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리포트] 고려인의 삶③

"한민족의 뿌리를 잊지 않으려 노력하며 살다"
한민족, 중앙아시아 고려인의 삶

[헤럴드저널 11월호] 글 안젤리나 강 박사=중앙아시아와 러시아 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는 ‘고려인’은 한민족 역사상 가장 소외되고 고통 받으며 살고 있는 동포집단이다.

고려인 동포들의 모습

바야흐로 선진화된 경제대국을 꿈꾸는 우리나라로서 더 이상 고려인 문제를 방치할 수 없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시책이 해외농업진출 활성화 정책과 동시에 추진될 필요성이 크다고 하겠다.

특히 이 지역은 토지자원이 풍부하나 농업생산성이 떨어져 한국의 농업기술협력을 필요로 하므로 우리농업의 해외진출 전략에도 중요한 인적자원이 될 것으로 분석된다.

중앙아시아와 러시아에는 1930년대 극동지역에서 스탈린에 의해 강제이주 당했던 ‘고려인’ 동포가 50여만 명 살고 있다.

그 중에 우즈베키스탄에 가장 많은 18만, 카자흐스탄에 10만, 사할린 4만, 연해주 4만, 모스크바 4만, 러시아 남부지역 5만, 우크라이나 3만, 타지키스탄 등 기타지역 2만명 등이 흩어져 살고 있다. 이 지역 농업개발에 기여한 고려인들은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데, 소연방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집단농장 체제가 붕괴되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오늘날의 고려인은 1860년대 초부터 가난과 일제의 탄압을 피해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했던 조선인들의 후손이다. 러시아의 극동지역 전략상 고려인들을 일제의 첩자라는 누명을 씌워 1937년 러시아 극동지역에서 중앙아시아의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10여개 불모지대로 강제 이주시켰다.

고려인 동포 2~3세들의 모습

1991년 구소련으로부터 독립하면서 CIS(독립국가연합) 국가들의 집단농장 농지 재분배 과정에서 소수민족은 차별대우를 받아 특히 농업에 종사하다 소외된 계층이 많이 생겨, 생업의 어려움과 자녀교육 기회의 박탈 등 2중고 속에 살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에 정착한 고려인들은 집단농장(콜호즈)을 성공적으로 운영하여, 전설의 ‘김병화 농장’, ‘황만금 농장’ 등 노동영웅을 배출하는 유명한 농장을 꾸리기도 하였다.

타쉬켄트 남쪽에 위치한 ‘김병화 농장’은 1925년 북극성 농장으로 시작하여 1974년 김병화 농장으로 개칭되었다. 중앙아시아 강제이주 당시 최초로 정착하였던 지역의 하나로 당시에는 갈대밭이었으나, 김병화가 1940~74년까지 농장 대표를 역임하면서 고려인 중 유일하게 2차례나 노동영웅 훈장을 받으며 정부로부터 인정받는 우수한 집단농장을 조성하였다.

그 후 개인 영농화 과정에서 토지분배를 받지 못한 다수의 고려인이 떠나 현재 고령화된 1,000여명의 고려인만 거주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에는 이 농장마을이 아직도 건재하고 있지만 이제는 옛 명성을 찾기란 힘들어 보인다.

마을 입구에 초라한 ‘김병화박물관’이 있고, 할머니 한분이 관장으로 관리와 해설을 하고 있다. 김병화 농장을 방문하는 한국인 관광객을 위해 우리말로 친절하게 김병화 선생의 업적과 고려인 마을의 변화과정을 설명해 주고 있다.

타시켄트 남쪽 우르타치르칙구에 있는 김병화 마을의 김병화박물관 입구에 설치된 김병화 동상이다. 고려인 동포 김병화는 러시아 노동영웅으로 칭송 받는 1세대 고려인이었다.

극동러시아 고려인의 눈물

“아직 논농사가 무엇인지 모르는 주인에게 이밥 먹는 법을 가르쳐 준 떠돌이 머슴들, 은혜를 입을 때 뿐 곧잘 잊고 사는 그네들의 망각을 죽음으로 고쳐 놓습니다. 돌도 비석도 없이 한낱 흙의 높이로 누누 백 년 세월을 치솟아 견뎌 온 이 무덤은 무덤이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산입니다.”

'고려인의 무덤'이라는 시의 일부분이다. 한 시인이 고려인의 무덤 앞에서 시로 고려인의 애환을 이렇게 적었다. 땀과 눈물로 점철된 고려인 이주민들의 비참했던 삶을 그대로 담고 있다.

기록에 의하면 1864년 초겨울부터 이주했다고 하니 올해가 조선인들이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를 시작한 지 154년이 되는 해다. 일제강점기에는 압제를 피해 수많은 한인이 연해주와 북간도로 건너갔다.

1937년 스탈린의 소수민족 탄압책으로 고려인 강제이주는 80주년이 된다. 강제이주는 우리 민족에게 너무도 잔인한 생활을 안겨 주었다. 강제이주 후 400여 개의 한인학교가 폐교됐고 문화단체는 해체됐다. 한민족의 문화는 탄압받았다.

김병화 농장 마을 현재의 모습, 고려인들은 농지분배를 받지 못해 소작인으로 전락한 가구가 많고 젊은이들이 많이 떠났다.

정치·사회적 진출은 사실상 봉쇄됐다. 이 정책은 스탈린 사망 후 비로소 완화되는 듯했다. 구소련의 붕괴와 더불어 1990년대 초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독립했으나 차별은 여전했다. 자민족 중심주의가 부활하면서 타 민족에 대한 배타적인 정책을 펼쳤다.

소수민족인 고려인들은 또다시 지낼 곳을 찾아 떠나야 했다. 다수는 러시아로, 일부는 영원한 정착을 위해 선조의 고향인 연해주로 재이주를 시작했다. 타지키스탄과 우즈베키스탄 고려인들이 주로 연해주로 귀환했다. 이들은 2~4세들이다.

이렇게 연해주에 온 고려인이 5만 명이 넘는다. 연해주는 고려인들의 마음의 고향이다. 선사시대부터 한반도와 교류했던 동일한 문화권이다. 항일 의병의 근거지이자 독립운동의 산실이다.

“강제이주 후 하루하루는 생각하기도 싫다”며 현실에 최선을 다 하며 살고 있는 극동러시아 고려인들. 연해주로 돌아 와 선조의 발자취를 찾아보지만 비통한 심정뿐이다.

왜 이들이 그토록 고달픈 인생을 살아야 했는가. 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을 맞고 있는 2017년 현재도 연해주의 아픈 역사는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