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 칼럼]

미생지신과 미생이 던지는 메시지

조경렬 편집장

고사에 나오는 미생지신(尾生之信) 이야기가 있다. 사기(史記) 소진열전(蘇秦列傳) 장자(莊子) 도척편(盜跖篇)의 이야기다. 중국 춘추시대(春秋時代)에 미생(尾生)이라는 순박한 청년이 있었다. 어느 날 그에게 사랑하는 여인이 생겼는데 그 여인과 다리 아래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다리 아래로 나갔다.

미생은 여인과 만날 즐거운 시간을 기대하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덧 약속시간이 다 되었으나 여인은 오지 않았다. 그리고 한 참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도 여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시간은 계속 흘러 불안하고 조급했지만 그래도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고 다리 밑이라 물은 점점 불어나고 있었다. 어찌할꼬? 생각하다 그래도 기다리기로 작정하고 물이 차올라도 계속 기다리다 결국 다리 기둥을 붙잡은 채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여기서 유래된 말이 미생(尾生)의 믿음, 즉 미생지신(尾生之信)이라는 말이 생겼다. 그런데 이 소진열전 도척편에는 또 이런 미생의 믿음에 대하여 통렬히 비판하는 이야기도 있다.

소진(蘇秦)은 전국시대 종횡가로서 이름난 사람으로 연(燕)나라에 가서 연(燕)나라를 위해 일을 할 때 그를 시기하는 무리들이 중상모략 함으로 소왕(昭王)이 의심을 하자 자신을 의심하는 소왕에게 자신의 결백을 설파할 때 미생의 믿음을 인용하였다.

증삼(曾參), 백이(伯夷), 미생(尾生)을 거론하여 자신은 오직 왕을 위해 일한다고 말했다. 증삼은 소문난 효자로 한시도 부모를 떠나지 않기에 왕이 증삼을 데려올 수 없음을, 백이는 충신으로 무왕의 신하가 되기 싫어 수양산에 들어가 굶어 죽을 정도이기에 왕의 신하로 삼을 수 없음을, 미생은 여인과의 약속 때문에 다리 밑에서 익사할 정도로 우직하고 융통성이 없는 사람이기에 수하로 삼을 수 없음을 역설했다.

그러면서 자신을 불효하고 청렴하지 못하고 신의가 없다고 중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렇기에 자신은 부모를 버리고 연(燕)나라까지 와서 왕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냐고 주장했다. 여기서 소진은 미생의 믿음은 융통성이 없고 매우 미련한 짓이라고 비판했다.

또 장자(莊子)는 도척편에서 공자가 유명한 도둑 도척을 교화시키려고 미생의 이야기를 했는데, 이야기를 다 들은 도척이 "이런 인간은 책형(磔刑)당한 개나 물에 떠내려가는 돼지, 아니면 쪽박을 들고 빌어먹는 거지와 다를 바 없다. 쓸데없는 명분에 빠져 소중한 목숨을 가벼이 여기는 인간은 진정한 삶의 길을 모르는 놈이다."라고 미생의 믿음을 통렬히 비판했다.

이 고사에서 미생지신(尾生之信)이란 '미생의 믿음'으로 해석된다. 미련하도록 약속을 지키는 것, 고지식하여 융통성이 없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한편으로는 약속을 목숨까지 바치며 지키는 신의를 높이 살 수도 있다.

최근 모 케이블티브이 방송에서 '미생'이란 장그래 주인공이 나오는 만화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있다. ‘미생’이란 바둑에서 자주 사용하는 말이다. 즉 대마나 빈집이 죽지는 않았으나 한 두 점만 이으면 회생할 수 있는 집을 미생이라 한다.

우리 사회에 좀 부족한 듯 보이지만 누군가 조금만 도와주면 능력 발휘를 하며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의미로 드라마에서 그려지고 있다. 그렇다. 미생지신의 미생은 융통성은 없으나 신의는 목숨을 바쳐 지키는 우직한 인간상이고, 바둑에서 말하는 미생은 부족한 2%를 채워서 사회 구성원으로 함께 할 수 있다는 지혜의 메시지를 던진다.

전자나 후자나 어느 한 쪽을 따라야 한다는 정답은 없다. 그 나름대로 가치와 당위성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가 이 고사와 드라마 주인공 미생 '장그래'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판단할 것인가가 중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