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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여행] 남도 화순 운주사 가는 길부처의 공덕 천불천탑 운주사로 가는 길
조경렬 기자  |  herald@heraldjourna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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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2.26  21: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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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여행-화순 운주사 가는 길

부처의 공덕 천불천탑 운주사로 가는 길
산릉에 누워 있는 운주사 와불의 신비

글 조경렬┃사진 화순군청 외

여행자는 늘 새로운 세계를 꿈꾼다. 여느 나라 여느 지역 여느 곳을 가더라도 새롭게 느끼는 이미저리(imagery)는 여행자만의 특권이다. 그래서 여행자는 한 곳에 머물지 않는다. 그래서 떠난다 남도 화순으로.

   
전남도 화순의 운주사로 천불천탑으로 유명한 유적지로 남도 여행자들에게 인기가 높다

화순은 남도의 내륙에 자리잡아 늘 평온하고 아늑함을 간직한 고장이다. 남도의 영산인 무등산의 어깨 자락을 지긋이 베고 누워 있는 화순평야는 오곡백과가 풍성하다. 그 가운데 천년을 이어 온 신비의 사찰 운주사가 있다. 이 운주사에는 고요함과 더불어 기기묘묘한 천불천탑이 큰 골짜기를 가득 메우고 있어 신비함을 더한다.

광주광역시 동구에서 동남쪽으로 시내를 벗어나 지석천을 건너면 아늑한 시골의 풍경이 펼쳐진다. 아기자기한 굴곡의 산세가 이어지고 넓은 들판에 작은 마을이 듬성듬성 박혔다. 넓은 들판을 지나면 천불산 다탑봉 아래 고찰 운주사에 닿는다.

화순 운주사는 아름다운 고찰이다. 웅장한 대찰이 아니라 천불천탑이 있어 유명해진 신비의 사찰이다. 이름 난 명산이 아님에도 수많은 탑과 불상을 경내와 계곡 곳곳에 조성한 것을 보면 분명 영험한 신비의 세계가 있을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일까. 여행자들과 불교 순례자들이 끊임없이 찾아든다.

운주사 일주문 뒤편 현판에는 '천불천탑(千佛千塔)'이라는 글씨가 적혀 있다.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1481년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 기록에 의하면 “운주사 좌우 산마루에 석불과 석탑이 각각 천 개 있고, 또 석실이 있는데 두 석불이 서로 등을 대고 앉아 있다”라고 운주사를 묘사하고 있다. 또, 인조 10년(1632)에 발간된 「능주읍지」에서도 천불산 좌우 협곡에 석불 석탑이 천 개씩 있다는 기록이 있다. 석불과 석탑이 정말로 천개 씩 있었는지 고증할 방법은 없지만 그 규모가 대단했던 것만은 지레 짐작할 수 있다.

   
화순군의 운주사 '와불'로 도선국사가 조각을 한 후 세우지 못하고 날이 샜다는 누워 있는 불상이다

일제 강점기 관리 소홀이 큰 훼손 불러

1940년대에는 석불 213기와 석탑 30기가 운주사 내에 있었다고 전해진다. 헌데, 현재 운주사 내에는 석불과 석탑을 합쳐도 100기가 채 되지 않는다. 본격적인 조사와 발굴이 실시되기 시작한 1980년대까지 보호나 관리를 받지 못해 생긴 결과다.

역사 속에서 천불천탑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던 운주사라서 오랜 세월 수탈과 도난의 대상이 되었을 법하다. 현재는 9층석탑, 석조불감, 원형다층석탑, 와불 등이 보물급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운주사는 자체는 사적으로 지정돼 보호를 받고 있다. 세월의 무게만큼 고난을 겪어 온 운주사의 오늘은 어떠할까.

전설 속 운주사는 왜 여기에 세워졌나

일주문에서 계곡을 따라 좀 더 들어가면 넓던 길이 점점 좁아지면서 그 끝에 운주사 본찰에 가까워진다. 산사의 특징은 입구와 출구가 같다는 점이다. 계곡을 따라 들어가면 입구고, 계곡을 따라 내려가면 출구가 된다. 사찰의 조성을 구릉이 아닌 계곡에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계곡의 구석구석 흩어진 불탑과 불상들을 접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1천기의 불상을 다 보지 않더라도 천불천탑이라는 말이 과연 뜬소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 만큼 형상을 달리하는 불상과 여러 형태의 불탑들이 자기 자리를 지키고 서 있기 때문이다.

한 모퉁이를 지날 때 마다 부처님을 기다리는 듯 석탑과 불상이 모습을 드러내며 기묘한 자태를 뽐낸다. 그렇게 깊지도 않고 크지도 않은 골에 아늑하기만 한 이곳이 절터로 정해진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관해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그중 도선국사 전설이 유력하다.

때는 바야흐로 통일신라 말기 효소왕이 즉위에 오른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 시대의 말기가 그렇듯 당시는 매우 혼란스러운 정국이었다. 이때 백성을 구원하려 나타난 인물이 도선국사다. 국토지형을 배의 형상으로 이해한 도선국사는 호남에 산이 드물어 배가 기울어질 수 있음을 염려해 천불천탑으로 배의 균형을 잡아 태평성대를 이루려 했다.

이에 도선국사는 천태산에서 바위를 몰고 와 하룻밤 새 석불과 석탑을 만들었다. 도선은 천불천탑을 세워 새로운 세상을 열어 보고자 했으나 공사가 끝나갈 무렵 일하기에 싫증난 동자승이 "꼬끼오"하고 닭 우는소리를 내는 바람에 석수장이들이 모두 날이 샌줄 알고 하늘로 날아가고 결국 와불로 남게 되었다고 한다.

마지막 와불을 일으켜 세우지 못하고 새벽닭이 우는 바람에 누워 있는 부처님은 미완성이 되었다. 그래서 더 신비한 사찰이 됐다. 무릇 탐방자들은 언젠가 이 와불이 일어서는 날 세상이 바뀔 거라는 막연한 상상과 기대를 하면서 경내를 탐사하게 된다.

   
어느 지방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불균형과 이타적인 불상이 사찰 경내 곳곳에 산재해 있다.(사진=화순군청)
   
사찰로 들어가는 곳곳에 불상들이 조각되어 세워져 있다

이유없이 친근하고 편안한 천불천탑

운주사 석탑은 각기 다른 모양, 다른 분위기, 다른 매력을 지녔다. 어느 하나 공통점을 찾기란 쉽지 않다. 굳이 하나 찾으라면, 비례와 대칭이 맞지 않다는 점이다. 균형이 잘 잡힌 다보탑과 석가탑에 비교해 운주사 석탑은 비례와 대칭이 어정쩡하여 무엇인가 정교하지 못한 부족함을 느낀다. 바로 이 비대칭이 신비한 끌림과 함께 묘한 여운을 준다.

이런 양식들은 그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양식이기에 독특하고 기발하다. 마치 소풍 나온 아이들의 그림을 보면, 이유 없이 좋고 재미있는 것처럼, 운주사를 가득 메운 천불천탑도 비슷한 매력을 지녔다. 불규칙하게 곳곳에서 발견되는 석불은 보물찾기처럼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절터 마당에 바위인 줄 알았는데 가까이 가보면 불상이고, 바위에 기댄 널따란 판석이 가까이 가보면 불상이다.

이것이 남도불교의 소탈함일까. 무엇인가 부족해 보여서 서민적이고, 완성체가 아니여서 현재진행형이다. 강하고 위엄 있는 분위기를 찾을 수 없는 미완성의 불상들이다. 얼굴의 비례는 불상 대부분이 비슷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못난이 불상'이라고 부른다. 세로로 길쭉한 얼굴형, 길게 묘사된 코, 좁은 이마가 정말 못생겼다.

평면적으로 조각돼 입체감이 떨어지지만 이곳 석질의 영향으로 이목구비가 불분명하다. 우아한 자태에 손가락 모양 하나하나까지 세세하게 묘사된 석불만 석불이겠는가. 섬세하지 않아도, 우아하지 않아도 단순함에서 느껴지는 불심이 더 깊고 진하다.

운주사 주위 산은 나무가 적은 편이다. 육질이 적고, 암석이 대부분인 산이기 때문이다. 채석하기에 좋은 곳 같지만, 석질은 그렇지 않다. 화강암처럼 단단한 재질이 아니다. 때문에 이 암석으로 만든 석불은 풍화로 인한 마모가 쉽게 일어난다. 우리나라처럼 사계절이 뚜렷한 곳에는 풍화작용이 더욱 빠르니, 석불의 표정이 온전히 남기 어렵다. 이렇게 수백 년의 세월을 어딘가에 기댄 채 이끼가 끼면 끼는대로, 눈이 쌓이면 쌓이는 대로 운주사 한켠을 지켜온 것이다.

이 석불들을 하나하나씩 감상하며 운주사 내를 거닐고 있으면, 오랜만에 내려간 고향에서 이웃과 인사하듯 친근하게 석불을 대하게 된다. 마음에 묻어두었던 고달픈 이야기라도 다 들어줄 테니 꺼내보라며 말을 건네기라도 할 것 같은, 잔디 밭에 자리를 깔고 앉아 이야기 보따리를 펼칠 것 같은 감흥을 느낄 수 있는 게 운주사 석불이다.

   
운주사의 경내 전경
   
운주사의 여러 유형의 불상들과 탑들(사진=화순군청)

운주사 불사바위에 오르면 사찰이 한 눈에

일주문을 지나서 한 참을 오르다보면 쌍교차문칠층석탑이 세 갈래길 가운데 자리잡고 우뚝 서 있다. 여기가 와불과 칠성바위앞칠층석탑으로 가는 갈림길이다. 이 쌍교차문칠층석탑은 운주사에서 유일하게 광배를 갖춘 석불좌상 바로 앞에 있다.

특이한 것은 탑신석에 쌍교차문, 즉 두 개의 엑스자(XX) 문양과 측면에 마름모 형태의 문양을 장식하고 있어 우리나라 석탑에서는 그 유래가 없는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서 조금만 더 오르면 운주사 대웅전이 나오고, 원형다층석탑과 운주사석조불감이 나란히 모습을 드러낸다. 주목할 것은 석조불감의 감실 안에는 한 쌍의 불상이 남북으로 등을 맞대고 안치되어 있다는 점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有石室二石佛相背而坐(유석실이석불상배이좌)”라는 설명이 있다. 남향한 불상은 오른손을 배에 댄 모습인데 넓적하고 평면적인 얼굴에 비하여 이목구비의 표현은 작고 옹졸해 보인다. 신체 또한 평면으로 위축되어 비례도 잘 맞지 않는다.

북면의 불상도 같은 양식인데, 옷 속에 싸인 두 손은 가슴에 모으고 있다. 이처럼 석조불감 안에 등을 맞댄 2구의 불좌상을 안치한 것은 유례가 없는 것으로 우리나라 조각사상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다.

   
운주사 석조불감으로 남북으로 불상이 등을 맞대게 한 쌍을 조성했다
   
운주사 원형다층석탑 모습

이곳 대웅전 뒤편으로는 작은 산이 있다. 천천히 올라도 10분도 채 안걸리는 곳에 불사바위가 있다. 운주사 전경을 한 눈에 살필 수 있는 전망대이다. 경내에 길게 뻗은 길과 석탑의 불규칙한 배열이 한눈에 들어온다. 좀 더 멀리 시선을 던지면 남도 특유의 겹겹이 뻗은 곡선의 산세가 산수화 같다. 내려서는 길은 산등성이를 타고 내려가다 다시 오른쪽으로 오르면 신비의 와불이 천 년을 누워 있다.

운주사 전설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미완의 석불로, 새벽닭이 울어 도선국사가 일으켜 세우지 못했다는 바로 그 와불이다. 한 사찰을 대표하는 불상의 시선을 따라가면, 그 풍경이 그 사찰의 진경(眞景)이 되곤 하는데, 운주사의 대표적인 석불인 이 와불은 하늘을 보고 있다. 약 20미터 길이에 폭 7m의 큰 규모임에도 와불에서 느끼는 위엄이나 경계는 없다.

온화한 표정으로 편하게 누워있는 석가모니불. 허나 이 와불은 처음부터 와불로 제작한 것이 아니라 석공은 뉘어서 제작하여 일으켜 세우려 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석공은 끝내 일으켜 세우지 못했다. 그래서 이 석불이 일어서는 날 세상이 바뀐다는 전설이 생겨났나 보다. 이 석불이 일어서는 날 세상이 변하고 태평성대 한다고 하니, 언제 일어설까 궁굼해진다.

와불에서 조금 내려서면 칠성바위가 있다. 이것도 운주사의 불가사의 중 하나로 놓인 자리가 북두칠성과 일치할 뿐만 아니라, 각 위치에 해당하는 별의 크기, 밝기까지 닮은 것으로 알려졌다. 조성할 당시 천문학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는 유적이다.

여느 사찰처럼 무섭고 사나운 사천왕상이 없는 절 운주사. 일반적인 절집의 형식 같은 것은 아예 찾아볼 수 없는 절. 울타리도 문도 따로 없는 천불산 다탑봉 아래 남북으로 뻗은 완만한 골짜기 안에 오로지 천탑과 천불만이 탐방자의 발길을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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