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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국무총리는 누구인가!이낙연 총리 취임…"소통과 통합의 내각 만들겠다"
전영규 기자  |  yg22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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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6.30  10:2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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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이낙연 국무총리

이낙연 총리는 누구인가!
이낙연 총리 취임…"소통과 통합의 내각 만들겠다"
名대변인에서 문재인 정부의 초대총리로

글 전영규

이낙연 국무총리가 총리로 지명된 지 21일 만인 지난 5월 3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이날 제45대 국무총리로 취임했다. 이 총리는 취임 일성으로 “유능한 내각, 소통하는 내각, 통합하는 내각을 만들겠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커버스토리-이낙연 국무총리

이 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제가 통할하도록 명령받은 내각은 ‘내각다운 내각’ 이어야 하고, 이것이 촛불혁명의 최소한의 명령”이라며 소통과 통합을 강조하는 모습이다.

이 총리는 “내각은 과거의 과오를 청산하고,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며, 미래의 과제에 대비하는 일 모두에 유능해야 한다”며 “불평등하고 불공정하며 정의롭지 못한 제도와 관행을 바로잡는 일, 일자리 주거 보육 교육 복지 경제 안보 외교 등의 당면문제를 풀어가는 일, 제4차 산업혁명과 평화통일 등 미래 조국을 미리 준비하는 일에 유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 총리는 “내각이 내각 속에 갇혀서는 안 되고, 정부도 내각도 국민 속에 있어야 한다. 정부 각 부처는 소관 업무에 대해 국민께 항상 최적의 설명을 해드리고, 소관 업무와 관련해 고통이나 불편을 겪으시는 국민과 함께해 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총리 임명장을 수여 받고 있는 이낙연 국무총리(사진=청와대 공공누리)

이 총리는 또 “이념과 지역과 세대를 아우르며 모든 국민을 한결같이 섬기는 내각이어야 한다. 사람을 키우고 쓰는 일, 예산을 투입해 사업을 벌이는 일, 그 모든 면에서 탕평을 실천하는 내각이기를 바란다는 말도 아끼지 않았다.

이 총리는 특히 문재인 정부의 공직자들은 촛불혁명의 명령을 받드는 국정과제의 도구들이라며, 국정과제의 수행과정에 정부 각 부처는 최소한 세 가지의 어긋남이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 세 가지에 대하여 첫째 국정과제의 방향과 각 부처 업무방향이 어긋나서는 안 된다. 둘째 국정과제 수행의 바람직한 속도와 각 부처 업무수행의 실제 속도가 어긋나서는 안 된다. 셋째 국정과제를 수행하는 유관 부처의 업무사이에 어긋남이 생겨서도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AI상황점검 및 대책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언론인에서 대변인 그리고 국무총리 된 이낙연

이낙연 신임 국무총리는 ‘명(名) 대변인’이라는 호칭으로 유명하다. 이만섭 전 국회의장 이후 언론인 출신 가운데 가장 성공한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는 그는 과거 새천년민주당 대변인 시절 촌철살인(寸鐵殺人)의 명문장을 쏟아내곤 했다.

이 총리는 전남 영광의 가난한 농부의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었지만 그의 부모는 도회지 광주로 유학을 시켰다. 그래서 그는 광주제일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법대생들이 대부분 다하는 사법시험을 포기하고 그는 ‘사회의 등불’인 신문기자가 됐다.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를 하면서 정치적 메커니즘을 익혔고 도쿄특파원을 통해 해외 정세에 대한 안목을 넓혔다. 그는 정치부 기자 때 ‘동교동계’로 불리는 옛 민주당을 출입하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는다.

2000년 새천년민주당 소속으로 고향인 함평·영광에서 출마해 정계에 진출했다. 2002년 대선 직후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분당 때 이른바 ‘꼬마 민주당’에 남아 ‘탄핵 역풍’에도 불구하고 당선되는 등 19대 국회까지 내리 4선을 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이낙연 국무총리

초선 시절인 2001∼2002년 두 차례의 새천년민주당 대변인을 지내며 그는 언론인 출신답게 ‘명 대변인’으로 명성을 떨쳤다. 2002년 대선 때 선대위 대변인과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대변인, 2007년 대선 과정에서 대통합민주신당 대변인 등 다섯 차례에 걸쳐 ‘당의 입’으로 발탁돼 ‘5선 대변인’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특히 대변인을 다섯 차례나 맡으면서 간결하고 절제된 논평으로 ‘대변인 문화’를 새로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총리는 의원 시절 민주당 대변인과 전남도당위원장, 사무총장,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장 등 요직을 지냈다.

농식품위원장 시절에는 농촌 출신답게 국내외 정보가 풍부한 격조 높은 메시지로 농림수산식품 분야의 신뢰를 얻기도 했다. 도쿄특파원 때 쌓은 인맥을 발판으로 국회 한·일 의원연맹 수석부회장 등을 맡기도 했다.

그래서 그를 ‘일본통’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약삭빠르게 섣부른 일부 일본 언론은 도쿄특파원 출신이 총리에 지명됐다는 소식을 긴급타전하며 지일파 총리가 돼서 기대된다는 보도를 쏟아내기도 했다. 인간 이낙연은 2014년 또 다른 도전을 하게 된다.

   
국회 청문회에서 선서를 하고 있는 이낙연 국무총리

6.4 지방선거 도전 끝에 전남지사에 선출돼 도백으로서 3년 가까이 도정을 이끌었다. 이낙연 전남지사는 중견 언론인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대표적인 성공 케이스이다. 그리고 그는 드라마틱하게도 국무총리로 지명됐다.

촛불 민심의 명령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인해 조기 대선 결과로 문재인 대통령 당선이 그를 총리로 이끌었다. 이 총리는 전남 영광군 법성면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4남3녀 중 장남. 원래 10남매였으나 안타깝게도 두 형을 비롯해 3남매가 먼저 세상을 떠나면서 장남이 됐다.

장남 아닌 장남이 된 그는 ‘장남만 가르치겠다’는 시골 촌부인 아버지의 뜻에 따라 대학까지 갈 수 있었다. 또 열렬한 야당 당원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권력에 대한 저항의식과 정의감을 키우며 성장했다. 학창시절 당시 유신독재 시대라 민주주의를 향한 저항의지가 충만했던 시대였다.

그래서 그때 그에게 정치적 에너지가 수없이 축적되었는지도 모른다. 이낙연은 언론인과 정치인으로 살아오면서 비리에 연루되거나 구설수에 오른 적이 없다는 점을 강점을 갖고 있다. 그만큼 자신과 주변의 관리에 철저했다는 평가다. 미술 교사 출신의 부인 김숙희 씨와 사이에 1남이 있다.

약력
△전남 영광 △광주제일고 △서울대 법대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동아일보 도쿄특파원 △16·17·18·19대 국회의원 △노무현 대통령 당선인 대변인 △새천년민주당 대표비서실장·대변인·기획조정위원장·원내대표 △대통합민주신당 대변인 △민주당 원내대표 △민주당 사무총장 △한·일의원연맹 수석부회장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장 △전남도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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