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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임시정부 청사에서 만난 애국열사들"중국 상해의 여름은 남국 열도와 같다"
조근형 본부장  |  chogh201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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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01  00: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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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특집-상해임시정부 청사 방문기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에서 만난 애국열사들
"중국 상해의 여름은 남국 열도와 같다"

[헤럴드저널] 조근형 서울본부장=상하이(上海)는 중국 본토 동부의 양쯔강(揚子江) 하구에 있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직할시로 중국 제2의 도시이다. 현대 중국 경제의 중심지이자 문화와 금융의 국제경제도시로 우뚝 서 아시아를 호령하고 있다.

   
중국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 입구 모습

고대에는 어촌이었던 상하이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뉴욕과 런던 다음가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금융 중심지가 되었고, 극동의 가장 큰 상업도시가 되었다. 또한 중국에서 가장 중요한 경제 요충지이자 대중문화의 중심지이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 된 이후로 상하이는 중앙 인민정부의 무거운 세금과 외국인 투자 중지 때문에 쇠진(衰盡)의 길을 걷다가 1992년부터 상하이는 부흥하기 시작해 초기 경제특구였던 선전과 광저우를 능가하여 중국 경제 성장의 중심지가 되었다.

상하이는 춘추시대에는 오나라의 동쪽지역에 속했으며, 전국시대에는 초나라에 속했다. 일찍이 초나라 춘신군(春申君)의 봉토였다. 그 흔적은 현재 상하이를 관통하는 황푸강(黃浦江)의 옛 명칭인 춘신강(春申江)과 상하이에 대한 약칭 중 하나인 선[申]에 남아 있다.

그리고 삼국시대에는 오나라의 항구 도시였으며, 오나라 황제 손권(孫權)의 형인 손책(孫策)이 회계 전투에서 승리로 이곳을 차지했다. 손권은 이곳의 아름다운 바다 경치를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자신의 별장을 지었는데 이 별장이 와이탄(外灘) 주변에 있다.

서기 4~5세기 진나라 때 쑹장(松江: 지금의 蘇州河)과 임해 일대의 주민들은 고기잡이를 생업으로 삼았는데, 대나무로 ‘후(扈)’라는 낚시 도구를 만들어 사용했다. 또 당시 양쯔강의 지류가 바다로 이어지는 곳을 ‘두(瀆)’라고 불렀기 때문에 쑹장 하류일대(현재 소주강과 황푸강이 만나는 지대)를 ‘후두(扈瀆)’라고 불리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 현판

대한민국임시정부청사(臨時政府廳舍)

이런 역사를 지닌 상하이 중심가에는 일제강점기의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가 자리하고 있다. 상하이는 교통이 편리하고 당시 쑨원이 이끄는 광동정부의 지원도 받을 수 있는 곳이었다. 또 영국 미국 등의 조계(치외법권)가 있어서 일본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독립운동의 요충지였다.

이 때 독립지사들은 조선에 가장 우호적인 프랑스 인사들의 도움을 받아 프랑스 조계에 살면서 활동을 펼쳐나갔다. 이런 까닭에 독립지사들이 상하이로 몰려들었고, 1919년 9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이곳 상하이에서 수립되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국무령(國務領:총리)인 김구(金九) 선생은 1932년 4월 29일 상하이의 홍커우 공원에서 열리는 일본 천황의 생일연과 상하이 점령 전승 기념행사를 폭탄으로 공격할 계획을 세워 윤봉길 의사가 도시락과 물병으로 꾸며진 폭탄을 투척하여 의거를 수행한 곳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상하이에서 출범한 이후 항조우, 난징, 광조우 등을 거쳐 1945년 중칭까지 27년 동안 11번이나 임시정부 청사를 옮겼다. 여기 상하이 임시정부청사는 1926년부터 1932년까지 임시정부가 가장 오랫동안 사용했던 청사다. 이후 해방이 되어도 중국과의 관계 등 국제정세로 방치되다가 1993년 최초로 복원하여 정식 개관했다.

이후 2001년 청사 건축물을 보수하고 전시실을 확충했다. 또 2015년 9월 주변의 지저분한 거리의 가옥들까지 수리하여 깨끗한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거리로 조성했다.

   
임시정부 청사 입구(1층)로 중국 관리인이 항상 감시하고 있고, 사진 촬영을 금한다. 취재진은 양해를 구하고 사진 촬영을 했다. 관리인이 기자의 카메라를 가리키며 사진 촬영을 막으려 하고 있다.(사진=헤럴드저널)

중국정부가 청사 운영 맡아

임시정부 청사로 들어서면 독립운동의 김구선생의 흉상과 함께 태극기가 열십자로 교차되게 게양되어 있다. 청사 건물은 3층 목조건물로 1층은 주방으로, 2층은 총리 집무실과 회의실이 마련되어 있다. 전시실에는 독립운동의 유물과 유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그리고 임시정부 활동을 담은 사진들이 벽면에 가득 장식되어 있다.

또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위원장 현순 명의로 미 국무장관 휴즈에게 보낸 독립 승인 요구서, 1919년 임시정부에서 파리 평화 회의에 파견한 대표단과 사무원들의 사진과 한국 독립 승인 요구서 및 각서, 민족 대표 33인의 명의로 발표한 3.1 독립선언서, 대한애국단 단장 김구, 윤봉길 의사의 사진, 대한민국 임시정부 발행 여권, 대한민국 건국 강령 등 수많은 역사자료가 전시되어 있어 역사 교육의 산실이 되고 있다.

   
임시정부 청사 내부의 독립운동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사진=헤럴드저널)
   
입장료를 지불했음에도 사진 촬영을 금하고 있는 중국측 관리들의 태도가 이해되지 않았다.

청사의 주변에는 젊은이의 거리로 현대식 카페와 음식점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특히 한국에서 온 유학생들이나 한국 여행객들이 꼭 들러 가는 관광지로 거듭나고 있다. 하지만 그 입장료 수납이나 관리는 중국정부가 맡고 있다. 따라서 정부가 중국정부와 협의하여 매입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평소에는 사진 촬영을 금하고 있어 필자와 방문단은 양해를 얻어 사진 촬영을 할 수 있었다. 우리 애국지사들의 유물과 역사자료를 우리 마음대로 촬영도 하지 못하는 현실을 하루 빨리 타개하는 외교 행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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