구속되는 오명을 쓰고 말았다.

선장은 어떤 위기가 닥치더라도 최후까지 선상을 떠나지 않는다는 국제해운 업계의 불문율을 어기는 불명예 국가로 낙인찍히는 순간이 되고 말았다. 그 선실에는 수백 명의 생명이 죽음의 공포와 위협에 처해있음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자신들의 생명만을 유지하는데 그치고 말았다. 특히 사고 발생 시 승객대피를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승무원 지침은 유명무실했고 승객들을 선실에 계속 머물러 있도록 한 조치도 인명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한국 위기대응 매뉴얼 지켜지고 있는가?

"도대체 인명구조 매뉴얼이 있기는 합니까? 벌건 대낮에 300여명이 바닷물 속에 잠겨가는 것을 눈앞에서 빤히 보고도 구하지 못했다는 것이 이해가 되는가."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한 세월호 사고로 다시 한 번 대형 재난사고 대응체계 미비에 대한 비난이 빗발치고 있다. 사고만 발생하면 군·관·민이 총출동해 구조에 나서지만 해양사고 특성상 초기 대응 시기를 놓치면 아무리 좋은 매뉴얼도 물거품이나 다름 아니다.
  
정부는 세월호 조난사고가 발생하자 조난신고 접수 50분이나 지나서야 해양선박사고 위기 대응 매뉴얼의 가장 높은 단계인 '심각' 경보를 발령했다. 이에 따라 해경은 물론 군·관·민까지 가용인력과 장비가 총출동해 사고해역에서 구조 수색 작업에 돌입했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해난사고의 특성상 단 1분이 아쉬운 상황에 50분 뒤에야 구조 매뉴얼이 가동되는 것은 후진국보다도 못하다는 지적이 대다수다.
 
특히 475명이 타고 있던 대형 여객선이 조난신고를 보낸 뒤 보여준 구조작업은 이를 지켜본 피해 가족과 국민을 안타깝게 했다. 신고를 받자마자 해경이 출동해 헬기와 구명정 등으로 승객들을 구출했지만 이미 기울어진 배에서 밖으로 빠져나오는 승객을 모두 탈출시키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것도 선내에 타고 있던 수학여행단의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 최초로 사고 신고를 했지만 해경은 해상 위치와 상황을 묻는 말만 되풀이하며 황금시간을 허비하고 말았다.

'천안함' 사례에서 학습했듯이 선체 침몰 이후에 이뤄지는 잠수부의 구조작업으로는 생존자를 구해내기란 매우 어려운 현실이다. 침몰 전에 빠른 구조가 필수적이다.

그 많던 구명정은 왜 안 펴졌나?

한편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할 당시 구명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해경에 따르면 세월호가 침몰해 구조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배 안에 60여대가 설치돼 있는 것으로 알려진 15인승 구명정은 1대만 펼쳐지고 나머지는 펼쳐지지 않았다. 구명정은 배가 가라앉으면 자동으로 펼쳐지는 장비다. 구명정이 제대로 작동했다면 탑승자 전원을 탈출시키고도 남았지만 구명정은 자동으로 작동하지 않았다. 구명정을 수동으로 작동시켜야 할 승무원들도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구명정 대부분이 20년 이상 되어 녹슬고 노후해 제구실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난 신고가 접수된 후 침몰하기까지 약 1시간30분 동안 승무원들의 초기대응 부족이 이런 큰 참사를 가져오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거의 일치된 의견이다. 배가 기울어지는 상황에서 해양수산부 산하 해상교통관제센터(VTS) 제주센터는 교신을 통해 세월호에게 “인명들 구명조끼 착용하고, 퇴선 할 지 모르니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이후 퇴선 지시가 내려졌지만 세월호에서는 배가 침몰할 때까지 적절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것으로 검·경의 합동수사에서 밝혀졌다. 배를 버리라는 퇴선 지시가 오전 9시쯤 내려졌는데도 배가 침몰할 때까지 세월호 선장 등 승무원들은 적절한 퇴선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

정부차원의 재난구조 시스템의 한계 드러나

지난 1993년 292명의 생명을 앗아간 서해훼리호 침몰사고, 2003년 340명 사상자가 발생한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 정부는 대형 참사 때마다 재난관리체계를 현대화하고 대형 재난재해를 막겠다고 말하곤 했다. 범정부 컨트롤타워를 만들어 신속한 대응체계를 만들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서해훼리호 사고 후 20년, 대구지하철 화재사고 후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정부는 재난 컨트롤타워가 부재한 상황이다. 476명을 태운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했지만, 정부는 우왕좌왕 하면서 최악의 사태를 만들고 말았다. 지난 2월 범정부 재난대응체계를 완성했음에도 불구, 실전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하나의 집중된 컨트롤 타워가 효율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다. 그 결과 발표도 제각각, 수차례 통계를 정정하면서 국민의 신뢰를 잃고 말았다.

제 역할 못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정부는 대형 재난 시 효율적 대처를 위해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을 대폭 개정해 지난 2월 시행했다. 골자는 안전행정부에 범정부 재난안전 컨트롤타워인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설치하고 총괄기능을 맡게 하는 것이다. 기존 소방방채청이 맡았던 국가재난 컨트롤타워 기능을 안행부로 이관한 것이다.

대형 재난 발생 시 컨트롤타워 역할은 매우 크다. 컨트롤타워 판단에 따라 단일화된 대응이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안행부로 컨트롤타워 기능 이관도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안행부의 이번 세월호 참사 컨트롤타워 역할은 크게 미흡했다. 개정된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 자체부터 문제가 있다. 안행부는 컨트롤타워 기능을 이관 받았지만 방재청 산하기관과 소속 전문인력은 이관 받지 못했다. 명분만 이관이지 손발은 움직이지 않았다. 안행부는 기능은 부여 받았지만 기능을 수행할 역량을 갖추는 데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안행부 역량 한계는 세월호 참사 대처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안행부 중심으로 구성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사고접수 후 한 시간이 지나서야 본격 가동됐다. 이후에는 각 기관이 보고하는 숫자를 취합하는 데 급급했다. 그마저도 탑승객과 구조자, 실종자 현황을 수차례 번복하면서 국민의 신뢰를 잃고 말았다.

정부 관계자는 “안행부 중심으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구성됐지만, 관련 기관간 협업체계가 제대로 가동되지 못해 한계가 있었다”고 토로했다. 피해자 가족들도 강력히 항의하는가 하면 민간 잠수부를 투입해 달라는 건의로 민간 잠수부의 일명 ‘머구리’가 투입되면서 구조의 돌파구를 열어갔다. 급기야 정흥원 국무총리가 정부를 대표해 대국민 사과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우왕좌왕 컨트롤타워…혼란만 가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자 곳곳에서 대책본부가 추가로 구성돼 혼란이 가중됐다. 안행부 중심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외에 해양경찰청 구조본부, 해양수산부 중앙사고수습본부가 개별적으로 가동됐다.

이렇게 혼란이 가중되자 정부는 지난 17일 국무총리를 본부장으로 하는 ‘범부처사고대책본부’를 설치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추진력을 잃자, 범부처사고대책본부가 재난대응을 이끌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법으로 안행부를 재난 컨트롤타워로 지정해 놓고 이를 부정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가 체계적 시스템에 의해 재난 대응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만 바라보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범부처사고대책본부도 20일에 사망자 수 발표를 번복하며 또 한 번 국민의 불신을 키웠다.

범정부 재난 통합재난관리시스템도 부재

재난 대응을 위한 범정부 통합 재난관리시스템도 부재다. 안행부·해수부·기상청·국방부·방재청·국가재난관리통합상활실·지방자체단체 등 재난관련 기관이 공유할 수 있는 통합 재난정보시스템이 갖춰져 있어야 하지만, 구축 논의만 있을뿐 이행된 적은 없다.

현재 국가재난관리정보시스템은 안행부와 방재청 중심으로 119 긴급 출동을 위해 마련된 정도다. 해양이나 항공 사고에 대비하기 위해 해수부와 국토교통부 등과 연계되지는 못했다. 지자체 정보시스템과 연계되지 않아 중앙재난대책본부와 사고 현장의 재난대책본부 정책에 엇박자가 발생했다. 특히 해양 재난에 대한 범정부 통합 재난시스템은 전무하다.

대형 선박사고나 기름 유출 사고가 잇따라 발생했지만 해수부 내 선박, 항만·물류, 해양환경, 어업 등 시스템이 모두 제각각 구축돼 사고가 발생해도 적절한 대책을 수립하지 못했다. 세월호 참사 대응 시 안행부 중심의 중앙대책본부와 국무총리·해수부 중심의 범정부재난대책본부가 계속해서 엇박자를 보인 원인이다.

한 달 가까이 지난 지금도 20여명의 생명이 생사를 확인할 수 없는 실종상태다. 더 이상 국민들이 재난구조의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도록 사전 예방을 강구하는 것은 정부와 국가의 몫이다. 구조시스템 매뉴얼보다 더 중요한 게 재난예방 시스템이라는 사실을 지적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